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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화폐 - 루피
2005/11/25 오후 9:16 | 인도 (India)
" 인도의 화페 루피"
인도는 약 6세기경에 동전을 만든 나라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주조한 것으로 전합니다. 인도의 화폐주조는 그 기술과 주 도안의 테마, 화폐의 크기, 모양, 사용 된 금속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당시의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잘 만들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인도의 동전들은 인도의 정치와 경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어왔습니다. 특히 인도에서 발견되어지는 외국동전들은 고대-중세-전기 식민지시대에 인도 무역 양식을 밝혀내는데 큰 빛을 던져주었습니다.
자...그럼 인도가 독립한 이후 만들어진 화폐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거꾸로 돌아가 고대동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인디아는 1947년 8월15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독립 초반에 정치적인 변동으로 혼란스러웠지만 통화체제는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후 파키스탄은 1948년에 새로운 동전을, 1949년 새로운 지폐를 선보인 반면, 인도는 1950년 8월15일에 파키스탄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동전을 만들어 소개하였습니다.
이런 인도의 화폐주조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은 미터법 채택에 대한 소개와 독 립국으로의 고유한 상징을 나타내려는 화폐개혁이었습니다.
1947년~1950년 냉전시대에는 1Rupee=192pies라는 화폐단위가 그대로 이어 졌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 8월15일날 안나스(Annas)라는 화폐단위가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도 독립국의 첫 번째 통화였습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동전은 예전에 쓰던 동전도안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는데요, 왕의 초상화가 그려졌던 1루피짜리 동전에 아쇼카석주의 사사자상이 새겨졌고, 나머지 한 면에는 호랑이 그림 대신 옥수수 다발이 새겨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도의 번영과 진보를 상징하도록 했죠. 1Rupee=16Annas로 통했습니다.
이후 1955년 9월 미터(길이의 단위로)법을 채택함
으로 해서 화폐주조 법률을 수정했습니다.이 법률은 1957년 4월부터 효력을 가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수정했냐하면 1루피가 주 단위임에는 변함이 없고 16Annas대신 10진법을 이용해서 페이샤 라는 단위를 소개했습니다. 1루피는 100paisa로 통했지 요.
이 화폐 단위 페이샤는 Naya Paisa(저도 이뜻은 모르겠어요)라는 용어로 1964년까지 쓰이다가 Naya라는 단어를 빼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페이샤라는 화폐 단위를 쓰고 있지요.
동과 구리-니켈합금, 놋쇠-니켈합금, 알루미늄-청동합금으로 만들어졌던 동전들이 1960년대 물가상승으로 점점 순수 알루미늄으로 주조되기 시작했습니 다. 이렇게 동전 주조의 원료가 바뀌면서 1968년에 원이 아닌 정육각형의 3페이샤 동전이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70년대에 이르러 1, 2, 3페이샤 동전의 주조를 서서히 줄였고 나중엔 결국 주조 중단 되도록 했습니다. 이후 1988년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10, 25, 50 페이샤 동전이 소개되었고 1992년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1루피 짜리가 소개되었습니다. 1, 2, 5루피짜리 지폐가 나온 것은 1990년대로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여행자들은 페이샤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버스를 애용하게 되면 거 스름돈으로 가끔 받을 수 있을 뿐 대개는 쓸 일이 잘 없지요. 현재 5루피와 2루 피짜리만 구리-니켈 합금으로 만들어졌구요, 나머지는 모두 스테인리스입니 다.
" 인도의 화페 루피"
이렇게 동전을 살펴봤는데요, 이번엔 지폐도 한번 보죠.
인도의 금융기관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지폐의 등장은 18 세기 후반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요,은행의 역할을 하면서 그 지역의 행정기 관으로 언급되어진 몇몇 은행(마드라스 은행,뱅갈은행,뭄바이 은행)과 사설 은행에서 이 지폐의 발행을 맡았습니다.
