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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9/02
 

영원히 깨뜨리지 못하는 기네스북 기록 '10가지'

2009.10.26 09:12 | 스크랩 | 중고기계

http://kr.blog.yahoo.com/hsh19632002/26784 주소복사

[유코피아닷컴=박현일 기자, ukopia.com] 기네스 북이 최근 1955년 창간판을 재출간하기로 했다. 5,000권 한정판이어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창간 당시와 지금의 기록을 비교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기네스 북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깨뜨릴 수 없는 기록 10가지를 부록으로 실었다. 기록은 깨뜨리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불가능한 기록도 있는 모양이다.

1. 세계 최장신

1940년 로버트 와들로(미국)가 22세의 나이로 숨졌을 때 그의 키는 8피트11인치(약 2.72미터)였다. 몸무게는 490파운드(222kg). 프로농구(NBA)의 최장신 센터 야오밍보다 43cm나 더 크다.

전문가들은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9피트(약 2.74미터)까지 자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최경량 여성

루시아 사라타(멕시코)의 키는 불과 21.5인치(약 55cm). 몸무게는 한때 13파운드(6kg)까지 나갔으나 마지막엔 4.7파운드(약 2kg)에도 못미쳤다. 신생아의 평균체중에도 미달된 것.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해 인기를 끌었으나 1889년 26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더 오래 살 수 있었지만 한겨울 서커스단이 눈 속에 파묻혀 요절하고 만 것.

3. 살인자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바토니 백작부인은 600명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에 나와있다. 희생자는 대부분 처녀들. 바토니는 이들을 살해한 다음 피를 받아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젊어지기 위해서였다는 것.

범행이 들통나 부다페스트 외곽의 성에 유폐된 그는 1614년 자연사했다.

4. 화산 폭발

크라카토아(인도네시아 자바섬) 화산은 1883년 8월 26일 대폭발을 일으켜 3만6,000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폭발 당시 진동은 엄청나 2,200마일이나 떨어진 호주의 퍼스에서까지 들렸다고 한다.

5. 최대의 다이아몬드

1905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큘리낸(Cullinan) 다이아몬드는 무려 3,106 캐럿짜리. 에드워드 7세의 생일기념품으로 진상됐는데 너무 커 영국 왕실은 이 다이아몬드를 105개로 쪼개 왕관 등에 장식했다.

6. 비행기 날개

1947년 오일 재벌 하워드 휴스가 제작한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는 날개 길이가 무려 319피트(95.23 미터). 축구장 보다 더 길다. 이 비행기는 단 한번 이륙한 후 지금까지 롱비치의 격납고에 보관돼 관광상품으로 한 몫하고 있다.

7. 최악의 전염병

요즘 신종플루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다.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7,500만 명이 이 병에 감염돼 숨졌다.

8. 최대의 블록버스터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은 '타이타닉'? 천만에 말씀이다. 앞으로 할리우드의 대스타라 할지라도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기록을 깨뜨리기는 불가능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벌어들인 돈은 자그마치 54억 달러. 타이타닉의 18억에 비해 3배나 더 많은 액수다.

9. 기둥에 앉아 있기

기네스 북에 올라있는 기록은 5세기 중엽 성 시메온이 작성한 것. 이 성인은 시리아의 "기적의 언덕'에 있는 한 신전 기둥에 올라 앉은 채 37년동안이나 설교를 했다.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것.

10. 최연소 박사학위

오스트리아의 칼 비테가 1814년 기센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딴 것은 그의 나이 불과 12살 때였다고 한다. 인기 TV 드라마 '두기 하우저'의 주인공 보다 훨씬 뛰어난 셈이다.


- Copyrights 유코피아닷컴(www.ukopia.com)  -
박현일 , ukopia.com(기자)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 (펌)

2009.08.19 09:12 | 스크랩 | 중고기계

http://kr.blog.yahoo.com/hsh19632002/26571 주소복사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1)



 

몇달 전 일본 동경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4년 정도 있었구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식당, 유흥업소 서빙 등등
안해본 게 없습니다.

