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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우리 일본에 주면 어떻겠소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일본 총리와 외무대신이 역설적으로 실토한 새로운 증언 녹취 테이프가 발견됐다  | ▶1965년 시나 일본 외상(왼쪽)을 만나고 있는 이동원 전 외무장관. |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군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1965년 당시 이동원 외무장관과 일본 시나 대사의 대화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 장관의 생전 녹취록을 통해 확인됐다.
독도 문제는 이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는 박스 기사와 함께 광고가 실리고 AP통신은 독도에 기자를 직접 보내 르포 기사를 타전하면서 ‘독도는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미래의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역사적인 문제’라고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유럽연합(EU) 여러 나라는 방송매체들이 독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보여주며 한·일 간에 외교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독도는 일본이 어제오늘 시비를 걸었던 게 아니다.
2005년 8월 외교통상부가 40년 동안 어둠 속에 가둬뒀던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도는 가치 없는 섬이니 폭파라도 시켜서 없애버리자” 또는 “독도를 공군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해 흔적도 없이 만들면 양국에 문제가 없을 것 아니냐” 등등의 발언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퍼졌다.
‘김종필 발언’이라고 했던 것은 1962년 8월 열린 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에서 일본 외무성 이세키 아주국장이 했던 발언이라고 외교문서 대화록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일본 측의 간교한 공작은 지금도 유형과 수법만 다를 뿐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일본 총리와 외무대신이 역설적으로 실토한 새로운 증언 녹취 테이프가 발견됐다. 지난 65년 한일협정 체결의 주역이었던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이 일본 측 협상 최고위 관계자와 나누었던 회고담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독도 관련 내용이 나온 것이다.
녹음은 1989년 2월 22일 서울 평창동 사저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당시 필자의 질문과 함께 이 장관의 발언을 녹취된 그대로 공개한다. 다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필요한 날짜와 설명을 덧붙인다.
“외로운 섬 얻어다 뭘 하겠단 거냐”
-독도문제가 한일회담 때 쟁점이 되지 않았습니까? “시나(椎名悅三郞) 외상이 한국에 왔을 때(65년 2월 17일) 선운각이라고 우이동에 요정이 있어요. 거기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시나 외상이 술병을 들고 오더니 날보고 따로 마시자고. 그래서 특별히 무슨 얘기가 있는가 싶어 둘이서만 같이 마시는데 나를 이렇게(표정 없이) 보더니, 이 장관 부탁이 하나 있다 이겁니다. 뭡니까 했더니 ‘다케시마 문제 가지고 일본 정계에서 골치 아프다, 그 보잘것없는 문제 가지고 일본에서 아주 골치 아프다, 그걸 일본에 주면 어떻겠소.’ 그래요. 내가 술잔을 비우면서 잠시 그냥 웃었지.
나는 또 특별히 뭐 한일회담 문제로 얘기가 있나 했단 말이오. 술 한잔 더 하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을 했어. 뭐 이런 양반이 다 있나, 자기 입으로 보잘것없는 문제라고 하면서 중요한 한일회담 문제를 놓고 말이지. 기분이 좀 상하더라고. 그렇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내가 일본말 다케시마를 알고 있어요. 모른 척하고 ‘다케시마가 뭡니까? 달라고 하는데 먹는 겁니까?’ 그랬더니 시나가 ‘야, 그건 먹는 게 아니고 영토다!’ 소리를 꽥 쳐요. 하하하. 나하고 나이 차가 많잖소.
그래서 내가 아, 당신이 얘기하는 게 독도 얘기냐. 그러면서 ‘나한테 (독도를)일본에다 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는데, 독도 주인이 일본이라고 생각한다면 달라고 할 게 뭐 있습니까. 주면 어떻겠냐고 묻는 거 보니까 한국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는 건데, 골치 아프다고 하는 게 이상한 놈들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나도 씩 쳐다봤어, 하하하.”