가장 일찍 발행된 것은 1770-1832년에 세워진 Hindostan Bank에서 만든 것 이었고,1773-1775년에 인도총독으로 온 영국인 워런 헤이스팅스에 의해 Bahar와 Bengal에 세워진 The General Bank와 1784-1791년에 세워진 The Bengal Bank등 기타 다른 은행에서도 발행을 하였습니다.하지만 그때의 지 폐들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1861년의 지폐주조 법률은사설은행과 마드라스 은행외 2개의 은행에서의 지 폐발행을 끝내도록 하고 인도정부에서만 지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도록 만들 어졌습니다. 그리고 1935년 4월 1일 연방준비은행이 설립되기 전까지 바로 인도 정부에서 이 일을 맡아했습니다.1940년 8월에는 1루피짜리 지폐가 소개되었으며 1994 년까지 계속해서 발행했습니다.
이러한 지폐의 주 도안은 인도민족의 사회적 문화적 특질과 그들이 가진 세계 관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화폐를 통해서도 한나라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럼 인도에서 발행되고 있는 지폐를 보실텐데요,신권과 구권으로 나눠져있 습니다.구권은 과거의 발행된 것으로 도안이 현재와는 많이 다르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은행은 이 루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그러니 환전하 실 때는 어쩔 수 없이 달러로 바꾸어가셔서 다시 루피로 환전하셔야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현재 통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위 내용은 인도 화폐주조국에서 얻어온 자료를 제가 번역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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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의 신앙고백 4. - 마지막시도, 목사의 길
자선 사업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 나는 마침내 극단적인 수단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같은 결과가 생길까봐 오래 전부터 두려워하였으며, 이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이제 이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듯 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나는 목회 사업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지만, 목사보다 더한 사람이 있을까? 내가 기독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부터, 나는 "결코 목사는 되지 않을 것이야" 라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게 아무리 천한 직업을 주시더라도 제발 목사는 되지 않게 해주십시요"라고 기도하였다. 물론,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그러나 내 스스로 목사직을 택하여 Rev.(경건한 목사) 라는 명칭을 내 이름 앞에 얹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비록 내가 마차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하였지만, 결국 나는 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밭에 곡식이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 추수할 것이 많은데 추수할 사람이 너무나 적다. 그러므로 당신은 목사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여러 사람이 이러한 말로서 신학 공부를 권했었다. 그러나 나는 목사를 나의 직업으로 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목사는 내가 생각하는 목사와 달랐다. 나는 바울과 같은 목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루터와 같은 목사가 되기를 갈망하였다. 나는 리빙스턴과 같은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나에게 그러한 목사가 되라고 권했으면, 나는 높으신 부르심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제대로 성경을 배우지 못했고, 충분한 경험이 없으며, 자신의 죄와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알지도 못하고,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신학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목사가 되어서 설교 단상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목사직에 대해서 환멸을 느껴왔다.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교회의 깃발이 피로 물들었을 때에는 매우 적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목사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목사직이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는 직장으로 전락되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최소한의 생존경쟁으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목사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기나긴 씨름 끝에 결국 나는 "결코 목사가 되지 않겠다"는 사욕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이 마지막 제물을 바치고 목사로서 최대의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에 평안을 주실 것이다 라고 믿었다. 내 영혼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목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신학교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인생 최대의 행복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교는 중세기 때의 수도원과는 전혀 달랐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처음 느낀 것은 너무나 편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빈민 구호 병원에서 수련하던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신학교에서의 실망
신학교에서 배운 어떤 학문들은 나의 사상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특히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연구를 통해서 나는 모세와 바울을 직접 대면하는듯한 감격을 맛보았다. 신학이라는 학문을 여기서 제한하였더라면 좋았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진지한 성경 연구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혼을 구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웅변학, 설교학, 목회학, 변증학과 같은 것들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쳐야만 하였다. 나는 모세와 바울이 배웠던 신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신학교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신학교 역시 나의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신학교의 아침 기도회, 쉴새없는 찬미소리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죄의 사슬을 벗겨주지 못했다. 