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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기 : 늙은 진보, 젊은 보수


92년 여름 어느 날, 타이완을 출발한 서울행 비행기 안에 있던 일이다.

잠시나마 잠을 청하던 나는 뒷좌석의 잡음에 신경이 거슬리게 되었다.

“아 그럼 선생님의 목적지는 타이완이 아닌 중국이었군요?

50세쯤 되어 보이는 백인여자가 그 옆자리에 앉은 한국노인에게 하는 소리였다.

“그렇지요 ! 난 중국, 상하이에 호텔을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자주 왕래를 한답니다.

70세 전후로 보이는 그 노인의 말투는 아주 의기양양하였다.

그 노인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나와 함께 동행한 회사사장이 이렇게 지목 해주던 인물이다.

“허 선생 ! 저기 서있는 저 노인이 뉘 신지 아세요?

저 노인의 이름은 LXX 라고 하는데 말이지요. LA에서 좀 살아온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아주 유명한 인사랍니다.

그 노인은 오늘날의 LA한인타운이 있도록 초석을 다져 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뒷좌석의 잡음이란, 사실 그 노인의 열변의 장이었다.

백인여자의 한마디에 노인의 여러 마디가 따라붙어 심지어 제2절 아니 제3절의 후렴 귀 마저 더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세요? 그렇게 가실 때마다 오랜 친구들도 만나 볼 수 있을 터이니 얼마나 좋으세요.

“그런데 그게 그래요, 편의상 서울에도 오피스텔을 하나 빌려 지내고 있는데, 친구랍시고 나 타나는 놈들의 속셈을 보게 되면 순전히 저들의 이익만을 위한, 뭐 그런 거더라고요.

국제전화를 공짜로 하거나 일없이 공술이나 얻어먹으려 하는 식으로 말이죠.

에그 ! 언제나 치사하고 불쌍하기만 한 백성들 !

게다가 공항을 들락거릴 때는 또 어떻고요. 김포세관 애들의 그 치사한 작태 들이란 !

“그래요 ? 혹시 평양과 서울을 혼동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 아니지요 ! 서울에서 내가 직접 그렇게 겪고 있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깐 친구간의 관계라는 것도 그 놈의 나라에서는.......

나는 마침 내 옆을 지나는 남승무원에게 조용히 부탁을 하였다.

“ 이것 보세요. 저 노인의 망언을 조금이라도 들었을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인데...

귀하는 승무원이기 이전에 분명히 한국 사람이겠죠. 그렇지요 ?

그러니 그냥 저 영감님의 입을 좀 어떻게 해주면 좋겠소!

그러나 그 승무원은 오히려 나에게 정중한 양해를 구하였다.

뒷좌석 역시 일등석이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무언가 점점 더 고조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던 노인은 어느덧 한편의 수필을 낭송하듯이 유연한 문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제목을 붙인다면 마치 ‘ 축복받은 나라, 미국 만세 ’ 라고나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사대주의적 냄새가 짙은 그 수필에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곁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 소리에 귀를 좀 기울이게 되었는데 그 장황하던 낭송은 이렇게 일단락되고 있었다.

“ 아하 ! 정말이지 ! 정말, 버림받을 나라야 !

그러니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있을 수가 없지 !

대한민국에 대한 노인의 개탄인 것이다.

“ 그럼...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노인이 다소 나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 나요 ? ! 난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걸요 !

“ 아 그래요 ?

잠시 후 노인의 2절이 시작되었다.

“ 에... 그러니깐 난 미국인으로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요.

“ 그런 거로군요 ” 그 후 백인여자는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뒤로 돌아섰다.

“ 이것 보시오 ! 영감 !

“ 엇 ! 한국분이시었나요 ?

“ 그렇소 !

“ 아니 그렇게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계셔서 그런지 도통 한국분이라고 보여 지지가 않았는 데.....

“ 뭐라고 ? 이런 쓰레기 영감 같으니 ! ” 나는 다소 큰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고개가 아래쪽으로 떨구어 졌다.

그러자 백인여자는 노인만을 주시한 채 큰소리로 물었다.

“ 뭐라 그래요 ? 저 친구... ? 뭐라는 거예요 ? 나도 좀 압시다 !

그 소리는 주위의 시선을 한꺼번에 그 노인에게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 뭐라 그러는 거야요 ? 나도 좀 알자고요, ?

백인여자도 노인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LA한인 타운은 2개월 전 쑥밭이 되었다.

온 하늘이 검은 연기들로 용트름을 하여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분명코 전쟁터는 아니었다.

한인사회를 주 대상으로 하여 LA지역 흑인들이 일으킨 이른바 4,29 폭동의 장인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 당국의 즉각적인 공권력의 투입이나 그 일련의 후속조치들이라 할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만 하였다.

