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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와 그의 뮤직비디오

2009.02.08 00:14 | Film: Special Column | ibuti

http://kr.blog.yahoo.com/ibuti/697 주소복사



Michel Gondry & His Music Video


미셸 공드리는 음악이 좋아 밴드 ‘위위’를 결성했고, 그래픽 아트를 전공한 경력을 살려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손수 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일인데, 짐작하듯이 공드리의 초기 뮤직비디오는 결코 전문가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가 뮤직비디오와 CF 연출을 직업으로 삼게 된 데는 ‘뷰욕’의 영향이 컸다. 우연히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를 본 뷰욕의 요청으로 뽑아낸 결과물이 주목받으면서 미셸 공드리라는 프랑스인의 이름은 산업계에 점차 알려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어쩐지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미셸 공드리, 2008)의 줄거리와 비슷하지 않나?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비디오테이프가 이웃들의 사랑을 받자 (가짜)영화 만들기가 본업이 되어버린 두 남자의 모습에 공드리의 초기 경력이 슬며시 겹쳐진다. 공드리의 장편영화를 보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접하면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는 감독으로서 그가 이후 작업할 영화들의 초기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의 이해를 돕는 열쇠를 제공한다. 공드리가 만든 뮤직비디오의 대표작 13편을 통해 그의 혼란스러운 세계와 좀 더 친밀해지면 어떨까. 물론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 될 게다. 요즘의 신파 멜로성 뮤직비디오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뮤직비디오와는 감성과 상상력 자체가 다른 세계가 여기 있다.


위위 <자갈 Les Cailloux> (2:42)

<자갈>의 뮤직비디오는 공드리의 비전문 뮤직비디오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하다. 산장에 사는 네 남자의 이야기인데, 넷은 상자 속에서 꺼낸 자갈을 던지는 놀이로 하루를 보낸다. 던지는 돌 하나하나가 나무로, 건설장비로, 망루로, 집으로, 작은 배로 바뀌는 걸 보는 놀이가 그들의 유일한 일과인 것이다. 그렇게 상상으로 만들어낸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부수던 그들은 돌이 다 떨어지자 집으로 돌아온다.

언뜻 아주 단순하고 한심한 이야기지만, 이 뮤직비디오는 공드리 영화의 중요한 기반을 말해준다. 오직 유희로 하루를 보내는 다 큰 어른은 바로 공드리 자신이며,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그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공드리가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었던 영상물의 제목이 <나는 줄곧 12살이었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갈>은 그의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초기 작업이다.


아이 앰 <르 미아 Le Mia>
(3:59)

조지 벤슨의 <기미 더 나이트>를 차용한 ‘아이 앰’의 <르 미아>는 심심한 노래다. 싸구려 한량들이 클럽 주변에서 보내는 밤 생활을 다룬 뮤직비디오 또한 다른 데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재탕해먹은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의 유일한 가치는 ‘몰핑기법’을 활용한 첫 번째 뮤직비디오라는 데 있다. 그 가치가 이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뷰욕 <인간 행동 Human Behavior>
(4:15)

MTV에서 괴상한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보던 뷰욕은 그 비디오를 만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솔로 경력을 빛낼 첫 번째 뮤직비디오를 부탁한다. 뷰욕의 눈은 정확했다. 뷰욕이 꿈꾸는 동화의 세계가 어린이의 꿈을 자양분으로 하는 공드리의 세계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뷰욕은 동물을 이용해 인간이 얼마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줄 뮤직비디오를 원했고, 공드리는 작품으로 그녀의 요구에 답했다. 첫 번째 성과인 <인간 행동> 이후 공드리와 뷰욕의 조합은 걸작 뮤직비디오의 리스트를 한동안 이어나갔다. 

기이한 배경 - 두더지, 곰, 숲 속의 오두막, 정체불명의 시체, 납치된 남자들, 그리고 오두막에 사는 특이한 외모의 소녀(뷰욕) - 위로 입혀진 <인간 행동>의 리듬과 멜로디는 팝팬들이 잊지 못할 판타지를 창조했다. 천진난만한 표정 아래 자리한 기괴한 감성과 이상심리, 불안감이 순수와 야만 사이의 얇은 경계를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주제, 형식, 내용의 측면에서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공드리 자신은 러시아의 작가인 유리 놀스테인의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매시브 어택 <프로텍션 Protection>
(6:32)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건물에 진입한 카메라가 엘리베이터에 올라 상층부에 도달하고, 이어 자유롭게 이 방 저 방을 넘나든다. 공간의 각 부분을 나누는 인물들의 행동을 일람한 카메라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서면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뮤직비디오를 이끄는 주인공 역할은 게스트 보컬로 참여한 (‘에브리싱 벗 더 걸’의) 트레이시 손이 맡고 있다.

