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 위기의 시계 < 2 > ◆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국제유가가 위기단계에 진입하는 가격선은 '배럴당 150달러'다. 이 선을 넘어서면 한국경제가 2차 오일쇼크 수준의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본격적인 오일쇼크 위기에 진입하는 시점(오후 11시)을 '배럴당 150달러'로 잡으면, 지금의 유가 수준(배럴당 128.83달러)은 위기시계에서 오후 7시 45분쯤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2차 오일쇼크의 실질유가를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주 말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가격은 나흘째 이어진 하락세에 힘입어 배럴당 128.8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2차 오일쇼크 때보다는 20% 이상 비싼 가격이다. 다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지속적으로 개선된 에너지 효율성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도입한 개념이 '실질실효유가'다. '실질유가'에 '원유집적도'를 곱해서 구한다. '원유집적도'란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1단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유소비량을 뜻한다. 지난 2차 오일쇼크 당시 실질실효유가는 배럴당 150.2달러 수준이었다. 결국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면 한국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2차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고유가 위기 진입선을 '배럴당 150달러'로 보는 또 다른 근거는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면 실질GDI가 '마이너스'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민들이 고물가 부담과 함께 소득 감소라는 고통을 체감하게 된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7~8월 중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선을 돌파한다면 올해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며 "상반기까지 간신히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는 실질GDI가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싼 값을 줘도 기름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경제에 미칠 충격이 한층 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고유가 위기의 충격경로는 과거 오일쇼크 때보다 훨씬 강력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과거 오일쇼크는 석유류 수급차질에 따른 단기간의 유가급등이 원인이었다. 경제에 미친 충격도 직접적인 생산위축(GDP 급락)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한국경제는 위기상황에 바짝 접근해 있는 상태다.
지속적ㆍ점진적 유가상승의 부작용은 물가급등에서 시작한다. 지난 6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5.5% 상승했고, 같은 달 생산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0.5%나 올랐다.
물가급등은 소득둔화와 이에 따른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는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이 줄어들게 되고, 자재값이 오르며 내수경기가 악화되면 기업들의 채산성은 빠르게 나빠지게 된다.
비관적인 경기전망과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는 고용시장을 꽁꽁 얼게 하는 주원인이다. 지난 6월 신규취업자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4만7000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3년4개월 만에 최저치다.
돈가치는 떨어지는데(물가상승), 소득은 줄어들고(GDI 감소), 일자리 보전을 걱정(신규 일자리 감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유가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위기시계는 위기예보(오후 7시~오후 9시)를 넘어서 위기경보(오후 9시~오후 11시)에 육박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6개월 정도 유가가 오르면 생산이 일시적으로 저하됐다가 1년여 만에 다시 회복되겠지만 현재 유가 상승 기조는 5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면 가격 수준에 관계없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물가가 급격히 오르며 공황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시장분석실장도 "유가의 수준보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적으로 계속될 때 더 큰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지난해 말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올해 평균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면 경제성장 둔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진우 기자 / 박용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