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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7/28
 

노무현의 죽음 ,,,,,순교자인가

2009.05.24 18:01 | 내가쓴글 | ecophalt21

http://kr.blog.yahoo.com/hjk5607/1292 주소복사

필자가 인도에 출장와서 두가지 엄청난 일을 직접 보게 된 일이 있다.

하나는 인도의 2009년 총선이었으며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suicide)사건이다.

11억 인구에서 7억명이 넘는 유권자가 직접 선거로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여
평화적으로 5월13일 끝이 났다.

현 지구상에서 단일 국가에서 최대의 유권자의 직접선거이다.

모든 선거는 전자투표를 하였으며, 전자개표는 실시간으로 인도의 각개의 공용언어로 중개방송하였다.

7억명의 유권자 투표 결과가 자정쯤에 그 결과를 보여 주었다, 인도 IT 기술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지난 5월 16일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집권당으로는

소니아 간디(여자)가 총재로 있는 CONGRESS 당이 있는 UPA 정당연합이 압승을 하였고
그 이후 바로 차기정권의 조각이 그 정당연합에서 어떻게 내각을 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당연합당끼리 상호합의 하에 각자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장관등을 배분하는 행위 (PORTFOLIO)를
콩그레스 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와 만모한 싱 총리의 주도하였다.
이것을 인도의 주요방송인 NDTV등에서 연일 TOP NEWS 로 보도되고 있다.

집권당에서 선출된 만모한 싱( Manmohan singh)총리는 연임을 하게 되고
그에 의해 추천된 임명돤 장관들은 장관직 선서를
대통령궁에서 현직 대통령(여자)앞에서 선서(OATH)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것을 흥미있게 보았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으로 부터 나오는 대통령제를 하는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게 되어 아주 흥미 있게 지켜 보고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의원내각제의 선출 과정을 적나나하게 방송되는 것을 보고 적잖히 놀랐다.

인도의 민주주의는 오래되었다.
영국으로부터 1945년 독립후 초기부터 영국처럼 인도는 의원 내각제로 출발을 했다.
즉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다수가 있는 당이 정권을 갖는 것이고
그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권력은 없지만 상징적인 대통령도 있다.

건국 초기 총리는 그 유명한 네루 수상이었다.
그는 무폭력 저항의 마라트마 간디와 달리 영국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주장하고
수차례 감옥에 투옥경험이 있는 인도 독립의 영웅이기도 하다

현 집권당 총재인 소니아 간디는
이 당을 창당한 초대 총리인 네루 간디와 부인인 인디라 간디 사이에 태어나 딸이며

그녀의 남편도 인도의 집권당 총리엮던 라지브 간디였다.

그녀의 남편인 리지브 간디도 어머니, 인디라 간디처럼
남편을 티밀반군에 의해 암살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인도는 과거 미국소련의 냉전의 각축에서
독자적 제 3세력의 독자노선을 주장한 국가들의 중심(반둥회의)이었다.


그러던 인도가 변화를 시작하엿다.

그녀의 Congress party(국민의회당)은 지난 집권 5년동안 년 성장율 9%를 달성하였다.

그 당이 좌파(Left) 성향으로 ( 사회주의,공산주의) 인도를 이끌어 온것을
우파(Right) 시정경제 글로발 경제의 중심으로
바꿔놓은 것이 재집권의 발판이다.

(편집자주: 인도 콩그레스당은 과거 좌파 공산주의 당과 정당연합 정부를 구성)

그 이후 뚜렷한 경제 성장을 직접 피부로 국민들은 보았던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명분과 낡은 이념투쟁이 아니라 일자리와 빵의 해결과 오늘보다 낳은 삶이었다.

수도권 뉴델리에서 만나는 국민들 거의가 복잡다단한 인도를 이끌어 갈수 있는

당과 지도자는
인도의 진정한 경제발전과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콩그레스당과
타협과 양보의 정치인 쏘니아 간디와 청렴하고 노련한 경제 전문가 만모한 싱 총리라고 한다.