한번은 일식당에서 서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죄스럽기까지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겪었던 그때의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을 가리켜 족보도 전통도 없는 민족이라
말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저 남의 것을 잘 베끼는 능력 때문으로 폄하해 버리기도 합니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훌륭하든 보잘 것이 없든 그것을 받들고 존중하고
계승해 나가려고 하는 자세만큼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들을 지나다 보면
조상으로부터 3대, 5대, 심지어는 10대에 이르기까지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바를 했던 일식당 사장님(주방장) 역시 3대째 식당을
경영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사장의 형님이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경영했는데 12년 전 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가업을 잇게 되었답니다.

(중략)

열달 좀 안됐네요.
식당 문을 닫을 무렵이었는데 사장이 불쑥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것도 임진왜란에 대해서요.
그렇다고 했죠.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전 관심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쪽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사, 영웅전기 같은
책들을 많이 봤었고, 그래서 사장의 물음에 대해
속으로는 "일본의 역사도 아마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 걸"이라고
생각했었고요.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사장이 다짜고짜 "이순신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하더군요. 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게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저는 사장이 어디서 이순신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죠.
밤이 새도록 말이죠. 그래서 그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이 구사한 해전술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거북선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 복원은 언제 되느냐"고
하더군요.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핵심 해전술?"
"거북선의 복원?"
뭐 하나 제대로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질문 외에도 바로 이어서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이 제 입장이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답변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또 그 답변이
정답이고 오답이고를 떠나서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저처럼 당황해 하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전술에 대해서야 누구라도 학익진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전술의 원리, 그리고
그 전술이 해전장별로 어떻게 응용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저는 거북선이 2층인지 3층인지,
머리가 유황을 뿜는 굴뚝용인지
대포를 쏘는 포탑용인지
선수 하단부체 충돌용 돌기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순신에 대해서라면 이를 갈며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을 통해서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장은 나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 주더군요.

"이순신은 중세기 세계 최강의 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군을
꺽었다. 만약 이순신이 없었다면 일본은 그 군력으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과 해전술은 우리 근세 일본해군의 동력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임진왜란은 조선과 중국 대 일본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순신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이죠.

사장은 어렸을 적부터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한 영웅전기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사실 일본사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국시대 3대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우익과 성인남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이 개국한 이후, 처음으로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눈을 돌린 인물이기 때문이랍니다.
아울러 평민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줬겠죠.

사장은 대학시절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다의 맹장들이 왜 하나같이 맥을 추지 못하고 연거푸
패해야 했는지, 천하의 용장들이 총출동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는지....
일본 자위대는 물론 정계의 정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무엇 때문에 이순신을 칭송했는지.... 말이죠.

관련 서적, 논문 같은 것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하더군요.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아무래도 연구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국인은 세계적인 영웅을 배출한 민족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순신 같은 인물이 일본에서 배출되었다면
징키즈칸 못지않은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되었을 거라면서....

그날 숙소에 돌아온 저는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죠.
그리고는 서울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보내주신 몇권의 책이 왔습니다.
소설류에서부터 해전에 대해 기술해 놓은 전문 서적류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그런데 공허해 지더군요.
너무 막연했고 황당했으며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었구요.

그리고 한달 전,
금년 5월에 나온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봤습니다.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얘기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책의 머릿글을 보니 작가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이 넘게
집필에 전념해 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면서 말입니다.

