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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들이 한반도 남부를 휩쓸고 다니던 시절
요새는 비주얼시대라 가능하면 글마다 사진을 조금이라도 얹어서 보시는 분들의 시각적 피로를 줄여드리고자 노력을 하는 필자이지만 어쩐지 글 시작부터 이번 글은 사진 없이 구성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한반도에서 망각 속에 사라지는 동물의 하나가 “ 진짜 ” 늑대이고 이에 관한 시청각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할 수없이 유 튜브에서 북미 대륙 이리들 동영상을 퍼 와서 꿩 대신 닭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소개해본다. 단지 네티즌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의 늑대가 동영상에서 보시는 당당한 체구의 이리와 달리 크기가 작고 왜소했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늑대는 세계에서도 한반도, 그리고 남한에서만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80년대 이후 전혀 발견 소식이 없다. 이제는 도도와 같이 멸종 동물의 대명사가 되다 시피해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수 없는 늑대들이 떼를 지어 밤낮으로 한반도 남부를 설치고 다니며 살생을 일삼아 농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자연사에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자연의 맹수가 호랑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늑대 떼의 이야기는 조선 실록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한 세기 전인 일제 시대 초기의 이야기니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사실 조선 왕조 실록을 검색 해 봐도 늑대에 관한 부분은 단지 열세개가 뜰 뿐이다.
인간에 대한 횡포(?)가 심했던 호랑이의 검색은 무려 730여개나 뜬다. 그 만큼 그 옛날에도 늑대의 행패는 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쇠망 해지고 일제의 통치가 시작되자 한반도 남부에 늑대들이 설치기 시작한 것이다. 영호남 양 지역이 다 같이 늑대들의 창궐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영남 지방의 늑대 횡행 기록이 남아있다.
늑대의 창궐은 경북 달성군과 고령군 일대에 걸쳐 심했었다. 수백 마리의 늑대가 여러 떼를 지어서 횡행하면서 밤마다 마을마다 가축은 물론 이고,서 너 살의 젖먹이로부터 열 살 정도의 아이들까지 희생을 당하였다.
늑대들은 항상 4-5마리에서 수 십 마리까지 짝을 지어서 활동하다가 한 마리가 암호 소리를 지르면 이웃한 수십 가족이 집결해서 행동을 했다. (늑대가 멸종한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안 되는 모습이다.) 한 지역을 철저히 약탈해서 별 먹을 것이 없으면 무리를 지어 옆 지역으로 이동해서 활동을 개시했다.
늑대 창궐 지역에서는 밤마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횃불을 들고 수 십 명의 장정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늑대를 쫓는 광경과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부모들의 비통한 아우성으로 말미암아 평화로운 마을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는 공포 스러운 일을 겪어야 했다.
교활한 늑대들은 해가 지면 마을로 내려와서 닭 돼지는 물론이고 사람들까지고 해쳤었다, 그 무렵의 농촌에서는 대개 여름이면 방문을 열어놓고 자거나 뜰에 자리를 깔고 자는 일이 많아서 늑대는 어머니 품속에서 고이 잠든 아기를 어머니가 전혀 모르게 조용히 물어내어 도주하는 신기한 재주를 부렸다. 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훔쳐 낼 때는 결코 이빨로서 물지 않고
저고리를 물거나 입술로서 가만히 물어 발로써 아이를 살살 밀어서 방 밖까지 꺼낸 뒤 비로서 방 밖에서 이빨을 사용하여 물고 잽싸게 집 밖으로 튄다.
꿈결에 아이의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 일어난 어머니가 허둥지둥 할 때면 이미 늑대는 동구 밖으로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잠시 여기서 붓을 돌려서 여러분들에게 그 무렵 늑대들이 인간에게 끼친 피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한 사건을 소개하겠다.
늑대가 어린아이 습격의 교활함은 상상을 넘어 설 정도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이지만 1924년 6월 오후 다섯 시쯤에 경북 달성군에서 한 사고가 생겼다.
일곱 살 쯤 되는 어린아이를 늑대가 덮쳐서 물고 가기 시작했다. 물고 가기에 조금은 큰 나이의 아이였지만 못 먹던 시절의 농촌아이였던 관계로 늑대가 입에 물어서 운반 할 만큼 작았던 것이다. 부모의 비명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즉시 추격에 나섰다.
