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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11/20
 

실존주의 [實存主義, existentialism]




개요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실존주의의 역사

방법론적 논점

내용상의 논점

실존주의의 사회적·역사적 기획






세계 내의 인간 실존에 대한 해석에 힘쓰며 인간 실존의 구체성과 문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철학.

개요

주로 20세기의 철학운동으로 대표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스페인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이탈리아의 니콜라 아바냐노 등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주요특징은 이미 19세기에 프리드리히 니체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나타났다. 에트문트 후설과 G. W. F. 헤겔은 실존주의자는 아니지만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실존주의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존은 항상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둘째, 실존은 주로 실존의 존재양식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실존은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셋째,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이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 넷째, 이 가능성들은 인간과 다른 사물 및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실존은 항상 세계내존재이다. 즉 실존은 선택을 제한·제약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현존재(Dasein)라 불린다(→ 형이상학).

이상의 주장들로 인해 실존주의는 첫째, 인간을 절대적이거나 무한한 실체의 현현(顯現)으로 보는 견해와 대립하며 의식·정신·이성·이데아 등을 강조하는 관념론 대부분의 형태에 반대한다. 둘째, 인간을 주어진 완성된 실재로 보고 이 실재의 요소를 분석해야만 인간을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학설과도 대립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외적 사실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나 과학주의의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 셋째, 모든 형태의 필연주의와 대립한다. 넷째, 유아론(나만이 존재한다)이나 인식론적 관념론(인식대상은 정신적인 것이다)과 대립한다. 실존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서 항상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이와 같은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실존(existence)과 관련해 존재(being)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이 초월성이 실존의 기초 또는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신론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인간 실존은 절대적 자유로서 자신을 기투(企投)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급진적 무신론의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 인간 실존의 유한성, 즉 기투와 선택의 가능성에 내재한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인문주의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신학). 실존주의는 이렇게 여러 방향을 취하면서 실존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인간 상황의 문제적 성격인데, 이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선택하고 기투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인간 상황의 현상 특히 부정적 현상으로서, 이를테면 사물·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려 있는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관심이나 선입견, 죽음·고통 등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인한 '난파', 상황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 등이다. 셋째, 실존에 내재하는 상호주관성으로서, 이것은 나와 너(타인 또는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고, 익명의 군중과 개별 자아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다. 넷째, 존재의 일반적 의미에 관한 학설인 존재론이다. 다섯째, 실존적 분석의 치료적 가치로서, 실존적 분석은 일상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미혹과 타락에서 인간 실존을 해방하고 실존이 그 본래성을 향하도록 한다.

실존주의의 역사

인간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몽테뉴와 파스칼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셀이나 사르트르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의 정신적 내면으로 후퇴하는 자세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볼 수 있다. 실존이 이성으로 환원불가능하다는 테제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 F. W. J. 셸링의 헤겔 논박에서 볼 수 있다. 빌헬름 딜타이는 인간은 자연적 사물의 인식과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 특수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는 '이해'를 인간 과학의 고유한 방법으로 보았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성향의 낙관주의는 인간 운명이 무한한 힘(이성·절대자·마음 등)에 의해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불가항력의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러한 낙관주의는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통·타락·질병·죽음 등과 같이 19세기 낙관주의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런 부정적 현실을 강조한 사상가들은 실존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필연주의에 반대하여 실존을 가능성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불안은 '가능적인 것에 대한 감정'이다. 불안은 인간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이다. 한편 절망은 가능성에서 유일한 치유책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능성 없이 머물러 있다면 공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동과 생산의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관계가 갖는 소외된 성격을 강조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가 인간을 목적에서 수단으로 인격에서 비인격적 과정의 도구로 만든다. 니체는 '운명애'(amor fati)를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정식'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과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을 바라는 데 있으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