또 서문에는 사카모토 사장이 제게 물었던 이순신의 해전술의 원리와
거북선의 실체를 밝혀주는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넘겼죠. 거짓말 않고 꼬박 밤을 세워 1권의 반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나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도대체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은 무었이었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말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문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문화민족의 일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교육이
12000원 짜리 단행본 1권보다도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서문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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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충무공의 해전원리

20세기 일본 해군은 직충(直衝,ramming) 등을 오역하지 않았기에 충무공의
'거북선+학익진의 해전원리'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20세기 초 세계사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청일해전과
러일해전에서 승리했고, 한반도는 일본에 합방되었으며,
청나라와 러시아는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그 후 일본 해군의 학익진(丁자진) 해전원리를 승계한 영국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 해군이 레이테만(스리가오)에서 학익진(T자진)으로
일본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켰다.
미국 해군의 학익진 원리에서 맥아더의 (도쿄를 향한)
개구리 뜀뛰기 상륙작전과 란체스타 공군전술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존의 서적에서는 세계 해군들의 학익진 연구사가
빠져 있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이순신 연구는
우물안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2)



 

얼마 전, 「일본인이 이순신에 대해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두서없이 정리되지 않은 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며칠 전 댓글을 통해 말씀드린 대로
제가 왜, 무슨 이유로 보잘 것 없는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소개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왔을 때 TV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더군요.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죠.

종영이 임박한 상태라 마지막 몇 회 분만 볼 수 있었습니다.
넋이 빠져나갈 정도로 훌륭한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열연하신 김명민님의 연기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중략)
이순신 게시판에 올려진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다가 저는 아주 감명 깊은 글 하나를 보게 되었죠.
김세명이란 분이 올린 글인데요, 이 글이 바로 저로 하여금
이곳 토론방에 글을 올리게 만들었고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
등록일자 : 2005/08/30 22:28  작성자 : 김세명 ()
제목 : 한국인의 필독도서..이순신과임진왜란

20년을 넘게 충무공에 관해서 연구한 성광수님을 위시한 회원들이 낸 총4권인데
현재 2권까지 발간이 되있읍니다.. 성광수님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시고
이순신역사연구회를 이끄시고 계시더군요...책 내용의 깊이는 정말 최고입니다..
...보니까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연구회 사정이 무척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여러분도 구입하셔서 꼭보세요..이런 연구회가 재정난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친구에게 선물해도 돈아깝지 않은 최고의 불멸책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시청자게시판-에서
---------------------------------------------------------------------

이 글을 보신 님들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전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군요.
짧고 투박해 보이는 글이었지만 저는 김세명님이란 분의 글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강한 외침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책을 구입해 밤새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려고 읽은 것이 아니었죠. 보는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엄청난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의 틀은 부서졌고
그 자리에 자랑스럽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식과 체험,
그리고 새로운 임진왜란 해전사가 꿈틀대기 시작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알고 싶었던 것,
사카모토(식당 사장)로부터 받은 의문부호들이
비로소 느낌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게 될 즈음 저는 불현듯
이런 자문을 하게 되었죠.
“왜 이런 책이 이제야 나왔을까?”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알았던 것들은 뭐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저는 머리말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죠.
작가분들이 회고하듯 써놓은 두 페이지 분량의 기록에서 말입니다.
몇 대목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
이 책을 내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필자들에게는 충무공을
닮아가기 위한 실천적 여정이자 깨달음의 장이기도 했다.
충무공을 연구하면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도 이순신과 같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다.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 속에서 이러한 닮은 모습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율적으로 계발해 간다면 독자들 또한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내는 필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머리말- 중에서
---------------------------------------------------------------------

무려 2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금년 5월에 나온 책이구요.
그러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책이었죠.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알았던 지식들은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이 아닌
대개가 작가나 학자분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주관적인 기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이순신 장군의 기록(난중일기, 장계)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작가의 상상과 추론이 아닌
어디까지나 장군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의 역사를 탐방하듯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작가들은 역사 탐방을 위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제가 처음 올렸던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어떤 분들은 제가 식당 사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한 것으로 아시더군요.

왜 그것도 몰라서 답변을 못했느냐는 질타와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모를 수도 있다는 동정,
중요한 것은 충무공의 정신이지 그같은 물리적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는 반박의 말씀까지.....

