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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색으로 알아보는 놀이

2008.09.19 17:00 | 가을 |

http://kr.blog.yahoo.com/izar201/1540 주소복사

*우리아이는 어떤 색이 잘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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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색을 인식하면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선택하게 되고, 선호하는 색에 따라 아이의 성격또한 알수 있다..
색깔로 보는 아이의 성격 한번 테스트 해볼까?

빨강색

ㅡ 빨강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활동적이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자유로이 느낀대로 행동하고
반응또한 빠르게 온다. 하지만 너무 진하게 그리거나 칠한부분을 또 칠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욕구불만이 있거나
고집스러운 성격을 나타낼수도 있다..


Heavy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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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 파랑을 좋아하는 아이는 감정을 억제하고 이지적인 성격의 아이가 많다.
냉정한 사고력을 가지기 때문에 자기 억제가 강하고 내성적인 성향도 있지만 자신에게 철저한 면도 가지고 있다.


Hommage a Klim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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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색

- 노랑을 좋아하는 아이는 따뜻하고 친근한 성격이 많다. 명랑하고 밝으며 아무 걱정없이 엄마의 보호속에
자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림대부분을 노랑으로 하는걸 좋아한다면 아기같은 응석쟁이가 될수도 있다.

Dog Tired (Yellow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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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 검정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자기 감정을 억제하려는 경향이 짙다.
만약 좋아하는 만화주인공이 검정옷을 입고 있는것을 따라해서 그런거라면 큰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림그릴때마나 검정을 선택한다면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고 겉으로는 온순하며 적응하는
듯 하지만 내면에는 자기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그린 뒤에 검정 선을 두르면 정서적인
결핍으로 고립된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심정을 표현할수 있다.

Guernica, c.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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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 보라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감상적이고 우울함을 잘 타고 고독한 느낌에 잘 빠지는 성격이 많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눈물이 많거나 속으로 감정을 들어내기 두려워 하는 경향이 짙다.

 

Abstract Variations 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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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 갈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순박하고 성실한 편이며 또 정직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약간 현실 적응력이 부족하거나 청결한 습관을 강요받았을 때도 이 색을 많이 쓰게 된다.


Jazz du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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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 흰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기모습을 과시하고 싶은 성격이 강하다. 주관과 고집이 강하고 지나치게 깨끗한걸
좋아한다던지 완벽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많고 혹시 다른색을 칠하고 나서 흰색을 위에다 덧칠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잘못을 덮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초록색

- 초록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해심이 많고 거칠게 노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 만족이나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는 편이어서 자신감 또한 강하다. 차분하고 안정된 성격이어서 매사에 신중한 편이다.

Green Town, c.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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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을 많이 사용한다면 ]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있고 따뜻한 성격을 가졌으며, 자기중심적인 성향도 띄지만 대체로 다른사람과
혐동적이어서 사회생활의 정응력도 뛰어나다.

[ 전체적으로 차가운 색을 많이 사용한다면 ]

자신에 대한 억제가 강하고 상황에 순응하는 경향이 짙지만 가끔 비판적인 성격도 나타난다.  어떤 행동을
할때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며, 지적인 호기심이 왕성하다.

[ 전체적으로 무채색을 많이 사용한다면 ]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아 다른 사람과 잘 오울리지 못하고 경계심이 많으며, 또 자신감이 결여되
열등감을 가질 확률이 높다.




[스크랩] 징기스칸 군대 힘의 근원 아이락 [ Genghiskhan Military,s Power Source Iirak]

2008.09.19 16:48 | 이슈 |

http://kr.blog.yahoo.com/izar201/1539 주소복사



                                   몽골 겔 촌을 방문한 외부손님에게 아이락을 대접하는 몽골처녀

                                          



                                       
     
                                                               
                                                          말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아이락(마유주)
  





  
                                                                 몽골인들의 말젖짜기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몽골인의 결혼식 풍경 - 아이락(마유주)은 몽골인의 실생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먹거리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몽골의 국기    몽고씨름



                      

             

                                        일본 스모계를 석권한 몽골출신 요코즈나   아사소류(朝靑龍)





                                                                    몽골의 초원풍경


                        
          
                                                         몽골인이 제작한 영화 징기스칸



                

                                                 몽고제국이 정복한 유라시아의 4한국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한때 몽고제국의 수도였던 캐러코럼 의 유적지



                         

