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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7/19
 

'민족문제연구소'의 민족 파괴(破壞)·자해(自害)와 그 파장(波長)

2009.11.03 12:05 | 해외의 한국 관련 | stmale

http://kr.blog.yahoo.com/heorn/1073 주소복사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완강(頑强)한 민간 단체는,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말기(末期) 이른바 '戰時體制下(전시체제 하)' 조선인(朝鮮人) 강제 동원(强制動員)을 '自進(自發)參與(協助)(자진(자발) 참여(협조))'로 왜곡(歪曲), 날조(捏造), 궤변(詭辯)을 일삼았던 일제(日帝)와 오늘날 일본 극우(極右) 세력이 강변(强辯)하는 타기(唾棄)할 궤변(詭辯)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궤(軌)를 함께하면서 수용(受容), 추종(追從)하여 스스로의 역사(歷史)를 가공(加工), 조작(造作), 훼손(毁損)하는가 하면, 객관 타당성(客觀妥當性)?일관성(一貫性)?형평성(衡平性) 등이 결여(缺如)된 자의적(恣意的)?편향적(偏向的)인 잣대[기준]를 만들어 놓고는 하는 짓이, 당시 일제 통치 속에서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을 도모(圖謨)하거나 일제에 빌붙기 위한 목적 또는 동족(同族)을 해(害)하려는 동기(動機) 따위와는 전혀 무관(無關)하게 오로지 가족, 친족, 자손, 그리고 친지, 동료?지인(知人) 들에게 닥칠 '戰時體制下(전시 체제 하)'의 광풍(狂風) 속에 휩쓸릴 앙화(殃禍),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극한 상황(極限狀況)을 앞에 두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목숨]과 최소한의 재산(財産)이나마 부지(扶持, 扶支), 보존(保存)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뇌(苦惱)를 거듭한 끝에 마음 속 깊은 응어리[원한(怨恨)]를 안으로 삭이며 고육지책(苦肉之策)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면서도 약자(弱者)요 피해자(被害者)일 수밖에 없는 민족의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當場) 일제?일본인들에게 무시(無視)?모멸(侮蔑)?능욕(凌辱)당하는 것만은 모면(謀免)해야 한다는 절박(切迫)한 심정(心情), 그리고 일제(日帝)만이 독점(獨占)하기 십상(十常)인 유력(有力)?고급(高級) 정보(情報)에 어두워지지 않기 위한 '지기지피(知己知彼)'의 원려(遠慮) 등 착잡(錯雜)한 내적(內的) 동기(動機)들을 비장(秘藏)하고 일제(日帝)라는 적진(敵陣) 깊숙히 잠입(潛入), 참여(參與)한 뜻있는 인사(人士)들마저, 전후 배경(前後背景)을 비롯한 역사적(歷史的) 맥락(脈絡)과 이를 파악(把握)할 수 있는 제반(諸般) 자료(資料)들을 완벽(完壁)하게 확보(確保)하지도 못한 채 피상적(皮相的)?단편적(斷片的)인 자료(資料)만을 앞세워 방자(放恣)하고 독선적(獨善的)인 태도로 섣불리 '친일 행위자(친일파)'로 억단(臆斷), 모함(謨陷)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編纂)'을 떠벌임으로써――자체(自體)에서 만든 무한(無限) 확장(擴張)된 자의적(恣意的) 기준(基準)에 따라, 수천, 수만, 수백만 명의 '學兵(학병)?徵用(징용)?徵兵(징병)?挺身隊(정신대)?報國隊(보국대)?創氏改名(창씨개명)?供出(공출)' 등 무수한 강제 수탈 동원된 대상까지 모두 넣어야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지 "생계형(生計型) 친일(親日)"이라는 명목(名目)을 붙이는 방편(方便)으로 변함없이 완고(頑固)하게 '친일'이란 딱지는 붙인 채 제외(除外)하는 편법(便法)도 불사(不辭)하면서, 이른바 '戰時國民聰動員體制(전시국민총동원체제)'에 전(全) 조선인(朝鮮人)이 강제 동원된 '宮城遙拜(궁성요배)?皇國臣民の誓詞朗誦(황국신민의 서사 낭송)?神社參拜(신사참배)' 따위와 유기적(有機的)으로 연결되는 전후(前後) 맥락 등은 적당히(?) 