물론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처 설명 드리지
못했지만 그날 전 사장을 통해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도고의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에게 배워간 것은
해전술(소프트웨어)이나 거북선(하드웨어)만이 아니라는 거였죠.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과 거북선 속에는 장군님의 철학과 정신이
들어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도고의 일본 해군이 배워간 것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이순신의 철학/정신’이라는 겁니다.

사카모토 사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순신의 정신은 오늘날 일본 속에 살아계시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뼈져리게
부끄러웠고, 죄스러웠고, 민망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함대에 참패한 일본-
300년 후 일본 해군의 이순신 연구-
일본의 청일/러일해전에서의 승리-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그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되새겨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정신력 자본, 우리의 지식자산이
남의 나라에 유출되면서 빚어진 통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학익진과 거북선은 그냥 지식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속에 충무공의 혼과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5천년 문화민족의 자긍심과 역량과 민족의 혼이
응집되어 완성된 정신력 자본의 총화라는 것입니다. 

김세명님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셨겠지요.
그 글은 저를 움직였습니다. 저의 글 또한
다른 분들에게 어떤 외침과 울림으로 작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글을 올린 이유입니다.

 
 
다음을 비롯한 여러 포털 사이트의 대문을 장식했던 챔피온이란 분의 글입니다. 어떤 분이 챔피온님의 글을 모아 다음 '세계엔'에 올리신 걸 가져왔습니다. 3.1절과 이충무공탄신일을 앞두고 한 나라의 흥망과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올려봅니다만, 지금까지 이 글을 보셨던, 그리고 앞으로 접하게 되실 분들께 한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인용된 김세명님의 글에서 이순신역사연구회가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이순신역사연구회는 설비투자가 필요 없는 연구 동아리로서 저술에 참여한 작가들 모두 현업에 종사하며 연구회 일에 관여해온 터라 재정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죠. 책 머릿말에 적힌 '이 책을 내기까지 25년이 걸렸다'는 내용이 독자님들에게 그 같은 짐작과 우려를 갖게 했었나 봅니다. 김세명님이나 챔피온님께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구요.
 
이 글 때문인지 아니면 머릿말의 글 때문인지 간혹 출판사를 통해 "연구회를 돕고 싶다"며 후원의 뜻을 전해오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런 말을 전해듣거나 직접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언젠가는 오해를 풀어드려야 하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바로 며칠 전 또 한번의 전화를 받고서야 서둘러 글을 올립니다. 블로그가 있다는 게 이토록 다행스럽고 대견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무튼 관심 가져주시고 걱정해 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관심을 받는다는 건 분명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임에도 "연구회 문 닫았나요?"라는 질문과 염려에는 저희들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좋은 하루 만드세요!!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ㅠㅠ 펌!

출처 : http://kr.fun.yahoo.com/NBBS/nbbs_view.html?bi=1201&bt=2&mi=812923

은퇴남편 증후군…괴로운 부부들

2009.02.21 08:59 | 스크랩 | 중고기계

http://kr.blog.yahoo.com/hsh19632002/25442 주소복사

[서울신문]30년 동안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 죽치고 앉아 있다면? 누구는 ‘인생 2막’이라고 하고 누구는 ‘황혼 신혼’이라고 하는데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내가 불만스럽게 얘기한다면 그저 철없는 소리로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뭐지? 이 숨이 막혀 오는 듯한 기분은? 아들 딸 시집 보내고 이제 자유를 만끽하려는 찰나에 집으로 들어온 남편. 비정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같다.

그렇게 부엌을 싫어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냉장고 속에 관심이 많아진 걸까. 전에 없이 처음 보는 외간 여자들과 수다도 떤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하는 짓은 참을 수 있는데 아파트 울타리를 벗어나지도 않고 경비 아저씨랑 무슨 얘기가 저렇게 많을까. 그때부터 은퇴 남편을 향한 부인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견디다 못한 남편은 다시 탈(脫)가정을 시도하기도 한다. 황혼 신혼이 아니라 황혼 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달라진 남편… 하루종일 잔소리에 반찬 타박까지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송양진(54·여·가명)씨가 오랜만에 옆 동네 친구 집을 찾았다. 친구들이 모여서 여느 때와 똑같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씨도 이 친구들과 더불어 낮부터 저녁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을 챙기느라 발걸음이 뜸해진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송씨를 반겨주던 친구가 송씨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이랑 깨가 쏟아지니까 우리 생각도 안 나지?”라고 농담을 한다.

