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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7/28
 

김대중 전 대통령 과 북한 / 시국선언

2009.06.30 12:04 | 퍼온글 | ecophalt21

http://kr.blog.yahoo.com/hjk5607/1300 주소복사

이 상훈전국방 장관은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7주년 기념식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북한 핵이 문제가 되었을 때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책임지고 막겠다’고 했지만 지금 그가 책임을 지고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는 평생을 거짓과 허위를 일삼은, 위선자 중에서도 위선자다.

지금이라도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지원한 5억 달러의 내역을 조사해서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나라의 비극의 시작은 해방이후 북한에서 오는 것이 아주 많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6.25 이후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이 60년이지나고 그들 국가를 세운 쏘련이 망해도
지금도 남한의 각 분야에서 혼란을 계속 만들고 있다.

우리 민족끼리 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우리사회는 깊히 농락 당하고 썩어있다.

현 북한정권은 시민자율적인 민주적인 집회나 단체 결성을 절대 용납치 않는다.

중국공산당 정부도
북한의 정책과 북한 인민들의 삶의 질 문제 ,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평을 하는 데

남한의 진보를 자칭하는 인사들은
북한의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며
남한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모진 비판을 가한다.

민주적 투표에 의해 결정된
우리나라 정부를 독재정부라 하는 것일까

미래를 판단치 못해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한 정치인은

누구인가는 국민들은 이미 잘알고 있다.

전세계 국민들에게 물어보아도

북한이 미얀마 보다 무시무시한 인권탄압, 오로지 김일성 일가의 권력세습을 위한
국제여론무시의 강력한 독재국가이다.

진보라고 자칭 타칭 불리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심각히 알아야 한다.

남조선 공산당을 창건한 박헌영씨는 일제때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이지만
전쟁후 쏘련의 지휘아래 30대의 김일성이 한테
미제국주국의 앞재비로 모함을 받아
서울 인민위원장 이승엽 등 비롯한 남로당 간부 전체가
625 이후 전쟁패전 이유로 모두 처형을 당하였다.

일제패망후 군정시절에는 공산당이 합법적 지위를 가졌다.

남조선 공산당의 총재는 박헌영이며 전국지구당 조직과 수십만명의 당원을 가지고 있었다.
남한의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엘리트인 박정희과 김대중을 남로당 간부로 만들었다.

그 이후 그들은 모진 고초를 당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적으로 남한의 대통령 까지 한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엄청난 인간 승리이요

국가로 보면 500년 빈곤의 탈출과 경제발전과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영웅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한을 보는 시각은 달랐다.

북한은 순수 이상주의적 공산주의 사회주의도 아니다.
그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집단이다.

유교사대주의 이조시대에도 문호와 언론이 개방되어 왕조차도 왕권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2009년 현재 시국선언을 하는 사람들은 MB 정부 이전과 지금을 비교분석하는 틀을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1945년 해방정국 후 좌우로 나뉜 극심한 혼란의 시기와
1963년 한일 협정
1987년민주화 선언과
시민운동의 국민의와 정부 참여정부 시대와

우리나라를 보는 흐름이 다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냉담한 국민---

국민은 진보주의자 그들에게 냉담하고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박물관식 낡은 진보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이제는 어린아이 수준으로 밖에 않보인다.

이제 우라나라는 보리고개 한끼먹기위한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난 10 경제 강국이요.

세계는 우리나라를 첨단 기술를 보유한 IT강국임을 다안다 .

역효과는 민간 포탈 싸이트의 악플에 의한 인권적 침해가 최고수준의 나라이다.

