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제5 영화관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TOP 블로거 제5영화관 (ibuti)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766)
Dear Diary
Music Life
Film: Comment
Film: Coming Soon
Film: HomeVideo
Film: Special Column
Comics & Animation
Film: Garage
기본폴더
오늘 전체
방문자 116 113335
구독자 0 5
댓글 0 100
참조글 0 183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 댓글 전체보기
제 아이디 클릭 해서 ..
제 아이디 클릭 해서 ..
. ¶º ..
*새단장된 고품격 온라..
안녕하세요. 모 PC잡..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Side effects..
미셸 공드리와 그의 뮤..
11.02.Fri.~1..
11.03.Sat.~1..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벌침이야기2
- yoon1019
- SAM
- 수서사나이
- HongKiyong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69,493
개설일 : 2007/10/10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제5영화관'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세비지 그레이스 (톰 칼린, 2007): 불명예스러운 녀석.

2009.07.17 21:50 | Film: Comment | ibuti

http://kr.blog.yahoo.com/ibuti/755 주소복사


Inglorious Bastard


세비지 그레이스 Savage Grace
(톰 케일린, 2007년) ★★★☆


<세비지 그레이스>는 ‘근친상간과 저주’에 관한 비극이다. 이런 주제라면 즉시 연상될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한국에선 음악이 더 유명한) 줄스 다신의 <페드라>(1962)일 것이다. 그런데 비극적인 운명의 칼날을 다룬 심각한 영화일지언정 <세비지 그레이스>는 그리스 비극의 심오한 주제까지 탐하진 않는다. 1972년에 서구사회를 뒤흔든 살인사건에 바탕을 둔 이 퇴폐주의 영화가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은 루이 말의 <마음의 속삭임>(1971)이다. 두 영화의 중심에는 풍요 속의 혼란을 겪는, (소년 또는) 성숙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

1949년 뉴욕. 바바라 데일리 베이클랜드는 귀족들과의 식사를 주선 중이다. 남편 브룩스가 아내의 호들갑을 시큰둥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과 반대로, 천진난만한 얼굴의 아기 안토니는 미소를 짓고 있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합성수지를 발명한 선조 덕에 거부로 사는 베이클랜드 가족의 이후 20여 년을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묘사한다. 아버지가 가정 밖에서 나돌고, 어머니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는 동안, 정체성을 구하지 못한 아들은 불안이라는 괴물을 몸 안에 키운다. 어느 날, 안토니는 자신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는 물건을 놓고 어머니와 다툰 끝에 가둬놓았던 괴물에게 칼을 쥐어 준다.

안토니는 증조부의 말 - ‘돈이 있으면 실수의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 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노동할 이유라곤 없고, 사교생활과 나른한 휴식이 전부인 삶을 사는 소년에게 인생은 기나긴 권태의 연속이다. 좋은 옷을 걸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귀족이나 예술가와 어울려도, 행동할 수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무감각과 공허감뿐이다. 삶에 염증이 난 채 애욕과 질투의 감정으로 지탱하는 그들을, <세비지 그레이스>는 우아한 외양 아래 야만적인 얼굴을 가린 존재로 파악한다.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인물을 통해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답을 얻으려면 톰 케일린의 전작(이자 퀴어영화의 기념비)인 <스운>과 <세비지 그레이스>를 연결해야만 한다. 케일린이 15년 동안 발표한 단 두 편의 장편영화는 공히 부르주아지 청년이 저지른 실제 패륜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극중 바바라는 부자를 ‘애칭이 주어지지 않은 인간들’이라 부른다. 케일린은 부르주아지의 비극과 몰락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보기를 선택한다. 그의 눈에, 삶이 끝나기 전까지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건 부르주아지도 마찬가지인 게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물질적으로 부유하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대를 문학의 한 주제로 삼았던 것처럼, 케일린은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를 차지한 인간들을 파고든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거니와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에게서, 케일린은 ‘미국의 꿈’의 어두운 면을 발견한다. 1981년, 안토니 베이크필드는 감옥에서 비닐봉지를 머리에 두르고 자살했다. 그가 자살의 도구로 사용한 도구가, 그의 선조가 발명해 엄청난 부를 낳은 물건에서 파생된 비닐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그 아이러니, 그 슬픔, 그 희망의 부재가 바로 <세비지 그레이스>의 주제다. (ibuti, 2009.7.3. 서울신문)

* 톰 케일린은 한국에선 보통 '톰 칼린'으로 불린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추천(0) 스크랩 (0) 인쇄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