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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 (신정원, 2009): 작정하고 만든, 안티 웰메이드 영화

2009.07.21 01:02 | Film: Comment | ibuti

http://kr.blog.yahoo.com/ibuti/757 주소복사


Self-Made Anti-Well-Made-Movie


차우 (신정원, 2009) ★★★


* 스포일러를 따지는 사람에겐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글이다. 하지만 <차우>라는 영화 를 스릴러로 알고 있는 관객에겐, 영화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사실을 아는지? <차우>는 코미디다. 참, 글의 전반부만 읽고, 내가 영화를 욕하는 걸로 오해하지 말기를.

영화를 보던 도중 나도 모르게 “아! 이 영화, 어쩌려고 이러니”라는 말을 내뱉었다. <차우>는 의도적으로 만든 ‘괴상한 영화’다. 예를 들어, 멧돼지가 등장하는 스릴러로 포장된 <차우>에는 ‘웃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장면이 삽입돼 긴장을 와해시킨다. 보통의 스릴러 감독이라면 여러 표현방법을 고심한 끝에 도저히 다른 길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결코 선택하지 않을 노선이지만, 신정원은 실로 용감할 정도로 그 노선을 택한다. 영화가 좀 심심해질 것 같으면 ‘바보 같은’ 장면들이 영화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하니, 나는 난감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차우>에 대한 반응은 딱 두 가지로 예상된다. 낄낄거릴 대상을 찾아 헤매던 관객에겐 이보다 더 좋은 영화가 없을 것이고, 정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차마 입에 다 담지 못할 욕을 해댈 게다. 이 수상한 감독은, 아마도 관객의 두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이런 행동을 취한 듯하다.

<차우>는 야생동물을 무차별 수렵하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차우>는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의미심장한 반폭력영화냐? 위에서 말했듯이 그런 기대를 품고 영화를 보면 절대 안 된다. 사실 <차우>의 도입부는 영화 전체의 성격과 별 상관이 없다. 극의 후반에서 이르면, 거대한 식인 멧돼지의 기원을 갑자기 일제강점기로 떠넘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우>라는 영화에 식민의 기억을 되짚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멧돼지는 영화사에 나오는 못된 괴물들처럼 사람 잡아먹는 데 재미를 붙인 맹수일 뿐인데, 감독은 사이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실마리들을 덧붙인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감독 나름의 심각한 의미부여가 아니라, 심심풀이용 장난질이다. <차우>는 인간을 아주 잘 해치는 거대 맹수가 등장하는 코미디다.

<차우>는 스릴러의 맛을 더하고자 의미심장한 인물들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다. 한때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포수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던 중 며칠 전 멧돼지에게 손녀를 잃었고, 서울에서 도착한 젊은 포수는 알고 보니 늙은 포수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으며, 갑자기 서울에서 시골 경찰서로 발령받은 경찰에겐 임신한 아내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모가 있다. <차우>는 여기에다 뛰어난 동물학자를 꿈꾸는 젊은 여자 연구원과 도시냄새를 풍기는 시골형사를 더해 기본 인물을 구성한다. 겉으로 보면 참 그럴싸하다. 색깔이 분명한 인물들인 만큼 조금씩의 살만 붙이면 어렵지 않게 평균 수준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차우>이며, <차우>는 인물들에게 기대되는 성격을 모두 탈색해버린다.

손녀의 복수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 같았던 늙은 포수는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채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그나마 무게라도 좀 잡아주면 좋으련만, 그는 좋은 대사 몇 마디도 부여받지 못한다(하긴 그건 모든 인물에게 다 마찬가지다). 젊은 포수와 늙은 포수 사이의 오래 된 앙금이 뭔가 멋진 이야기를 끌어낼 것 같더니만, 두 사람이 야영 도중 몇 마디 나눈 뒤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흐지부지 사라져버린다. 젊은 포수와 여자 연구원 사이의 뜬금없는 로맨스는 언급하는 것조차 쑥스럽다. 카메라로 촬영하는 일 외엔 도무지 하는 게 없어 보이는 여자 연구원이나 선글라스와 가죽코트를 입고 멧돼지 공격대에 합류한 형사는, 그들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인물인 경찰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별 생각 없이 살던 경찰은, 형사가 ‘승진’이란 말로 꼬드기자 바로 (태어날 아기를 포함한) 가족을 내던지고 목숨까지 내놓으며 멧돼지를 유인(‘왜? 어디로?’가 없는 유인이라니!)하기 시작한다. 확실하게 승진될 것도 아니고, 그냥 승진할 수도 있다는 말 한마디에! 다시 유념하자. <차우>는 마구 낙관적이고 개념 없는 인물들과, 인간을 아주 잘 해치는 거대 맹수가 등장하는 코미디다.