( 미국 중국 일본 영국도 절대 용납이 않됨 ,,연예인의 자살사건도 한국에도 있지만 )

대한민국을 위한 진보주의자들 이여

이 시국선언이라는 것에 묻혀 자신들의 위선을 포장하려는
자기모순을 버리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성도 없으며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없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과거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를 위해 앞장서고

그로 인한 독재정권의 테러로 희생한 진정한 민주화 투사였고

국민의 투표에 의해 한국의 대통령도 역임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면

북한에 대해서도

남한정부에 시국선언등을 하는 등의

비판하는 것과 대등하게

3대 권력세습을 하는 것에 대해 시국선언과 비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먼저 21세기 글로발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진보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후기:


국민이 투표에 의해 그들의 생과 사를 책임지는 민주 정권의 탄생은

영국의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 프랑스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민주정으로
미국 민주정권수립은 처음부터 민주 정이었다.
그 것은 수백년이 걸린 투쟁과 타협의 과정이었다.

절대 쉽게 오지 않은 선택의 자유, 선택을 한 것의 책임은 국민이다.

우리의 민주 정은 일제패망후 미국에 의해 갑자기 다가온 것이지만

공산정권으로 하지 않은 것이 결국은 오늘의 번영과 강국으로 만든 것이다.

2차대전후 민주 정권을 최초로 선택한 국가들중에서
가장 민주 적인 국가로
경제적 선진국가로
일류 기술적 강국 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래도

이 사실은 남한에 태어난 우리 국민은 북한 보다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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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김씨 왕조는 흉노 후예인가

2009.05.21 07:09 | 퍼온글 | ecophalt21

http://kr.blog.yahoo.com/hjk5607/1291 주소복사

필자는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다가 직접 그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다음의 글도 그 일환에서 퍼온글이다.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래된 과거사라도 정확히 아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잘못 주장인 우리 한민족이 유일한 단군자손이라는 명분하에

우리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놀아나는

남쪽의 분열을 막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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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김수로는 북방기마민족 후예


대릉원 고분군은 민족기원 증명해 줄 보물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1862∼1949)가 쓴 동화극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꾼 꿈을 극으로 엮어서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시한 것이다.

남매는 옆집 마법사 할머니로부터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님프(요정)를 데리고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을 방문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을 깨고 보니 자기네가 기르고 있는 비둘기가 파랗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 새가 파랑새임을 깨닫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파랑새처럼, 행복은 그 존재를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간직하기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것임을 알려준다.
『파랑새』는 1908년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출로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상연되어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이어 그 작가인 마테를링크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그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그후 ‘파랑새’라는 말은 희망의 대명사로 지금도 ‘파랑새=희망’이란 등식이 성립되어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외국의 유산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고 잘 이해하지만 우리나라 유산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식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 것 즉 우리나라 유산 중에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정말로 있느냐고 반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경주 황남동 대릉원 고분군.

우리 유산 중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경주 대릉원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는 대형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신라의 마립간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일명 적석목곽분이라고도 하는데 이 고분군이야말로 북방의 기마민족이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지역 맨 끝에 자리한 신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라와 가야의 시조는 천손의 자손〉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어 935년에 멸망할 때까지 무려 1000년을 이어 온 한국 역사상 최장수의 왕국이다. 따라서 경주 일원에는 신라인들이 남긴 무수한 고분을 비롯하여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시내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는 원형 고분들이다.

이 원형 고분군은 기원전 3∼4세기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흉노 등 북방기마민족들이 사용한 스키타이-알타이 쿠르간과 동일한 구조와 형태를 갖고 있으므로 신라가 북방기마민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한데 신라가 북방기마민족과 연계된다는 설명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일반적으로 현 몽골지방에서 강성했던 흉노 등 유목민을 의미하는데

신라를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니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반발에는 한국인이 문화민족인데 오랑캐와 같이 말만 타고 다닌 유목민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거부감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신라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증명된다.

여기에서는 신라 김씨와 가야의 시조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임을 알려주는 자료만 설명한다.



