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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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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며 발우공양은 승려가 식사하는 행위를 말함입니다.
          발우의 유래는 옛날 부처가 가섭이 모시던 용을 밥그릇에 가둬서 항복을 받아낸 일에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발우는 모두 네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밥그릇, 그 다음 것은 국그릇, 그 다음 것은 물그릇(청수)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이 반찬 그릇입니다.

              

                  발우는 바리·바루·발다라()·바루라·응기()·응량기()
                  라고도 하는데, 본래는 쇠 또는 기와로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나무를 깍아서 만들어 썼다고 합니다.
                  흔치는 않지만, 그림처럼 돌을 깍아 만든 것도 있다고 합니다.

              

                          정갈하고  겸손한 수도자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秀


  
       

         

                                   
       만자(卍字)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스바스티카 또는 슈리바차이며, 길상해운(
       또는 길상희선()으로 번역한다. 그 기원은 인도의 신 비슈누의 가슴에 있는
       가슴에 있는 선모()에서 비롯되었는데, 상서로운 조짐이나 길상을 나타내는 덕의 
       모임을 뜻한다. 석가의 깊은 내용을 구상화하였다는 점에서 일종의 만다라로 볼 수 있다.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교나 절을 나타내는 기호 또는 표지로 쓰이고 있다.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만자()와, 왼쪽으로 도는 좌만자()로 크게
       나누어진다. 인도의 옛 조각에는 자가 많으나, 중국·한국·일본에서는 굳이 구별하지는
       않는다. 또 좌우 만자의 각 끝부분이 다시 꺾인 모양도 있다. 
       이러한 만자는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등 고대문명이 찬란했던 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스바스티카는 아주 오래돤 문양이다. 현전하는 것 중에 자장 오래된 것은 티그리스-유프
      라테스강 유역에서 보여지며, 인더스 유역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족히 삼천년전
      부터 사용되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문명에서도
      스바스티카의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 수메르인들의 문화를 계승한 바빌로니아인
      들과 앗시리아인들을 비롯하여 이집트인까지도 스바스티카 문양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특정한 상징들은 결코 한 문화권에서 같이 사
      용되지않는다는 가설이다. 즛 스바스티카 문양은 태양이나 최고의 권위 등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바빌로니아나 앗시리아 등에서는 원에 둘러싸인 별문양 등이 그러한 상징으로
      쓰이고, 이집트에서는 날개달린 태양원반 등이 권위의 상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스바스티
      카가 사용되지 않았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별다는 상징이 없었던 그리스에
      서는 도자기, 화병, 동전, 건물 등에 장식문양으로써 스바스티카가 널리 사용되어졌다.
      또한, 켈트족들의 유적에서도 스비스티카와 유사한 문양들이 출토되는데 주로 룬문자
      (Runic alphabet)가 새겨진 바위등에서 같이 나타나고 있다.

     # 인도의 스바스티카
      그러나 고대에 스바스티카가 가장 널리 사용되어진 곳은 역시 인도라고 할 수 있다.
      스바스티카(swastika)라는 단어의 기원 자체도 옛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것
      이다. 스비스티카의 어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가설은 스바스티카
      (swastik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su(좋은), dsti(~가 되다), 그리고 접미사 ka가
      합쳐져서 만들어 졌다는 것. 두번째 가설은 요새의 설계도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요새 문양>
      