송씨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지난 연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던 남편 안국진(57·가명)씨가 지난해 12월 초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처음에는 경제위기다 뭐다 해서 시끄러웠지만 하루아침에 집에 가라는 말에 상처받고 돌아온 남편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송씨는 “뼈빠지게 30년 일했으면 충분하고, 애들도 다 시집장가 갔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남편을 위로했다.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던 남편 때문에 독수공방했던 수많은 시절을 이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어렴풋한 기대까지 있었다.

송씨의 이같은 기대는 채 1주일을 가지 못했다. 종일 집에서 함께 있는 남편은 30년 전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니었고, 직장에 다니던 때와도 너무나 달랐다. 하루에 두세 시간 신문을 읽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것 이외에는 송씨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냉장고 문을 열어서 이것저것 살피는 것은 물론 안 하던 반찬 타박까지 한다. 송씨가 “하루 세 끼를 어떻게 전부 다르게 차리냐.”고 불평해도 막무가내다. 아침에 함께 가는 약수터에서는 처음 보는 동네 아줌마한테 말을 걸지 않나, 뜬금없이 경비실에 들어가서는 나올 줄을 모른다.

송씨가 친구들에게 남편과 붙어 지낸 두 달 동안의 푸념을 쏟아내길 30분. 송씨 휴대전화로 남편의 전화가 온다. ‘어디 갔느냐?’부터 시작해 ‘빨리 와라.’로 끝나는 내용. 송씨는 친구들한테 “남편이 웬수”라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야 했다.

●은퇴 후에 시작된 ‘옆집 남편 시리즈’

지난해 초 대형 회계법인에서 파트너로 일하다 은퇴한 허우진(65·가명)씨는 최근 집 근처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인 7평짜리 사무실은 허씨가 전에 쓰던 사무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허씨는 진정한 자유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허씨가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접대를 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건강은 나빠져 갔다. 부인과 의논한 끝에 시집간 딸이 낳아 맡긴 쌍둥이 손자나 돌보자는 생각으로 본인이 창업 당시부터 참여해 20여년간 몸담은 회사를 과감히 떠났다.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자신처럼 은퇴한 친구들을 만나 골프나 치면서 허씨는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기를 6개월 남짓. 어느 날 문득 허씨는 부인과의 관계가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직연금을 받아 허씨가 부인에게 주는 돈은 매월 300만원 정도. 쌍둥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딸이 보내오는 60만원을 합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부인은 허씨가 소위 잘나가던 시절에 가져다 주던 금액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생활비가 불만인 눈치였다. 동창회나 동네 모임에 갔다 오면 ‘누구네 남편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을 열었다더라.’부터 시작해 ‘옆집 아저씨는 창업을 준비하느라 매일 시장조사를 다닌다더라.’까지 밤새 잔소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매일 듣다 보니 허씨의 기분도 좋을 리가 없었다.

