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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0/27
 

[2009년의 작별] 진보여, 자산목록 제1호를 지키자  by 유시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162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지난 200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주간사진동공취재단
노무현

세모에 눈이 내린다. 은세계의 잿빛하늘에 빗금을 그으며 겨울새들이 급히 낙하한다. 먹이를 찾으려는 것일 게다. 그들이 먹이를 찾기엔 얼어붙은 땅이 너무 견고하다.

돌연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이 영면해계신 곳이 떠오른다. 혹여 추울까봐 추도객이 묘소 앞에 목도리를 두고 간 사진을 보았다. 그 목도리 두르셨을까? 땅속이라 지상보다 덜 추우실까?

한 해를 결산하는 이런저런 텔레비전 화면에서 두 분을 보노라면 아직도 자꾸만 눈물이 쏟아진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본다. 독재를 증오하고, 공화국 주권자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신장되는 꿈을 꾸는 이들을 나는 '우리'라고 부른다. 태생지와 생김새와 학력이나 재산의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나라를 지향하는 이들도 모두 '우리'이다. 북의 헐벗고 굶주리는 '못난 아우'를 도와줘야한다는 생각, 다소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보다 항구적 평화를 지향하는 이는 말할 것 없이 '우리'이다.

우리는 지나간 10년간 부족한대로 꿈을 이루었다. 비록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 못했지만 공익적인 꿈이 이루어지는 걸 경험했다. 그 꿈이 더 나래를 활짝 펴고 국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했다. 보수정권이 등장했고,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두 분은 그렇게 가셨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는 두 분을 지키지 못했다. 우리가 추구한 가치를, 시대정신을, 민주주의를 잃어 버렸다. 어디서부터 정녕 길을 다시 찾아야할까?

노무현과의 첫 만남과 마지막

1987년 8월이었다. 당시 '국본' 상임집행위원이었던 나는 7.8월 노동자대투쟁, 그 격렬한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검찰이 기어코 구속해버린 '국본' 부산지부 집행위원장이었던 노무현 변호사를 면회하러 마산에 내려갔다. 유치장 창살을 사이에 두고 그를 보았다. 숱 많은 더벅머리에 농부 같은 얼굴, 유독 눈이 빛났다. 몸 전체에서 강력한 포스가 건너왔다. 보석으로 가공되기 이전의 거친 '원석'같았다. 동행한 최민희(당시 '언협' 간사)에게 내가 말했다. "저 사람, 변호사 맞아?"
그 이후, 5공 청문회에서 정주영 등 재벌회장을 몰아붙이는 그를 보았다. 이날까지 살면서 글이 아닌 '말'로 인해 그토록 가슴이 울렁거린 건 그 때 단 한번이었다.

 그 후, 2001년 늦가을에 그를 만나 민주당 경선에 나가주실 것을 간절히 당부했다. 다시는 5공 때처럼 길거리와 구치소를 전전하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9년 4월 30일 오전 8시 봉하마을 사저 회의실에서 어쩌다보니 그의 바로 곁에 앉아있었다.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차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그는 회의실에 앉아 20여명 남짓한 측근들과 20여 분간 대화했다.

"마, 내가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뻐릴까 고민했다."

그는 앉자마자 담배를 요청해서 두 대 연거푸 그의 말대로 '씨원하게' 피웠다. 차에 오르기 위해 문을 나선 그가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시 다시 들어왔다. 그때 빈방에 오도카니 서있던 내게 그가 다가와 두 손을 맞잡았다. 일전에 하도 답답한 나머지 내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이 있었는데 그걸 잘 읽었노라고 했다. 당신을 변론하느라 너무 억지를 부렸더라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 차에 올랐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서거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앞두고 노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광장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노란색 모자에 노란색 풍선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김대중, 불멸의 '인간승리'

김대중. 나는 대학생 시절에 생애 최초의 투표를 그에게 했다. 그와는 기나긴 인연을 맺었다. 87년, 92년, 97년 대선 때마다 정당의 바깥에 있는 이로서 그를 도왔다. 공중파에서 두 번 찬조연설도 했다. 그런 저런 인연으로 첫 출범한 '국가인권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작가로서 그의 자서전 집필에 참여했다. 흔히 정치인은 100미터 미인이라는데 가까이서 본 그는 더욱 '미인'이었다.