공격대가 이러한 인물 달랑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들과 멧돼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하등의 스릴이 있을 리 없다. 아니,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신정원은 시도 때도 없이 코믹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김빠지는 상황을 연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그렇다면 신정원은 기껏 대자본을 들이고, 값비싼 CG를 사용하고, 인정받는 연기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하필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일까?

<차우>는 어떤 상징이나 비유 없이, 대놓고 한국사회를 조롱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들이 비겁한 전문가 집단, 무능력한 학계, 뻔뻔한 공권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농민들의 아우성엔 내몰라하면서 자기 이익과 권력에만 관심을 두는 인물들을 놓고 한국의 정치, 사회를 비유했다고 해석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차우>는 우아하게 메타포를 앞세우기에 앞서, 단지 있는 그대로의 인물을 늘어세워놓고 비웃기에 바쁘다. <차우>는 자기 혼자 잘났다고 뻐기는 것들, 비현실적인 헛소리를 외치는 것들, 할 일 안하면서 나대는 것들, 그러니까 얄미워서 죽이고 싶은 인간들에게 똥물을 던지고 싶어 안달이 난 작품이다. <차우>를 보다 웃음이 터져 나오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건 그래서다. 왜? 그게 한국의 한 현실이니까. 자기들이 정상적인 줄 착각하며 사는 한국인이 실제로는 얼마나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지, 감독은 손가락질하며 웃고 싶었던 것 같다. <차우>의 인물들에게 죄가 있다면, 도무지 영화의 인물답지 않다는 점뿐이다.

<차우>의 진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기존의 웰메이드영화에 반기를 든 작품이라는 데 있다(그런 점에서 <차우>가 공격하는 첫 번째 작품은 <괴물>이다). 소위 한국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장르영화와 B급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하면서도, 정작 영화의 외양은 아주 고급스럽게 포장하곤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찌질이 10단인데, 영화의 고상한 스타일은 하늘을 찌른다. 신정원은 그런 영화들을 보며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야’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는 영화의 인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꼭 같은 외양의 만듦새로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이게 진짜 B급영화다’라고 선포한다. 인물들이 헛짓거리를 하면, 감독은 더 심한 헛짓거리로 답하고, 인물들이 웃으면, 카메라는 더 크게 웃는다. 일부러 예술영화인 척하며 삽입해놓은 장면은 또 어떤가. ‘실험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지만, 그것 또한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점잖은 작가주의영화에 대한 비아냥으로 보는 게 맞다. 신정원은 고상한 감독들에게 대든다. ‘너희들은 이런 장면을 왜 만드는데?’라고. <차우>는 로저 코먼과 에드 우드의 팬들을 위한 한국형 서비스 영화다.

<차우>의 주연을 맡은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은 연기로 치면 내로라하는 사람들이고, 조연으로 소개된 박혁권, 고서희도 연극과 독립영화진영에서 한 유명한 배우들이다. 처음엔 그들의 연기를 보며 너무 어색했다. 정통 연기를 펼쳐야 어울릴 배우들이 헛다리를 짚으며 다니는데 왜 안 그랬겠나. ‘배우란 혼가 연기를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배우는 연출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잘 봐라, 배우들은 <차우>의 나사 빠진 상황을 즐기고 있다. 윤제문과 정유미가 계단에 앉아 빵과 우유를 나눠먹는 장면(감독 딴에는 두 사람의 로맨스의 시작으로 삽입한 장면이다)이 대표적인데, 보는 관객은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연기하는 배우들도 어색함을 참지 못해 먼저 웃어버린다(내가 보기엔 NG컷인데 그냥 보여준다).

정리해보자. <차우>는 즐거워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마구 낙관적이고 개념 없는 인물들과, 인간을 아주 잘 해치는 거대 맹수가 등장하는 코미디다. 그런 상황, 그런 연기, 그런 재미를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만 <차우>는 문을 연다. 혹자는 ‘지금이 장난 칠 때냐’고 호통을 칠 테고, 투자자는 완성된 영화를 놓고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나, 영화는 이미 완성됐고,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이 몰린다면, 그들 사이에서 한 판 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행여 관객이 없더라도, <차우>는 전설의 컬트로 남을 것이다.

* 씨네21에 20자평을 보내면서 처음엔 별 반개를 줬다. 외출하다 별점을 정정했다. 별 세 개로.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멧돼지를 잡은 기념으로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둘러앉아 파티를 연다. 초대손님은 홍대 클럽에서 모셔온 펑크밴드. ㅠㅠ. 멧돼지가 문에 부딪혀 건물이 흔들리는데도 사람들은 놀기에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다? 파티를 한다면서 쇠문은 왜 잠근 거야?
* 멧돼지가 사람을 잡아먹은 현장을 자기 눈으로 보았을 형사가 연구원에게 묻는다. “사람을 잡아먹는 멧돼지가 설마 있을까?” 그러니까, 어쩌라고.
* 멧돼지의 전신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귀여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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