현대의 실존주의는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일관된 방식으로 결합했다. 모든 형태의 실존주의에 공통되는 점은 가능성에 기초하여 미래를 기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을 내포한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인간이 비본래성 내지 소외로 하락하고 인격에서 사물로 타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실존의 개별성과 반복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타인과의 공존을 소외로 여기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에서 "타자는 나의 가능성의 숨겨진 죽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실존주의에서 공존은 익명이 아니고 인격적 의사소통에 기초한 것으로 인간의 진정한 실존을 조건짓는다. 실존주의는 현대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에서는 프란츠 카프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등이 실존주의 경향을 보였다.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실존주의와 유사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또 실존주의는 야스퍼스와 루트비히 빈스방거를 통해 정신병리학에도 침투했다. 신학에서는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 루돌프 불트만 등이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방법론적 논점

실존주의자들이 실존 해석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해석자와 해석되는 것, 존재 문제와 존재 자체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 2가지 항은 실존 속에서 일치한다. 왜냐하면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인간은 이 물음을 자신에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신의 존재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실존 해석의 독자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이용한다. 하이데거에서 현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현현이다. 현상학은 존재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으며 따라서 존재론이다. 다만 이때의 존재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 곧 인간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의 합리적 해명방법을 채택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은 존재에 대한 추구로서 인간의 합리적 자기이해 노력 또는 의사소통 노력이다. 그의 방법은 실존과 이성이 인간 존재의 두 기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성은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서 철학의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 즉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근본 기투'에 관한 분석이다. 마르셀에 따르면 철학의 방법은 존재의 신비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합리적 분석이나 증명을 통해서는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아바냐노와 메를로 퐁티 등의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실존을 구성하는 구조 즉 인간을 다른 존재와 연결해주는 관계를 과학을 비롯한 모든 이용가능한 기술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규정한다.

내용상의 논점

존재론과 인간 실존의 방식은 모두 실존주의의 관심사이다.

존재론

실존주의적 존재론의 근본 특징은 실존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서 가능성에 우위를 둔다는 것이다. 이때 가능성은 모순의 부재라는 순수 논리적 의미도 아니고 현실성이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잠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도 아니며 인간 실존의 구조인 존재적·객관적 가능성의 의미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특유한 양상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장은 이런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그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본성을 갖지 않으며 이 양식이란 곧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항상 그 자신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한다. 가능성으로서 인간 실존은 미래의 선취·예기·기투이다. 미래는 근본적인 시간의 차원이며 현재와 과거는 부차적이다. 또한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초월이기도 하다. 초월한다는 것은 그 자신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존재(사물과 타인)로 총체로서의 세계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실존주의자에 따르면 이 다른 실재의 존재는 인간 실존의 존재와는 다른 양상을 가진다. 즉 실존에 고유한 양상은 가능성인 데 반해 존재에 고유한 양상은 현실성 또는 사실성이다. 그결과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존재의 무(無), 사실의 모든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Was ist Metaphysik?〉(1929)에서 "인간 실존은 무의 한가운데 머무르지 않고서는 존재와 관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존주의자들에게 '무'란 사실의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서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가능적인 것은 그 자신(itself)이 '되기에는' 대자(For-itself)가 결여된 '어떤 것'으로 그것은 객체가 되기에는 주체가 결여된 것이며 결여로서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다.

실존을 무로 환원하는 것은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첫째, 사르트르, 카뮈, 무신론적 실존주의처럼 의미의 결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즉 실존과 모든 기투의 부조리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후기 하이데거, 야스퍼스, 신학적 실존주의처럼 실존을 구성하는 가능성을 넘어서 실존과 존재 사이의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존재는 실존 속에서 언어적·신앙적·신비적 종교 등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 실존의 방식