나는 그가 기적을 창조했다고 본다. 보수의 나라, 기득권이 승냥이 떼처럼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진보적 생각을 갖고 살아남았다. 네 번의 사선을 넘고 투옥과 망명, 연금으로 점철된 기나긴 야만의 시간을 견디었다. 그리고 버젓이 합법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남북의 반세기 얼음벽에 '햇볕'을 선사한 결과 국제적 공인을 획득했다. 새천년의 선물로 노벨평화상의 기쁨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그는 협상과 조정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이다. 그런가하면 인권에 관해서만은 양보 없이 단호했다. 그 결과로 민주노총, 전교조를 합법화하고 국가인권위와 여성부를 설립했다. 그의 영원한 꿈은 대한민국이 인권민주국가로 국제사회에 우뚝 서는 일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김대중

 

최근 2년간 가까이서 본 그는 정말 보기 드문 '양성적 인간'의 품성을 갖춘 분이었다. 군사정권이 그에게 덧씌운 '과격분자'이미지는 단군 이래 최대 거짓말이요, 야비한 음해이다.

 그는 꽃과 개와 새를 무척 사랑했다.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손수 꽃을 기르고 개를 아끼며 새를 불러 모았다. 그가 영하의 감옥에서 아내에게 쓴 엽서를 보노라면 나는 한 땀 한 땀 뜨는 자잘한 자수틀을 보는 듯하다. 남자가 그렇게 예쁘고 곱고 자상할 수 있다니! 또한 그는 지독한 메모광이다. 그리고 직접 챙긴다. 빈틈없는 책임감의 발로이다. 이런 점은 그가 가진 '여성적' 품성이다. 그 길고도 엄혹한 '겨울공화국'을 견딘 건 칼날 같은 이념이 아니라 바로 그의 이러한 여성적 심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 서거 이후 그는 진정 슬퍼했다. 가슴을 크게 다쳤다. 노무현 서거 정국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레토릭 중에 김대중은 단연 탁월했다. '나의 절반이 무너졌다'고. 이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가장 빼어난 수사는 학습이나 의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뼈저린 진정에서 나오는 것을 나는 절감했다.

 

  
29일 오전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으로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불의에 의한 지독한 시련을 딛고 '인간승리'를 일군 사례로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닌다. 그는 진정 우리들의 보물인 것이다. 그를 부단히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넣던 이들이 정작 그의 사후에야 이런 사실들을 보고 있다.

김대중, 그는 정녕 우리에게 훌륭하고도 고마운 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역사는 발전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협량한 '진보', 수구와 무엇이 다를까?

두 분을 잃고 세모를 맞는다. 정치권력의 행태는 거꾸로 매달아 매타작을 하고 고문을 하지 않을 뿐 정치적 경쟁자에게 야비한 점에서 그대로 2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허망하다. 부자 망해도 3년 먹을 것 있다던데 온 국민의 피땀으로 이루어놓은 민주주의가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싶다. '눈물이 속되지 않을 양이면 구천에 호곡하리라'던 시인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을 떠나보내는 해를 마무리하면서 혹시 '우리'는 그 두 분에 대해 협량하지 않았는지, '진보'입네 하면서 오만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진보권력이라고 어찌 진보지식인이, 진보단체가, 진보언론이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나 절대다수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라는 소수자로서 힘겹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향해 우리가 날리던 비판의 짱돌은 어느 정도 건강한 대안이 있었던 것이었는지, 어느 정도 적당하고 적절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본다.

나 개인적으로 봐도, 그때는 너무 절실해서 그리했지만 후회되는 일이 많다. 두 분이 행한 훌륭한 업적에 대해 그에 합당한 칭찬을 해주는 데에는 인색했던 것 같고 내 생각과 맞지 않은 돌출적 몇몇 사안에는 큰 표시가 나게 비판을 했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
ⓒ 오마이뉴스 그래픽
김대중

나는 김대중을 향해 군사정권의 하수인들을 중용한다고 으르렁거렸다. '빛나는 외교와 참담한 내정'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 스스로 "역사에 잘못된 결정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국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술회했던 이라크 파병을 두고 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국가인권위의 성명을 끌어내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당시 다급했던 북핵문제 등 국제관계 속에서 두세 수 앞을 내다보면서 왜 노무현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는 혹 '도덕성' '순결성'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소수자정권이 처한 두 분의 고민을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님께는 맺힌 한이 적다. 현대사의 거목으로 사셨고 그 생애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또한 짧았지만 승리의 감격이 워낙 강렬하다.

