나빠져가는 우리의 대외 이미지, 어찌할꼬? 서양사람들이 동양사람들(특히 유교 영향권 하에 있는)의 성향을 일반적으로 특징지어 부르는 영어표현 속에 ‘Inscrutable Oriental’이란 말이 있다. 슬픈 건지, 기쁜 건지,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무표정한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렇다가도 가끔 이상야릇한 웃음을 짓곤 하는데 그 웃음의 본체를 알 수가 없어서 때로는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 무표정한 한국인? 그들에게도 물론 ‘포-커 페이스(Poker face)’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간관계 에 있어서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보다는 희. 노. 애. 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의 다소 ‘경(輕)한 것’ 또는 ‘경솔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는 호감을 산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Inscrutable’하다는 표현이, 대단한 욕은 아니다 하더라도 불편하고, 답답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그러한 성향의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조금 억지를 부려서 이 표현에서 한가지 건질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무표정에서 때로는 ‘의미가 있는 듯’한 신비로움(Mysterious)을 느끼기에 그런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말이 그렇지 투명성(Transparency)를 중시하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는 그다지 환영 받는 말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한국사람들이나, 한국 생활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외국사람들(해외교포포함)이 참다못해 국내 영자 일간지나, 그들 사이에 서만 소통되는 웹사이트나 혹은 그들의 단골 술집에서 서슴지 않고 뱉어내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형용사들이 하도 많아서 한번 줏어모아 보았더니 대체로 이런 것들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너무 저속하고 상스러워서 내 놓을 수 없는 말들은 제외했다. 제일 많이 쓰여지는 단어로는 ‘rude’ ‘impolite’ ‘noisy’ 가 있고 인쇄물에 나오는 말 중에는 ‘wayward’ ‘vociferous’ ‘recalcitrant’ ‘wanton’ 아주 최근에 와서는 ‘rambunctious’란 형용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단어의 뜻은 영한사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임으로 여기서는 약하기로 하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국사람은 시끄럽고 무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무턱대고 악 쓰기를 예사로 하는 사람들’로 요약할 수 있다. <> 이미지 악화 여기서 필자가 수록하고 있는 각종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외이미지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대체로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무표정하고, 감상적이며, 매우 근면하나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외국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으나 기분에 따라서 놀라운 충성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조금씩 달라진다. “극도로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뜻대로 안되면 서슴지 않고 파괴적인 집단행동에 돌입하고, 자기자신은 부패하고 법과 질서에 위배되는 행동과 생활을 하면서도 지도층이나 권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항하는 무절제한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로 비판의 심도가 심각화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크게 놀라거나 격분할 만큼 악의적이거나 부당한 평가라고 보여지지 않는 것은 이 정도는 우리 자신도 직접 경험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최근, 아주 최근에 국내외 미디어에 비쳐지고 있는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우리의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하기가 거북할 정도로 우리들의 모습이 나쁘게 비쳐지는데 기여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첫째가, 인터넷 세계에서 범람하고 있는 험악하고 비열한 막말들과 이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막가파 족속들’의 파괴적인 언동을 꼽을 수 있다. 둘째로, 정권교체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여야간의 극한 투쟁으로 인한 정치, 사회적 혼란과 폭력행위를 들 수 있다. 셋째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과중 되고 있는 경제적 불안정 특히 젊은 세대들의 실업사태가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절망과, 그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상태를 불러 일으켜 ‘막장’에 직면한 사람들처럼 ‘발악’하는 경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아 진다. <> ‘악’만 남은 한국인, 왜? 본래 한국사람은 적어도 ‘악 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미장원에서(집사람을 통해서 얻은 정보지만) 하다못해 교회에서까지 ‘악’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많이 참을 줄 아는 백성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할 줄 아는 국민으로 유명했었는데…어떻게 이렇게 변질되고 있는 것일까. 