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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디지털서울 2009 : 단편영화 리뷰 5편

2009.08.23 02:09 | Film: Special Column | ibuti

http://kr.blog.yahoo.com/ibuti/770 주소복사


시네마디지털서울 2009: 단편영화 리뷰 5편


‘시네마디지털서울 2009’의 ‘한국단편경쟁’ 부문의 예선심사를 맡았다. ‘시네마디지털서울’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본선에 오를 15편의 단편영화를 선정하는 데 있어 예심위원 전원의 동의를 구한다는 사실이다. 언뜻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엔트리를 꼽을 수 있었다. 15편 모두 추천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란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더 호감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 <7×7㎡>(고석희, 김현동, 백태경, 황혜온), <시향의 브람스>(손미),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강상우), <겨울이 온다>(소봉섭), <낯선 꿈들>(김지곤)이 그 이름들이다. 한 편을 꼽으라면 <낯선 꿈들>이 아닐까 싶다. 영화제 카탈로그용으로, 경쟁에 오른 15편 가운데 4편 영화와, ‘한국단편초청’ 부문에 초대된 <남매의 집>의 리뷰를 썼다. 이를 블로그에 올린다.


<7×7㎡> : 한국단편경쟁
감독: 고석희, 김현동, 백태경, 황혜온
시간: 42분

2003년. 이십대 초반의 혈기 넘치는 청년 강현구와 재기전을 준비해온 서른 중반의 아저씨 최영익이 링 위에서 만나 각각 한 번씩의 승리와 패배를 나눈다. 이제 카메라 앞에 앉은 두 사람이 5년 전의 시합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삶(과 미래의 꿈)이 어떠한지 들려준다.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강현구는 경찰의 꿈을 이루려고 밤 시간을 쪼개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작은 공장의 사장으로서 운영난을 헤쳐 나가는 중인 최영익은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성장하고 있는 세 아이에게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7×7㎡’은 링의 면적이다. 만약 <7×7㎡>가 옛 시합을 되새기는 선에서 그쳤다면 영화의 너비는 딱 그만큼일 것이다. 스크린의 사이즈가 세상과 인간을 다 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고백하는 양, <7×7㎡>는 인물의 바로 앞에서 눈과 귀만 열어둔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멋을 부리지 않는 카메라는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거나 감상적인 분위기를 부여안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7×7㎡>은 인물에게서 ‘가식 없는 목소리와 솔직한 마음’을 끌어냄으로써 다큐멘터리의 구획을 확장하고 2차원의 공간에 입체감을 더한다. 그것만으로도 <7×7㎡>의 성과는 적지 않으나, 네 감독은 두 인물이 ‘황금의 마음’의 소유자였기에 진짜 행운을 얻는다.

웃음으로 ‘선의의 승부’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었던 두 남자는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도 아름다운 자세를 잃지 않는다. 겸손하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다는 강현구가 사람들 밑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할 때, 아내 육체의 허물이 사랑스럽다는 최영익이 지금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을 때, 누군가는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로 삼을지도 모른다. 교육적 기능이 우선하는 다큐멘터리를 의도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7×7㎡>이 썩 훌륭한 교훈극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겨울이 온다> : 한국단편경쟁
감독: 소봉섭
시간: 32분