그러나 '노짱' '노간지'는 아직 그 사진만 보아도 가슴이 미어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한 생애였다면 노짱은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는 기개가 곧고 장엄했다. 굽힐 줄 모르는 순교적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진짜 싸나이' 였다. 그는 자잘한 계산에는 타고난 '바보'였다. 얻는 것 보다 버리는 것에 능했다. 낡고 비루한 옭죄기가 그에게 덮쳐왔을 때, 그는 생명을 버림으로써 맞섰다. 이는 '운명이었다'.

 

그가 사면초가에 직면했을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명숙 죽이기'에 우리들이 집단으로 뭉쳐 맞서는 것처럼 그리 했더라면 혹여 노짱이 부엉이바위 위에 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자는 말한다. 그럴까?

아니다. 만약 그리했어도 그는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옹졸하고 옹색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음이라는 진검으로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비루함과 야비함을 한순간에 갈라 쳐버리고 떠났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하나되자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참배객들이 놓고 간 편지가 놓여 있다.
ⓒ 윤성효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두 분이 떠난 이 겨울에 북한 증오, 성장이데올로기라는 과거의 향수는 지역주의를 토양으로 다시 창궐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장과 의회를 보수가 거의 장악하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느긋하다. 어찌 보면 막나가고 있다. 자신들이 분열되지만 않는다면 영구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서민이 서민을 섬기고자하는 우리를 지지하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농부가 밭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상황이 이러한 만큼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모아야 한다. 물론 하나 되는 과정에서 차이에 대한 논쟁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차별성을 내세우며 자신들만 '정의'인양 이 누더기같이 남루한 현실을 아예 외면하려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면 진보를 '좌빨'로 매도하는 수구와 무엇이 다를까?

나는 단언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진보의 자산목록 제 1호이다. 두 분이 남긴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가치는 진보진영 내의 크고 작은 차이들을 충분히 하나로 품을 만한 것이지 않은가.

 다시 눈발이 날리고 있다. 두 분이 영면한 봉하마을과 동작동에도 눈이 쌓일 것이다. 두터운 눈을 이불삼아 잠든 님들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이 되시기를 간구한다. 새해에는 우리가 품은 보석이 남긴 가치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이 더 무성한 꽃들로 만발하기를.

덧붙이는 글 | 필자 유시춘씨는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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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거만큼 불편한 것도 없지 싶다
대화가 끊기는 데는 여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본디 가까웠던 사이일 수록  오해가 불러 일으키는 파고는 더 크다
독실한 신의 아들 벤트레스카의 절망과 무모함 그리고 그의 결단성이 오해에서 출발한 만큼
그 결과의 참혹함은 더 컸으며 영원히 감추어져야 할  '장면'에 대한 소피의 해는 그늬의 조부
와 십년이상에 긴 세월의 담을 쌓았을 뿐이다