외면(外面)하는 등 '친일' 개념(槪念)의 과대 망상적(誇大妄想的)인 적용(適用)과 기준(基準)의 자가당착성(自家撞着性)을 자초(自招)하는 따위의 허다(許多)한 문제(問題)를 호도(糊塗)하기까지 함으로써――, 자연(自然)히 가소(可笑)롭게도 당시의 민족 선량(選良[엘리뜨])들은 어떤 불가항력(不可抗力) 앞에서도 무조건(無條件) 몰사(沒死)의 길을 택(擇)해야 했으며, 고급(高級) 정보(情報)를 비롯한 모든 지식(知識) 정보(情報)에 어둡고 무지(無知)한 층(層)만 살아남아 하층민(下層民)?노예 계급(奴隸階級)으로 전락(轉落)해 줌으로써 일본의 식민 지배(植民支配)를 성공적으로 앞당겨 달성(達成)해 주는 것만이 지상(至上)의 가치(價値)요 목표(目標)라는 극단적(極端的) 친일(親日) 논리(論理)로 귀착(歸着)하고 있음을 자각(自覺)할 기미(機微)도 없이, 매국(賣國) 매족(賣族)한 부일(附日) 매국노(賣國奴)들과 한데 버무려 희석(稀釋)시켜 버리는가 하면, 자료(資料) 불비(不備)와 자체 능력(自體能力) 결핍(缺乏)의 소치(所致)로 악질(惡質) 친일 하수인(親日下手人)들을 전혀 파악(把握)조차 하지도 못하는 무능(無能)과 속수무책(束手無策)도 돌아보지 못하는 계제(階梯)에, 당시(當時) 문제의 '조선인 악질 친일 하수인'들로부터 온갖 몰살(沒殺) 협박(脅迫)과 집요(執拗)한 추궁(追窮)을 당하고 받은 끝에 부득이(不得已) 임기응변적(臨機應變的) 고육책(苦肉策)을 택(擇)한 민족 지도자, 문화 예술인 들을 무차별적(無差別的) 또는 우선적(優先的)으로 '친일인(친일파)'이라고 분류(分類), 심판(審判), 매도(罵倒)하는 등(等)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당시(當時)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치열(熾烈)하게 살았던 선인(先人)들을 '마녀사냥' 식(式)의 재단(裁斷), 난도질(亂刀-)을 해 대는 패륜적(悖倫的) 난행(亂行)에 더하여, 순수 학술 '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는 그와 딴판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과 함께 그의 취임을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문구(文句)와 캐치프레이즈를 제작, 자체(自體) '홈 페이지'의 대문(大門)에 그야말로 대문짝만하게 내거는 정치적 행보를 예고하고는, 그 코드에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정체성(正體性)을 훼손(毁損)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편향적(偏向的) '학설'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할 소지(素地)가 다분(多分)한 이른바 '진보 학자(進步學者)'들과, 동류(同類) 성향(性向)의 특정(特定) 종교인(宗敎人) 등이 가세(加勢)하여 주도권(主導權)을 장악(掌握), 일부(一部) 단순(單純) 미숙(未熟)한 국민층(國民層)을 선동(煽動)하여 모금(募金) 운동을 펼치는 정치적(政治的) 쇼(show)를 벌이더니(수억대 모금 성공), 시일(時日)을 재촉하여 '친일인명사전' 등재용(登載用) 명단부터 발표하고 보자는 식으로 성급하게 1?2 차에 걸쳐 '친일인명'이랍시고 발표부터 해 대는 '언론 플레이'를 한 뒤에는 다시 변신(變身)을 가장(假裝)하려는 듯 옥상가옥(屋上加屋)으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라는 권위적(權威的) 기구(機構)를 조직(組織)?정비(整備), 졸속(拙速)을 무릅쓰고라도 '발간(發刊)'을 앞당겨야 한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와 기심(機心)에 쫓긴 나머지에는, 부조(父祖)가 '친일인(친일파)'으로 낙인(烙印)찍힘을 극도(極度)로 두려워하며 '연구소'의 권위(?) 앞에 무기력(無氣力)하게 굴종(屈從)해 버린 유가족(遺家族)들을 강박(强迫)?닦달, 불과 6 개월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期間)을 한시(限時)로 설정(設定)하고는, 낙인(烙印) 찍힌 부조(父祖)가 '친일인(친일파)'이 아님을 증명(證明)해 보이라는 월권적(越權的) 채찍질[편책(鞭策)] 내지(乃至) 매질을 가하면서 강행(强行)하고 있는 형국(形局)이다.