      보통의 요새는 전쟁시에 입구중 하나만 함락되어도 적군이 모두 안으로 몰려들어와 요새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스바스티카 모양으로 요개를 짓게되면 4개의 요새 입구중
      하나가 함락되어도 최소한 나머지 입구는 안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바스티카는 안전한
      요새의 설계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스바스티카의 어원도 마찬가지다.
      산스크리트어의 수(su: 좋은 이라는 의미) 와 거주지를 의미하는 바스투(bastu)가 합쳐진
      수바스투(suwstu)는 즉 좋은 거주지, 좋은 요새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가설 중 어느 것이 의미에 더 가까운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스바스티카는
      불교의 성립이래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부처님의 가슴에 스바스티카 문양의 선모가
      있었다고 하여 스바스티카를 복을 가져다 주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서구의 스바스티카
      스바스티카는 수메르를 비롯하여 그리스시대에도 널리 사용되어졌던 상징이지만, 기독교
      가 생겨난 이후의 유럽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된다. 이는 스바스티카가 불교와 관련을
      가지게 되면서 반기독교적 상징으로 여겨진 탓도 있고,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역시
      이교도 사회였던 그리스에서 널리 사용되어졌던 탓도 있다. 그러나 사용되지 않았을 뿐,
      스바스티카는 여전히 유럽에서 권력, 에너지 등의 의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접어들면서 서구에서는 스바스티카의 원래의 의미를
      살려 지도상에 발전소를 표시하는 기호로 사용을 하게 된다. 또한 같은 의미에서 스웨덴의
      전력회사인 ASEA(현재는 다국적 기업인 ABB)의 로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국가
      적 상징으로 하켄크로히츠(Hakenkreuz)를 사용한 이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되
      어 이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양의 스바스티카
     서구에서 스바스티카를 뒤집어 놓은 형태는 불운을 의미할 때가 많았으나, 동양에서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의 상징체계에서 만(卍)자는 최상을 의미하는 상징이였으며,
     일본에서는 아주 많은 수를 의미하는 일만(10.000)의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불운을 내
     쫒는 수호부적의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는 스바스티카와 혼동
     되어 불교를 상징하는 의미가 되기도 하였지만, 이와는 별개로 장수와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온갖 곳에 여러가지 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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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에서 장현방면으로 십여분 떨어진 곳에 있는 봉영사(寺)입니다..
    절터는 이미 신라 진평왕무렵 닦여졌으나, 그다지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이 앉은 모양새며 그와 어우러진 아담한 경관은..말 할 수 없이 다정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였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그 고적함에 빠져들고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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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무량수불(無量壽佛)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봉안한 곳을 말하는 것으로
   여느 절의 대웅전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뜻밖에도 아미타 부처님을 만나는 탁별한 인연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불경을 무릅쓰고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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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계단을 장식한 용문양과 옴자..독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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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입구의 돌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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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에서 사용하는 사소한 비품을 소각하는 곳이라는데..
    그 앞의 불상을 눈여겨 보니..육환장(六環杖)을 짚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을 염두에 두고 만든것 일까요................................................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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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
     몇년전만 하더라도 그다지 인연 닿는 곳이라고 생각치 않았었는데,
     사람의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반가운 사람이 그 곳에 잠시 머문다 하기에 내쳐 달려 갔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담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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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이 만개하는 늦여름이면.. 이 꽁꽁 얼어 있는 호수에는 순백의 향기들로 가득 찹니다..
    룸비니(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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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관음전입니다..
    나즈막한 처마끝으로 분듯, 멈춘듯 바람이 다녀갔나 봅니다..풍경이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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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엘 들릴때마다 꼭 다녀가는 봉향당(奉香堂)입니다..
    불교용품, 초, 향 등속을 판매하는 곳이지요..
    마음 속까지 청아해지는 종소리며, 정갈하고 향긋한 향이 어린 다포(茶布) 등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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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향당 창문을 장식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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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적하고 좁다란 길을 통해 다시 속세로 돌아갑니다..
    마음 속의 말들을 모두 쏟아부었으니..내닫는 그 발걸음도 바람처럼 가벼울까요........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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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푸른 달이 뜨는 곳..

2008.01.30 13:40 | 절집 | indiansummer

http://kr.blog.yahoo.com/indiansummer2108825/2065 주소복사


        진불암입니다..
        마치 집 마당에 들어선듯 아늑하고 낯설지 않다고 누구라도 느낄겁니다..
        여름 한철, 녹음이 짙어 푸른 물이 들었을 무렵의 사진입니다..
        응진당(應眞堂)입니다. 나한님을 모셔둔 곳이지요..
        새벽 네시..찬물에 얼굴 문지르고 달려가 그 곳에 서면, 손끝은 시려워 얼음이 얼어도
        마음에는 언제나 맑은 바람 한줄기 흘렀습니다..


       향적당(香寂堂)입니다..
       응진당 왼편에 자리잡은 전각입니다.
       평생을 발로 뛰는 포교에 힘쓰시다 입적하신 성훈스님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성훈스님을 무척도 아끼셨던 청화큰스님은 자신의 수행보다는 대중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포교에 온 힘을 쏟은 제자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응진당 오른편에 자리잡은 요사체입니다.
     스님께서 직접 황토를 개어서 만든 황토방도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누우면 외풍때문에 코끝이 시리지만..뼈까지 녹아내릴것 같은 온돌의
     따뜻함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진불암 마당을 지키고 선 느티나무..
      여름 한 철..저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굽어보는 두륜산의 풍경은 어찌해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암자 입구입니다..
      화려하고 위용있는 문은 없어도 그저 오래된 고향집의 마당을 들어서듯..
      그렇게 편하게 발 내딛을 수 있는 친근하고도 푸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공양간 앞 풍경입니다..
      스님은 저곳에서 손수 빨래도하시고 고무신도 씻으십니다..
      늦가을 메주를 쑬때나 김장 배추를 절일때에도 스님은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십니다.
      성품이 급하신 지경스님의 고함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이 어설픈듯 정교한 돌탑은 누가 만들어 올린걸까요..
                 제대로 된 문이나 그럴싸해 보이는 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했을까요..
                 그래도 탑을 쌓아 올린 판석이나 돌의 이음새가 막 쌓아 올린듯해 보이진
                 않는걸로 봐서  꽤나 시간과 공이 들어간듯 보입니다..
                 쌓은 이의 노력과 공덕으로 이어진 인연이 오래도록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 같습니다....................................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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