신이 인간을 만든 날로 이후 인간은 얼마만큼 신에 가까워 졌을까?
인간은 '그날' 이후 본초적인 갈망속에 숱한 시간을 몸부림속에 보내야만 했지 않는가...
모태인 신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아님 똑같아지기 위해?
아님.. 단순한 욕망 영생을 위해???
신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어디까지 내 달렸을까....
댄의 말처럼 신은 우리가 스스로 더 크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은
불편하기 짝이없다 '진실'처럼 무서운 건 없다 라는 말이 있지 않나? 혹자는 추악하다고까지
하던데.. 신은 우리편이야.. 라는 건 믿음이라기보담 차라리 소망에 가깝지 않나???
해서 인간적인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 '사람'은 절대의지의 불가침을 모두가 다 잘
알면서도 종국엔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는 게 또한 사람이지 싶다 
선이 커질수록 악도 커지는 것이 진실이다
선과 악은 상대성을 띄고 있다 밝음과 어둠처럼..
상대성이란 얘긴 서로 뒤돌아 선 반대를 애기하는 것은 아니고
음.. 회색을 예로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딱이다
해서 '굳이 그 흰색을 똑바로 바라보길 원한다면' 우린 까만 빛이나 거기에 준한 다른 어두운
색을 필요로 하지 누군든 그림판이나 혹은 뭐 포토샵정도는 알테니.. 흰색에 검정색 한방울을
던지면 훨씬 부드러지며 한결 여유가 생긴다
그리곤 점점.. 어두워지곤 곧 어느새 검정색의 위치에 도달하는 거
뭐 물론 흰색이 섞인 다음에야 완전한 검정을 바라는 건 겁나 무리일테지만 ^^
해서 빛과 어둠은 밝음과 어둠의 관계완 좀 다를 수 밖에 없다
빛의 존재가 밝음이라면 빛의 부재가 어둠이기에... 밝음의 정도를 논하려면 밝음의 근원
빛에 관해 얘기해야 마땅할거 같다
태초에 신은 왜 세상에 빛을 던져 두었을까
빛은 신학과 과학에서 애기하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모든 것의 근원이다
천지창조의 순간.. 바로 그 순간의 엄청난 빛..
이 빛은 인간에게 선일까? 악일까?
믿는 대상 그 자체보다 믿음 그 자체가 더 가까이 느껴지기도 하는 건 
인간이 본디 신앞에 홀로 선 존재이기 때문이고 해서 사람은 사랑하는 어느 '누구'보담은
사랑 그 자체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물론 사랑하고자 하는 것만 사랑할 뿐이다
그 밖에 모든 다른 여하한 것은 눈에 마음에 들어 오지 않는 것이다
'신은 우리편이야.....' 라는 착각 이는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거다

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 이름이 야훼든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불림은 중요한게 아니다
절대적인 존재가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존재한다는 거고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고 인증해 줄 이성과 사고에 기초한 논리적인 모든 것들을 넘어선 존재..
그 존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실존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잃어 버리는 것이고
또하나는 잊혀지는 것이다
갖고 있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손가락 새로 하나 둘씩 연기처럼 빠져 나가는 순간이
무섭고 두렵다 삶의 끝에서 느끼는 죽음과 맞딕뜨리는 바로 그 순간..
또한 사회적 존재가치로서 존엄한 자신이 사랃들로부터 잊혀지는 게 또한 두렵다
하지만 보다 두려운 건 신이 인간을 잃어 버리는 그 순간이며
정말이지 두렵고 또한 겁나는 건 신이 인간을 잊는 바로 그 순간이다

댄 브라운이 천사와 악마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결코 다르지 않다
그건 어쩌면 사람의 '편리성'때문이기도 하는데..  그 편리성이란 사람은 무엇이든 종국에는
모든 걸 가장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기인한다 그리고 그 습관이
편리성을 낳고 그래서 누구에게의 선이 다른 누구에겐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뭐 이런거 
해서 '선과 악은 같은 선상에 같은 면에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에 늘 함께 놓여 있는 거다'
라고 얘기 하는 것일테지
댄 브라운이 얘기하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닐까...
'상대성을 인정하자'
선과 악 과학과 종교 철학과 신학 그 모든 상대성말이다
모든 이들이 절대자에게 구원하는 생명과 영생 혹은 행복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댄의 말대로라면 신이 우리에게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희망과 행복의 가치를 스스로
알게 함이니깐..  스스로 찾아 가야먄 할테지?
밝음과 어둠 선과 악에 관한 신들만의 비밀은 감추어져 있을 때만 가치가 있을 터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삶과 죽음 또한 한가지지..
인간의 삶이 무한하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죽음이 우릴 깨우치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축복이지 그래도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는 여직 남아 있지 않는가
욕망이란 이름으로 살아 있는 한 우린 욕망으로 꿈틀 꿈틀 움직이게 되니깐
현재의 중요성 미래에 대한 희망 도전... 
영원한 삶만큼 끔찍한게 또 어디 있으랴
영원한 행복? 건 머릿속에 홀몬주사를 맞고 헤헤거리는 존재와 뭐 다르랴