 이 '연구소'의 이와 같은 일련(一連)의 독선적(獨善的)?일방적(一方的) 행태(行態)는, 부차적(副次的)?대내적(對內的)으로는 동족간(同族間)의 반목(反目), 질시(嫉視)를 조장(助長)하면서 공연(空然)한 민족적(民族的) 자학(自虐)과 자괴감(自愧感)을 부추겨 키우며, 대외적(對外的)으로,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韓國)이라는 나라와 국민(國民)의 얼굴에 먹칠을 가(加)하는 '미래(未來)가 없는 국민', ''북조선(北朝鮮)'을 닮아 자폐(自閉)해 가는 무서운 나라' 등등(等等)의 일리(一理) 있는 비아냥과 조롱(嘲弄)을 자초(自招)하여 민족 자존(民族自尊)을 흠집냄과 동시에 그 쪽 우파(右派) 정객(政客)들이 자주 범(犯)하는 대한(對韓) '망언(妄言)'의 실증적(實證的)?논리적(?) 근거(根據)를 제공하고 그 소지(素地)를 넓혀 주기 위해 온갖 노력(勞力)을 다 동원함으로써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향한 고정 관념(固定觀念)을 다시금 깊이깊이 박아[각인(刻印)해] 주는 위험 천만(危險千萬)한 자폭(自爆) 행위를 감행(敢行)하기라도 하려는 셈이다. 결국(結局) 이와 같이 왜곡(歪曲), 확장(擴張), 확대(擴大)된 '친일(親日)' 개념과 범주(範疇)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는――그들의 소위(所謂) '일한합방(日韓合邦)' 과정에서 있었다는 조선인 대다수(1만 명 이상)의 '합방(合邦) 찬성(贊成) 여론(輿論) 조사(調査) 결과(結果)'라는 조작(造作)된 자료(육당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서'에서는 "統計數字上의 虛飾의 下"라고 했음)를 아직도 철석(鐵石)같이 믿고 있는 일본인들에게는―― 다시 한 번 조선 식민지 정책을 폈던 조상에 대한 오만 방자(傲慢放恣)한 자부심(自負心)?자긍심(自矜心)을 안겨 주는 데 일조(一助)하는 반면(反面), 이 땅의 우리 국민에게는 국가 민족적(國家民族的) 자존(自尊) 유린(蹂躪)의 비참(悲慘)한 결과(結果)로써 민족적(民族的)?국가적(國家的) 망신(亡身)과 치기(稚氣)와 웃음거리까지 자초(自招)하게 된 반면(反面), 이민족(異民族)의 조그마한 '약점(弱點)'도 놓치지 않고 잡아서는 두고두고 집요(執拗)하게 악용(惡用)하는 근성(根性)을 가진 일본 극우 세력(極右勢力)을 비롯한 허다(許多)한 혐한(嫌韓)?반한(反韓) 세력들은 물론 대다수(大多數) 무심(無心)했던 일본인들에게마저 왜곡(歪曲)된 역사 의식(歷史意識)를 갖도록 조장(助長)하는 데 좋은 빌미와 반찬(飯饌)거리를 갖다 바친[공여(供與)한] 격(格)이 되었으며, 이 각본(脚本)은 이미 연출(演出) 단계(段階)까지 진행(進行)되어 버린 지 상당 기간(相當期間)이 지난 뒤여서(2007.5.13. 일본 TBS '報道特集' 방송), 이제 주워서 거두어담을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5/13 TBS「報道特集」韓?“親日派”追及の嵐

( 2007.5.18,金 )

                                                              【1】

                                                              【2】

                                                              【3】   

        2007/5/13. TBS放送の「報道特集」文字化. 放送 = 約30分間        

「♪垣根の下の鳳仙花よ♪」韓?音?の父とされる作曲家が―。歌?皇帝とまで言われた歌手も―。問題視される日本統治下での行動。「?時は活動できないでしょ、親日(行?)をしないと???」。日本メディア初取材、1万枚の親日派人名カ?ド。韓?を?るがす親日派追及―。

