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ve the Earth & Change the Future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정윤철, 2008) ★★★☆
프로덕션에서 몇 년 째 ‘휴먼 다큐멘터리’의 PD로 일한 수정은 일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아프리카행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게 된 수정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믿는 남자를 만난다. 그를 이용해 짧은 방송물을 만든 다음 끝내려고 했던 수정의 계획과 달리 슈퍼맨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지구를 구하자는 그를 따라다니던 수정에게 그의 숨겨진 진실들이 조금씩 밝혀진다.
나는 <말아톤>을 뒤늦게 봤다. <말아톤>을 그해의 영화로 꼽았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말아톤>을 지금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TV의 인간드라마에 두드러기가 돋는 나로선 그런 걸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아톤>에 대한 거부반응이 당연했다. DVD로 본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감동도 고만고만, 만듦새도 고만고만, 이 정도면 몇 백만의 관객이 보고 눈물을 흘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나는 <말아톤>을 평범한 대중영화로 생각했고, 정윤철의 다음 작품 <좋지 아니한가>를 역시 보지 않았다.
수정은 슈퍼맨의 다큐멘터리를 제안하는 사장에게 “전 인간이 싫은데요, 미친 인간은 더더욱요”라고 답한다. 이 대사는 (나처럼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감독에게 딴지 걸고 싶은 사람용으로 감독이 준비한 말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정윤철은 휴먼 다큐멘터리가 키를 제공한 작품으로 데뷔했고, 색다른 시도로 평가받은 그의 두 번째 장편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다시 휴먼드라마가 의심되는 영화로 돌아간 그에게 누군가 “그럼 그렇지, 쉬운 걸로 만회하겠다는 거 아냐?”라고 비아냥댈지도 모른다.
그렇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휴먼드라마다. 그런데 정윤철은 이금희의 징글맞은 목소리와 친근한 음악 그리고 다소 의도된 상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TV물을 재탕하진 않았다. 정윤철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연출하는 방식은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적이다. 그는 판타지를 끌어오고, 그 판타지가 현실을 뒷받침하게 단단히 묶어놓은 뒤, 관객이 그 판타지를 기어코 믿게 만든다. 슈퍼맨과 하늘을 나는 근사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의 가장 근사한 판타지는, 어쩔 수 없이 잘못 끼워진 과거와 결코 잘못 되어선 안 될 미래 사이의 현실을 바탕으로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장면을 위해 정윤철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의 마지막 장면을 재현한다. 공 없이 베트민턴을 즐기는 슈퍼맨과 소녀 옆에 수정은 앉아 있다. 떨어진 공을 주워달라는 슈퍼맨의 말에 수정은 잠시 머뭇거리다 (보이지 않는) 공을 주워 허공으로 던진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공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슈퍼맨은 공을 멀리 쳐낸다. 정윤철은 ‘눈에 보이는 진실과 깨닫게 되는 진실’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욕망>의 마지막을 과감하게 인용하면서 진실이란 주어지거나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과 용기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믿음, 친구, 사랑, 용기.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은 입에서 내뱉기가 쑥스러운 말이 되어버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그 쑥스러움의 이유가, 우리가 점점 소중한 것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냐고 묻는 것 같다. 이렇게, 잘못하면 속 보이는 평범한 드라마가 될 위험이 다분했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 정윤철의 정직한 연출 방식의 힘이 크다.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작가연한 자세가 지나쳐 대중보다 자기만족에 빠진 어정쩡한 예술영화와 안일하게 장르의 법칙을 따른 천박한 대중영화가 그것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작가연하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은, 요즘 보기 드문 한국의 대중영화다. 그리고 그건 <말아톤>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말아톤>이 얼마나 중요한 대중영화인지, 나는 이번에야 깨달았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숨기고 있는 흥미로운 사연은 ‘광주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정윤철은 그간 어떤 매체도 보여주지 못한 신기하고 용기 있는 방식으로 그 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광주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죄 많은 책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들 자신은 묘하게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진실을 밝히는 건 권력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결백한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1980년을 살았던 사람 중 죄를 짓지 않은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가장 소중한 것은 떳떳하게 살아야 할 현재와 그것으로 인해 변화될 수 있는 미래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현실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에겐 과거를 탓할 권리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이른 슈퍼맨은 보여준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걸작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후반부에 빈번하게 반복되는 설정들이 극의 완성도를 낮추기도 한다. 그러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한국 사람에게 한국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과연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영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소중한 대중영화 한 편이다. <말아톤>의 낯간지러운 조승우의 연기에 비해 황정민의 자연스럽고 감동적인 연기는 분명 한 수 위다. 전지현은 혀 짧은 대사 연기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에도 슈퍼맨을 의심하며 바라보는 현대인 역으로 밉지 않다. (ibuti)
*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유일한이 시리즈로 내놓고 있는 <어느날 갑자기>의 다섯 번째 권에 수록된 단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김국진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TV물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 시사회장에서 인사하던 감독이 갑자기 손을 들어 극중 황정민의 대사 “Save the Earth, Change the Future"를 외쳤다. 그 때는 뭔 뜬금없는 짓인가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의 행동이 은근히 귀엽더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