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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치고 싶을 때 -
사랑에 관한 정의를 들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누구는 함께 아침을 먹는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각자 느끼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미치고 싶을 때’ 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미치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상황에서 만난 사랑 이야기다. 서로를 구원해주고 희망을 준 사랑.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독일 변두리. 터키계 독일인들의 가난하고 혼잡한 상황에서 남녀는 만난다. 가부장제가 강한 집안에서 자유를 향해 자살을 시도한 스무 살의 시벨(시벨 케킬리).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차히트(비롤 위넬). 둘은 그렇게 병원에서 치료하다 만난다. 차히트가 터키계 남자라는 걸 안 시벨은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조른다. 밑도 끝도 없이 결혼해 달라니…. 차히트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시벨은 위장결혼이라도 해서 집을 벗어나려는 생각뿐이다. 자유주의자 시벨은 차히트가 거절하자 병을 깨 손목을 긋는 무모함 끝에 답답했던 집에서 탈출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두 사람의 뜻밖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결혼 첫날부터 두 사람의 행적은 완전히 다르다. 혼자 살기에 익숙한 차히트. 시벨은 첫날부터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쫓겨나지만 만끽하고 싶은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쓰레기 같던 방이 깨끗해지고 함께 요리를 해 먹으며 서서히 방안에 사람의 온기가 흐른다. 형식적인 결혼이지만 집안의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차히트. “동생을 사랑하냐” 는 매제의 질문에 무심하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차히트의 사랑은 시작되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차히트는 혼자 살 때는 몰랐던 외로움을 여자와 함께 살면서 느낀다. 그녀가 없는 공간이 그렇게 허전할 수 없다. 그래서 예전처럼 방안에 마음껏 쓰레기를 던져보고 난장판을 만들어보지만 그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죽은 아내로 인해 고독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허전함과 외로움. 결국 차히트는 시벨이 돌아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청소하는 인간다운 모습을 갖춰간다. 사랑의 대단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가졌다는 것. 영화는 곳곳에서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변화하는 차히트와 시벨을 통해 보여준다. 외로움과 허전함 그러면서도 한편의 두근거림. 사랑의 묘한 감정들이 돌출하면서 영화는 깊이를 갖기 시작한다.
시벨 역시 차히트의 마음을 알아차리지만 두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만은 피한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데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게 되면 진짜 부부가 될 것 같아 망설인다. 이들은 결혼과 부부가 갖는 의미와 책임을 떠 안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사랑은 회전목마와 같아서 돌고 돌기만 할 뿐이라며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이미 차히트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 사랑의 불확실성과 책임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상처 등 사랑의 불확실한 모습을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시벨 역시 차히트를 생각하며 공허함과 사랑을 느낀다.
이후 달콤한 사랑에 빠져들 것 두 사람에게 행복한 순간은 할애되지 않는다. 사랑을 확인한 순간 가혹하리 만치 냉정하게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시벨의 험담을 늘어놓던 사내를 죽인 차히트는 교도소로 향한다. 그나마 시벨의 기다리겠다는 한마디가 차히트에겐 삶의 또 다른 희망이다. 이스탄불로 향한 시벨의 삶 역시 창살 없는 감옥이긴 매한가지. 살기 위해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암담할 뿐이다. 견디다 못해 일탈을 꿈꿔보지만 그럴수록 처참하게 망가지기만 한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지켜줄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절박함만 남아있다.
죽어 가는 고목에 생기를 불어넣은 여인 시벨. 강요하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 차히트. 둘의 사랑은 강렬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사랑의 감정선이 가슴을 요동친다. 암담한 현실에서 피워 올린 사랑이기에 내내 애잔함이 묻어난다. 들고 찍은 카메라의 흔들림은 불안하기만 한 두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중간 중간 끼여드는 터키 전통악단 연주는 마치 이야기를 단락단락 나눠놓는 역할을 한다. 시벨과 차히트의 감정 변화를 꼭꼭 한번 씩 짚어주는 것처럼.
독일 영화라고는 하지만 전반에 흐르는 터키의 전통음악과 이민자의 모습에서 터키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주제는 보편적인 사랑과 삶의 선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못지 않게 쓸쓸하지만 각자 안고 있는 삶 때문에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게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안다. 사랑이 끝났다는 걸 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이라던가 여배우가 전직 포르노 배우였다는 수식어에 현혹될 필요 없다. 누구나 절박하게 미치고 싶은 상황을 한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견뎌냈던 이유. 시벨과 차히트는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도 찾아왔을지 모르는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11월 12일 개봉.
<김용필 영화칼럼니스트 ypil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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