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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의 食遊記
다녀온 식당들의 느낌과 음식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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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의 食遊記] 청요리집의 추억

2009.07.02 12:22 | 매스컴 기고문 모음 | gundown

http://kr.blog.yahoo.com/igundown/10375 주소복사

주간동아  2009년 5월 19일자 686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

[Gundown의 食遊記]
 
청요리집의 추억

지극히 흔하고 대중적인 중국집이 ‘청요리집’이라 불리며 고급 레스토랑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이 생겨난 중국집은 현대적 외식문화 개념을 대중적으로 최초 도입했는데 주 고객층이 일본인이다 보니 가격대가 높고 메뉴며 서비스에 왜색이 적잖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찬으로 단무지를 제공하고 젓가락과 물수건 고기튀김을 와리바시 시보리 고기뎀뿌라 식의 일본어로 부르고, 짬뽕 우동 야끼만두(군만두) 같은 일식 메뉴를 넣은 것이 그 예다. 술을 도꾸리라는 일본식 청주병에 담아 판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해방을 맞으며 주 고객층이 주머니 두둑한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고 중국집에도 변화가 일었다. 그전까지의 고급 청요리(청나라 때 도입돼 붙은 명칭)에서 자장면, 탕수육 등 한국인 입맛에 맞는 저가 요리를 주 종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변신은 일단 성공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나름의 안정기를 구가하며 메뉴와 맛도 상당히 한국화했다. 하지만 형식에는 왜색이 남아 서울의 오래된 업소들은 여전히 일식 다다미방 구조라 요리가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나면 손님이 박수를 크게 쳐서 부르기 전까지는 종업원이 들어와보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륜 커플이나 아베크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밀회 장소가 되었다. 때로 교복 입은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에게 음주와 흡연의 공간이었고 저가 메뉴를 시켜놓고 들어앉은 커플의 방에는 종업원들이 기척을 자주 보내서 추가 주문의 압력을 넣기도 했다.

중국집은 1980년대 도시재개발 바람과 화교 탄압 정책으로 주인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바뀌고 중국집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현재처럼 허접한 맛의 저가 식당이 됐다. 다꽝, 다마네기, 와리바시 등 일본어나 도꾸리병이며 코끝을 쏘는 빙초산의 냄새는 사라져도 아쉽지 않지만 고소한 라드(돼지지방 정제유지)에서 우러나온 풍성한 맛과 자장 곱빼기 가격을 따로 받지 않던 후한 인심, 주방 쪽을 향해 외치던 중국어 주문 등을 대하기 어렵게 된 것은 꽤나 아쉬운 일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교 중국집으로 을지로의 안동장(1945년 개업, 02-2266-3814)을 꼽지만 안타깝게도 맛이며 분위기에서 옛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안동장의 간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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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선 2009.07.02  22:25

'청요리집' 얼굴에 미소가 절로 피어납니다. 넘 정겨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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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chiropractor@Y 2009.07.03  09:45

자장면에 그런역사가 있는줄 몰랐습니다. ^^;;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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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3  12:06

이원선님/korchiropractor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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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2009.07.03  13:05

언젠가 tv 보니까 한국에서 중국집 하던 화교가 대만가서 한국식 짜장면을 팔고 있더군요
재료인 춘장도 한국에서 들여와 만들어 파는데 인기가 좋타내요
진짜 어릴때는 중국사람이 주인인 중국집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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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fose 2009.07.03  16:09

왠지 '화상'이라고 붙여놓으면 더 맛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하지만 화교주인분들은 제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불친절한 느낌을 간혹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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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대 2009.07.03  16:30

70년대초에 일요일마다 아버님과 타동네 산보겸 중국집 순회를 하였읍니다..
초등학생인 제가 짜장곱배기를 시키고 아버님이 삼선짜장을 시키면 어김없이 짜곱이 아버님에게로.....ㅎㅎ
그때 자장면 맛을 어디에 비교 하겠읍니까...제가 그때 아버님 나이가 되있네요......세월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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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대 2009.07.03  16:31