그럼 우린?
그저 '거리'만이 남았을 뿐이로다

사랑한 만큼 증오도 크다
무서운 일이다
사랑한 사이라면.. 어떻게 헤어졌던 간에 무관심은 없을 듯 싶다
다만 사랑이 계속 남아 있던가 아님... 증오를 키우던가
글쎄...
누가 용서를 언급한다면.. 내 인정해 주지 그댄 이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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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영원의 시간속에 정지해 있을 따름입니다
누군가의 추억이나 기억이란 이름으로 혹은 한장의 사진속에 남아 있을 뿐이죠
그렇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린 그 활동사진의 한 컷조차 바꿀 수가 없군요
누군 가슴속에 아직도 ' 살아 움직인다 '고 말하지만
고일 곳을 찾아 흘러 가는 물처럼 '살아 있는 존재'는 다시 안주할 곳을 찾아 떠돌기 마련입니다
' 허공속에 둥둥 떠 다니는 존재 '가 되고 싶다면 당신은 능히 그럴 수 있을터이지만요
그대여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다면 과거를 굳건히 떨쳐 버리셔야 합니다
과거와 지금을 구별할 유일한 방법은 삶과 죽음의 결계속에서만 가능한걸요
당신의 시간이 멎어 있을 바로 그 순간말이죠
과거의 당신을 죽이던가 아님 지금의 당신이 죽던가....
훗~
시간속에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멸 또한 없지요
이 시간이란 것조차 언젠가는 다 소모되고 사라질 따름입니다
가슴 절절한 사랑도 꽃보다 더 어여쁜 님의 얼굴도 사라질 뿐입니다
당신의 기억조차도...
당신에게 부여된 시간과 당신들에게 부여된 공간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인간의 불완전함은 신이 이미 선언하지 않았던가요?
신들의 세계인 이 공간에 그리고 시간이란 이 끔찍한 미로속에서
우리가 남아 있을 한가닥... 기대는
애원 애절한 구걸일뿐이죠 살려달라는....
니체가 루를 얻었다면 그가 과연 그의 신을 그리도 쉬 죽여 버렸을까?
그댄... 나의 신이죠



근데...  나의 루는 죽었어             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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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었지 싶다
얼마나 투명하고 샛파란 날이었던지.. 
무등 뒷편 저 건너 화순너머까지 내 눈
바로 앞에 서 있는 거 마냥..
서늘하고 청명한  대기와 바람은
마지막 가을을 그리도 반짝이고 있었어
보이는 하늘은 담아내지 못했다 으~~~
저 색은 아니야 아쉽게도..
숨을 들이킬 적마다 서울의 그 무겁고
칙칙한 공기와는 너무도 다른..
생명의 기운으로 그득찬 기가 내 폐속으로
막 비집고 들어 오는거야

얼마나 싱그럽고 맛갈스러웠을 지 짐작이 가?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해서 그냥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던 바로 눈앞 호수에 다녀 왔다



아주 예전엔 이 부근 전부가 온통 산이었어
그리곤 아마도..
부러 낚시를 하려거나 산보를 하거나
옇든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선
쉬 들어 서기 힘든 장소였다고나 할까?
나 역시 월산부락에서 자라긴 했지만
첨 와본 건 국민학교 6학년 그때..
학교소풍때였지
얼마나 어린 나이니.. 열세살
생각하자면 그립고 참 먼 때구나
그때도 이리 넓었던가???

내 기억으론  신안방죽이란 이름으로만 떠오르는 데 광주를 떠나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와서 보니 이름마저 바뀌었더군  풍암호수라고 이쪽이 풍암지구라서일까....

하지만 호수는 여전했어
비록 예전처럼 깊은 산속의 여운과
산냄새는 사라지고 회색으로 가득찬
도심속의 공간은 되었다지만 물빛은..
기억속의 물빛만은 여전하던걸
낮엔.. 정말 그리도 맑고 환한 호수였는데
근데.. 막상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땐
그새 하늘은 구름이 차고 날은 어두워 지기
시작했지 뭐니
이 사진을 좀 봐봐



어때?
물속에 비친 하늘색이??
이쁘쟎니?
한가지 아쉬운 건 있더구나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것들..
단장을 한답시고 커다른 돌들로
호수 주변을 감싸 버렸더라
뭐 그거 빼곤.. 괜챦았어
산보하기에 딱 좋은 코스
혼자 보담 둘이 좋을 장소..
친구가 같이 있으면 더 좋았을 장소..