적석목곽분 구조도(천마총).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은 목곽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다. 도굴이 어려워 신라의 부장품이 많이 발견된 이유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알지(金閼智)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삼국유사』〈김알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영평(永平) 3년 경신(혹은 중원(中元) 6년이라고 하나 틀린 것이며, 중원은 2년에 끝났음) 8월 4일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 큰 빛이 시림(始林 : 구림(鳩林)이라고도 함) 가운데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드리워지고,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있어 나뭇가지에 걸려 궤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으며, 또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으므로 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그 숲으로 행차하여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즉시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의 고사(혁거세를 알지라고 했음)와 같았기 때문에 그 말로 인하여 알지(閼智)라고 이름 붙였다. 알지란 방언으로 어린아이란 뜻이다.

왕이 수레에 싣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

왕이 길일을 가려서 태자로 책봉했으나 뒤에 파사왕(破娑王)에게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이에 성을 김씨(金氏)로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 또는 仇刀라고 함)를 낳고, 구도가 미추(味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인 문무왕(文武王)의 능비문(陵碑文)을 보면 문무왕이 북방기마민족의 후예임을 보다 명백하게 알 수 있다. 「

문무대왕릉비」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1796년 정조 20년 경주에서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당시 경주부윤이던 홍양호(洪良浩)가 그 비문을 탁본해 당시 지식인들에게 공개했다.

이 비의 건립연대는 대체로 문무왕이 사망한 서기 681년 또는 그 이듬해로 추정한다. 비문의 내용은 대체로 앞면에는 신라 예찬, 신라김씨의 내력,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의 치적, 백제 평정 등이 적혀있고 뒷면에는 문무왕의 유언, 장례, 비명 등이 적혀 있다.



문무대왕 능비문. 글자가 새겨져 있는 부분은 사라지고 하부만 남아있지만 200년 전의 탁본이 남아 해득이 가능했다(『금문의 비밀』).

그러나 이 비문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빨래대로 사용되다가 두 조각이 되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글자가 새겨진 상부 쪽은 사라지고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하부 쪽만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인데 다행하게도 탁본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이 비문에 적힌 부분 중 주목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선조들의 신령스러운 영원(靈源, 김대성은 '신령스런 근원'으로 해석하기보다 투후가 된 김일제가 받은 땅이라고 해석)은 먼 곳으로부터 계승되어온 화관지후(火官之后)니 그 바탕을 창성하게 하여 높은 짜임이 융성하였다. 종(宗)과 지(枝)의 이어짐이 비로소 생겨 영이한 투후는 하늘에 제사지낼 아들로 태어났다. 7대를 전하니(거기서 출자(出自))한바다.
15대조 성한왕(星漢王, 김알지)은 하늘에서 바탕을 내렸고, 선악(仙岳)으로부터 신령이 비로소 탄생하여 금궁전(金宮殿)에 어림하고 옥란간(玉欄干)을 대하여 처음으로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유산(石紐山)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기록은 신라 왕이 된 신라김씨의 선조인 김알지가 어떻게 신라로 들어왔는지를 알려준다.

기원전 122년 한무제(漢武帝) 때에 곽거병은 감숙(甘肅)지방에 있던 흉노를 공격했다.

흉노의 계속되는 패전에 당시의 이치선우는 그 책임을 물어 휘하의 혼야왕과 휴도왕을 죽이려 했다. 이에 두 왕은 이치선우의 문책이 두려워 한(漢)나라에 항복하려 했는데, 도중에 휴도왕이 항복을 망설였기 때문에 혼야왕이 휴도왕을 죽였다.

휴도왕의 큰아들 일(日, 일제)과 동생 윤(倫)이 어머니와 함께 포로가 되어 한나라에 잡혀갔는데 두 왕자가 무제에게 발탁되어 제천금인(祭天金人 : 흉노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황금으로 된 옹건(神像))을 뜻하는 김(金)씨 성을 하사 받았다.