                                현재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죽 술부대에 담긴 마유주



몽골과 고려의 음식중에서  발효시킨 특성을 가진 비슷한 음식은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마유주)과  채소를 발효시켜 만든 김치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김치는 이미 김채라는 이름으로 한민족의  일반적인 전통음식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몽골의 아이락은 동물성의 음료로써 알콜도수가 낮은  5도 이내의 요구르트와 같은 술이다.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이 아이락은 몽골인의 실생활에 빼놓을수 없는 음료수와 같은 존재로 남녀노소가 같이 식사때는 물론 여느때에도 항상 음용하는 그들만의 귀중한 전통 음료이다.
이 아이락은  병든 환자에겐 대용식으로 제공하며 몽골 어린이들에겐 수시로 먹인다.
몽골에 정복되었던 러시아에서는 몽고풍의 먹거리 문화를 접하여 결핵환자를 치유하는 보조 음식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징기스칸도 한때 적장 쥬베의 독화살을 목에 맞고 혼수상태로 빠져  이 마유주 만으로도 쉽게 치유된 역사가 있다.
마유주에는 단백질,지방과 비타민 C , 비타민 A, B1등과 칼슘,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있는 고단백 영양음료인것이다.
또한 음용시 모든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현재 몽골은 이 마유주를 전세계에 수출할 계획을 갖고있다 한다.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고려사회에서는 이렇다할 단백질 공급원이 별로 없었다.
고려는  몽골의 계속되는 침략에 수십차례의 항전을 벌였으나 결국 몽고에 굴복하여  강화를 맺을수 밖에 없었다.
또한  고려사회는  몽고풍이라는 여러가지 유목 문화적풍습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아이락을 항아리에 넣고 열을가하여 증류시켜 항아리 윗부분에서 응집되어 떨어지는 맑은 독주를 모아서 만든 술을 네르멜또는 아르히라고한다.
경상도 방언에 소주를 빚고난 술지꺼기를 아래기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의 소주 아르히에서 전해져 왔음을 알수있다.
그러한 어원의 유래는 그리 어렵지않게 유추해 볼수있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고려시대 일본정벌을 위하여 고려군과 몽골군이 집결했었던 것이다.
마산의 옛이름 합포에서 여몽 연합군은 2차례에 걸쳐 일본정벌을 시도했었지만 태풍으로 번번히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있다.
이 소주의 제조법은 고려시대에 몽골에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 제조법은  말젖이 아니라 누룩으로 재료가 바뀌어 막걸리에서 소주를 채취하는 한국의 재래 소주제조법으로서 민간에서 꾸준히 이용되어 왔다.
이때 만약 막걸리가 아닌 마유주가 고려시대에도 몽고풍습으로 전해졌다면 아이러니한 역설이지만 이는 백성들을 위한 단백질공급원의 한방법으로써 국민의 식량대용으로 크나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광활한 초원지대의 질좋은 초지와 기르는 대량의 말떼가 없이는 마유주생산이 불가능한 일이었고 또한 막걸리와같은 농주에 입맛이 길들여져있는 고려인에겐 마유주는 입맛에 맞지않는 그림의 떡이 였을지도 모른다.
고려시대에는 몽골군과 거란군 그리고 남쪽 왜구들의 빈번한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질대로 궁핍해져 그야말로 초근목피의 생활로 목숨을 연명하다시피 했었다.
일설에 의하면  압록강변의  무자리들은 고려말기 무신정권때 굶어죽어 매장한 사람의 시체를  다시파서 인육을 먹을 정도로 식량이 귀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백성들의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선적으로 백성들의 배고픔을 먼저 해결할수 있어야 나라의 근본이 바로서는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자 시대가 따로없는 우선적인 조건인것이다.
몽골과 고려의 다른점이 있었다면 몽골에는 어릴적부터 인간의 생장을 증진시키고 항상 먹을수있는 아이락 (마유주) 이라는 고단백 식품이 존재했다는점이다.
이 아이락은 징기스칸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지금까지 내려오는 몽골의 전통음식이자 몽골인의 생명공급원 인것이다.

[스크랩] 소현세자가 살던 문연각...자금성 안에 있다.

2008.09.19 16:47 | 블로그자유방 |

http://kr.blog.yahoo.com/izar201/1538 주소복사









소현제자가 북경에서 살던 문연각은 자금성 안에 있었습니다.

