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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없는 산 (김소영, 2008): 이렇게 찬란한 아이가!

2009.08.14 09:49 | Film: Comment | ibuti

http://kr.blog.yahoo.com/ibuti/769 주소복사


Such a Gorgeous Kid Like Her.


나무없는 산 Treeless Mountain
(김소영, 2008) ★★★★☆



“이 영화는 이야기가 아닌, 언덕 위에 선 두 소녀의 이미지로 먼저 다가왔어요. 그리고 나는 ‘Treeless Mountain'이라는 단어를 썼죠. 그걸 왜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단지 그들은 작은 막대기를 들고 나란히 서 있었거든요. 거기서 이야기가 발전한 거예요.”
_ 김소영. 미국영화지 ‘필름코멘트’와의 인터뷰 중에서.

2003년 즈음에 시작된 기획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 사이에 김소영은 <방황하는 날들>(2006년)을 만들었다. 김소영에게 이 작업은 오랫동안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그녀는 ‘한국에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 배우들을 어떻게 찾아낼지’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러다 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를 본 김소영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긴 했다만>, 자크 드와이용의 <포네트>,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의 영향 아래 완성돼 이미 외국의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반응을 얻어낸 <나무없는 산>이 한국에서 곧 개봉될 예정이다.

아버지가 떠나버린 집. 6살 소녀 진과 동생 빈은 엄마와 산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는 두 자매를 시골의 고모 집에 맡겨두고 떠난다. 돼지저금통이 꽉 차면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말은 아이들에게 주문이 된다. 메뚜기를 구워 팔고, 100원 동전을 1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가며, 진과 빈은 빨간 저금통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고모는 두 아이를 외할아버지 댁으로 데려간다. 세상모르고 언니만 따르는 빈은 진에게 자꾸 묻는다. “엄마는 언제 와?” 시간이 흐르면서 진의 대답은 차츰 달라진다. “엄만 안 와, 바보야”, 그리고 “공부나 해”, 그리고 “엄마는 꼭 올 거야”

이렇게 예쁜 아이를 버려두는 어른이 있을까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흔하고 흔하다(빈 역을 맡은 김성희 꼬마는 실제로 고아원에 살고 있다). 어른의 태도를 꾸짖듯 스스로 살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은 큰 채찍이 되어 다시 어른에게로 향한다. 삶의 터전이 도시에서 조그만 읍내(감독의 고향인 흥해)로, 이어 시골마을로 점차 옮겨 가면서, 진은 공부할 곳에서 멀어지고, 빈의 드레스에는 때가 묻고, 또래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결국 두 아이의 곁에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만 남는다. 영락없이 소녀의 수난사처럼 전개되는 <나무없는 산>은, 그러나 고맙게도 잔혹한 인생이야기가 아니다.

김소영은 과감한 클로즈업을 즐겨 사용한다. 전작 <방황하는 날들>에서 그랬고, 어린 두 비전문배우가 주연을 맡은 <나무없는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없는 산>은 두 소녀가 세상에 펼치는 표정들의 파노라마다.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조금씩 인식하면서, 천진난만한 두 소녀의 눈동자는 흔들림을 거듭한다. 특히, 똑똑한 언니지만 여전히 오줌싸개인 진은 투정을 부리고, 반항의 몸짓을 시도하고, 거짓을 경험하고, 눈물을 배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세상 앞에서, 두 소녀의 영혼이 한 치도 더러워지지 않음을, 관객은 목도한다. <나무없는 산>은 아름다운 영혼이 담긴 얼굴의 기록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속의 풍경>에서 보았듯이, 나무는 아이가 기댈 곳, 즉 아버지의 메타포다. 의지할 데 없는 아이는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무없는 산>은 ‘나무’가 아닌 ‘산’에 방점을 찍는다.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의 모습을 제거한 <나무없는 산>에서 눈여겨 볼 점은 ‘여성들의 연대 혹은 연계’다. 극중 엄마와 고모는 두 아이를 버린다기보다 생명의 근원으로 인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침내 두 아이가 머무는 할머니의 품은 산과 땅, 그러니까 생명을 살리는 공간을 의미한다. 말라죽을 뻔 했던 두 아이는 위대한 자연과 대지, 사랑의 힘으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건강한 생명의 빛을 발한다.

<나무없는 산>은 유치원에서 공부하는 진의 클로즈업으로 불쑥 시작한다. 공부 잘하는 소녀는 소리 내어 답을 외치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선생을 바라본다. 그러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클로즈업을 줄이고 넓은 전경을 자주 담는다. 어린 배우의 부담감을 없애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나무없는 산>은, 할머니와 대지의 환경에 적응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언덕을 넘어가는 진과 빈의 모습을 담은 엔딩은 오프닝과 정반대의 정서를 전달한다.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 건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이제 자연과 동화된 모습이다. 우리들의 귀여운 아이들은 바야흐로 그들의 길을 걷는다.

김소영은 ‘하늘’의 표정을 영화에 종종 삽입하곤 한다. <방황하는 날들>에선 노을 진 차가운 하늘이 긴 시간 동안 관객에게 노출되는데, 그것은 퍼렇게 멍이 든 소녀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김소영은<나무없는 산>에서 하늘을 더 많이 찾는다. 하늘의 얼굴은 매번 다르다. 구름이 낀 파란 하늘이 나오고, 해가 져붉은 하늘이 나오고,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한 하늘이 나온다. 무심한 듯 변화무쌍한 하늘 밑에서, 점점 성장하는 인간은 하늘과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김소영의 영화는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성장 이야기인 게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 김소영이 소원하는 영화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이혼으로 김소영은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녀의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러한 개인적인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방황하는 날들>과 달리, <나무없는 산>은 분명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태로 삼았으면서도 다른 길을 간다. "<나무없는 산>의 주인공 진은 감독의 과거 모습에서 분리돼 독자적인 행보를 이룬다"고 김소영은 말한다. 유아기의 기억과 상처를 다룬 작품이 자칫 빠지기 쉬운 신파와 유치한 재현을, <나무없는 산>은 가뿐하게 넘어선다. 신화적인(결코 과장이 아니다) 두 인물을 통해 <나무없는 산>은 상처와 기억을 승화하는 경지에 오른다. 두 소녀가 ‘돼지 저금통’을 내미는 장면의 거룩함을 보라. 아무리 찬란한 보석도 <나무없는 산들>의 영롱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ibuti, 2009.8.14. 서울신문)

* 의 첫 번째 한국어 제목은 <민둥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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