두 소년이 아파트 복도에 앉아 있다. 한 아이가 내려간 뒤, 다른 아이는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다음 날, 학교에는 갖가지 소문이 돈다. 누군가는 죽은 아이에게 여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죽은 아이 곁의 누군가를 보았다는 아파트 주민도 있단다. 친구의 죽음을 뒤로 한 채 도망친 소년은 혼란스럽다. 죽은 친구에게 처벌을 가한 선생에게 죄를 묻기도 하고, 죽은 친구가 벌을 받도록 원인을 제공한 녀석에게 따지기도 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파트 복도에 다시 선 소년은 어두운 세상을 바라본다. 찬바람이 불고, 힘겨운 숨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온다>의 시작은 짧은 미스터리다. 아이는 왜 죽은 것일까? <겨울이 온다>는 죄를 지우려는 아이의 가짜 탐정놀이로 이어진다. 아무도 비밀을 알아선 안 되며, 비밀을 들키기 전에 얼른 다른 사람의 죄를 추궁해야 한다. <겨울이 온다>의 마지막 장은 속죄를 완수하지 못한 자의 비록이다. 죄를 지은 자들은 협잡을 공모하고, 나약한 죄인은 악당들의 공모에 동조하며, 죽은 아이의 진실은 그렇게 묻힌다. 소년은 눈바람과 함께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 알지 못한다.

하이틴무비로서 <겨울이 온다>는 각별하다. 감독은 옛 추억을 불러내거나 이야기를 재현할 마음이 없으며, 대신 십대라는 차가운 시간의 중심으로 관객을 곧장 내몬다. 그리고 관객은 미처 마음의 준비도 마치지 못한 가운데 고등학교의 사회와 정치를 목도하게 된다. 체온은 점점 싸늘해지고 시린 마음은 얼음을 머금은 듯하니, <겨울이 온다>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닌) ‘실감’의 영화라 부를 만하다. 보기 드물게 대상과 일체를 이룬 수작이다.


<김 문 정> : 한국단편경쟁
감독: 이지연
시간: 21분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김문정은 요즘 넋을 잃고 산다. 동거하는 조카나 주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가하면, 고객에게 잘못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객의 불만을 제대로 처리하라는 팀장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거리로 나선다. 문정은 힘든 걸음으로 고객을 찾아가지만, 그들은 도리어 불친절한 말투로 맥을 놓게 만든다. 고객을 기다리느라 계단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아까 거리에서 언뜻 마주쳤던 생즙 외판원이 다가와 즙 하나를 준다. 혼자 밥 먹기가 싫었다는 그녀는 문정에게 같이 식사하기를 권하고, 문정은 그녀의 집에서 선잠을 청한다.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감정을 숨기고 사는 김문정은 죽은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를 둘러싼 외부세계뿐 아니라,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녀는 소중했던 사람의 상실로 세상과 벽을 쌓고 사는데, 보이지 않는 고객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 일과로 인해 벽은 더욱 두꺼워진다. 낯선 여인과의 만남은 문정의 삶의 감각을 조금씩 일깨우고, 그녀는 막혀 있던 감정을 실로 오랜만에 분출한다. 슬픔을 느끼는 데서 흘러나오는 눈물 한 방울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런 게 바로 삶의 기적이다.

<김 문 정>은 무심하다. 기껏 창조해낸 인물이 저절로 생겨난 듯, 카메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인물을 사부자기 뒤따르고, 이야기엔 좀체 개입하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에겐 불친절한 영화의 태도가 역으로 인물에게 행동의 자유를 선사한다(물론 착각이겠으나, 그녀는 감독의 지시와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김 문 정>은 알베르 세라의 디지털영화와 닮았다. 카메라의 오랜 기다림 끝에 인물은 기어코 소중한 의미를 드러내고, 그 때야 관객은 감독의 존재와 마음을 인지하게 된다.


<사자를 만나다> : 한국단편경쟁
감독 : 김은호
시간 : 22분

숨을 헐떡이며 쫓기던 남자가 외딴 골목에서 사자를 만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사자와 조우하기까지 며칠 전으로 되돌아간다. 직장을 구하고자 애쓰는 남자에게 뚜렷한 목표란 없다.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일반회사의 면접 기회가 있으면 별 생각 없이 응하곤 한다. 실직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아버지 또한 그에게 별 힘이 되지 못한다. 두 남자와 달리, 주인공의 여자 친구는 동물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부지런을 떠는 운동가다. 남자가 아버지의 카메라를 팔아 수험서를 마련할 동안, 그녀는 목숨이 위태로운 동물들을 풀어주는 모험을 감행한다.