실존주의는 때로 인간의 운명을 인간 자신이 맡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 성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실존에 대해 존재의 우위를 강조하는 조류도 있다. 이 2가지 관점의 차이는 자유의 문제를 푸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가능성은 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서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 반대로 사르트르에서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운명 개념과 급진적 자유 개념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며 사르트르의 자유론적 관점에서 과거의 의미는 현재의 기투에 의존한다. 그러나 운명론적 관점에서도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다(→ 자유의지). 이때의 선택이란 자신의 무를 이해하느냐 않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실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그 표지는 죽음)을 이해할 때 '진정한 실존'을 달성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제공된 유일한 선택은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존재론은 존재와 무 사이를 동요하면서 무를 존재에 관한 유일한 계시로 여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신이 되려고 분투하는"(사르트르) 자이다. 우주론적·신학적 실존주의에서는 존재가 인간을 무로부터 되찾기 위해 다소 신비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실존주의의 사회적·역사적 기획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질 수 있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왔다. 예를 들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이 사회 변혁을 위해 효과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자연·사회와 원초적이고 제거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치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에서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옹호했던 '기투' 개념을 수정하고 마르크스가 이해한 변증법 개념을 이용하여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하려 했다. 실존을 구성하는 기투는 전에 사르트르가 주장했듯이 자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 가능성의 제약을 받는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처럼 이 객관적 가능성을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동일시한다. 물론 기투는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의식을 가진 특수한 개인의 기투이다. 그러나 이 의식은 총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즉 점차 포괄적인 인간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의식이다. 변증법적 이성은 바로 이런 총체화 증대의 과정이다. 나아가 변증법적 이성은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되며 역사에 참여하는 개인의 내적 자유와 동일시된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태도에서 역사의 절대적인 변증법적 필연성(물론 이 필연성은 개인들에 의해 내면화하고 체험됨)을 옹호하는 태도로 옮겨갔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철학과 현대 문화 전반에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왔다. 이 도구의 성격과 사용 기술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도구란 '문제성'·'기회'·'조건'·'선택'·'자유'·'기투'와 같은 용어들을 말한다. 이런 도구는 인식론·윤리학·미학·교육·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실존의 해석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문자로 씌어진 '작품'을 대상으로 할 때 서양인은

2007.09.06 02:17 | 철학 /사색의 광장 | jabir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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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씌어진 '작품'을 대상으로 할 때 서양인은 당연히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서사시를 문학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입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영웅 길가메시의 여행 모험담을 이야기체의 운문에 담은 『길가메시』를 기원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서양의 경우를 먼저 봅시다. 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구분한 이래 서사시·서정시·극시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첫째,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서사시『일리아스』『오디세이아』가 있습니다.
영웅의 업적을 찬양하고 역사적·국가적·종교적·전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주제를 고상한 문체로 다룬 이야기체의 장시인 서사시의 효시는 기원전 900∼750년경에 완성된 호메로스의 서사시입니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서사시이고, 『오디세이아』는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를 점령한 영웅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모험을 다룬 서사시입니다. 서사시의 전통은 고대 로마 시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중세의 『니벨룽겐의 노래』 『롤랑의 노래』로 이어지고, 다시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 등으로 이어지지요.

둘째, 그리스의 칠현금인 리라(lyre)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 서정시가 있습니다.
서정시는 리라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기 쉬운 표현 방식으로 발달했는데, 특히 개인의 감정을 솔직히 나타내는 운문입니다.

기원전 7세기의 그리스 시인 사포가 쓴 『아프로디테 송가』는 그 시대 서정시의 대표작이었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에서는 카툴루스와 호라티우스가 서정시를 썼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음유시인들의 노래, 기독교 찬송가, 다양한 발라드에서 서정시 형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페트라르카·셰익스피어·스펜서·존 밀턴 등이 완성된 서정시의 형태인 소네트를 발전시켰습니다. 18세기말부터 서구를 휩쓴 낭만주의는 서정시를 주된 장르로 삼았고, 19세기와 20세기 서양의 시는 거의 전부 서정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셋째, 극시가 있습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시이면서 동시에 희곡이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가정의 복수극입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엘렉트라』는 친부 살해, 어머니와의 결혼 등 아이러니컬한 상황 전개를 통한 일종의 성격 분석극입니다. 에우리피데스는 『트로이의 여인들』이란 대표작이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喜劇)을 써 그 전통을 고전주의 시대에 가서 몰리에르가 계승합니다.