허씨는 친구들만 만나면 “평생 이웃집 남자, 친구 남편하고 비교는 안 당하고 살았는데 다 늙어서 이게 뭔일이냐.”고 하소연을 했다. 날이 갈수록 부인의 구박은 심해졌다. 심지어 한 달에 50만원 받던 용돈마저 ‘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25만원으로 삭감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자 허씨는 과감히 ‘독립’을 결심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함께 회계사 사무실 간판을 내걸고 다시 영업 전선에 뛰어든 것. 그러나 허씨는 결코 다시 치열하게 살 생각이 없다. 그는 “가끔 친구나 후배들을 통해서 한두 건 맡으면 된다.”면서 “집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집사람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아서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황혼 이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성주희(62·가명)씨는 지난 연말 모임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의 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퇴한 남편들과 지내는 친구들의 불만이 이날의 화두였다. 한 사람이 ‘우리 남편이 이렇다.’라고 말하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성씨는 대화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심지어 몇몇 친구는 “주희가 부럽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건넸다. 어떤 친구는 “잔소리에도 꼼짝 못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집안일도 안 하고 예전과 똑같이 대접받으려는 것에 화가 난다.”고도 했다. “남자가 집에만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성씨는 “일본에서 은퇴 후 황혼 이혼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황혼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만 있게 되면 아내가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불화를 겪으며 심지어는 이혼까지 하는 현상을 ‘은퇴남편 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고령화가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본에서 1991년 이름 붙여진 이 현상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가족과 별 대화없이 잠만 자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아내는 이같은 상황이 불만이어도 가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같은 생활이 수십년간 이어지게 마련이다.

같이 살아도 서로 잘 모르는 불편한 타인 같은 관계는 남편의 퇴직이라는 중대한 전환점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밖으로 나다닐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붙어 살다 보니 남편의 좋지 않은 면들이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남편의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거나 목소리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명(耳鳴)이 생긴다며 이비인후과를 찾아 하소연하는 부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맞벌이를 하거나 가족 내에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젊은 세대에 비해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나이 든 세대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남성과 여성의 가족 내 관계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한 준비되지 않은 가족 재구성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시대와 환경이 변한 만큼 과거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가정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지속적으로 가족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같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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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공개 장소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 9가지

2009.02.04 15:57 | 스크랩 | 중고기계

http://kr.blog.yahoo.com/hsh19632002/25010 주소복사

[중앙일보] 사람들이 쳐다보는 공개 장소에서 연인과 키스를 하는 것 쯤이야 한번쯤 감행해 보겠지만, 지하철에서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하는 남자가 있다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남자다운 용기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슬픈 장면이 나온다고 펑펑 울거나 휴지도 없이 코를 팽 푸는 남자가 있다면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건 아니잖아!”. 다음은 에티켓 전문가 마크 보이어(Marc Voyer)가 들려주는 ‘남자가 공개 장소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 10가지’다.

1. 울기

물론 장례식장에서는 목을 놓아 펑펑 울어도 좋다. 하지만 얼마전 여자 친구랑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다 정말 눈물을 흘렸다고? 사람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감정의 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감정이입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눈물을 펑펑 쏟으라는 법은 없다. 여자 친구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운다면 반드시 다독거려주라. 하지만 당신까지 덩달아 눈물을 쏟아낸다면 참으로 난감하다.

2. 아무데서나 소변 보기

물론 서서 오줌 누는 것은 남자들만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마치 ‘특권’인양 아무데서나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쓰레기통이나 으슥한 골목길 같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는 있다. 하지만 세워 둔 차 뒤에 등을 돌리고 서 있으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3. 손으로 글쓰기

달필가나 서예가가 아니라면 형이상학적인 시나 애끓는 편지라도 카페에서 노트에 펜으로 쓰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더 안쓰러워 보인다. 손으로 쓰는 글씨는 피를 말리는 창작의 고통을 더욱 가혹하게 보이게 만든다. 요즘 대부분의 카페에는 초고속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노트북이나 랩탑으로도 얼마든지 깊이있고 철학적인 글을 쓸 수 있다.

4. 여자 친구와 싸우기

여자 친구랑 싸울 정도면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시선은 딱 한가지다. 성미가 불같이 급한 사람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파티에서 다른 커플과 함께 자리를 했을 경우라면 여자 친구랑 말다툼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어색한 분위기를 안겨주고 말 것이다. 싸울 일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않는 조용한 장소에서 하라.

