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유전정보를 구성하고 있는
염기의 순서가 정확히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인간의 달 착륙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게놈프로젝트
결과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인류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진단, 예방,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를 부를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신약과 새로운 치료기술 개발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측됐었다. 따라서 이번 발표에서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들은 다른데
있다.
유전정보에 관한 한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모두
오묘할 정도로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에서 2개의
숫자, 즉 2진법을 이용하여, 그림, 정보 등을 만들 듯이 생명체는 A, G,
C, T라 불리우는 염기 4개의 순서를 적절히 배열하여 여러 가지 단백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유전은 물론 각종 생리현상, 정신, 행동, 모습
등까지도 조절하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통해 인간은 약 31억개의 염기가 있으며 이 안에 약 3만
5000여개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실험동물로 흔히
쓰이는 초파리 보다 겨우 2배 정도 많은 숫자이다. 인간의 우월성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여
왔는지를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생명체의 복잡성과 유전자 수나 염기서열 수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초파리가 1만 40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는데 어떻게 사람이
3만여개밖에 안되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를 해석할 과학적 근거는 이미
많이 있다. 얼마 전까지 학자들은 1개의 유전자가 1개 단백질을 만들고
이것이 1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근 1개
유전자에서 여러 가지 유사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음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1개 유전자가 여러 기능을 할 수도 있는 것도 알려져 있다. 즉
1개 단백질이 여러 기능을 하기 때문에 유전자 1개당 세 가지 기능만
해도 사실상 수만개의 유전자가 추가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등동물일수록 유전자들간의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간에 순열조합을
이용하여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도
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인간 유전자의 역동성이다. 31억개로 구성된 염기 중
3만여개만이 유전자를 구성하므로 실제 기능이 있는 부분은 전체
유전정보의 2% 미만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나머지 98%는 용도가 없는
폐기물(junk) 정도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통해 그 안에
무수하게 많은 진화의 흔적과, 자기 위치를 여기 저기로 바꾸며 날아다닐
수 있는 '유동성' 유전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 게놈 안에 지난 수억년간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다는 것과, 진화
과정에서 유동성 DNA가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진화를 박테리아→하등생물→ 고등동물→영장류→인간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결과를 통해
일부 유전자는 수백만년 전 박테리아로부터 인간에게 직접 (즉 다른
동물을 거치지 않고)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밝혀졌다. 인간이
박테리아로부터 유전자를 '탈취'한 것이다. 즉 생명체들은 필요하다면
진화의 순서를 뛰어 넘어 다른 생명체로부터 유전자를 수시로 취득한다는
것이다.
이제 게놈연구는 여러 방향으로 급진전할 것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유전자들의 기능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데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간의 차이는
0.1% 미만으로 추정된다. 이 차이를 통하여 질병 발생을 예측하고 각
사람에게 알맞은 소위 "맞춤 의학"이 가능할 것이다. 이로 인해 의약품
부문은 물론 각종 신규산업과 시장이 창출되고 정보통신 부문과 접목되어
새로운 물결이 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바이오테크는 고수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장기투자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게놈 키워드
■유전자(gene) =염색체 내에 특정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하나의 단위.
■염색체(choromosome) =유전자 등을 담고 있는 DNA와 단백질로 구성된
특수한 구조. 세포 핵 속에 존재하며 1쌍의 성염색체를 포함,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DNA =아데닌, 구아닌, 티민, 시토신 4개의 염기 조합으로 이뤄진
이중나선 구조로 이 염기 배열 순서에 따라 인종·성격·체질 등의
유전정보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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