『한서』「흉노전」의 주석(註釋)을 보면 제천금인은 원래 흉노의 지성소(至聖所)인 운양현 감천산 아래에 있었는데 기원전 215년, 지성소를 진시황제에게 점령당하자 그 서북쪽에 자리잡은 휴도왕의 우측 땅으로 옮겨 휴도왕이 '제천금인상'을 모셨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무제가 휴도왕이 모셨던 '제천금인'을 상기시키는 김씨 성을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에게 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김일제의 후손인 김알지의 경우 원래 김은 금(Gold)을 뜻하는데 이름인 알지(閼智)도 몽골-투르크어계에서 금을 의미한다. 즉 알타이 언어의 알트, 알튼, 알타이가 아르치, 알지로 변한 것으로 김알지는 금 금(Gold Gold)을 뜻한다. 김씨왕계가 수도를 금성(金城)이라고 한 것도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연상되는 제천금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주채혁 박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시아 북방민족들의 경우에 징기스칸의 혈족을 일컫는 Altan(황금) Urug(씨족)처럼 '김씨(金氏)'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임금씨족 곧 천손족(天孫族)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라고 설명했다. 후금(後金)인 만주제국의 황족을 애신(愛新, 황금) 각라(覺羅, 겨레)라 부른 것과도 다름아니라는 뜻이다.

그 후 일제는 무제의 경호를 맡을 만큼 신임을 받던 중 무제의 침실에 숨어들어 온 자객과 현장에서 격투를 벌려 체포함으로써 더욱 더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한무제는 자신의 딸을 김일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려 했으나 김일제는 이를 사양했다. 한무제는 임종시에 어린 소제(昭帝)를 보필하라는 유촉을 그에게 내렸다. 『한서』에 그 당시의 일이 적혀 있다.

무제가 죽기 전 김일제를 포로로 했던 곽거병의 동생 곽광과 김일제를 불렀다. 곽광이 물었다.

“만약 폐하께서 세상을 버리시게 된다면 누가 후사가 되겠습니까?”
“그대가 앞서 받은 그림의 뜻을 모른단 말인가. 막내아들을 세우고 그대는 주공(周公)의 일을 하라”

이에 곽광은 자신이 김일제 보다 못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양했다. 김일제 또한 자신이 외국인이며 곽광보다 못하다고 말하자 무제는 곽광을 대사마대장군, 김일제를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하고 어린 황제를 보필하라는 유조(遺詔)를 남겼으며 다시 김일제를 제후국의 왕인 투후로 봉했다.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설화를 그린 그림.

김일제의 후손들은 대대로 후(侯, 투후)를 계승했다. 김일제는 사망한 후 무제의 능인 무릉(茂陵)의 공신으로 배장(陪葬)되었는데 그의 묘는 현재 서안에서 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섬서성 홍평현 남위향 도상촌(道常村)에 있다.
그러나 김일제의 후손은 왕망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신(新, 8∼23)을 건설하는 와중에 대격변을 겪는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김일제의 5대손인 성한왕(星漢王)이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되며 김일제의 동생인 윤(倫)의 5대손 탕(湯)이 가야로 들어와 김씨 시조인 김수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휴도국의 왕자인 김일제와 김윤의 후손이 신라와 가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은 신(新)을 건설한 왕망(王莽)이 김일제의 증손자 당(當)의 이모부였기 때문이다.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을 건설할 때 북방기마민족의 천손임을 자부하는 김씨 일가가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은 『한서』〈왕망전〉에도 나와있다. 그런데 한나라를 멸망시킨 왕망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혁신적인 개혁조치를 추진하다가 단 15년 만에 후한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에게 멸망한다(중국은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인정하지 않고 광무제가 한나라를 계승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는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김일제의 후손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래 북방기마민족인 김일제의 후손들 대부분은 자신의 원래 본거지인 휴도국(休屠國)으로 도주하여 성을 왕(王)씨로 바꾸고 살았다.