시의 시대가 전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문이 태어납니다. 헤로도투스의『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의『소아시아 원정기』 같은 역사서 외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와 윤리학서가 산문의 물꼬를 트고, 문학사를 만들어갔습니다.

한편 동물을 의인화시켜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 우화가 많이 탄생하여 글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우화 작가는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 지방의 노예로서 많은 우화를 남긴 이솝이죠. 이솝에 의해서 확립된 우화의 전통은 중세 영국의 초서를 거쳐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라 퐁텐으로 이어집니다.

중세에는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인 로맨스가 유행의 물결을 타고 전 유럽에 퍼집니다. 로맨스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영국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독일의 『니벨룽겐의 노래』와 『파르지팔』, 영국의 『가웨인 경과 녹의(綠衣) 기사』는 중세 각 나라를 대표하는 로맨스로서, 주인공이 고달픈 여정에 올라 온갖 형태의 장애를 다 극복하면서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모험담입니다.

희곡의 역사를 크게 발전시킨 셰익스피어의 시대만 하더라도 희극과 비극은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18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인 희극과 비극을 대신한 '드라마'가 생겨났습니다. 서양의 '소설'(novel)이란 것도 이 시기에 생겨났습니다.

소설은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이 대두되면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음유시인의 노래를 통해서 시를 감상하고 공연장에 몰려가서 단체로 연극을 봄으로써 희곡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소설의 융성으로 말미암아 각자 책을 사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확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일입니다.

문학을 '창작문학'과 '산문문학'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소설·희곡·수필·평론이 창작문학의 5대 장르이고, 역사·철학·언어학·수사학이 산문문학의 4대 갈래입니다. 하지만 이런 낡은 분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시를 형식상으로 흔히 정형시·자유시·산문시로 분류하는데, 이것 역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분류인지 모호합니다.

오늘날 문학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영화와 공연예술, 컴퓨터와 E-book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서양 문학 장르의 분화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문학의 생존 전략일 것입니다.

'그사람 참 낭만적인 데가 있어',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야'란 말은 요즘도 가끔씩 듣게 되지 않습니까? 18세기 말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전반기까지 풍미한 낭만주의(Romanticism)는 프랑스 루스티카 지방의 방언을 가리키는 말 'roman'을 어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향토어 혹은 토속어를 지칭하던 이 말이 중세에는 기사들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뜻하다가 문예사조의 하나를 지칭하는 말로 정착되었습니다. 'roman'을 일본에서는 '浪漫'이라고 표기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습니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769∼1821)의 초상. 나폴레옹의 등장은 스탕달의 『적과 흑』,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탄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일어났음은 앞서 설명했으므로 다른 측면, 즉 정치·경제·철학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으로 민주화가 진전되는가 했으나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다시 보수로 회귀하게 되지요. 나폴레옹의 제1제정→왕정복고→워털루대전 패배와 백일천하→7월 혁명→2월 혁명→제2공화국→제2제정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정치상황은 모범과 규범을 주장하는 고전주의의 정신을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완성과 유럽 각 지역으로의 파급은 농경사회였던 유럽 사회 전체를 점차 산업사회로 탈바꿈시킵니다. 수공업 소량생산에서 기계공업에 의한 대량생산체제로 바꾸어지고,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신분은 보잘것없지만 경제력을 가진 대중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은 시장경제를 통해 부의 축적을 꾀하게 됩니다.

예술품이 상품화되고, 독립적인 창작자와 자율적인 천재의 개념이 일반화됩니다. 문학의 향유층이 귀족층이나 상류사회 인사였던 전시대의 살롱 문학에서 벗어나 문학작품의 독자가 일반대중으로 바뀝니다.