-정곡을 찔렀군요. 시나 반응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던지 또 이렇게(표정 없이 올려다보다) 보더니 술만 마시데요. 그래서 내가, 독도에 가본 일이 있습니까. 없다.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지도에서 잠깐 본 일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본 일이 있습니다. 사실은 나는 거기에 가본 일이 없어요. 그러나 가본 일이 있다고 했더니, 거길 가봤느냐? 한국 연해에 있는데 배 타고 가봤다.
조그만 섬인데 거기는 사람도 안 살고 개도 안 산다. 왜 사람도 안 살고 개도 안 사는 섬인지 아느냐, 너무 위태롭고 절벽이고 너무 외로운 섬이 돼서 아무도 안 산다. 그런데 일본 정치인들은 이상한 사람들 아니냐. 그렇게 위태롭고 외로운 섬을 얻어다가 뭘 하겠다고 그러는 거냐. 하하하. 그랬더니 시나가 픽 웃어요. 그러고는 더 말이 없어서 말아버렸어요.”
사토 총리가 다시 일본 영토 주장
-그 이후에는 독도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습니까? “시나하고는 더 얘기가 없었고, 나도 그 양반 성격을 잘 알지만 그 양반도 나를 잘 압니다. 이건 그 양반을 좀 설명하자니까 하는 얘긴데, 일본에서 시나 외무대신이 한국에 온다고 결정이 됐을 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공식적으로 일본 외무대신이 한국에 오는 건 그때가 처음이오. 한 번도 없었소.
매번 우리만 갔지 말이야. 너희들이 안 오면 나는 안 간다 그랬거든, 하하하. 그래서 오는데, 그때 내가 오는 건 좋은데 우리 국민에게 한마디 해야 할 것 아니냐, 나는 사과를 시킬 작정이었거든. 내각에서 자기들끼리 싸움이 요란하고 말이오, 하하하. 그런데 시나가 거물이오. 과거 잘못된 역사에 대해 일본은 깊이 반성한다고, 반성문이죠. 그걸 시나가 직접 쓴 겁니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거 아니냐,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사과하는 걸 가지고 왜 시끄럽게 하느냐, 그래서 입국장에서 직접 발표한 거요. 그런 양반이고, 처음 한국에 오는 일본 외무대신인데 공식 사과해야 할 거 아니냐고 내가 고집하는 것도 봤단 말이오. 그래서 서로가 잘 알아요. 독도문제도 그래서 시나하고는 더 얘기가 없었어요. 그랬는데 내가 일본에 갔을 때(65년 6월 22일) 총리관저에서 얘기가 다시 나왔어요.”
-사토 총리하고 독도 문제를 거론하셨다는 겁니까? “마지막 조인식 하기 직전이지요. 정식 조인식은 시나 외상하고 내가 하는 건데, 사토 총리가 잠깐 자기 방에서 만나자고 하데요. 그 방에 들어갔더니 시나도 거기 앉아 있어요. 나는 전혀 예상을 못했지. 더구나 시나까지 거기 있으니까 독도 얘기가 나올 거라는 건 전혀 뭐. 그런데 사토 총리가 날보고 농담을 한참 걸더니 종이를 하나 꺼내요. 사인 좀 해 주시오. 이게 뭡니까? 그
냥 웃으면서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국제재판에 붙이겠다. 그걸 양국이 합의한다…’ 그런 내용이에요. 거기에 날보고 사인하라는 거예요. 참 이상하데. 총리가 말이야. 웃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내가 총리보고, 내가 알기에는 독도가 옛날부터 한국의 영토인데 총리실에서 사토 총리의 명령에 의해 지금부터 독도는 일본 것이다 하면 그게 옛날부터 일본 것이 됩니까? 그랬더니 시나도 웃고 사토도 웃어요.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전에 시나 외상에게도 말을 한 적이 있지만 보잘것없는 외로운 섬입니다. 이건 없었던 일로 하시지요. 그러면서 간신히 넘어갔어요. 한 번 시도를 해 본 것 같고…. 국가를 대표하는 외무장관이 정색을 하면서 발언하면 접지요.
