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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isamtoh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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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8/10
 

네가 봤어?

배칠수_ 1999년 수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한 후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라디오 디제이로, 종횡무진 방송가를 누비고 있는 방송인입니다.

"네가 봤어?" 이 한마디는 어린 시절 나를 적어도 다섯 살은 겉늙게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고 무조건 내 말이 옳았던지라 친구들은 웬만해선 나에게 우기려고 들지 않았다. 내 말이 백번 옳아서가 아니라 기어코 내가 이겨야만 논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친구만은 달랐다. 공부를 잘했던 성대일이란 친구는 나와 말싸움을 벌였다 하면 끝까지 그럴싸한 근거를 대며 날 압박해오곤 했다.

그렇게 서로 우기기 논쟁을 벌이던 어느 날, 친구가 대뜸 나에게 "지구가 둥그냐"라고 물었다. "바보야, 지구는 둥글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논쟁은 계속됐다. "네가 봤어." "야, 그걸 꼭 봐야 아냐. 달 착륙 사진에도 나오잖아. 그 사진이 조작된 거라면 어쩔 건데." 순간 나는 주춤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그걸 뭘 보고 말고 하나.' 그러나 열두 살의 우리에겐 어떤 사실을 가지고 우기기 전쟁에 임할 때  '직접' '본'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내게 그 말을 했던 친구도 지구가 네모나 마름모꼴이라고 우긴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내가 미워서 그랬을 터다. 어쨌든 그날 우기기는 내가 졌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게 너무도 분명했으니.

친구가 내게 던진 "네가 봤어?" 이 한마디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혹 잘못된 것은 아닐까?'  되짚어 보며 내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반대하는 것도 다르게 생각해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말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요즘에도 내 머릿속에 강력하게 살아남아 생활 곳곳에 적용되고 있다. 유언비어를 터뜨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도 이 말을 생각한다. "네가 봤어?" 또 사랑하는 아들딸이 안타깝게도 나를 쏙 빼닮아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기기 선배로서,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네가 봤어?"



유럽 요리 전문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아시아 식당 킴 코흐트 대표 김소희

2008.10.28 10:22 | 1970年~월간샘터 | 샘터

http://kr.blog.yahoo.com/isamtoh1970/16438 주소복사

유럽 요리 전문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아시아 식당 킴 코흐트 대표 김소희
그 한 사람을 위한 요리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비엔나에 식당을 갓 개업한 여자가 있었다. 파리만 날리던 늦은 오후, 한 남자가 들어와 국수를 시켰다. 주방장이 만든 국수를 내갔는데 손님은 몇 젓가락 뜨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맛없는 음식을 내놓고 돈을 받자니 괴로웠지만 임대료에 직원들 월급 주려면 당장 몇 푼이 급했다. 손님에게 죄송했고,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결국 주방장을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 달간 하루 열 시간씩 회를 떴고, 모르는 재료가 있으면 그 맛이 기억날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몇 년 뒤 그는 요리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다섯 개 방송사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는, 과거 맛없는 국수를 대접했던 손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당연히 그 손님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 손님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당신을 우리 식당으로 초대할 테니 와서 맛있게 드셔주세요.” 이 요리사가 바로 비엔나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킴 코흐트’의 대표 김소희 씨(43세)다. 그가 지난 8월 서울푸드페스티벌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슬퍼도 먹고 기뻐도 먹는다
“내 입맛이 좀 깐드로와.” 부산 앞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것 같은 싱싱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비엔나에서 같이 온 직원과 나누던 독일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의 고향은 부산. 남편도 없이 혼자 자갈치 시장에서 식당을 하며 외동딸을 키웠던 소희 씨의 어머니는 장은 물론이고 김치에 들어가는 젓국까지 모두 제 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식구라고는 소희 씨밖에 없는데도, 어머니는 배추김치 하나를 담가도 속재료와 양념을 달리해서 다섯 가지로 만드셨단다. 그러니 사먹는 음식이 입에 맞을 리 있겠는가. 그것이 식당을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란다.

소희 씨의 직업은 원래 디자이너였다. 1980년대 초 어수선한 시국에 딸이 엇나갈까 걱정하셨던 어머니는 고등학교 2학년인 소희 씨를 비엔나로 유학 보냈다. 디자인 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의상 디자이너로 7년간 활동했지만 디자이너들의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이 그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것이 어머니의 이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슬퍼도 먹고 기뻐도 먹는다.” 밥장사를 하면 그래도 밥은 먹고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식당을 열었다.

“엄마, 있잖아. 그걸 넣어서 이렇게 만드니까 손님들이 참 좋아하더라” 자랑하면 “아이구, 잘했네. 내 손이 내 딸이다” 하셨던 어머니는 그가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지 벌써 8년인데 그는 아직도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쏟아진다.
“그 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요. 내 손이 내 딸이네 하는 소리.” 유독 밥이 맛있게 잘된 날이면 가게 한켠에 밥 한 그릇 떠서 올려놓는다. “엄마, 맛있제?” 하고.