낭만주의는 철학적으로는 계몽주의에 반대했습니다. 세계를 논리적인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감각적인 인식과 우연, 그리고 직관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는 유동적인 유기체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개성의 존중은 낭만주의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낭만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독일의 슐레겔 형제였습니다. 두 사람은 고전적인 예술이 미·관념성·조형성·결정성·폐쇄성을 특징적으로 갖고 있는 데 반해 낭만주의 예술은 힘·개성·회화성·무한성·개방성의 특징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 명의 낭만주의 이론가인 스탈 부인은 『독일론』에서 고전주의 시는 조형적이며, 사건 중심적인 그리스 비극과 관계가 있고, 운명에 관한 시이며 완결된 시라고 했습니다. 반면 낭만주의 시는 회화적이며, 성격 중심의 근대극과 관계가 있고, 섭리에 관한 시이며 진보하는 시라고 했습니다.

자, 그럼 낭만주의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까요.

1 이성과 합리성이 아닌 감성을 중시했다는 것입니다. 워즈워드의 "시란 강력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분출"이란 유명한 말은 바로 그 뜻이지요.


2 낭만적 주관과 창조적 자아에 대한 신념으로 개인의 천재성을 중시했습니다.


3 민속문학에 대한 탐구입니다. 낭만주의자의 일부는 민담과 민요의 수집과 정리, 민요시의 창작, 중세 민담을 내용으로 한 동화 창작에 전념했습니다. 그림 형제가 그 대표자입니다.


4 문학의 소재를 일상적 경험에서, 시어를 일상어에서 가져올 것을 주장했습니다. 구어체의 구사와 직관적인 고백은 이전 시대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입니다.


5 상상력과 영감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6 이 세계에는 없는 완전한 실체를 꿈꾸는 '동경'(憧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슐레겔은 "모든 인간에게서 무한한 것에 대한 동경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쓴 아놀드 하우저는 낭만주의의 특질을 고향에 대한 향수와 먼 곳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고 있지요.

낭만주의자가 지향하는 과거는 신화의 세계나 원시의 세계, 그도 아니면 중세의 왕국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양, 이탈리아, 그리스 유적지, 원초적 자연을 가고 싶은 곳으로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7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서 자연을 감각적이고도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8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산업혁명 덕분에 산업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청교도혁명과 프랑스대혁명 등 혁명의 바람을 맞아본 낭만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문예사조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2007.09.06 02:14 | 철학 /사색의 광장 | jabir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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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예사조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그래서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그 문예사조의 흥망성쇠의 과정과 특징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부터 먼저 살펴볼까요? 프랑스는 17세기에 부르봉 왕조가 들어섭니다. 이 왕조는 앙리 4세→루이 13세→루이 14세로 이어지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정치를 펴나가게 됩니다. 루이 14세의 통치 시기를 가리켜 ‘절대왕정의 시대’라고 일컫는 것은 그만큼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이 시기는 리셜리외·마자랭·콜베르로 이어지는 재상이 중상주의 정책을 펴 국고가 튼튼해집니다. 대외적으로는 프랑드르 전쟁·네덜란드 계승전쟁·스페인 계승전쟁 등으로 영토 확장을 꾀할 때였습니다. 프랑스의 문학은 그리스 문학을 전범으로 삼아 비극과 불륜극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스튜어트 왕조가 들어서서 역시 절대주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로마 카톨릭의 말을 듣는 종교계와 지방의 제후들에게 분산되어 있던 권력을 왕이 틀어쥐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민주화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민의식이 일찍부터 싹텄다고 할까요, 청교도혁명→공화제 선언→왕정복고→명예혁명→권리장전 선포 등 역사적인 진통을 겪으면서 휴머니즘(인본주의)에 대한 의식을 키우게 되지요.