커트 없이 촬영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공드리는 몇 가지 트릭을 발휘했다. 세트와 소품은 정교하게 배치됐고, 벽에 붙은 듯 혹은 천정에 매달린 듯 왠지 어색한 자세의 인물들은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특수효과로 처리해도 될 것들을 이렇게 공들여 머리와 손으로 재현하는 게 공드리 작품의 매력이며,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의 미니어처 장면은 아마도 이 뮤직비디오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롤링 스톤즈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
(4:22)

노래 제목만으로 따지자면 ‘밥 딜런’보다 ‘롤링 스톤즈’에게 더 어울리는 <구르는 돌처럼>을 마침내 롤링 스톤즈가 불렀다. 그들이 뮤직비디오의 파트너로 선택한 공드리는 “롤링 스톤즈와 작업하면서 로큰롤이 생활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페트리샤 아퀘트가 한때 잘 나가던 파티걸에서 마약에 빠져 거리의 부랑아로 전락한 여자를 연기하고 있는데, 그녀의 실감나는 연기와 비극적인 내러티브가 결합돼 슬픔의 정서가 극으로 치닫는다.

약에 취한 부랑자의 몽환적인 정신상태와 무너져 내리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공드리는 몰핑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물결처럼 왜곡시킨 영상이 인상적이며, 공드리가 이후 발전시킨 기법 - 인물 주변에 수십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동시에 촬영함으로써 입체감과 속도감을 부각시키는 - 의 초기형태가 나온다. <구르는 돌처럼>에선 고작 두 대의 카메라만으로 그럴싸한 효과를 본 이 기법은 뷰욕의 <아미 오브 미>에서 본모습을 갖춘 뒤, 요즘엔 <매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에서 종종 구사되기에 이르렀다.



뷰욕 <하이퍼발라드 Hyperballad>
(3:58)

눈을 감은 여자가 누워 있다. 그녀가 잠을 청할 동안, 그녀의 분신인 홀로그램 형상이 등장해 노래하고, 달리고, 추락한다. 잠자던 여자는 딱 한 번 눈을 떠 관객을 힐끔 쳐다본다. <하이퍼발라드>의 뮤직비디오에서 제시되는 ‘분신’과 ‘꿈’의 개념은 공드리의 세계에서 아주 중요하다.

주목할 부분은 꿈에서 분신이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꿈과 분신이라는 존재 자체다.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는 여자가 운명에 포박당한 느낌을 주는 것과 달리, 분신에 해당하는 존재는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행위를 담당한다. 분신은 가능성,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신이 달리다 추락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개의할 일은 아니다. 파멸보다 의미 있는 건 과감한 시도와 무한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은 환상, 판타지, 공포 등 온갖 상상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분신이 활약하고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이다.



치보 마토 <슈거 워터 Sugar Water>
(4:03)

뉴욕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두 일본 여자와 프랑스에서 건너온 남자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을 것임은 당연한 일. <슈거 워터>의 뮤직비디오는 어긋난 것들이 충돌하면서 빚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같은 시간과 이웃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두 여자(치보 마토의 멤버)가 전체 4분의 시간을 2분씩 쪼갠 다음, 각각 시간순의 행동과 시간역순의 행동을 취한다.

1/2로 나뉜 한 화면 속에 두 인물을 나란히 놓아 교묘하게 눈속임을 시도한 뮤직비디오는 비슷한 기법을 공유한, 그리고 훨씬 뒤에 만들어진 ‘콜드플레이’의 <과학자>의 뮤직비디오보다 정교하다. 이 뮤직비디오를 두고 ‘동시성의 개념과 놀기’라고까지 치켜세우기는 힘들겠지만, 시간과 공간의 연결부가 파괴되는 지점을 조작해낸 공드리의 능력만큼은 어지간한 칭찬으로 모자란다.


푸 파이터스 <에버롱 Everlong>
(4:50)

공드리는 <하이퍼발라드>에서 시도한 ‘꿈과 분신’의 주제를 극적인 장르에다 대입시키기로 한다. 순진한 얼굴의 남자는 꿈속에서 펑크 패션의 거친 인물로 바뀌고, 그의 곁에서 자던 부인은 반대로 집밖의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자 공포에 떤다. B급 공포영화의 장치 안에서 인간의 숨겨진 양면성, 변하지 않는 본성 같은 심각한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다룬 <에버롱>의 뮤직비디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이블 데드>의 귀여운 결합품이다.