어둠이 내리기전 호수랑..
어둠이 나리기 시작한 뒤의 호수랑 너무 느낌이 다른 거 있지?



어둠은 순식간이야
깊고 깊은 장막마냥..  한여름날 순식간에 하늘을 집어 삼켜 버리는 검은 구름처럼..
사진만 보자면 쓸쓸함이 슬금 슬금 다가올 성 싶지?
아니 아니
하늘빛이 너무 곱고 이뻐서 온유하고 따듯했다
호숫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긴 채로 따듯한 이들을 떠올리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 지 알아?
모르면 말을 마시라 ㅋ

밤이 깊구나 그새 한시가 넘었네?
요즘 잠이 쉬 오질 않아
불면증일까?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난 따듯한 대추차 한잔 마시고 자야겠다
오늘도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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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믿음을 보여봐 어디?

2009.11.15 12:30 | 나의 견해 | 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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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시사서울] 2009년 11월 15일(일) 오전 00:15


말을 아끼는 게 능사는 아니지 싶어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결국은 시민의 의사와 바램은 뒷전이고
자아만족에 다름아닌 一路精進에 불과한 것을...
'누구를 위한' 각오인지 정말 따져 묻고 싶을 따름이야
세금, 고용, 임금, 환경, 부동산 등등 주구장창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어
따라오던가 아님.. 그냥 뒈지던가 알아서 하라는... 거쟎아?
피식~ 여긴 건설회사가 아니거든

알아!!
그래 알고 말고..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하지만 때론 민중은 귀가 얇아서 쉬 등을 돌리기 십상이라는 걸
더불어 민중은 교활하고 영악하여 시도 때도 없이 눈앞의 利만을 탐하기도 하지
하지만 말야 그렇다고 그들을 욕하거나 탓할 수가 없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작은 이익을 쫒도록 만든 게 소위 그네들
기득권층이라는 지배계급의 수십년간에 걸친 부와 경제력 집중의 당위성
(좋게 말해서지 실 수탈에 가까운)이란 논리에 그 어리석고 미련한 민중이
끔뻑 속아 다 퍼주고 만 '탓'이라는 걸
있는 자(형)들을 빨리 키워 줘야 없는 자(아우)들도 허기짐에서 더 빨리
벗어 날 수 있을 거란 말도 안되는 말빨에 속았다는 걸
수십년간 말빨 정부의 세금과 고용 그리고 임금원칙을 보자면 쉬 알 수 있었는 데도 ㅋㅋ
이런 流
'일정부분 이상은 피지배계층에 분배하지 않는다' 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쭉 지속되어 온 '지배원칙'은 쉬 바뀌지 않았던 것이야
뭐 그리 놀랍고 새로울 것도 없지
아.. '잃어 버린 십년'동안 잠시 바뀌나 했었어
지금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ㅎ

자! 하지만 말야..
진중하다면 또 그만큼 무거운게 비할 바 없어 뉘 거스리려 해도
만근의 힘으로도 견뎌낼 수 없는 게 또한 민심아닌가 싶어
이것 또한 역사속에 누누이 반복되고 검증된 민중의 실체쟎아?
흩어지면 그 모래알보다 쉬 부서져 버리는 그 민중이
모이면 도도한 탁류처럼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지
그럼으로 민중과 같이 호흡한다는 것은 곧 지배층으로서의 그 '권리'를
스스로 내 던진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할거야
물론... 그 누구처럼 보여 주기 위한 '자세'는 공감받지 못할 게 뻔하고
민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고, 판단, 그리고 의지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애민정신이 결여된 이는 필요없어
당장 눈앞에 결과물이 표나지 않더래도 믿음이 가는 자
우리에겐 능력보담 믿음이 필요해
우리에게 믿음을 보여봐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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