시장바닥에서 싸우는 사람처럼 네가 옳다, 내가 옳다 그렇게 안 하는 거지요. 다케시마 문제는 그렇게 넘어갔어요. 그 문제 가지고 정식으로 외교협상을 한 적도 없고. 지금까지(녹음시점)도 정식으로 외교협상을 한 적은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시나 외상하고 술을 마시다 한 번 하고, 일본에서 사토 총리가 말해서 하고, 그뿐이지.”
이호 이코노미스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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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할 우리땅 독도 일본어로 '다케시마'라고 하는 독도는 울릉도의 동남쪽으로 부터 약 200리에 위치한 동도와 서도, 이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분명한 우리의 영토이다. 이런 독도가 우리에게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는 것은 독도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여 동해안 어업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의 근해는 청정수역으로 관광 및 해저 지하 자원 개발등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독도는 오래전부터 한일 마찰의 근원지였다. 특히 최근 일본과 우리나라의 EEZ(Exclusive Economics Zone-배타적 경제수역)의 선포와 일본의 한국어선 나포사건으로 긴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인접 해양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면서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키자 일본이 국제 공법의 선점에 의한 합법적인 영토 취득이며 또한 독도가 자국의 영토와 더 가깝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독도는 자국의 영토라고 하는 말도 안되는 항의를 해 옴으로써 발단이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독도 의용 수비대의 3년 동안의 활약상은 전설적인 실화로 전해져 내려 온다. 1953년 울릉도 출신의 전역 군인들이 상사 출신인 홍순칠(1987년 작고)씨를 대장으로 하여 우리 시대 마지막 의병의 기치를 내걸게 된 것은 단지 일본이 6.25 동란의 혼란을 틈 타 독도에 일본령이라고 하는 영토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정부에서는 그들이 갖은 고생을 하며 지켜낸 독도에 대해 우리 땅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일본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젊은 날을 독도에서 보냈던 독도 의용 수비대원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보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는 한일 양국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독도에 대한 촬영이나 방송, 그리고 독도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금지해왔다.
한 예로 1982년 정광태씨가 불러 독도에 대한 상식의 국민적 홍보라는 면에서 크게 공헌한 "독도는 우리 땅"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눈치를 의식한 당국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또한 한국 산악회 소속의 한 산악회가 울릉도 청년들과 함께 독도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고 신청하자 일본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더 웃기는 것은 지상에는 설치할 수 없고 독도 해면 아래에는 설치해도 좋다고 하는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일본을 자극하고 또 무엇이 한일 양국관계를 악화 시킨다는 말인가? 우리 땅을 사랑하자고 부른 노래가 그리고 우리의 영토에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는 것이 일본을 자극한다는 것인가?
오늘날 독도가 이와 같은 위치에 처한 것은 제3공화국 이래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펼쳐온 정치권이 독도 문제를 마치 바둑판 위의 돌과 같이 정치적인 흥정물로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앞서 그동안 문제를 만들어 온 한일 어업 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협정마저도 독도를 한일 공동 관리 수역에 포함 시킴으로써 우리 스스로 독도가 영유권 분쟁의 대상 지역임을 시인한 셈이 됐다.
일본이 그동안 우리에게 저질러 온 죄는 너그럽게 용서하더라도 과거의 치욕만큼은 잊어서는 안된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을 어떤 이는 반일 감정 또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수주의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일감정도 그리고 국수주의도 아닌 단지 이제부터라도 우리 것은 우리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또한 우리의 힘으로 그것들을 지켜 나아가자는 것이다.
동해 (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라고 주장하는 일본, 그리고 독도를 자신들의 땅인 '다케시마'라고 하는 일본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신라 이사부 이래 조상 대대로 지켜온 독도는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귀중한 국토이며 앞으로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 줄 소중한 유산이다.
이제는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서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다시 뛰는 한국, KOREA Fighting!