土地??も 韓?“親日派”追及

【司?者?田丸美??さん】(スタジオにて)「?いての特集です。自分のお祖父さんやお祖母さんが60年以上も前にやった事で今の自分の財産が取り上げられる、そんなむちゃくちゃな事が?は今お隣の韓?で起きようとしているんですね。かっての日本の支配に協力した人?、いわゆる“親日派”を追及する動きが盛んな韓?なんですが、先日はその親日派の孫たちの土地??が?表されました。一?今、韓?はどうな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韓?“親日派”に追及の嵐

                                              【동영상 1】 

【ナレ?タ?】 飛び交う怒?。(2006年11月 韓?ソウル)問題となっているのは韓?の?史?科書です。「偏向した?史を?えている」として保守派の?者たちが開いた集?に、かつての運動家たちが抗議しているのです。盧武鉉(ノ?ムヒョン)政?下の韓?では?史をめぐる議論が激しくなっています。その象?とも言える問題があります。

【盧武鉉(ノ?ムヒョン)大統領】(2004年8月) 「過去の?史で?点となってきた問題を包括的に扱う?相究明特別委員?を、??の中に作る事を提案します。」

【ナレ?タ?】日本統治下で日本の支配に協力した人?、いわゆる“親日派”の追及。その嵐が今韓?で吹き荒れているのです。

 「♪私の愛よ♪」

 慶?南道(キョンサンナムド)晋州(チンジュ)で?年開かれている歌?祭。地元出身の歌手の名前が付けられ、彼のヒット曲も歌われています。「南仁樹(ナム?インス)」、日本統治下の1936年朝鮮半島でデビュ?し、?後も?民的歌手として活躍。「歌?皇帝」とまで呼ばれた人物です。

   夕方になって盛り上がるステ?ジ。しかし?場の入口には警察官の姿がありました。こんな運動が行われていたのです。

 「親日派 南仁樹(ナム?インス)」「市民の血?で親日歌手の記念行事とは何事だ」(プラカ?ドを持つ人?の映像)

 南仁樹歌?祭に反?する一?です。代表者はこう話します。

 【南仁樹歌?祭に反?する人】「南仁樹(ナム?インス)氏の歌の中でも『血書志願』などの3曲は日帝時代、??に?加するように誘導した歌です。?民は親日の痕跡がある人を?かしむ歌?祭はなく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ています。」

【ナレ?タ?】

 「♪半島の血脈 輝け血♪」

 これが問題とされた歌『血書志願』です。

 「♪この時を逃すまい 命をささげよう お?の兵隊になるのが 望みです♪」

 太平洋???時、日本は朝鮮半島からも志願兵を募っていました。これを??する歌を1943年に南仁樹(ナム?インス)が歌ったのです。

【南仁樹歌?祭に反?する人】「南仁樹(ナム?インス)氏は、大衆歌手としてその歌?で?民の心を震わせました。その影響は大きく、?民に?えた傷も大きいので、彼を親日派に?分し彼の歌を排除したいと考えています。」

【ナレ?タ?】

 晋州(チンジュ)は豊臣秀吉の朝鮮出兵の激?地。その事も?調しながら反?派の人たちはチラシを配っています。しかし、それをつき返す人もいました。また、問い質す人も???。

【南仁樹歌?祭に反?する人】「歌?祭の名前を?えてくれと言っているんです。」

【問い質す人】「そんな事、ありえない!南仁樹(ナム?インス)氏にこんな話があるのは初めて聞いた!どういう事なんだ?」

【ナレ?タ?】1941年に作られた映?『志願兵』。朝鮮半島出身の若者が日本軍入隊を果たすという物語。『血書志願』と同じテ?マです。

(VTR)

【映?の中の女性】「試?て、何の試??」

【映?の中の男性】「僕は志願兵になるんです。」

【映?の中の女性】「志願兵?」

【映?の中の男性】「我等も軍人になれるのです。僕は帝?軍人になるんです。」

【ナレ?タ?】?時中にはこうした映?がたくさん作られていました。この『志願兵』は“幻のフィルム”とされていましたが、現代史の見直しが進む中で?掘され、監督や俳優は南仁樹(ナム?インス)のように親日派と名指しされています。

 しかし、南仁樹歌?祭に?ていた人はこう話します。

【南仁樹歌?祭に?た人1】「おじいさんの世代で親日行?をしなかった人はいない。」

【南仁樹歌?祭に?た人2】「南仁樹(ナム?インス)氏は親日行?をしたくてしたのではないと思います。時代背景を考えても自分の意思ではなかったと思うので、彼を追及する事には?成できません。」