거리가 100미터 정도로 좁혀지자 늑대는 입에 문 아이를 다시 고쳐 무는 듯이 두어 번 정도 땅에 내려놓은 행동을 했다. 추격이 거세져 간격이 40미터 정도 좁혀 졌을 때 늑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이를 땅에 팽개치고 산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이를 구출했다고 안심하고 접근했다가 차마 눈뜨고 못 볼 끔찍한 광경에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아이는 복부의 살이 다 없어지고 팔 다리와 머리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아이는 가엽게도 눈을 뜬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놓는척 하면서 잔인한 입질을 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망연자실하는 사이에 아이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끔찍해서 바라보지도 못한 아들 시체의 머리를 껴안고 한 없는 통곡을 터뜨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젊은 사람들은 위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말도 아닌 소리라고 일소에 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 무렵의 신문에 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늑대들은 마을 주위의 산에 숨어서 마을 주위를 정찰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없으면 해가 중천에 떠있다 해도 유유히 내려와서 가축이나 아이들을 습격했다. 늑대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니 사람들은 불안해서 살수가 없었다. 출입도 제대로 못할 판에 들판에서의 농사나 산에서의 화목채취 (그 무렵에는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늑대의 난(亂)’ 이 지방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소동이 벌어 질 때마다 지서(支署)의 일본인 순사들이 38식 총을 들고 조선인 몰이꾼들과 함께 출동했지만 교활 할대로 교활해진 늑대들이 이들 아마츄어 토벌대에게 잡힐 리가 없었다. 일제는 궁리 끝에 각 군마다 사냥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총기 소지 허가를 내주고 늑대 사냥을 독력했다. 이것은 일제가 얼마나 출몰하는 늑대 떼에게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제는 조선인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사냥꾼들의 총기를 모두 압수 해 버렸다. 총 하나로 전 식구가 밥 먹고 살던 조선 포수들의 생계는 일제의 관심 밖이었다. 의병장 홍범도 장군의 거병은 포수가 본업이었던 그의 총기를 일제가 압수해서 밥줄을 끊어버린 것이 한 큰 원인이 되었었다.
일제 그런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까지 사냥총을 압수를 했던 상황에서 자신들이 세운 금기를 깨고 총기 소유와 사용을 허가 했다면 늑대들의 난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이해 할 것이다.
이 정책으로 많은 포수들이 탄생했는데 이들 급조된 포수들을 합방 전의 전문 포수들에 비교해서 "늑대 포수"들이라 불렸다.
그러나 늑대들은 이런 일제의 얍삽한 계략을 비웃었다. 늑대 포수들에게 잡힌 늑대는 극소수였었다.
늑대들은 총의 위력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돌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고함을 지르며 추격해도 불과 수십 미터 앞에서 가끔 비웃듯이 뒤돌아 보면서 슬금슬금 걸어가던 늑대들로 추적대에 총을 가진 사람이 합류해 있으면 연기같이 사라져 버렸다. 총을 가진 포수는 도대체가 늑대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늑대 떼들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규모가 축소되어
조용해졌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었다. 잠잠해졌던 늑대 떼들은 1942년 다시 경북 영일군에 다시 나타났다. 일정 초기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래도 수십 마리의 제법 큰 규모였었다. 이들 영일군의 늑대 떼는 그 때의 포항 읍까지 들어와 횡행했다가 그 이듬 해 옆 청도군으로 옮겨가 청도군에서도 가축과 어린 아이들을 다수 희생시켰다
그 뒤 늑대 떼는 어디로인지 사라져 버렸다. 일제 초기에 비해서 더 집중적이고 강도가 높았던 토벌 노력에 분산되어서 이산 저산으로 흩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이 한반도 남부에 나타났던 마지막 큰 늑대 떼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늑대는 멸종의 길을 가고 이름만 인간들에게 빌려주어 중국 몽골 미국 등의 이리 족들을 여러 본명을 무시하고 되는대로 한 이름으로 통일해서 잘못 부르는 전천후 도구로 삼게 만드는 유산만 남겼다.
앞에서 밝힌 대로 늑대는 호랑이에 비해 조선 500년 긴 세월에는 비교적 조용했었는데 일정 초기의 특정 싯점에 나타나 소란을 부리다가 점차 소멸해 갔다. 늑대의 이런 흥망성쇠는 멸종의 원인에 이러고저러고 여러 말이 많은 우리 자연사에서 한번 주목을 해야 될 연구 소재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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