사랑법 16 -독도- | - 김송배 | 내 살 한 점 떼어내어 먼 동해 바다 한가운데 꿈으로 던져 놓았다. 파도가 높고 가끔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면 그냥 외롭게 내 품속이 그리워 바닷새처럼 잠들 수 없었다. 억겁의 세월을 아픈 역사로 견디며 그대가 나를 그리듯 나 또한 수평선 너머 해뜰녘 한 아름 정갈한 빛으로 그대를 향한 해풍에 씻긴 마알간 영혼, 동도(東島) 서도(西島) 두 점 꿈으로 다시 일어서서 지금 내 분신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 동남방 92킬로미터 지점, 침묵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그대의 자존심, 아아 내곁에 머물던 저 별빛 쏟아져 작은 꽃송이로 내 품 가득 향기로 채우는데 그대여 파도 몸살 사이 간혹 저 왜구의 탐욕 물리치며 나는 마냥 사랑이 넘실넘실 그대의 체온을 느끼면서. | | 동해의 불꽃 | - 강민 | 독도는 외로운가 아니다, 7천만의 눈망울 초롱초롱 그를 보듬고 지키고 있다 독도는 외로운가 아니다, 모진 풍랑에 시달려도 짙푸른 동해의 눈부신 해돋이 하나로 다시 살아난다 독도는 굳어 있는가 아니다, 험한 바위덩이로 묵묵히 솟아 있어도 끼룩끼룩 갈매기 때지어 노래 부르며 그 굴레 풀어내고 다시 살아난다 누가 이 땅을 감히 넘보는가 7천만의 눈망울 초롱초롱 쏘아보고 있다 무법의 독수리, 이리 떼 사납게 덤벼도 짙푸른 동해의 해돋이 하나로 불살라 버린다 독도여, 동해의 불꽃이여, 외롭지 않은 겨레의 섬이여! | | 하늘에 물어보라 | - 고진숙 | 하늘에 물어보라 대륙을 떠받들고 있는 땅, 그 인접 도서들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경륜 질서 축복을 따라 땅을 가르고 다시 잇고 또 가르시어 그것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임을. 아직도 무르고 있느 자들은 하늘에 물어보라. 동해 맨 끝땅 돌섬(독도)은 수십억 년 깎고 닦고 다시 광택을 입혀 이룬 백두, 태백의 막내땅임을 한눈에 보아 알 수 없는 자들은 하늘에 물어보라. 바위에 흙이 붙고 풀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지고 풀벌레 울음 소리에 날짐승 창공으로 날아 오르고 물속에 돋아난 돋아난 온갖 바닷말을 보금자리 삼아 떼 지어 노니는 물고기들이 평화를 창출하는 곳 꽃 피고 바람 부는 이 청결한 땅을 누가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려 하는가 하느님이 맡겨 주신 땅 아름답게 간직하고 지키어 그 거룩하신 섭리를 기다리고 따르는 슬기를 우리에게 주신 뜻을 영원히 잊지 않는 백성이 영원히 보전할 수 있는 것. 평화의 보루로 뽀족이 만들어 주신 이 땅을 누가 마음대로 짓밟으려 하는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자들은 하늘에 물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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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스런 유산 ,독도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한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게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 삼봉도(三峰島), 자산도(子山島) , 가지도(可支島)등이라 불렀다.
조선은 한때 백성을 보호하기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펼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땅 임을 확인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는 1900년 '칙령 제 41호'에 의해 울릉군에 포함되어 울릉군수가 관할하는 행정구역에 속하였다.
'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독도는 지증왕 13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영토로 편입된 것은 일찍이 신라 지증왕 13년(512)때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지증왕 13년 6월 울릉도에 자리하고 있던 우산국 (宇山國)이 신라에 귀복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왔음을 알수 있다.
우산국 사람들은 그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집단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 문화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들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듯하다.
이곳 사람들은 본토의 군선이 접근하면 가파른 산정으로 피해 귀복을 거부하며 살아왔는데,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로 있으면서 계략을 써서 굴복시킨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에 위치한 고대부족읍락국가(古代部族邑落國家)였으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와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독도는 일찍이 우산국지(宇山國地)의 일부였다가 지증왕 13년 울릉도와 더불어 신라에 의해 영유화 되었다.

이찬 이사부(異斯夫) 이사부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성은 심씨이다. 그는 지증왕 6년(505) 실직주(삼척)의 군주가 되었다가, 지증왕 13년에는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되어 우사국을 정복하려고 하였다.