정의를 제일로 주창하는 일등 법치국가, 그것도 대도시 한복판에 터진 대폭동이건만 심지어는 미 주류언론들 마저도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주 냉담하기만 하였다.

우리한인 동포들은 그저 이중 삼중 아니 그 이상의 피해자가 될 뿐이던 것이다.

그곳이 전쟁터가 아니었던 만큼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알게 해주던 한 사건 일 뿐이었다 .

좌석에 다시 앉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의 잔재를 이렇게 가누었다.

< 정말로 가련한 발상이다. 아니, 그 노인자체가 참으로 가련하다.

하지만 그는 물을 함께 나누는 미국시민이기 이전에 피를 함께 나눈 나와 같은 한 민족이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모를 리가 결코 없으리라 믿어지건 데, 4,29 당시 그 노인의 입장도 그 알량한 미국인들과 맥을 같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동족마저 욕되게 하면서까지 그가 얻으려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말이다.

그 한 뿌리 된 우리들이 하늘로 흩어진 별들이라 한들 우리들이 하나이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 아니겠는가 !

나는 단지 비좁은 고향 땅에서 벗어나와 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도 그리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로서는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설령 이 땅에 묻히도록 이곳을 고집하며 살고 있다 한들 조국을 등지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한갓 외람된 그 노망을 애써 비난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 인가 !

어떻든 LA 한인 타운은 대한민국의 서울분할시이거나 서울특별시 나성구로서 존립을 하고 있으며 내 몸은 단지 대한민국 미국도 캘리포니아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함이다.

그런 나에게는 고향이 좀 멀어 다소 불편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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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초 형제자매 초청자격으로 미국 이민 허가를 받게 된 우리 내외는 아이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  “ 아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  ?  ... ?

그럼 우리들은 나중에 거기서 뭐가 되는 거야 ?  미국 사람 ?  ?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 !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이던 남매는 그러저러한 이유들을 들어가며 애써 반대를 고집하였지만 부모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미국도착 후 영문알파벳을 시작한 아이들이건만 의외로 미국생활 전반에 걸쳐 곧잘 적응하게 되던 즉 나로서는 실로 다행이었다.

그런 삼년의 세월이 지나던 ‘93년 중반이었다.

평안하기만 하던 우리가정에 느닷없는 고심꺼리가 등장을 하였는데 그것은 아들이 단신으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곳에 온 이래 급격히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 기껏 8학년짜리 학생일 뿐인 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서 그 무엇이 어찌된다는 말인가 ?

그러나 아들은 한국의 장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무언가 확실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아이에 대한 이런 소개를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 아이가 가진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행동인데, 무엇보다도 먼저, 그 아이의 방문을 열면 대형 태극기가 한 벽을 채우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  아마도 그의 묵상이 그러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책상 위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에 관한 책들이 언제나 가지런히 챙겨져 있다.

마치 영정을 모셔 놓은 듯이 말이다.

님이 곧 조국이 되는 <만해>는 오늘날까지도 그가 숭배하는 유일한 인물인데 그런 그를 두고 누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

하지만 그 책상 위에는 한국 대학 입시 대비용 참고서들도 즐비하게 누워있어 그런 책들만은 치우게 하고 싶지만 그것 또한 어떻게 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 아이는 미국 학교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비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마음에 들 수 없는 이 곳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지나친 관용인 것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분별없이 대하다 보니 불량 학생들에게까지도 감히 아부라고 할 수준의 연출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결국 승냥이 생리라 할 수 있는 미국적 기질이 만들어지게도 된다는 것이다.

4, 29 당시 그토록 불량하던 미 주류사회의 처신들은 바로 그런 선생님들의 관례에서 비롯되어온 것 이란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

‘ 야 ! 이놈아 ! ’ 하며 아주 세찬 호통을 치어야 한단다.

무릇 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임무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것이다.

아울러 그는 친구들의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 야 ! 넌 한국을 더 잘되게 할 생각은 않고 어찌 그렇게 비아냥거리기만 하는 것이냐 ?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런 경우에 있어서만은 어김없이 무안을 당해야만 하였다.

조국은 이미 그 아이의 동정 어린 보호 속에 있게 되었는데 조국에 관한 한 그에게는 요지부동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의 병역의무를 자진해서 필 하겠다는 즉 ‘차인표’란 인물은 해외거주 대한민국의 남아들이 응당히 본받아야 할 표본이란다.

그런데 아이의 그 역 이민에 대한집념에는 보다 더 궁극적인 영순위로써의 사유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판을 뜯어 고치기 위해서 자신이 그 정치판에 직접 뛰어 들어야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리부터 한국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그는 서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일차 목표로부터 나름대로의 원대한 계획까지 애써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언제부터인가 그의 방벽에는 서울대 정문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사진 한 장이 붙어있었다.