그 모든 것이 평화적이고 민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 져 가고 있는 것에
필자는 인도의 민주주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또한 필자는

이것을 우리나라와 정치제도와 비교하면서 흥미와 주의 기울이면서 방송을 지켜 보고 있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

인도에 오기전부터 한국의 주요한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 비리에 대해

검찰은 스포츠 중개방송하듯이 수사결과 발표하고

국민들은 솔직하지 못한 인간 노무현의 순수성에 대해 적젆은 배반감을 가지고

그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 그의 반대자들은 그것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

검찰과 언론, 국민 감정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정신적 부담을 주었으며

그러던 그가 자택 뒷산 절벽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미국 CNN, 영국의 BBC 헤드라인 뉴스를 보고
너무나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필자는 그 상황이라면 그가 자살밖에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얼핏 지나갔다.

그가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 바에는 그 자신이 죽음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민과 역사에 자신의 참을 보여주는 길을 택하였다.

전 정권 모든잘못이 그에게 짐을 지우진 그 상황에서
탈출구는 오로지 육체적인 생명을 마감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끝는
자살만이 최선의 최후의 선택이지 않았나 본다.

필자가 이런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인도에와서 인도의 정권 구성과정을 보면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보게 되었다.

총선후 국가 권력의 생산과 분배 등을 보면서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비리와 부패의 악순환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에 문제가 많다고 행각을 하는 중이엇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자살한 그의 죽음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즉
사람을 살리고 죽일수 있는 생사 여탈권을 가질수 있는 국가 최고의 권력과
또한 국가간 협력과 초 경쟁시대에 한 국가의 운명과 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통령 혼자 책임지기에는 벅차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누누히 보아 왔듯이 일인에게 집중 권력은 필히 부패하게 되어 있다.

그것의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그러하였다.

그는 집권 초기에 주장하기를 기존의 모든 잘못된 고리를 과감히 쇄신하는 것이
그의 대통령 당선의 의미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의 정권과 그의 정당인 열린 우리당은 철저히 버림를 받았다.

그 가 실패한 이유는 정치라는 것과 권력이라는 것을 다룰 줄 모른 미숙아 였기 때문이었다고
그의 정치적 동반자가 반성을 하였다.

그는 어쩌면 기존의 한국정치의 잘못된 프레임을 완전히 바꿀려고 한 정치적 반항아 였는 지 모른다.

수십년 감정의 골이 깊은 지역 선거판세, 학벌과 지연에 그리고 대기업, 국가조직에 의한 선거 개입

고질적 우편향 보수언론과 정치 검찰과의 전쟁에서

그는 모든 것을 보통사람 서민의 입장에서 저항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는 대통령제의 잘못돤 문제를 보여준 순교자일수도 있다.

그는 집권시 그러한 실험을 한것으로 보여질수 있다.

이해찬총리의 내치 와 정동영 장관 외교 안보통일의 권력 배분을 통해서
그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것이 엄청난 실패를 가져다 준것으로 정치인과 국민들은 알고 있다.

대통령제의 문제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오죽 하였으면 야당인 한나라 당과 연정(정당연합)을 하자고 하였을까,

그가 대통령을 해보니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것도 잠재되어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을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는 배척을 받았다.

그는 그것이 싫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 결과 가 그를 죽음으로 이르는 업보를 만들고 쌓여 온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미국의 상하원제나 인도,영국,
의원내각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 군사독재시대와 달리 우리의 국민성의 역량도
정부 주도적으로 일방적으로 매도에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시대가 아님을
국민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10년에 걸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등의 좌파의 정권도 지내보니
그것의 장점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것이다.

나라을 사랑하는 스스로의 자발적인 참여가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우리는 경험을 하였다.

의원 내각제의 정부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국민과 정치권에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노무현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이 대통령제 하에서 다른 전직 대통령이나 수뢰 정치인의 수뢰금액에 비해서 죄가 가벼운 것이 아니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

그가 죽음으로써 그가 재임중 저지른 범죄 에대해 공소권 중지가 될 것이다.

그것과 별도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장례절차등을 정부는 추진할것으로 본다.





이글을 마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폄하할 의사는 없으며

그의 생전의 자유 분방한 생각이

그 나름대로 애국의 방식과 우리국민을 사랑하는 면에서

그의 정권하에서 국민들에게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그의 개혁적 시도도 긍정적면이 있다고 볼 수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편협하고 일방적인 북한보다
민주화에 성숙하고 개방적으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가
더욱 나라를 강하게 한다는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좌우를 떠나 어느 한족으로 치우치지 않고 냉정히 우리사회를 돌이켜 보면

그의 삶의 가치관과 정치적 실험이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도 주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대통령제의 잘못된 제도에 대한 첫 순교자라고 본다.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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