우산국 사람들은 사납고 거칠었으므로 힘으로 굴복 시키기가 어렵자, 이사부는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그는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서 배에 싣고 우산국 해안에 다다른후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곧 사나운 사자를 풀어 모조리 밟혀죽게 하리라."하고 위협했다.
그러자,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가 생각했던 대로 순순히 항복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이사부는 그 후 진흥왕 2년(541)에 이찬(신라의 17등급중 둘째위계)이 되었고, 진흥왕 6년에는 국사 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건의하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2. 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지방 기구에 편입시키고 백성들을 옮겨살게 하였다.
930년(태조13년) 백길(白吉) 토두(土豆)등이 우산국을 대표하여 특산물을 바침으로, 조공에서 각각 정위(正位), 정조(正朝)의 관위를 수여함으로써 신라에 귀복되었던 울릉도가 그대로 고려에 복속(服屬)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15년(현종9년)에 동북여진이 우산국에 침입하여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자 관리 이원구로 하여금 농기구를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4년후에 또 다시 여진족의 약탈이 거듭됨에 본토로 피난 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명주(溟州:강릉)의 관리가 양식을 주어 이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성종때에 지방제도가 군현제도로 정비함에 따라,우산국도 고려의 한주현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1031년(덕종원년)에 우릉(羽陵) 성주의 아들인 부어내다랑(夫於乃多郞)이 조정에 특산물을 바쳤는데, 이때 조정에서 울릉성주라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140년(인종19년)에는 명주도감창사가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우릉도특산물을 임금께 올렸다. 이를 통해 우릉도 명주도감창사가 관활하는 지방조직에 편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1156년(의종11년) '동해가운데 우릉도가 있는데, 이 곳의 땅은 기름지며 주현을 설치 한때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백성들이 옮겨 가서 살게하고자 명주도감창전중내급사인 김유림으로 하여금 조사토록 한결과 '암석이 많아 백성들이 옮겨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함에 중지한일이 있었다.
이처럼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독도를 지방관제에 편입시키고 백성들을 옮겨 살도록 노력을 기울이는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 고려사절요 ] 의종 11년 조
3. 세종실록 지리지에 독도가 울진현에 속함을 밝혔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독도의 지리적 인식이 보다 분명해 졌다.
태종은 독도와 울릉도가 왜구의 침략을 받을 염려가 있고, 중앙의 직접적인 관리가 힘들어 치안 유지의 일환으로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썼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부들의 어로 활동이 계속되었고, 본토에서 도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종때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렀다.
1425년(세종7년)에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라는 직명을 주어 울릉도와 독도를 관장토록 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는 '독도(于山島)는 울릉도와 더불어 울진현의 동쪽바다 가운데 있고, 울릉도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아 바람이 잔잔하고 청명한 날이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우산(于山)으로 불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망하려면 120m높이의 지대에 오르면 가능하고, 성인봉 정상에서는 93마일까지 볼수 있다.
1439년(세종21년) 대마도의 수호 종정무가 평도전이라는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게 하고, 저들의 부락 사람들을 데리고 울릉도에 옮겨가서 살 것을 요청하기에 '저들이 국내에 있어서는 평상시와 같더라도 만약 국경을 넘어 갔을 경우에는 반드시 피해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성종때는 독도를 '삼봉도'(三峰島)라고 불렀다.
1476년(성종7년)에 김자주등 12명이 10일만에 삼봉도에 도착하였으나, 사람 30여명이 섬 어귀에 있어서 두려워 뭍에 오르지 못하고 7-8리 떨어진 곳에서 섬의 모양을 그려가지고 돌아왔다. 이로인하여 삼봉도가 울릉도가 아닌 별개의 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이섬이 종래에 우산으로 불려지던 독도였음이 분명해졌다.

섬이 세개로 보여 삼봉도라 불렸던 독도
숙종때는 독도를 '자산도(子山島)'라 불렀다.