【ナレ?タ?】  親日派の追及はそもそもこの民間??が推し進めてきたものでした。【民族問題?究所の?見】(VTR 2005年8月) 「今日はまず名簿を皆さんにお示しします。」

【ナレ?タ?】民間??“民族問題?究所”。親日派と名指しした3,090人もの名前を?表しました。

【民族問題?究所の?見】(VTR 2005年8月)「日帝に貶められた民族のまま、統一もできず、親日派の?算もできず、何のために60年間生きてきたのか!今後も?援をお願いします。」(拍手が湧き起こる)

【ナレ?タ?】追及される親日派、その基準とは????ソウルにある民族問題?究所の事務所。?史?者を始めとするおよそ5,000人の?員で構成され、親日派名簿の作成などにあたっています。?究所の地下にある資料室には日本統治時代の膨大な資料がありました。?究室長の朴漢龍(パク?ハンニョン)氏が見せながら?明してくれました。

 ?時のスロ?ガン(?民?武?大和一致して敵を?滅せよ?勝つまで?け我等で援護)、?時中の債?、軍?主義が色濃く出た?誌。

【民族問題?究所?朴漢龍(パク?ハンニョン)?究室長】「(?誌を見せながら)大東???1周年と書かれています。これが大東?共??でしょ、ここからここまでが。この?誌が何故親日?誌なのか??だけが親日なのではなく、?容自?も?家の方針に沿っていたからです。」

【ナレ?タ?】?時の?誌や?譜などを見せて「親日だ」と指摘する朴漢龍(パク?ハンニョン)氏。この?究所で最も重要な資料を見せてくれました。親日派の人名が書かれたカ?ド、「1万枚もある」と言います。

                 【동영상 2】(앞의 마지막에서 잘린 부분이 다시 새로 편입됨)

 日韓?合?約が締結された時の首相?李完用(イ?ワニョン)。「日本の朝鮮統治に協力、??行?をした」とされ、親日派の烙印を押されています。官僚や司法?係者、軍人、警察官、彼らの名前は親日的な活動の記?と共にカ?ドに書き?まれています。民間人の名前もありました。

 金基昶(キム?ギチャン)、韓?の?民的な?家です。1万ウォン札にある世宗(セジョン)大王の?を描いた人物ですが、その一方で「親日的な?を描いた」として追及されているのです。

 こうした親日派のカ?ドを作ったのはこの人物、1929年生まれの文?者?林鍾?(イム?ジョングク)です。

【林鍾?(イム?ジョングク)の肉?】「きれいにした?を?さなくてはならないのに、親日行?の調査や反省もできなかった???。」

【ナレ?タ?】忠?南道(チュンチョンナムド)天安(チョナン)。ここに林鍾?(イム?ジョングク)は住んでいました。裏山の栗を?って生計を立てていたという林鍾?(イム?ジョングク)。?究を?ける中で、自分の父親の親日行?についても著書に書き記したといいます。

【林鍾?の妹?林慶華(イム?ギャンファ)氏】「父は『私も親日行?をした。私の名前も親日派の名簿に入れろ』と言ったし、兄も父が親日行?をしたという事?をそのまま記?しました。『あるがままの事?を書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が兄の考えでした。」

【ナレ?タ?】林鍾?(イム?ジョングク)は1989年に死亡。カ?ドは民族問題?究所が引き?ぎ、親日派追及の基礎となりました。盧武鉉(ノ?ムヒョン)政??足後、政府が設置した?相究明委員?は106人の親日派を特定、さらに???。

【韓?YTNニュ?ス5月2日放送】「財産調査委員?は、親日派の財産を?家に??させることを決めました。」

【ナレ?タ?】親日反民族行?者財産調査委員?が決めた親日派9人の子孫の土地??。時?にして36億ウォン、日本円で4億5,000万円余りになります。激しさを?す親日派の追及。