성경 연구, 기도, 찬미와 같은 것들이 학문의 대상이 되고, 의무로서 나에게 부담을 주었을 때, 그러한 것들이 더 이상 거룩한 힘으로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더우기 종교 비판학과 같은 강의 시간에는 두려운 마음 없이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거룩한 이름을 마치 오래된 돌멩이나 나무조각의 이름처럼 불러댔다. 신학교에서 내가 경험했던 위험은 바로 신성모독의 죄였다.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은 마음이 죄의 죄됨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전락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룩한 성경 말씀이 죄인의 심령을 치료하고 죄의 사슬을 끊어주는 능력으로 다가오는 대신에 하나의 학문과 학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나는 죄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학교에 있는 어떤 교수들은 죄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학을 나에게 강요하였다. 나는 신학교에서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는 문을 발견하곤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신학의 중심은 마음에 있어야 한다. 전도는 정신이지 기술이 아니다. 목사의 설교는 배우의 연극이 아니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정신적 사업을 위해서 기술적 훈련을 받는 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연극 배우가 될 수 있다. 자기가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말하고, 자기가 확신하지 않는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말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연극 배우의 필수 연기가 아닌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도, 특별한 하늘의 계시와 영감이 없이도,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한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도 신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신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현대 신학교가 가지고 있는 맹점이다. 설교는 제조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바울의 글은 문법적으로 분석하고 해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되어야 비로서 바울의 사상과 경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바울의 사상을 꾸며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목사의 양성은 신학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훌륭한 종교가 중에는 신학교 출신이 많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길리얏의 야인이었으며, 그의 사업과 정신을 물려주려고 선택한 후계자 역시 소를 모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세상을 구하려고 계획하셨을 때에도, 당신의 아들을 히렐이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우게 하지 않으시고 나사렛 벽촌에 두셔서 천연계를 통하여 아들을 친히 가르치셨다. 19세기 최대의 전도자인 무디 역시 세탁소의 일꾼이었다. 훌륭한 목사는 결코 신학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학교가 만들어낸 목사야말로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위험한 원수이다.
그렇다! 신학교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신학교는 마귀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기 위해서 공격하기 좋은 최대의 공격 목표이다. 신학교가 마귀의 공격 목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말하고 설교하는 것과, 그들의 품성과 사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귀는 그리스도의 거짓 대리자들을 통하여 잘못된 사상과 교리를 하나님의 교회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다.
신학자와 목사가 만들어 놓은 거짓 평안
죄의 죗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의 은혜됨을 알 수가 없다. 자기 죄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에 대한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그 마음 속에 절실한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에 들어온 가장 큰 위험은 죄를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부산물로서 가르치는 것이다. 타조가 사냥꾼한테 쫓기다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지면, 그 머리를 모래 속에 박고 그것으로서 온 몸을 숨겼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죄에 대해서 그렇게 가르친다. 그들은 죄를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것으로 부각시킴으로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율법은 너무나 거룩해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다는 식의 설교를 한다. 그러나 죄를 범한 교인들은 심한 양심의 가책과 심판의 두려움을 목사와 신학자에게 호소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십계명은 십자가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잘 믿기만 하십시요.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라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범하고도 그것을 심각한 죄로 생각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죄인으로서 열렬히 구해야 할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를 마음 속 깊이 구하지 않게 된다. 죄를 범한 죄인은 죄책감에 눌리게 되고, 죄인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께 나오도록 계획하신 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인데, 신학자들은 죄 가운데서도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신학을 고안해 냄으로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죄인들의 마음에 거짓 평안을 넣어주었다. 죄를 범한 사람은 마땅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오직 죄를 회개하였거나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만이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죄를 생각하지 않거나, 인위적으로 율법을 폐지시킨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거나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는 죄를 죗되게 하지 않음으로써, 은혜를 은혜되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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