1693년(숙종19년) 일본어부가 독도와 울릉도 근해까지 출현하여 어로활동을 하므로, 동래 어부 안용복(安龍福)은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가 조선의 고유 영토 임을 확인 받고, 일본어부의 울릉도와 독도 근해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이를 계시로 조정에서는 매3년마다 울릉도, 독도 지역을 샅샅이 조사하여 지도와 함께 보고토록 하였다.
정조 때에는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라불렀다.
울릉도 주민들은 물개를 가제(可支漁)라고 부르기 때문에 물개가 자주 나타나는 독도를 가지도라고 불렀다.
1794년(정조19년) 한찬국의 울릉도유민수색보고서에 [울릉도에서 가지도로 향해를 떠났는데 섬 가까이 이르자 네댓마리의 가제가 놀라 뛰어 오르는 모양이 물소 같았다. 포수가 쏘아 두 마리를 잡았다.] 고 하였다.
1876년 이후 일본 어민들이 독도와 울릉도 근해에 다시 출어하기 시작하자, 1881년 (고종18년)에 엄중 항의하고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았다.
1895년(고종32년)에는 도장(島長)을 도감(島監)으로 바꾸고 도감에 울릉도사람 배계주(裵戒周)를 임명하여 판임관 대우를 하였다. 조선시대의 독도는 분명한 지리적인식의 바탕위에 확실한 지방 행정조직의 관할에 속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 세종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조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개칭한 후(1897)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불법 침입 및 산림 벌채가 문제 되어, 조정에서 1899년 10월 조사단을 울릉도 파견해 보니, 일본인들의 집단적인 도래와 불법적인산림도벌이 심각했다.
조정에서는 [400여가구에 1,7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7,700여 마지기였다.]는 출장보고를 근거로,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 41호'를 공포하였다.
정부에서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인 칙령 제41호를 관보 제 1716호에 게재하고, 종래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를 묶어서 독립된 울릉군을 설치하고 중앙관리인 군수로 하여금 울릉도는 문론 독도까지 관활토록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칙령 제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鬱陵)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활(管轄)할 사]라고 규정 지었다. 이때 석도는 독도를 가르키는 말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돌(石)을 '독'이라고 하고 돌섬을 '독섬'이라고 하였다.
울릉도 주민들이 우산도를 '독도'(돌섬)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보고 받은 대한제국 조정은 독섬을 의역하여 석도(石島)로 표기한 것이다.
독도가 오늘날의 이름인 독도(獨島)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 (광무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 의한 것이다.
1906년 4월 일본 지방 관리들이 울릉군수를 방문하여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통보하자, 울릉 군수 심흥택은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편입되었다는 말을 하더라'라고 강원도 관찰사를 경유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1906년 4월 29일자 지령 제3호에 "독도가 일본인의 영지(領地)라는 일본인의 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부정하고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의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시 조사하여 보고하라 ." 고 지시하였다.

칙령 제41호
4.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을 지켰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주권을 되 찾은 대한민국은 1947년 한국 산악회가 중심이 되어 생물, 지리 등에 관한 학술조사를 실시하였고,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평화선'안에 독도를 포함시켰다.
1953년 4월 20일 홍순칠등 33명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독도에 무단상륙하는 일본인을 물리쳤고 1956년까지 독도를 수비한후 울릉경찰서에 그 임무를 인계하였다.
1954년 8월 15일 처음으로 독도등대를 점등하였고, 세계각국에 등대 설치사실을 통보하였으며, 그해 9월 30일부터 10월 22일까지 대한민국 해군 수로국에서 독도를 측량하여 원도를 수로국에 보존하고 있다.
1961년 12월 26일부터 다음해 2월 26일까지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지형도작성을 위해 평판측량을 실시하여 축척 1:3,000의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1978년 한국 사악회에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연구]를 간행하였으며, 1981년에는 한국 자연보존협회에서 [울릉도 및 독도 종합학술 보고서]를 발감 하였다.
1980년 5월 건설부 국립지리원에서 항공사진측량법에 의해 1:1,000 및 1:5,000 대 축척형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1981년 제4차 학술 조사 연구 후 [울릉도 및 독도 종합 학술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 보고서는 독도에 관한 가장 자세하고 종합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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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독도는 화산 섬이다. 