<사자를 만나다>는 이해하기 쉬운 상징들로 현실을 묘사한 작품이다. 몽상에 가까운 목표를 향해 동분서주하는 여자가 삶의 주체로, 생명의 보호자로 그려진 반면, 무기력한 모습의 남자들은 코앞의 밥벌이를 구하는 데 급급한 존재에 불과하다. 남자와 아버지가 사는 집에 뜬금없이 붙어 있는 ‘자양강장음료 광고 포스터’의 ‘정력 넘치는 남자’는 볼품없는 두 남자를 비웃듯이 바라본다.

그러니 극중 사자가 ‘퇴색한 이상과 잃어버린 정체성’을 뜻하는 건 빤한데, 감독은 ‘사자와의 만남’과 ‘쓰레기를 뒤지는 뒷골목의 맹수’ 사이에서 어디를 강조할지 망설인다. 만약 사자와의 만남에 더 의미를 두었다면,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불의 축제>가 그랬듯이, 이상의 광경을 접한 야생의 남자가 현실에 얽매인 인간군상에게 칼을 들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자를 만났음에도 자각에 이르지 못하는 주인공을 빌린 영화는 현대인들이 초라한 행색의 사자처럼 살아가는 현실을 다독이기를 선택한다. “넌 어떻게 살 건데?”라는 여자 친구의 물음에 남자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으나, 그건 비단 그만의 잘못이 아니다. 누군들 확신에 찬 삶을 살고 있단 말인가.


<남매의 집> : 한국단편초대
감독: 조성희
시간: 44분

철수와 순이는 반 지하에 위치한 누추한 집에 산다. ‘절대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는 오랫동안 소식조차 없고, 아이들의 호졸근한 몰골은 그들이 어른의 보호 없이 방치되어 왔음을 말한다. 소년은 풀었던 문제지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풀기를 반복하고, 절을 하고 싶다며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소녀는 하릴없이 크레용으로 벽을 칠한다. ‘별 대왕’을 그려놓은 순이는, 창밖의 사람들이 그를 대장으로 추종하는 걸 보았다고 일러준다. 그 때 벨이 울린다. 낯선 남자는 물을 달라고 했다. 5분만 머물다 나가겠다던 그는 다른 두 악당을 불러들인다.

<남매의 집>은 단편영화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이질적인 장르들을 놀랍도록 응집한 뒤 폭발시킨 조성희는 제한된 시간을 충만의 양식으로 꽉 채운다. <남매의 집>은 두려움의 근원에 접근하는 공포영화이고, 현실의 폐소공포증을 미래사회의 묵시록으로 뒤바꾼 SF영화이고, 한정된 공간 속에 극단적으로 기괴한 인물들을 몰아넣은 실험극이고, 인간본성의 기저에서 윤리를 질타하는 드라마이고, 몸과 이성과 의지를 박탈당한 인간들의 코미디다.

불현 듯 미래의 기억처럼 보이는 <남매의 집>이 정말로 무시무시한 이유는, 이 영화가 어쩌면 까맣게 잊힌 과거의 상처를 저장고에서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불한당들의 세계사>에서 ‘범죄적인 것이 구원과 역사로 칭송받게 되는 그런 반란’을 언급했다. 선한 아이들을 구원할 구세주의 자리에 사기꾼, 살인마, 정신병자가 침입해 위협하는 형세는 한국 근대사회의 비극을 암시한다. ‘수퍼맨’의 상징이 박힌 티셔츠를 입었으나 동생은커녕 자신도 지키지 못한 철수는 죽었다 살아난 새를 멍하니 쳐다본다. 약 기운으로 부활한 새는 과거의 새와 동일한 생명체일까, 그리고 새장 속의 새를 과연 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남매의 집>은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읽은 동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선 벌어지지 않음을 다시금 깨우쳐 주는 잔혹한 동화다. (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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