그런데 광무제에게 쫓긴 김일제의 후손 모두 휴도국으로 간 것이 아니다. 그 중 한 갈래가 가야로 들어와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가 되고 신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신라로 들어갔는데 추후 그의 후손인 미추가 신라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김씨의 내력을 적은 문무왕(文武王)의 능비(陵碑)는 신라김씨가 북방기마민족 즉 천손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의 서북, 김해, 제주지방에서 왕망 시대의 화폐 오수전(五銖錢)이 많이 출토되는 것도 이들이 국외로 도피할 때 가져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문무왕 비문에 등장하는 ‘투후의 후손이다’라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모화(慕華) 사상에 젖은 문무왕이 자신의 뿌리를 중국에 갖다 댄 것이라고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무왕은 모화사상에 젖은 사람이 아니라 대당(大唐) 결전을 통해서 전성기의 세계제국 당을 한반도에서 물리친 왕이다. 더구나 조갑제는 그가 정말로 모화사상에 젖어 조상의 계보를 조작하려면 왜 하필 한족(漢族)이 싫어하는, 더구나 한을 멸망시키면서 신(新)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종국에는 후한 광무제에게 철저하게 패배하면서 배척 당하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지칭했는가 하고 지적했다.



중국 섬서성 홍평현 남위향 도상촌 무제의 무릉 옆에 있는 김일제의 릉과 비. 신라 김씨의 선조로 알려진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후손으로 무제로부터 직접 ‘김씨’를 사성받았다. 묘지는 1984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사진 김대성).

『삼국유사』에 따르면 궤짝 안에 있던 김알지가 발견된 곳은 시림(始林)으로 다시 말하면 나무가 많은 곳이다. 북방지역에서는 흰색의 자작나무(白樺樹 : 백화수)를 생명(生命)을 의미하는 신수(神樹)로 숭상하는데 일본사람들이 신라를 시라기(白木)라고 부른 것도 이와 같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삼국유사』에 석탈해(昔脫解)가 김알지를 안고 대궐로 가는 길에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고 쓰여 있는 것도 북방과의 연계를 의미한다. 북방 기마민족들은 새가 인간과 절대자를 연결하는 매개자(媒介者)라고 믿었고 조장(鳥葬)을 치르는 풍속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들은 새가 죽은 사람을 하늘나라로 운반해 준다고 믿었다.

〈북방기마민족의 상징 적석목곽분〉

신라김씨의 선조가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은 여러 사료에 의해 증명되지만 이를 보다 공고히 해주는 것은 경주 황남동 대릉원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다.

적석목곽분이란 땅을 파고 안에 나무로 통나무집을 만들고(지하로 6∼7미터의 땅을 파고 그 안에 대형 목곽을 설치한 쿠르간도 있음) 시체와 부장품들을 안치한 후에 위에는 상당히 많은 돌로 둘레를 쌓고(護石) 흙으로 커다란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국, 일본에는 없는 무덤이다.

원래 북방 초원(스텝) 지역에서는 유력자가 죽으면 그가 생전에 살던 통나무집을 돌과 흙으로 그대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스텝지역의 적석목곽분을 파보면 난방시설의 흔적도 남아 있고 심지어 창문도 발견된다.
신라 김(金)씨들은 그런 옛 전통에 따라 지상에 시신을 넣을 집을 일부러 짓고 그 위에다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반구형(半球形) 봉분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적석목곽분은 세월이 지나면 목곽 부분이 썩어 주저앉기 때문에 적석 중앙 부분이 함몰되어 낙타 등처럼 된다. 봉토는 거의 대부분 원형인데, 적석시설이 상당히 큰 규모이고 그것을 둘러싼 봉토 또한 대규모여서 신라의 고분이 고구려나 백제지역의 고분에 비해 상당히 대형화한 요인이다. 원래 적석목곽분은 평지에 조성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경주, 창녕, 동래 등지의 경우 구릉지에 조성된 것도 있으며 대체로 적석목곽분은 무덤의 구조상 도굴하기가 비교적 어려워 원형이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적석목곽분은 4∼6세기 6대에 걸친 마립간 시대(내물-실성-눌지-자비-소비-지증마립간, 간이라는 칭호는 북방기마민족들이 주로 사용)에만 나타나는데 이를 만든 신라김(金)씨 왕족의 뿌리가 대초원지대의 기마민족이라는 기록을 증빙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적석목곽분이 아시아 최동단 중에서도 가장 남쪽인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세계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북방기마민족이라면 서쪽으로는 스키타이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몽골지역까지 초원을 근거로 하여 농경민과 수없이 혈투를 벌인 것으로 추정하는데 신라와 같이 전형적인 농경문화 지역에서 전형적인 북방기마민족의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적석목곽분의 원형 통나무집. 북방지역에서 흰자작나무로 지은 통나무집은 죽은 사람의 무덤을 만드는 기본구조이다. 이런 통나무집에 관(棺)과 부장품을 넣은 다음 그 위로 자갈돌을 쌓아 덮는 것이 적석목곽분이다(김정배 사진).