혹 우리가 좀 옛날보다 잘 살게 되니까 교만해지고 욕심이 많아져서 그런걸까. 여유가 생기고 남보다 조금 더 잘 살게 되었다고 꼭 이렇게 이런 식으로 우리의 모습이 달라질 수는 없다. 우리보다 훨씬 더 잘사는 국민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상스럽게 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까운 예로 일본만 해도 그렇다. 어느 면으로나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대외이미지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복잡한 도시생활, 교통체증, 극심한 생존경쟁 등 현대사회적 갈등구조를 들어 설명을 해보지만 이것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다. 이 나라 저 나라 많이 다녀보지만 우리나라처럼 악을 쓰는 사람을 본 일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 악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무엇인가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악을 쓸 필요가 있다’는 말도 되고 악을 쓰면 통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점에서 우리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제일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악’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은 북한정권이다.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국제사회에 비쳐지고 있는 그들의 이미지, 그들의 대남 정책, TV영상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몸짓과 음성, 이 모든 것이 ‘악 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남한에 살면서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사는 한국사람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 다음으로는 자기네들의 논리가 안 통하고 모든 것이 뜻대로 안 된다는 심리적 교착상태에서 ‘될 대로 되라’ 또는 ‘너 죽고 나 죽자’의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범죄자이거나 위선을 떨다가 들통이 나버린 정치인들이 그 범주에 속하지 않나 싶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국회에서 그들의 그 악쓰는 모습과 악다구니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온 국민은 물론 전세계로 퍼져나가 버렸으니 변명할 여지조차 없게 됐다. 그 다음으로 악을 쓰면서 살 수밖에 없는 집단이 있다면 데모를 직업으로 삼고 ‘악 쓰는 싸움터’에서 ‘불로소득’을 일삼고 있는 노조 이거나 조직 폭력배일 것이다. <> TV 드라마까지 왜 이러나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최근 들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기이한 현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소위 인기 TV드라마에 나타나는 천인공노할 ‘악 쓰기’향연 이다.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놓고 덮어놓고 싸우고 저주하고 죽기 살기로 아무에게나 대들고 악에 받쳐 소리소리 지르기를 기가 진하도록 하는데 마치 ‘악’쓰는 경쟁이라도 붙은 듯 하다. 극중에 악역 맡은 한두 사람이 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다 악을 쓴다. 그러다 보니 이건 오락이 아니라 무슨 생지옥을 보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즘에 와서는 어린아이까지 이 ‘악 쓰는’ 역할을 시키고 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어느 지면에서 이 현상을 보고 공감한 사람이 쓴 글에서 방송국간에 생존경쟁이 심화하여 시청률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 시청률 올리려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한국인 정서에 맞지도 않는, 별 희괴한 생활철학 에다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흉악하고 거짓된 인간관계를 악랄하게 표출하는 이러한 드라마를 쓰고, 만들어 내야 먹고 살게 돼있는지…묻고 싶다. 더구나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행되고 있는 것이 드라마 제작 내용, 방향뿐만이 아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격렬하게 악 쓰는 연기를 잘해야 유능한 연기자로 인정받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우리사회가 ‘막장’에 와있어서 ‘악 밖에 남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러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한답시고 그러한 방송 드라마를 아무런 가책감도 없이 예사로 만들고 또 방영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악에 받친 사람들이 그러한 악랄한 드라마를 만들어 착한 백성을 ‘인간 파괴’와 ‘망하는 길’로 유인해 가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어느 쪽인가. 선진국에서는 사람을 추천할 때에 그 사람이 품격이 있다는 말로서 ‘말투가 부드러운 사람’ 즉 ‘soft-spoken’한 사람이라면서 높이 평가해준다. 우리 사회에도 악 쓰는 사람보다 말투가 부드러운 사람들이 많아져서 국제사회에서 품격 있는 국민으로서 대접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차 윤: (주)CPR 대표ㆍ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1932년생. 해군사관학교ㆍ美 플로리다대학 졸업.美 워싱턴대 地政學 석사/ 해군사관학교 사회인문과장(地政學). 해군대학 교수, 국토통일원 교육 담당관, 정치외교정책담당관, 한국홍보협회 홍보국장, 문화공보부 주카이로 공보관, 주일본 수석공보관, 美 메릴랜드 대학 교수, 미국영화수출협회(AMPEC) 한국대표 등을 역임/현재 (주)CPR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이메일: chayun@icp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