 
킴은 사랑으로 요리한다

킴 코흐트, 말 그대로 ‘킴이 요리한다’는 뜻이다. 3개월에 한 번씩만 예약을 받는 이 식당은, 늘 예약이 꽉 차 있어 오스트리아 수상도 세 달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생선과 채소를 주재료로 한식의 조리법과 한방재료를 사용해 건강식을 만든다. 모든 요리는 그가 직접 한다. 말이 쉽지, 어림잡아 하루에 300그릇 이상의 양이다. 그도 사람인지라 지칠 때가 있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신이 올라 발에 불나도록 주방을 뛰어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렇다고 요리를 맛있게 차려내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손님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될 것이 분명하기에 두세 코스 정도는 쉴 것을 권한다. 음식을 파는 것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그에게는 더 중하기 때문이다. 킴 코흐트를 유명하게 만든, 참치와 한국 배로 속을 채운 돼지비계 요리도 한 사람을 위한 요리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단골손님인 의사 페터가 수술이 잘 안 되었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식당을 찾았다. 그의 원기를 북돋아주고 속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고민하다 즉석에서 만든 것이 입소문을 타서 킴 코흐트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이렇듯 킴 코흐트의 메뉴판에는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요리가 적지 않다. 결혼을 앞두고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오이를 썰어서 넣은 비빔국수에 회를 얹어서 준다. 국수 면발처럼 길게, 새콤 달콤 매콤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는 디자인을 하듯 맛을 그린다.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도 빽빽하게 조리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음식의 모습을 종이에 그린다. 그의 요리는 기존 조리법에 구애받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맛을 낸다. 그 맛에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는다. “손님들이 그라는데 내 음식은 먹는 순간 입이 즐거운 맛이 아니라, 오래 음미하면서 먹는 맛이라 하대.” 
 

김소희 씨 프로필
1965년 생. 1996년 첫 음식점 오픈. 2001년 4월 ‘킴 코흐트’ 오픈. 2003년 국제적인 권위의 요리평가 단체인 알 라 카르테로부터 외국요리 부문 최고상 수상. 2004년 구어만드 월드쿡북어워드에서 요리 부문 오스카상 수상, 최근 출간한 요리책이 2007년‘세계 최고의 아시아 요리책’으로 선정.
 

궁리궁리 목욕탕 별곡 <밀어주고 싶은 등>

2008.10.15 10:19 | 1970年~월간샘터 | 샘터

http://kr.blog.yahoo.com/isamtoh1970/16429 주소복사

밀어주고 싶은 등
 
요즘 부쩍 몸이 좋지 않았다.
목욕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그날따라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욕탕을 들락거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등을 밀어주겠다며
때수건을 달라고 했다. 순순히 할머니에게 때수건을 드리고 등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 기운이 얼마나 세시던지, 아프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때를 말끔히 벗기고 가야 하루가 시원하다며 옆구리며 등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피가 날 것처럼 아팠지만, 할머니 말씀처럼 시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왠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등 밀기가 끝난 후 할머니에게 등을 밀어드리겠다고 때수건을 달라고 하자 그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다 밀었다우. 등이 하도 쓸쓸해 보여서 밀어준 거유. 힘내시구랴.”
 
나연자_ 전남 무안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부 사랑이 각별해서
필자의 남편인 최기종 님은 아내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나무 위의 여자>라는
시집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 월간<샘터> 2008년 11월호 궁리궁리_목욕탕 별곡 중에서

궁리궁리 목욕탕 별곡 <한국 목욕탕은 정보의 바다>

2008.10.15 10:19 | 1970年~월간샘터 | 샘터

http://kr.blog.yahoo.com/isamtoh1970/16428 주소복사

한국 목욕탕은 정보의 바다 
 
처음 한국 목욕탕에 갔을 때는 탈의실에서부터 당당하게 벌거숭이로 뛰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혼자 얼굴이 달아올라 우왕좌왕했다.
한국 목욕탕이 일본과 다른 또 한 가지는 바로 욕탕 안에는 사람이 띄엄띄엄 있고,
대부분 탕 바깥에서 때 밀기에 힘을 쏟는다는 거다. 일본 사람은 뜨거운 탕 자체를 즐긴다면
한국에서 욕탕은 단지 몸을 불려 때를 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 같다.