그리하여 그리스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에 신이 아닌 사람의 권리가 높게 인정받았듯이 우리도 그때처럼 인간 본위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합리적인 이성주의자였던 그 당시의 대다수 문학인은 왕과 교황청, 혹은 왕과 제후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민족·민중 계몽의 문학을 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유럽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 많이 씌어집니다.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인 장르는 희곡입니다. 코르네이유의 『르 시드』는 그리스 시대의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본받아서 귀족 가문의 파국을 다룬 총 5막으로 된 운문 희곡작품입니다.

코르네이유는 희곡의 3일치를 주장했는데, 시간,장소,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연극 한 편은 24시간 이내에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어야 하고, 단일 장소에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등장인물의 행동과 전체적인 진행이 상궤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라신느의 희곡 「페드르」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한 줄스 다싱 감독의 영화 「페드라」의 한 장면. 메리나 메르쿨리와 안소니 파킨스가 열연하였다.
라신느의 대표 희곡은 「앙드로마크」와 「페드르」입니다.
「페드르」는 60년대에 영화화되기도 한 유명한 '불륜극'이지요. 아테네의 왕 테제의 왕비인 페드르는 왕이 전쟁터에 나가고 없는 궁전에서 전 왕비의 소생인 이폴리트를 사모하여 미칠 지경에 이릅니다. 이폴리트는 양어머니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고는 아연실색하지요 이폴리트가 왕실 처녀 알리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페드르는 질투심이 일어나 광란의 상태에 이르니 희한한 삼각관계가 형성됩니다.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아내를 남편이 용서할 리 없고, 그래서 이 작품은 처절한 비극으로 끝납니다.

몰리에르는 앞의 두 사람과 달리 희극(喜劇)과 민중극을 썼습니다. 「위선자 타르튀프」 「수전노」 「인간 혐오자」 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공연될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자가 뛰어납니다. 프랑스의 봉건적인 체제와 교회의 전횡, 황금만능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으로, 관객이 포복절도하는 우스꽝스런 작품들이지요.

이밖에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대표할 작품을 더 꼽는다면 라 퐁텐의 『우화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파스칼의 『팡세』,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라 파이에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판화가이기도 했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천로역정』의 삽화.
영국의 고전주의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밀턴의 『실락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나라 개화기에 번역되어 성경만큼이나 널리 읽히면서 전도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천로역정』은 여행담의 형식을 띤 종교 우화소설입니다.

『실락원』은 왕정복고에 대해 불만을 품은 밀턴이 체제 전복의 꿈을 담아 쓴 장편 서사시입니다. 낙원의 상실은 아담이 사탄의 힘을 빌어 이루어낸, 인간성 회복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자각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입니다.사탄은 주인인 하느님에 항거하여 스스로 주체성을 되찾으려 했던 인간을 상징하고 있었으니, 중세라면 결코 씌어질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니엘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는 주체적이면서도 개척정신을 갖춘 인간을 근대적 인간형으로 제시한 작품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 것이지요. 자연은 정복과 탈취의 대상이었기에 식인종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노예를 프라이데이라고 명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J.J.그랑빌이 그린
『걸리버 여행기』의 삽화.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가 위험에 처해 있는 장면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일종의 정치풍자소설입니다. 소인국은 관료의 기회주의와 토리당과 휘그당의 당파싸움을 비판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세계였고, 거인국은 선거제도와 의회를 옹호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세계였습니다. 날아다니는 섬의 나라는 추밀원,참의원,수상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계였으며, 말들의 나라는 금전만능 풍조를 비판하고 아일랜드인으로서 영국에 대해 조롱하고 경멸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계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도외시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으로 읽으면 안 될 것입니다.

독일은 17∼18세기 무렵만 해도 유럽의 후진국이었습니다. 통일도 안 되어 있었고, 정치와 경제, 문화와 문물이 보통 낙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영국의 고전주의 물결이 독일에 들어온 것도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였습니다.