조선왕 독살사건(이덕일 지음)에서 문연각은 동화문 안에 있다고 밝혀져 있으므로 저는 그 정도로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이상을 알고 싶어하는 불로거가 계셨어요.
현제 미국에 살고 있는 불로거 jakoo821님은 소현세자 어머니의 친정쪽 후손이라 하시면서 제게 문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볼수 없겠는가 하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셨어요.

사진 맨 위쪽에 큰 화살표가 문연각이고 작은 화살표가 동화문입니다.

두번 째 사진의 그림지도에 태화문 오른쪽에 파란색 물길을 따라 가시면, 물길이 건너간 바로 뒤의 푸른색 기와 얹은 집(문연각이라 쓴 작은 글씨 보이시죠?)이 문연각이예요.

세번째 사진이 동화문입니다.
사진상으로는 이렇게 열려 있지만 이곳으로 일반인들은 드나들지 못해요.
제가 문연각을 꼭 한번 보고싶다고 관리자에게 사정을 해 보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빙빙 돌면서 원경만 찍었어요.

네번째 사진은 태화문 앞의 다리 위에서 찍었는데 앞에 보이는 건물 뒤에 문연각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다섯번째 사진의 건물이 体仁閣인데 이 건물의 오른 쪽에 아주 조금 프른 지붕만 보이는 것이 문연각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이렇게 한 줄로 겹치는 건물이 문연각이라 일부러 이렇게 찍어 보았어요.

여섯번째 사진의 지붕위로 덩그렇게 보이는 것이 동화문이고 그 사이에 옆으로 조금 보이는 지붕이 문연각 앞의 文華殿으로 보입니다.
동화문 지붕 왼쪽으로 왕푸징에 있는 시계탑이 일부 보이는 군요.

일곱번째 사진, 문연각이 담 위로 잘 보이시죠?
(순서대로 올린것 같은데 컴퓨터가 6번 7번 사진을 살짝 바꿔서 좀 헷갈리시죠?)

마지막 사진은 왼쪽에 2층 지붕이 동화문이고 오른 쪽에 푸른 기와지붕이 문연각 입니다.
관리자의 말로는 문연각쪽은 보수공사가 끝나야 개방을 한다고 합니다.

언제쯤 보수공사가 끝나겠느냐고 했더니.
"부 즈다오(不知道)"... 모른다.


jakoo821님, 약속을 지키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해요.


추가로 소현세자가 만났었다는 아담 샬의 초상화 사진을 올립니다.
이 초상화는 중국 옛 관상대를 갔다가 찾았어요.
선교사로 왔다가 해박한 천문학의 지식으로해서 남의나라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보고 감격했어요.





10월유신은 집권자가 그대로 유지된 정권내의 우파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안정과 국력의 극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새로이 조직된 체제가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위한 제도이다.

10월유신에 따른 유신헌법의 채택으로
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 선거 및 최고 의결기관으로 설치되었고,
② 직선제이던 대통령선거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한 간선제로 바뀌었으며, ③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되었고,
④ 국회의원 정수(定數)의 1/3을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일괄 선출하고,
⑤ 국회의원의 임기를 6년과 3년의 이원제(二元制)로 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의원은 3년으로 하였으며,
⑥ 국회의 연간 개회일수를 150일 이내로 제한하고,
⑦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없앴으며,
⑧ 지방의회를 폐지하고,
⑨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로 확정되고, 국회의원의 발의로 된 헌법개정안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다시 의결함으로써 확정되도록 이원화하였다. 그 밖에도 1972년 10월 17일의 비상조치와 그에 따른 대통령의 특별선언을 제소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못박았다.

이상과 같이 국민의 판단과 비판, 선택권을 원천 봉쇄한 독재체제였다. 그리하여 체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자는 국민상호감시제를 통해 색출하여 엄단하는 초유의 독재체제를 실행하였다.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10월유신을 단행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이 부정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였다. 이에 1973년 유신헌법개정 100만인 서명운동, 1975년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1976년 민주구국선언, 1979년 부마민주항쟁 등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는 민주세력의 투쟁이 계속되었다.



부마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     
 
 


                      부마항쟁 당시 부산에 진주한 계엄군(출처:동아일보이미지)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朴正熙)의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
 

언제     : 1979년 10월
어디서  : 부산 및 마산
누가     : 학생과 시민
무엇을  : 반정부 시위
왜        :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金泳三)이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다.

이어 8월 11일 YH사건, 9월 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김영삼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는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경찰서·도청·세무서·방송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에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명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비록 시위는 진정되었으나,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함으로써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되었다.

 


참조자료: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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