그간 기발한 영상에 비해 이야기하기가 빈약했던 공드리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나란히 꿈을 꾸던 중, 한 명이 꿈속에서 SOS를 치면, 꿈에서 깬 옆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꿈으로 들어가 해결한다는 설정이 한 예다. 공드리 영화에 매번 등장하는 거대한 손, 거대한 전화기 등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소품들의 초기 형태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뷰욕 <독신여성 Bachelorette>
(5:16)

한 여자가 숲을 파다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모든 페이지가 백지였던 책 - <나의 이야기>는 스스로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하고, 여자는 책을 출판사로 가져간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모든 사람들의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 이야기>는 영화화에 이르지만, 아뿔싸! 책속의 이야기가 스르르 지워지고 만다. 이야기의 완결성 그리고 비극적인 정조 면에서 <독신여성>은 공드리가 거둔 최고의 성과 중 하나다. 뷰욕의 동화는 여자 영웅의 성공과 실패의 여정을 밟으면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비경을 탐하고 있으며, 공드리는 뮤지컬 무대와 극중극 스타일 등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신데렐라의 영욕을 간결하고 인상 깊게 포착한다.



벡 <과다업무 Deadweight>
(4:40)

대니 보일의 <인질>에 삽입된 <과다업무>의 뮤직비디오는 공드리의 1960년대에 대한 향수 그리기이자 예찬이다. 의도 하에 유치한 단점들을 눈에 띄게 배치하던 공드리의 습관은 <과다업무>엔 없다. 모든 게 매끄럽고 모든 게 낙천적이고 모든 게 코믹하고 모든 게 화사하다. 공드리는 모든 사람들이 한가하게 노니는 해변에서도 일을 하는 남자(벡)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공드리 영화에 간혹 등장하는 인물 - 불편할 정도로 온몸에 코믹한 장치를 부착한 - 의 원형이 잠깐 삽입되어 있으며, 주체가 그림자에 의해 끌려 다니는 등 공드리의 유머가 밴 다양한 설정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케미컬 브라더스 <영원이여 계속되라 Let Forever Be>
(3:41)

갑작스런 화면분할로 시작하는 <영원이여 계속되라>는 만화경 효과를 최대한 활용한 작품이다. 한 명의 메인 캐릭터, 그녀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대여섯 명의 인물이 동일한 행동을 펼치다 소멸하기를 반복하는데, 결합과 분산을 반복하는 인물들이 시간과 공간을 점프하는 순간을 현란한 영상 위로 뿌려놓았다. 분신에 대한 공드리의 또 다른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영원이여 계속되라>의 뮤직비디오를 말로 설명하기란 사실 힘들다. 구차한 설명보다 직접 보기를 권한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한 소녀와 사랑에 빠졌네 Fell in Love with a Girl>
(1:55)

공드리가 시도하는 작업의 특징 중 하나는 중노동에 가까운 수작업이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와의 작업은 그 절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가히 수작업 노동의 진수를 보여준다. 수십 대의 악기를 가는 곳마다 일일이 배열한 <채우기 힘든 단추>의 뮤직비디오는 그냥 보기에도 중노동의 결과물인데, 그것조차 전작 <한 소녀와 사랑에 빠졌네>의 뮤직비디오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 공드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인 블록을 일일이 움직여 모든 액션장면을 만들었다(CG 없이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데 2달이 걸렸다고 한다).

블록으로 만든 인물이 기타를 치고, 블록으로 만든 인물이 드럼을 치고, 블록으로 만든 인물이 노래를 하는데, 보는 것처럼 만들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공드리는 ‘레고’를 작품에 활용한 이유에 대해, 화이트 스트라입스 음악의 단순함, 자주성을 표현하는 데 레고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단다. 그럼에도 나는, 공드리가 유독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만나기만 하면 중노동에 빠지는지 모르겠다. 혹시 성질이 괴팍해 보이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못된 요구사항 때문은 아닐까.


카일리 미노그 <내 세계로 오세요 Come into My World>
(4:13)

공드리의 뮤직비디오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아마도 <내 세계로 오세요>일 것이다. 롭 데이비스와 캐시 데니스가 만든 노래, 카일리 미노그의 스타일과 목소리, 공드리의 영상 연출의 결합이 그야말로 기막히다. 공드리가 이 뮤직비디오에서 도입한 건, 각각의 인물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벌이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게 한 다음, 그들의 행동이 겹치거나 충돌하지 않도록 동일선상에 배치하는 기법이다. 이전에도 이 기법은 얀 피케와 장 마리 마드듀의 <막과 막 사이 Entr'Acte>(1985) 같은 단편영화에서 몇 번 사용된 바 있으나, 리듬감과 속도감 면에선 공드리의 것이 단연 뛰어나다.

공드리는 세탁물을 들고 나오는 카일리 미노그가 사거리를 한바퀴 돌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계속 증식시킨다. 제 2의, 제 3의 카일리 미노그가 등장하고, 그에 따라 주변의 인물들도 분신을 한 명씩 얻는다. 비록 전체 과정은 세 번 반복된 뒤 네 번째의 시작부분에서 멈추지만, 처음 본 관객은 무한증식의 혼란에 빠졌다고 착각하게 된다. <내 세계로 오세요>의 뮤직비디오는, 수학과 공학에 능통한 공드리의 재능이 반짝이는 장난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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