라이프니츠로 대표되는 독일의 계몽주의는 교회의 권위와 특권에 반대하여 이성의 계몽과 합리적 사유를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라이프니츠의 계몽주의는 질풍노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이 운동은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근간이 됩니다.

질풍노도운동의 주창자는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개성의 존중과 감정의 자유를 부르짖었고, 민중의 언어에 의한 국민문학의 창조에 노력을 기울였지요.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과 노도)이라는 말, 여러분도 들어보셨지요?


괴테(1749∼1832)
질풍노도운동이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버리고 열정적인 포즈로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문학인의 의지를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이 운동에 동참한 이들은 개인의 발전 가능성을 발판으로 인간의 주체적인 능동성을 작품의 핵심 주제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정신은 고전주의의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낭만주의와 닮은 구석이 아주 많습니다.

독일의 괴테는 질풍노도운동의 지지자이기도 했지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 걸쳐 작품활동을 한, 독일이 자랑하는 문호(文豪)입니다. 그는 1772년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롯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여 고민하다가 그 고민을 소설로 승화시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그래서 탄생한 소설이지요. 1775년부터 10년 동안 7년 연상의 유부녀 샤롯테 폰 쉬타인 부인을 사랑한 일과 1822년부터 17세 소녀를 열렬히 사랑한 일은 유명한 일화지요. 세계적인 문호가 불륜의 사랑을 주로 했던 난봉꾼이었다? 참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실러(1759∼1805)
아무튼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해인 1786년은 독일 고전주의가 시작된 해이며 실러가 죽은 1805년은 고전주의가 끝나는 해입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괴테와 실러의 주요 작품이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작으로 다뤄지기도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면 악의 화신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사이에 놓고 신과 대결을 벌입니다. 파우스트는 죄악이 수반되는 온갖 쾌락과 환락을 거치고 나서 궁극적인 선의 경지에 이릅니다. 73세의 괴테가 17세 소녀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민한 끝에 나온 작품임을 상기한다면 사랑이 도대체 뭔지 헷갈리게 됩니다. 괴테의 또 다른 대표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인간의 내면적 성장 과정을 탐구하는 이른바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모범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1781년에 초연된 실러의 희곡 「군도」는 도적의 우두머리를 영웅으로 그려 민중의 저항의지를 표출했습니다. 「빌헬름 텔」「돈 카를로스」「발렌시타인」도 영웅담은 영웅담이되 왕족이나 귀족을 영웅으로 그리는 전시대의 작품세계에서 벗어나 민중이 이 시대의 주인이 되는 자신의 이상을 담았습니다.

그리스의 문학작품을 전범으로 삼아 조화와 균형의 미를 추구하던 고전주의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 사회가 민주사회로 이행됨에 따라 급격히 쇠퇴하여 낭만주의 시대로 배턴을 넘기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 문학의 특징인 '조화와 질서'를 본받고자 한 고전주의가 형식과 규범에 얽매인 도식적 기교주의로 빠지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감성과 상상력'에 의거하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주의(Classicism)란 문예사조의 역사에 있어 가장 앞부분을 점하게 된, 사조의 선두주자이기도 하지만 오늘까지도 널리 씌어지고 있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흔히 ‘클래식 음악’이니 ‘팝의 고전’이니 하는 말을 지금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전’에는 전범,규범,모범 등의 뜻이 들어 있고, 조화,절제,중용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식에 있어서는 최상의 것, 비범한 작품, 불후의 명작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으니, 한마디로 전범이 되는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고전주의란 라틴어 ‘classis’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로마제국 당시 시민은 여섯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classis’는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최상의 계급이었는데 그 말이 제1급의 작가를 가리키는 말로 변모하였고, 다시 모범적으로 본받을 만한 작품이란 뜻으로 고착되었습니다.