여러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신라인의 구성은 여러 민족이 여러 시기에 걸쳐 혼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진(秦)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해 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고구려에게 멸망당한 낙랑(樂浪)에서 내려온 사람들 등이다.

그런데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의 사정은 급변하고 있다. 삼한(三韓)은 사라지고 백제와 신라, 가야연맹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신라는 356년 내물왕 즉위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등 고대 국가의 모습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내물왕 26년(381) 신라는 북중국의 유목민족 국가 전진(前秦)에 사신을 보낸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전진의 황제 부견(符堅)과 신라 사신 위두(衛頭) 간의 대화가 기록돼 있다.

‘부견이 위두에게 묻기를 “그대의 말에 해동(海東:신라)의 형편이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하니 무엇을 말함이냐”고 하니 위두가 답하기를 “이는 마치 중국의 시대변혁·명호개역과 같은 것이니 지금이 어찌 예와 같을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이 기록에 대해 지금까지는 신라가 내물왕 시기에 들어 나라가 크게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답변이라고 풀이해 왔지만 일반적으로 시대변혁·명호 개역은 단순히 나라의 체제가 정비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격변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전까지의 석(昔)씨 임금 시대가 끝나고 외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모든 면에서 과거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음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내물왕 이후 석(昔)씨는 신라 역사의 주류에서 사라진다. 왕은 물론 왕비나, 재상, 학자, 장군 가운데서 석씨는 찾아볼 수 없다.

신라 김씨보다 역사가 오래된 석씨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석씨는 대단한 희성인데 이는 내물왕 집권기에 석(昔)씨가 철저히 제거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이 경주의 적석목곽분 출현을 마립간시대에 북방기마민족이 신라지역에 들어와 지배계급이 됐음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고 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이종호 / 과학저술가>

Shanti,shanti, shanti, Meaning of the Shanti

2009.05.09 13:22 | 퍼온글 | ecophal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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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 Shanti Shanti Shanti meaning of the shanti mantras :

옴 샨티 샨티 산티 는 무엇을 뜻하나

The mantras chanted in Amma's ashrams at the end of arati and archana are called shanti mantras

1. Therefore to conclude each one   , "shanti," which means "peace," is chanted three times.

As a spiritual aspirant, one   chants shanti in desire for the occurrence of circumstances conducive to a spiritual education.

But these mantras can be chanted for peace in a general sense as well. Shanti is chanted thrice not for emphasis but because disturbances are of three distinct categories. In Sanskrit, these are referred to as adhi-daivikam, adhi-bhautikam and adhyatmikam.

Adhi-daivikam literally means "mental disturbances that come from God"—i.e. things that are utterly beyond our control: hurricanes, earthquakes, volcanic eruptions, floods, tsunamis, etc. We have no control over these types of disturbances. So when we say the first shanti, we are praying, "O God, may we be protected from these obstacles that are beyond our control."