백두산 화산대에 속하는 독도는 수심 2000미터의 동해 해저 지면에서 화산 폭발에 의해 솟아 오른 섬으로, 한반도와 연결된 하나의 지체구조이다. 독도의 서도에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수중 화산활동의 증거인 베개구조(Pillow Lava)가 발견되었다.
동도에는 분화구로 여겨지는 큰 웅덩이가 있는데 그 웅덩이에는 바닷물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수로(천장굴)가 뚫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독도의 생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독도는 신생대 제3기에 해당되는 약 460만 년 전에 생성 되기 시작하여 약 200만년에 걸쳐 바닷 속의 용암이 분출되어 형성된 화산체가, 약250만 년 전 바닷물의 침강작용에 의해 다시 둘로 나뉘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알려진 독도가 실은 울릉도보다 약 200만년이나 앞서 형성된 것으로, 독도가 우리나라 모든 화산 섬의 맏형인 셈이다.
용암체였던 독도는 유구한 세월 속에 비, 바람과 파도에 씻기고 깎이는 한편, 흙과 풀씨가 날려와 마침내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2. 독도는 34개의 바위섬과 암초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중 화산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독도는 나암 군도로서, 그 형상이 마치 어미 오징어(울릉도)를 찾아 헤매는 새끼오징어의 모습과 흡사하다.
독도는 서도를 비롯하여 독도를 수호하는 모습의 장군바위와 탕건바위, 물개바위, 삼건 조상바위, 부채바위, 삼형제바위, 김바위, 보살바위, 넙적바위 등 모두 34개의 바위섬과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초장년기 내지 장년기 지형인 독도는 섬 전체가 해암과 동굴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은 물론 자갈, 모래 등도 찾아 볼 수 없다.
독도의 해안선은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단애와 동굴로 이루어져 있고, 해저 지형은 수심 1500 ~ 2000미터의 평탄한 울릉 분지를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화산섬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데, 바닷물에 잠겨 있는 부분이 제주도보다 더 넓고, 해수면 위에 솟아 있는 부분은 전체의 1/100에 불과하다. 동도와 서도는 폭 110 ~ 175미터 깊이 10미터, 길이 330미터의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 행정지명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76번지 | | 경도,위도상의 위치 | 독도에서의 거리 | 동경 : 131도 52분 22초 북위 : 37도 14분 18초 | 울릉도 : 92 Km 휴전선: 150.93Km 죽변 : 217Km 포항 : 262Km 일본오키도: 157 Km |
독도의 땅모양
| 독도의 넓이는 경상북도의 약 10만분의 1이다. | | 구 분 | 넓 이 | 둘 레 | 최고높이 | | 동 도 | 64,698.0m2 | 1.94Km | 99.4m | | 서 도 | 91,740.0m2 | 2.10Km | 174.0m | | 그밖의 32개섬 | 29,735.0m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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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 | 186,173.0m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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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도
해안은 10 ~ 20미터의 단애를 이루고 있으나, 섬의 윗부분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섬의 동쪽 끝 부분에 깊이가 100미터정도 되는 컵모양의 분화구가 있는데, 분화구에서 바다까지 바닷물이 왕래하는 동굴(천장굴) 두 개가 있어 호수를 이루고 있다. 섬 중턱의 경사면에는 부분적으로 20~ 30센티미터 두께의 토양이 지표를 형성하고 있다.
서도
독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넓다. 경사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 있고, 해안 단면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북서쪽 해안의 물고 바위 틈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하루에 한 드럼 정도 고이는 물은 독도의 유일한 지하수로서, 독도에 살게 하는 첫째 조건이 되고 있다.
물골의 해안에는 제주도에서 온 해녀들이 붐빌 때도 있다.
3. 독도는 비와 눈이 많이 내리고 흐린 날이 많다.
독도는 난류의 영향으로 온난다습하고, 연중 비와 눈이 내리는 날이 많아 강수량이 많으며, 해무가 자주 끼어 맑은 날씨를 보기 어렵다.