시흥역전에 동흥관이라고 있읍니다..아직도 2세 화교가 하고 있고 제 초등하교 동문 이기도 하고..음식 좋읍니다..건다운님 한번 방문하셔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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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대 2009.07.03  16:32

위에 시흥은 금천구 시흥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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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4  14:48

감사합니다. 기회 되면 들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nvt712 2009.07.03  20:39

중국집의 역사를 좀 알것같네요 갑자기 짜장면이 댕기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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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4  14:48

감사합니다.

calvin 2009.07.03  23:59

건다운님 혹시나 첨부 그림의 안동장이 흑석동에 있는 안동장인가요?예전에 자주 가던곳인데 궁금함이 생기네요~^^ 그리고 블로그에 자주와서 정말 좋은 정보와 견문 얻어서 가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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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6  01:06

칭찬에 감사 드리고 을지로에 있는 안동장입니다.

김도윤 2009.07.04  02:51

학창시절엔 짬뽕국물만 시켜서 소주랑 가끔씩 먹었는데 글을 읽어보니 그런 시절이 떠오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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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 2009.07.04  11:48

아주 어렸을때 아버님이 퇴근하시면서 가끔 얇은 나무(종잇장 처럼 얇은)로 만든 케이스안에 담겨져 있던 군만두를 사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30년도 더된거 같네요. 그 군만두도 군만두를 사다주시던 아버님도 더이상 볼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런지 더 잊을수가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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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4  14:47

저도 그렇고 그 시절 분들이 대게 비슷한 추억을 가고 계시죠.

감자 2009.07.05  13:13

70년대 초 였습니다...요즘처럼 우기에 토요일이었죠 소위 반공일이라고 하던 학교 다녀와서 집에 있는데 우산가지고 버스정류장에 오라는 전화를 받고 아버님을 기다리고있다가 오는길에 영양센터에 들려서 통닭먹던 생각이 나는군요...그시절 전기구이 통닭이 어찌나 맛나던지...반공일에 비오기만을 기다기도 했죠...ㅎㅎㅎ약간은 촌스럽지만 빨간드레스 입고 살갑게 맞이해주던 영양센터 여주인도 살아계시다면 백발이 성성하겠군요...그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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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huky@R 2009.07.06  16:01

청요리, 군만두, 영양센터 통닭,,,십수년전에 돌아가셔서 생각도 잘 안나던 울아빠가 너무 그립네요 정말 쇼핑백에 넣어진 통닭, 나무종이로 싼 군만두 술드시고 마니 사다주셨는데...행사때마다 남산외인아파트에 있던 희래등에서 먹던 고급청요리 생각도 나구요 식탁중간에 빙빙 돌아가던 그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다들 비슷한 연배이신가..친구들이랑 옛날 얘기하는 기분이 들어요 건다운님 블로그에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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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down 2009.07.08  13:56

^^;

돼지여우 2009.07.14  00:43

나름, 강경의 거상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집에 청요리사를 데리고 사셨답니다.(1940년대) 밤중에 출출하면 곳간에 걸어놓은 돼지고기를 한칼 베어내어 다져서 즉석에서 군만두등을 만들어 오라고 해서 식도락을 즐기셨다는데 그로 인한 고혈압증세로 간호사를 불러 피를 빼셨다지요~ 옛날엔 고혈압약이 없어서 피를 빼는 것으로 혈압을 내렸던 모양입니다. 전 청요리집- 하면 '다 되어갑니다~'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 기다리다 지쳐서 밀가루 사러갔냐고 항의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후식으로 나오던 맛탕. 찬물에 식혀가며 먹는데도 혀를 곧잘 데이곤 했었지요~ 세대가 조금 다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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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2009.07.30  16:05

60년대초반, 안동장의 출장요리 기억이 선합니다. 요리재료와 요리도구를 리어카에 싣고 오곤 했었지요. 아마 케이터링서어비스의 원조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저희집이 마포쪽이었으니 을지로에서 오기엔 꽤나 멀었을텐데... 마탕 얘기도 어느분께서 쓰셨지만 지금은 거의 못보는 멤보샤(새우를 식빵 사이에 다져 넣고 튀기는 요리)도 생각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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