「♪垣根の下の鳳仙花よ おまえの姿は悲しげだ♪」

 朝鮮では最初の芸術歌曲と言われる名曲『鳳仙花』、これを作曲した「韓?音?の父」も親日派だと名指しされています。作曲家?洪蘭坡(ホン?ナンパ)、今の東京芸術大?で?んでいましたが、1919年に?立運動が起きると??、翌年『鳳仙花』の原曲を作りました。「♪よみがえることを願う♪」この「よみがえることを願う」という歌詞は、民族の自立を暗に歌っているとされます。?時、『鳳仙花』を歌う事は禁じられたといいます。「民族の英雄」とも言われた洪蘭坡(ホン?ナンパ)。1937年、?立運動に?わったとされ投獄。拷問を受け、思想?向を認める論文を書かされます。このため、死後60年以上?った今、親日派として攻?されているのです。

 洪蘭坡(ホン?ナンパ)の故?は京畿道(キョンギドウ)にあるこの村です。(華城?ファソン)

【村の少女1】「(洪蘭坡)は親戚だと、親戚のおじいさんだと聞いています。そんな立派な人が親戚のおじいさんだという事を誇らしく思っています。」

【ナレ?タ?】 多くの村人は「洪蘭坡(ホン?ナンパ)の親戚」だと言います。洪蘭坡(ホン?ナンパ)は村の誇りです。

「♪私が暮らしていた故?は花?く村♪」

 この歌『故?の春』も洪蘭坡(ホン?ナンパ)が作りました。韓?中で親しまれ、歌い?がれています。

【村の少女2】「同じ洪氏だからというのもあるんですが、曲を書いて業績を?したので、いくら親日派と言われても尊敬する人です。親日がどうと言われても???。」

【ナレ?タ?】

「♪垣根の下の鳳仙花よ おまえの姿は悲しげだ♪」

 『鳳仙花』を歌うのは、韓?音?協?の?究者?申道成(シン?ドソン)氏。「洪蘭坡(ホン?ナンパ)の?究に支障が出た」と言います。

【韓?音?協??申道成(シン?ドソン)氏】「洪蘭坡(ホン?ナンパ)先生など音?家の子孫たちはたくさんの資料を持っていますが、公開する事をとても怖がっています。下手をすると自分のお父さんやおじいさんも親日派にされるのでは、と思っているのです。」

【ナレ?タ?】洪蘭坡(ホン?ナンパ)の生家に音?施設を造る計?も進んでいましたが、現在は中?したままです。また、近くの町?水原(スウォン)で開かれていた“洪蘭坡音?祭”も名前が?わってしまいました。

【韓?音?協?京畿道支???賢奎(オ?ピョンギョ)?長】「『故?の春』は京畿道(キョンギドウ)の歌と言えるほど、以前は公務員や市民が集まるとみんな歌っていたんです。それなのに洪蘭坡(ホン?ナンパ)が親日派と言われた事でみんなが攻?するんです。」

  “親日派”追及と北朝鮮

【ナレ?タ?】「韓?音?の父」にまで及ぶ親日派追及。これら一連の動きには「政治的な意?がある」とも指摘されています。

「♪大韓人は大韓として永遠なれ♪」(韓民??歌)

 ソウルで開かれた反盧武鉉(ノ?ムヒョン)政?の集?。(2007年3月)?防の最前線で北朝鮮と?峙してきた元韓?軍人たちは、親日派追及についてこう言います。

【?民行動本部?徐貞甲(ソ?ジョンカブ)氏】「過去に大韓民?をつくった勢力を親日派だと貶める、そのことにより盧武鉉(ノ?ムヒョン)政?は金正日に追?し言いなりになっている。これ以上我??民は許してはならない。」

【ナレ?タ?】「親日派追及が北朝鮮を利する事になる」という指摘。理由があります。

                【동영상 3】(앞의 마지막에서 잘린 부분이 다시 새로 편입됨)

 韓????展の基礎を築いた朴正?(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かつては?州?の?校だったという??もあり、政府の調査次第で今後親日派とされる可能性があります。その朴正?(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の娘が朴槿惠(パク?クネ)議員。野?ハンナラ?の有力な大統領候補で北朝鮮には?しい姿勢を取り?けています。ジャ?ナリストの趙甲?(チョ?ガブチェ)氏はこう指摘します。

【ジャ?ナリスト?趙甲?(チョ?ガブチェ)氏】 「朴正?(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が?州?の?校だった事に焦点をあて、朴政?のもとで成し遂げた韓?の近代化を否定する、その事によって間接的に娘の朴槿惠(パク?クネ)氏を攻?する意?があると思います。」