정치판을 뒤 바꾼다 ? 그것 또한 혼자의 힘으로 ?

그거야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자신의 신념에 찬 의지를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정녕 계란이 아닐 그 씨앗은 이미 자라나는 돌이 되고 실로 그만한 바위가 되어갈 것이었다.

새벽 5, 그는 ‘땡!’ 하는 자명종소리에 깨어 벌떡 일어난다.

거기에는 단 1초의 다른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시간을 엄수하지 못하면 그 어떤 다른 일에도 철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의 지론이기 때
문이다
땡 하는 그 시각에 시작된 한 일과는 그 다음 땡에 어김없이 일단락이 되고, 땡 하는 그 추호의
어김이 없는 그 다음시각에 ... 땡 하는 또 다음일과가 그렇게 끝이 난다.

! ..! ... !...

기계가 아닌 한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작용하는 그 ‘땡‘ 에 견줄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한번 만든 계획표는 그 어떤 이유로도 수정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에겐 계획표상에 없는 휴식이란 아예 있을 수가 없게 된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땡 하는 그 시각이 되면 즉각 집으로 돌아옴이다.

물론 그는 그 어색한 사례들에 대해서 스스로 돌이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 어 ? 거 좀 내가 심했던 것 같다 ! 음 그래..... 그런 것 같다 !

그렇담 이 계획표를 좀 수정 해 볼 것 인가 ?

그런 경우마다 그는 다소의 고심을 하는 것 같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그 ‘ 원칙을 고수함’ 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 민족주의자이면 어떻고 국수주의가 된다 해서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

만해는 그저 당대에 있던 시대적 인물이기만 한 것이란 말인가 ?

제 아무리 세계화 시대가 된다 한들 ‘나‘ 라는 주체의 위상이 없는 그런 세계화는 무슨 소
용이 있을 것인가 !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일이 잘못일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

그러고 보면 나의 결론은 아마도 미리부터 정해졌어야만 했었다.

장장 2년간에 걸친 그 아이의 투쟁은 기필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 ! .....그 아이는 되돌아가야만 하도록.....그에게는 할 일이 있는 것이다 ! >

그리하여 94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그 해 여름 그는 한국 행을 하였다.

양정고등학교 2 학년생이 되어 외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향수 애에 젖은 한국의 온갖 것들은 물론 그가 그토록 의기투합하고픈 한국학교의 선생님들을 찾아 가게 되는 것이다조국애에 찬 그의 씨앗이 어떻게 될 것인지 나로서는 그저 두고 보기만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날들이 가고 달들이 가다  보니 우리들은 집을 좀 줄여 이사를 가기로 하였다.

아이가 쓰던 방안에 가지런히 남겨진 사물들이 하나같이도 한국산 상품애용에 철저한 그를 그대로 닮아 보여 마음이 찹찹하기만 하던 참인데 벽에 걸려있던 태극기를 접어 넣던 나의 가슴이 느닷없이 뭉클하게 되었다.

그리고 ‘ 태극기 ‘ 라는 그의 독특한 필체를 간직하고 있는 태극기보관용 상자를 열어보게 되던 나는 느닷없이 눈시울을 적시게 되었다.

그 종이상자 뚜껑안쪽에는 결코 낙서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 아메리카를 놓고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아 왔으니까.....
   물론 백인들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무엇이 어찌하였거나 뺏어낸 것이니까.....

   어느 주장이 맞을 것인가 ?

  하지만 다 소용없다.   아메리카는 우리선조들의 것이다 !

  연합(United) 이란 건국이념은 아메리카로서만이 아닌 지구 전체로 통해야 할 이상적 이념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침략자들에 의해 무참히 …. >

그렇게 적다만 나머지 내용은 내가 다 알만한 내용이었다.

평소 그가 주창하던 새싹 가꾸기에 관한 한국선생님들에 대한 자신의 충고 어린 소견과 함께 한국정치판 개혁에 관해 그 동안 나와 논쟁을 벌여오던 그 나름대로의 언변들인 것이다.

< 대한민국의 선생님들이여 !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여 ! >

그래 ! 나는 믿는다 !

그래 ! 동해의 바닷물이 다 마르고 백두산이 다 닮아 우리 한반도가 광대한 평원이 되도록 내 아들이 품고 있는 그 씨앗은 결코 썩지를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어리석게는 결코 싹을 틔우지 않을 것이다.

정녕 그렇게 될 수가 없다면 씨알은 차라리 돌이 되고야 말 것이다.

아니 스스로 자라나는 돌이 되어 그 평원 어딘가에 우뚝 선 아주 큰 바위가 될 것이다.

어느 훗날 그 바위는 한 전설을 이루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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