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코스튬플레이를 선보이고 싶어요”
서울 홍대 한 카페에서 만난 코스튬플레이 1세대 체샤 대표(본명 하신아 30세)의 첫 마디다. 체샤는 코스튬플레이 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직접 자신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코스튬플레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대표 주자다.
인터뷰 전 코스튬플레이 사진으로 보아왔던 체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털털하고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 | ▲ 코스튬플레이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직접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체샤 대표 |
|
체샤는 만화 스토리 작가 지망생이었다. 2000년 초 코스튬플레이를 평생 직업으로 하겠다는 친구 의지에 당시에 벌어둔 500만원을 지원하면서 코스튬플레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체샤의 코스튬플레이 사업에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날으는바늘(
http://www.fneedle.com)이라는 코스튬플레이 전문점을 오픈 후 사업은 승승장구 하게 된다.
“2004년 업계 처음으로 코스프레를 활용한 BtoC 대여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바로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운이 맞아서 인지 생각보다 벌이가 되는 상황이었어요”
코스튬플레이 초창기에 블루오션 시장을 틈타 코스튬플레이 의상 대여사업은 날개를 달고 팔려나갔다. 사업이 잘되자 대부분의 밴처인들이 실수하는 급속한 확장을 시작하는 오류를 체샤 대표도 범했다.
“돈벌이가 되니 직원수도 10명 가까이 늘리고 사무실도 확장했어요. 문제는 경기가 하락하면서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을 줄이자 사업에 타격을 받았죠”
경기 하락으로 인해 그는 게임쪽과 연을 맺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표 게임쇼인 지스타에서 한게임, 넥슨등의 코스튬플레이 의상을 제작 및 연출을 맡았다. 게임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중국 차이나조이 한국 대표로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체샤는 게임업계에서는 코스튬플레이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코스튬플레이는 연인들 위한 재미있는 이벤트로도 즐길 수 있어요. 일부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아닌거죠. 코스튬복장을 대여하는 분들의 40%가 라이트한 일반 고객분들이세요”
코스튬플레이는 게임, 음악행사에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이벤트로 충분한 메리트를 주고 있다. 청혼이나 사랑고백에 좀 더 특별한 것을 원하는 젊은 층을 상대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코스프레는 원래 일본 것이 아니예요. 원조를 들자면 미국 할로윈데이를 들 수 있죠. 그러나 미국에서는 할로윈 복장을 코스프레라고 부르지 않아요. 일본이 자국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코스프레라는 명칭을 쓰고 있죠”
일본의 경우 세계 코스플레이 서미트(WCS)에 외무성 차관이 직접 나와 응대를 한다. 단 WCS는 일본 만화나 게임에 한해서만 참가자격을 주기 때문에 일본 콘텐츠를 위해 전 세계 코스플레이어들이 준비를 한다.
“일본도 하는데 한국이 못하라는 법은 없죠. 지금은 한류시대죠. 지난해 중국 게임쇼 차이나조이에서 코스튬플레이를 하는데 엔씨의 리니지 코스튬플레이를 한 중국인들이 40명이 나올 정도로 한국 콘텐츠에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상황이예요”
 | | ▲ 게임관련 코스튬플레이로 게임업계에서 유명한 체샤 대표 |
|
체샤는 한국에서도 WCS와 같은 세계적인 코스튬플레이 대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콘텐츠를 이용해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허브 역할을 코스튬플레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체샤는 한국 코스튬플레이의 앞날에 대해 정당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의상제작과 모델로 활동하는 노력에 비해 코스튬플레이어들의 처우는 형편이 없다.
“코스튬플레이를 동호회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이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문화콘텐츠 발전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죠. 하지만 일을 하고 받는 대우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요”
지난해 게임쇼 지스타에서 문화콘텐츠의 활성화의 일환으로 코스튬플레이를 정부에서 지원을 했지만 올해는 지스타 조직위가 해체되면서 기획자체가 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도 최근 전면 인사가 단행되면서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체샤 대표는 한국만의 코스튬플레이가 전 세계 문화콘텐츠로 빛을 볼 때 까지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