Adhi-bhautikam literally means "disturbances that come from the world." That means anything stemming from the world around us—mosquitoes, noisy neighbors, barking dogs, the phone ringing, family arguments. As opposed to the first category, we have some control over this second category of disturbances. We can use mosquito repellent, we can call the police on our neighbors, we can turn off the phone, we can leave the place altogether, etc. So this shanti means, "O God, may we be protected from the people and surroundings."

The third type of disturbance is the most powerful and, at the same time, the onl   y one    over which we have total control. Adhyatmikam means "disturbances stemming from the self." For one    who is still identified with the ego, the people, places and things of this world stimulate one    of two reactions in the mind—attachment or aversion. Whether we physical see someone we consider our enemy as we walk down the street or remember him during meditation, the mental turbulence that results is the same. Lust, jealousy, anger, sorrow, hatred destroy our peace. During meditation, pleasant memories also distract us. Hearing the sound of a jet plane flying overhead may mentally carry us off to a fabulous holiday we onc   e took. Onl   y after 10 minutes of daydreaming do we realize we have lost focus on our object of meditation.

In fact, Amma says that the ego is the onl   y true obstacle to mental peace. This third shanti is therefore the most important one   , because even if we are free from outside disturbances, if the inner realm is not calm we will never know peace. Conversely, onc   e we have found inner peace, no external force can ever disturb us. So chanting this third shanti is akin to praying, "O God, please remove all the inner obstacles."

There is one    more element to the three-fold chanting of "shanti," and that is the silence that follows each repetition. If chanted properly, this silence is the emphasis: shanti... shanti.... shanti....
This silence is representative of true peace, the peace of an Enlightened One    like Amma. For the spiritual seeker, peace is the goal. For an Enlightened One    peace has been realized as his very nature. To have be have equipoise in every situation in life verily is realization.

�Vedarat

from India

평화를 뜻하는 shanti 는

바로 해탈이며, 정신적 치우침과 무지 편견 욕망 번뇌 깨우침으로 얻으지는 참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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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산업기술 > 해양에너지




해양에너지는 중력 및 태양에너지가 파력, 해류, 조력, 온도차, 바람과 같이 여러 가지 재생 가능한 형태로 저장된 무궁한 에너지원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실용화 기술을 확보한 단계입니다.

국내에서도 2009년 254MW의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준공될 예정이며
2015년에는 강화에 세계 최대의 812MW의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2030까지 해양에너지로 2590MW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


셰계적 트렌드


●“원자력 필적하는 가격경쟁력 지녀”
스웨덴은 현재 영국, 일본 등과함께 파력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것으
로 평가된다.

시베이스드 역시 이렇듯 앞선 자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웨덴 내 해양에너지 단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뤼세실에 설치한 파력발전 시범단지를 보완해 인근 60여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수년 내에 파력발전단지 10곳도 추가 건설하겠다는 생각이다.

스웨덴이 갖고 있는 해양에너지의 잠재량은 연간 10TWh 정도로 추산된다.

스웨덴에 지어진 원자력발전소 12기에서 생산하는 전력량과 비슷하다.


시베이스드는 파력터빈을 대량생산해

중장기적으로 화석 에너지보다 가격이 저렴한 신재생에너지를

스웨덴 전역에 제공하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마츠 레이온은 “해양에너지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24시간 꾸준히 전력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신재생에너지원”이라면서


“파력터빈의 대량생산이 시작될 경우 ㎾당 0.05유로(한화
약 95원) 정도까지도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조금이 없어도 원자력에너지에

필적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해양에너지 잠재예상량

파력 발전 500,000 MW

해류 발전 50,000 MW

조력 발전 200,000 MW

염도차 발전 3,540,000 MW

해양에너지 /Searaser/파력펌프로 해수를 육상으로 이송시키다

2009.04.19 12:48 | 퍼온글 | ecophal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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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East hope for wave energy (중동국가가 원하는 파력에너지 기술)