5. 구토하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다 보면 토할 때도 있다. 토할 때는 자기가 얼마나 많이 먹고 마셨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하지만 공개 장소에서 구토하는 순간 체면은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다면 문을 걸어 잠근 화장실을 찾아라.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 마음껏 토할 수도 있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물도 마신 다음 다시 파티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6. 휴지 없이 코풀기

우연히 고엽제를 들여마신 경우가 아니라면 공개 장소에서 휴지 없이 코풀지 말라. 코가 자주 나온다면 티슈를 갖고 다녀라. 휴지가 없는데도 코를 불가피하게 풀어야 한다면, 옆사람에게 휴지를 좀 달라고 부탁하라. 그럴 용기가 없다면 참아라.

7. 다리 꼬고 앉기

사업상 중요한 면담을 하고 있거나 누군가 당신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리를 꼬고 있다면 그것만큼 꼴불견이 없다. 충고하건대 양발을 땅에 대고 있는 게 낫다.

8. 코를 후비거나 몸 긁기

주차된 차 안에서 마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동전을 잡으려고 애쓰듯 코를 후벼 파는 남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심코 사타구니를 긁기도 한다. 누구라도 가려운 곳을 긁으면 시원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남들이 지켜보는 공개 장소에서 마구 긁어대면 곤란하다.

9.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에 감탄하기

그래. 당신 팔뚝은 굵고 복근도 단단하다. 하지만 헬스클럽 샤워장에 걸린 대형 거울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다면 소름끼치는 일이다. 남자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이빨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지는 않았는지 뺨에 코딱지가 눌러 붙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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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오면 대학에 다시 가고 싶어지는 이유 3가지

2008.12.25 09:25 | 스크랩 | 중고기계

http://kr.blog.yahoo.com/hsh19632002/24335 주소복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게 되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과연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내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등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직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스개 소리로 하는 소리!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해 볼 수 있을텐데..."

"다시 대학에 다닌다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멋지게 해볼텐데..."

이렇게 자조 섞인 소리를 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될까요? 제가 보기엔 사회에 진출하고 다시 대학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에는 대표적으로 3가지가 있는것 같습니다.


첫째, 잘못된 학과를 선택했을 때

대학입학시 수능점수에 의해 학교와 학과가 결정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공부가 자신하고 맞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4년 또는 7년, 그 이상을 대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건 후회뿐!

사회에 진출하려고 보니 내 전공에 대해 자신도 없고 공부도 많이 안했으니까 어떤걸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어떻게든 사회에 나오게 되면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집니다.

둘째, 공부가 더 하고 싶어질 때

두 번째 경우는 사회에서 자신이 하고자 한 업무를 하게 됐을 때 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시스템이 그렇지만 대학시절에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그저 대학에 들어오게 되니 너무 좋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학창시절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업에는 소홀해지고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사회에 진출한 후 업무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한계에 부딪힐 시점이 오거나 더 잘 하고 싶은 생각에 공부가 하고 싶어집니다. 즉,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셋째,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질 때

어떻게든 사회에 진출해서 잘 적응해 가면서 지냈는데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다른 공부를 해 보고 싶고 다시 도전하고자 할때 다시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통적인 것은 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든 사회는 변해가고 있고 공부하는 사람만 살아 남게 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치열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평생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회사만 들어갔다고 해서 정년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내가 그 업무에서 조금이라도 밀리게 되면 언제든 그 자리를 채워줄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즉, 자신이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금방 뒤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직장 분위기를 보면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인 사람도 있고 새벽부터 영어학원에 세미나에 틈나는데로 독서에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자니 시간이 애매하고 그렇다고 책을 사서 보는 것도 한계가 있는 사람들은 다시한번 제대로된 공부를 하기 위해 디지털대학교를 알아보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저도 물론 잠을 줄여가며 하고 싶은 제품 리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는 거 아니라는 말! 나이들면 열심히 할껄 후회한다는 말! 옛말 틀린거 하나 없네요. 하지만 지금도 결코 늦지는 않았다는거~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 화이팅입니다.

유형일 [http://www.leaderyou.co.kr/]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연말특집] 아듀 2008! 한 해동안 웃고 울게 만들었던 ‘올해의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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