이젠 한국 목욕탕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나도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목욕탕을
돌아다닌다. 녹색 때밀이 수건은 목욕가방의 필수품이 되었다. 또한 질펀한 목욕탕용 수다를
엿듣는 재미에도 푹 빠져버렸다.
그날도 나는 인생의 대선배들한테 여러 가지 정보를 얻으러 동네 목욕탕에 갔다.
장소에 따라 들을 수 있는 내용도 다르다. 미용,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목욕탕 탈의실,
(처음 알몸이 되니까). 맛집은 목욕탕 안,(땀 빼면 배고프니까). 남녀의 경험담은 사우나 안,
(폐쇄된 장소니까).

반신욕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앞에 있는 아줌마 둘이 예상대로 어제 먹은 저녁 이야기가
한창이다. “어제 모모 회사 앞에 있는 샤브샤브 집 갔는데 진짜 맛이 없더라.”
“사거리 앞에 있는 뷔페는 고기가 말라 있어.” “새로 생긴 모모 감자탕 국물이 완전히 라면 국물
이야.” “모모 공원 앞에 생긴 주꾸미 삼겹살집은 꽤 맛있더라.” ‘오케이. 나도 담에 그 가게에서
주꾸미 삼겹살을 먹자!’

맛집 정보를 충분히 얻은 나는 남녀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어 바로 사우나로 향했다.
둥글게 모여 앉은 아줌마 중에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에 사는 사람인데….” ‘어어, 드디어 시작!’ “그 집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들켜서 지금 집에 못
들어온대.” “어머, 정말?” “이혼서류 주고 간통죄로 집어넣겠다고 했는데 남편은 이혼은 싫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했대.” “거짓말이야. 남자는 한 번 그런 일 있으면 나중에 또 그런다니
까.” 결국 아줌마들은 만장일치로 이혼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눈 앞에서 진짜 ‘부부
클리닉’이 재연되는 것에 나는 너무나 흥분해버렸다.

오늘 내가 목욕탕에서 배운 교훈.
1. 새로 생긴 가게에는 섣불리 가지 않는다.
2. 남자는 한 명의 여자로는 만족할 수 없는 동물이다.
3. 남편은 바람을 피워도 마지막에는 결국 가정으로 돌아온다.
4. 한국에는 간통죄가 있다.

나는 이런 정보들이 앞으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상쾌한 마음으로 목욕탕을 나섰다. 근데 궁금한 게 있다. 남탕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마츠 사야까_  한국의 목욕탕 문화에 푹 빠진 스물일곱의 일본인 아가씨입니다.
요즘 고민은 아무리 때 밀기 연습을 해도 온몸이 빨갛게 되기만 할 뿐 시원하게 우동 면발 같은
때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외국인인 그에게 때 밀기의 세계는 여전히 심오하기만 합니다.


* 월간<샘터> 2008년 11월호 궁리궁리_목욕탕 별곡 중에서

궁리궁리 목욕탕 별곡 <다시는 가지 못했다>

2008.10.15 10:18 | 1970年~월간샘터 | 샘터

http://kr.blog.yahoo.com/isamtoh1970/16427 주소복사

다시는 가지 못했다 
 
나는 사우나를 즐기는 편이다. 집에서 하는 샤워보다는 목욕탕에서의 샤워를 더 좋아한다.
그것이 늘 나의 출근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른 이유다. 그날도 회사 지하에 차를 주차시킨
뒤 건물 뒤편에 있는 목욕탕 카운터에 입장료를 내고 당당히 탈의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어서 옷장에 넣고 거울 보고 기침 한 번 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겨울이라 수증기가 가득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샤워를 먼저 하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약간 뜨거웠는데, 오늘따라 관리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오늘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그런데 한증탕에서 나오는 사람이 어째 이상했다. 머리에 수건을 감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다들 이상하게 머리가 길다 싶었는데, 가슴을 보니 나와 다르게 생겼다. 더 아래를 보니
있어야 할 것이 안 보인다. 나는 이게 꿈인가, 내 팔뚝을 꼬집어보았지만 꿈은 아니었다.
냉정해지자 냉정해지자,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탕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벽만 바라보았다. ‘2층으로 가야 하는데, 왜 1층으로 들어왔을까.
’ ‘왜 안 보였을까, 여탕이라는 글자가….’ 10분, 20분… 시간은 흐르고 몸은 물에 불어서
손바닥이 희끗희끗해졌다.

이 일을 어째,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여자 손님은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탕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힘이 없어지고 얼굴은 땀범벅이 되고, 점점 앞이 희미해졌다.
“언니, 오늘 일찍 왔네” 하는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눈을 뜨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그날따라 탈의실 담당 아주머니가 딸 출산에 도움을 준다고 출근을 안 했단다.
다시는 그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황태진_ 중국에서 ‘China Focus C&l’라는 영상 프로덕션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찔했던 그날의 기억만은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 월간<샘터> 2008년 11월호 궁리궁리_목욕탕 별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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