See how Searaser works

영국 BBC방송 2009년 4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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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인 저탄소 녹색성장기술

바다의 무수히 출렁거리는 파도의 상하운동을 SEARASER 라는 파력펌프를 이용하여 해수를 20킬로 이상으로 고압수로 변환시켜 육지로 고지대로 이송시켜 이를 저장시키거나 낙하시켜 수력발전을 하고 역삼투압 담수필터를 통과 시켜 담수로 만드는 획기적인 기술개발 성공

장점:
1.바닷물을 육지로 이송시키고 있는 기존 양식장에 즉각 사용가능하며, 기존 전력을 사용치 않음
2. 육상의 고지대로 저장(탱크 호수등)시켜 이를 낙하시키며 전력(수력발전)을 생산함
발전시키고 바다로 배출되는 해수를 가두리 양식장에 공급시 (전력절감/청정에너지 발전)
3.발생된 고압해수의 압력은 염분을 제거하는 역삼투압 장치(담수 설비)를 통과가능/ 담수 생산
4. 담수화된 물을 용존 산소농도를 높히는 한국개발기술인 AAG( 수중산소주입장치)를
산소농도가 풍부한 물로 전환시켜 식수로 사용( 농경용수 산업용수등)
5. 투자대비 경제성높은 고효율의 청정에너지 발전/ 물부족문제 해결

6. 한국 도입 최적기술
극심한 물부족해결/ 양식장 전력절감/ 원전에 맞먹는 저렴한 발전 원가

A Devon inventor is hoping to make a commercial version of his wave energy machine in the Middle East.

Alvin Smith, 62, from Dartmouth, said he has had some "serious interest" from a number of Gulf countries.

발명자 영국인 알빈 스미쓰(62세)

The Searaser machine works by using wave energy to pump water up to container tanks and the water is then released to a hydro-electric turbine.

He says the advantage of his system over many other wave energy machines is that there is a controllable supply.

Former garage mechanic Mr Smith came up with the idea after developing a number of wave energy systems.


The Searaser system is tested off south Devon

He has now patented the Searaser which he believes, with 11,000 machines, could provide enough power for UK domestic needs.

11,000 대를 설치하면 영국 전역에 전력을 공급 할 수 있다.

The system has been tested off south Devon with the financial support of three local businessmen.

상업적인 시험 발전 성공적으로 끝나,,,

영국 BBC방송 (2009년 4월8일) :

south Deven(남 데본) 비치 해변가의 50cm 의 작은 파도의 출렁이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해수를 해발 50 미터 육지 언덕위의 탱크에 올려담아 낙하시켜
백사장에 설치된 펠톤수력발전기를 돌려 세계최초로 전기기구에 불을 밝혔다.

He is now negotiating a contract to construct the first Searaser system in the Middle East, although talks are an early stage and he will not reveal the names of the interested countries.

현재 발명자인 알빈 스미쓰는 중동지역에는 최초의 씨레이져 씨스템을 적용하는 계약을 협상중에 있으며, 이 기술에 흥미를 갖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한다.

He told BBC News: "If you think of the power in waves to lift a 500-tonne ship and harness that to pump water, you have an amazingly powerful resource.

"When you combine that with hydro-electric power, creating a constant, controllable power, you have something that could answer the world's and not just the UK's energy problems."

발명가 알빈 스미쓰는 끊임없고 무한대에너지인 파도도에너지를 이 기술과 수력발전과 연계하여조합한다면,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

A question remains on getting planning permission to site many containers or water towers to feed the turbines, but Mr Smith says the potential of the system outweighs planning concerns.

He said: "The potential is enormous. We have plenty of waves around the west coast of the UK and plenty of seawater. There is an abundance of energy there which we have got to use."

해양에너지인 파력에너지는 거대하며, 영국의 서해안은 엄청난 숫자의 파도를 가지고 있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우리는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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