연 평균 강수량은 1324밀리미터 인데 연중 고루 분포하여 일년 중 맑은 날이 겨우 57일에 불과하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월 평균 기온이 연중 영상으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잘 볼수 없다.
독도 및 울릉도 주변 해역은 겨울철에는 강한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에서 일본을 향해 바람이 불고, 여름철에는 약한 남풍계열의 바람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도 근해에는 동중국해에서 시작하여 남해안과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 북동향의 대만 난류인 흑조류의 영향으로 온난다습하다.
| 날 씨 | 맑 음 | 흐 림 | 비,눈 | 비 고 (회) | | 날 수 | 57 | 144 | 164 | 태풍(2) 폭풍경보(9) 폭풍주의보(41) |
4. 독도는 새들의 낙원이다.
독도는 남북으로 왕래하는 철새들의 쉬어가는 주요 휴식처이기도 하다. 독도는 대부분 화성암으로 이루어져 늘 수분이 부족한 뿐만아니라 소금기가 많은 강한 해풍이 불기 때문에 생물이 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사람은 물론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독도는 뭍에서 서식하는 짐승은 없으나, 여러 종류의 곤충과 해조류가 살고 있다. 독도 주변 해역은 난류가 교차하며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씨알도 굵다.
동 물
| 짐 승 | 1973년 경비대에서 토끼를 방목하였으나,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 | | 곤 충 | 잠자리, 집게벌레, 메뚜기, 매미, 딱정벌레, 파리, 나비 등 7목 26과의 37종이 서식하고 있다. | | 조 류 | 독도는 괭이갈매기, 슴새, 바다제비 등 해조류의 대집단이 번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새들이 봄이나 가을에 이곳을 거쳐가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관찰된 조류는 황조, 흑비둘기, 흰갈매기, 까마귀, 노랑부리도요, 딱새, 알락도요, 각도요, 큰유리새, 사솔새, 바다 직박구리, 긴발톱 할미새 등 모두 22종에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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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물
독도는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토양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비는 내리는 대로 배수되어 늘 수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생하는 식물의 종류가 적다. 그러나, 울릉도에서 씨앗이 날려 와 살게 된 75여종의 풀과 나무가 있다. 독도에 사는 식물은 키가 작아서 강한 바닷바람에 잘 적응하며, 잎이 두텁고 잔털이 많아 가뭄과 추위에도 잘견딘다.
| 초본류 | 민들레, 괭이밥, 섬장대 강아지풀,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질경이, 가마중, 억세군, 왕기털이, 우정 등 육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초본류가 살고 있으며, 동도의 분화구 주변 및 동쪽과 남쪽 암벽에는 도깨비쇠고비 등이 자생하고 있다. | | 목본류 | 해송, 바우수국, 사철나무, 개머루, 곰솔, 붉은가시딸기, 줄사철, 보리장나무, 가새잎, 동백 등이 있으나 조림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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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생물
독도 주변의 바다는 다양한 어패류와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우리 나라의 주요 어장이다. 1940년대 초반까지는 물개가 집단으로 서식하였으나, 미군기의 폭격 훈련과 어부들의 남획으로 사할린 쪽으로 떠났던 것이 요즘 몇 마리씩 나타나고 있다.
| 어패류 | 고래, 문어, 상어, 명태, 꽁치, 오징어, 새우, 전복, 소라, 해삼, 분홍성게등 다양한 어패류가 서식하고 있다. | | 해조류 | 남조류 5종 홍조류 67종, 갈조류 19종, 녹조류 7종 등 모두 102종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다시마, 미역, 김 등이 해중림을 이루고 있다. | | 독도 해조류 번식 | 정부에서는 독도 일원의 섬을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해조류 번식지'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독도에 서식하는 주요 해조류는 텃새인 괭이갈매기와 여름새인 슴새, 바다제비 등이다. 슴새는 줄어들고 있으나 바다제비는 늘어나는 추세이다. 괭이갈매기는 동도의 서쪽과 남쪽의 암벽에 집중 번식하고 있다. 이들 조류는 동북 아시아에 국한하여 번식하고 있어, 그 번식지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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