고전주의는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이 따로 있습니다. 광의의 개념은 그리스 시대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범으로 삼아 그 지향점에 도달하려는 문학정신과 경향입니다. 협의의 개념은 17~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운동으로, 이전 시대의 것과 구별지어 신고전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시대의 문학에 대해서는 제Ⅰ장에서 간단히 다룬 바 있으므로 생략합니다. 호메로스의 영웅서사시,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의 희곡으로 대표된다고 했었지요. 영웅이 등장하고, 비극으로 끝나고, 형식미를 갖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헤로도투스,투키디데스,크세노폰 같은 사람의 역사서와 사포의 서정시는 그 시대의 대표작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문학과 17~18세기 고전주의 문학 사이에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 문예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지요. 재생 혹은 소생이란 뜻을 담고 있는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봉건 귀족의 권력에 반대하여 14~16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신 본위의 질서를 강조한 중세 카톨릭의 권위를 인간 중심의 질서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숭상되었고, 자연이 탐구되었으며, 과학정신이 중시되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현세 긍정의 사상은 과거 그리스 시대 사람들의 사상이었으므로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교인들이 읽지 말라고 한 그리스 시대의 문학작품과 철학서 읽기 붐이 일어났습니다. 문학에 있어서는 인간의 욕망과 쾌락에 대한 추구, 행복에의 찬미, 적나라한 애정 표현 등이 이전 시대와 다른 특징으로 나타났지요.


단테의 초상
(작자 미상, 1530)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단테의 『신곡』입니다. 지옥, 연옥, 천당 3부 33편씩의 시와 서시를 합쳐 100편으로 이루어진 이 긴 시는 15년(1307~1321)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중세의 신학적 교리나 해석을 따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의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항의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지옥편’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연인이면서 우상이었던 베아트리체를 잃은 뒤 타락한 생활을 한 자신의 모습이, ‘연옥편’에는 영혼이 갱생하는 고통스런 과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연옥을 빠져나온 단테는 ‘천국편’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의 안내로 천국을 유람합니다.

이 작품에서 단테는 성직을 사고 파는 성직자와 물욕에 빠진 수도승을 모두 돌덩이에 깔려 있게 했으니, 교회에 대한 그의 반항의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별칭이 ‘인곡’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종교상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고 전개되는 자유로운 연애 이야기입니다. 지금 읽어도 아주 재미가 있고, 외설적인 장면도 참 많이 나옵니다. 1348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에 흑사병이 돌아 4개월 동안 수십만 명이 사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병을 피해 멀리 떨어진 별장으로 간 7명의 처녀와 3명의 총각이 열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각자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습니다. 역시 100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런 형식을 보면 『신곡』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데카메론』은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또 다른 명작인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영향을 줍니다. 캔터베리 성전으로 참배하러 가는 24명의 순례자가 어느 여관에 투숙하여 그 주인과 나눈 이야기가 22편은 운문으로, 2편은 산문으로 펼쳐집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 『돈 키호테』(1605년 발표)에 실린 삽화.
그들의 이야기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순례자들의 대화와 언쟁, 그리고 의견이 중간에 나와 흡사 우리 나라 개화기 때의 소설 『금수회의록』을 연상시킵니다.

프랑스 사람인 몽테뉴의 『수상록』과 영국 사람인 베이컨의 『수상록』은 수필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으로 역시 이 시기를 대표합니다.

스페인의 자랑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반푼이 기사의 천방지축 모험담이 아니라 중세 기사소설의 권위와 영향력에 대해 강력히 도전을 한 실험적인 소설이며 뛰어난 사회비판 소설이지요.

단테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태인 샤일록이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자로 나오고, 안토니오라는 젊은 무역상이 그에 맞서는 인물로 나옵니다. 안토니오를 근대적이고 진취적인 인간형으로 그려놓은 것은 영국이 국제무역을 중시하는 근대로 그때 이미 진입하고 있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아시죠? 네, 『햄릿』『맥베드』『리어왕』『오델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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