【ナレ?タ?】一方、親日派名簿を作っている民族問題?究所の朴漢龍(パク?ハンニョン)?究室長はこう言います。

【民族問題?究所?朴漢龍(パク?ハンニョン)?究室長】「親日派の?算は、特定の大統領候補を狙うとか韓日間で感情的になるという事ではありません。過去の間違った?史を共に反省して、再び植民地支配と侵略??のない平和なアジア共同?を作るための出?点なのです。」

  生存する“親日派”の告白

【ナレ?タ?】現在、親日派と名指しされる人の多くは亡くなり、生存している人も沈?を守っています。私たちは親日派と名指しされた90代の男性に接?する事ができました。

【90代の“親日派”男性】「親日派?やった人は銃?の前ではやるしかない。たくさんの人がやったでしょう。もちろん食べるためにやった人もいるけど、そうでない人は無理矢理やらされた人たちです。名の知れた人は連行されていったんですよ。」

【ナレ?タ?】「銃?の前では逆らえなかった」という親日派。?時の?究を?けているソウル大??李??(イ?ヨンフン)氏はこう言います。

【ソウル大??李??(イ?ヨンフン)?授】「日帝植民地時代も大きく見れば外?の近代文明が入ったという過程だったし、その人たちを?史的に否定したら現代の韓?文明も?明できません。」

【ナレ?タ?】一方、韓?政府の?相究明委員??姜萬吉(カン?マンギル)委員長はこう言います。

【親日反民族行??相究明委員??姜萬吉(カン?マンギル)委員長】「親日反民族行??相究明作業は他の?に影響を及ぼすものではなく、他の?を恨むためのものでもありません。民族?部の徹底した自己反省のために行っている作業なのです。」

  “親日派”追及 若い世代は

【ナレ?タ?】李?授(ソウル大?)、姜委員長(親日反民族行??相究明委員?)、二人の著書は書店に?べられています。韓?を二分する親日派追及の議論。?方の本を?んだ若い世代はどう感じたのでしょうか?

【男子?生】「大?の先生に薦められ?方?んだんですが、片方だけ?むとどちらかに影響されてしまいそうですからね???」

【女子?生】「もう少し時間が?ち世代が?わらないと客?的に見られないかもしれない。今、親日派の話が色?出てくると感情的なものが先立ってしまい、客?的な判?は難しいと思います。」

  なぜ今“親日派”追及か

【司?者?田丸美??さん】(スタジオにて)「盧武鉉(ノ?ムヒョン)政?下で今行われています親日派追及の動き、私たち日本人にとって複?な?持ちにさせられてしまうんですが、韓?の人たちの受け止め方も??なようです。

 これまでの過去の?算、?史のけじめはつけたいけれど、それは一方では自分たちのこれまでの?史も否定することになってやりきれない、という考え、あるいは個人名を?げたり財産??はやりすぎだ、さらには、今さら追及しても時間の無?だ、といった冷めた見方もあるそうです。?前の複?な?史や思いを知らない?後生まれの盧武鉉(ノ?ムヒョン)大統領だから出?た、という見方もあるようですし、この追及運動、?民的に盛り上げて支持率を上げようとした、まぁ盧武鉉(ノ?ムヒョン)大統領の思惑というのも逆に下が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裏切られた、という事も言えるようですね。

 ちなみに親日派の?相究明委員?は、今後もさらに第二??第三?の個人名?表などをこれから行われる予定だという事です。」

(ディレクタ? 中島風さん 太田?一さん 吉田豊さん)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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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飜譯) 및 역?편집자(譯編輯者) 주(註)≫

                                   한국 '친일파' 추궁의 폭풍우(暴風雨)(1)

                                              【동영상 1】

【내레이터】난무하는 추궁(단죄). (2006년 11월 한국 서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입니다. ‘편향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라고 해 ‘보수파’ 학자들이 열고 있는 집회에, 한 떼(무리)의 운동가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노무현(盧武鉉) 정권 하의 한국에서는 역사를 둘러싼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 상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노무현(노무현) 대통령】(2004년 8월) "과거의 역사에서 쟁점이 되어 온 문제를 포괄적으로 취급하는 ’진상구명특별위원회‘를, 국회 안에 만드는 일을 제안합니다."[譯·編輯者註 = 외세와 결탁하여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대륙을 잃어 버린 '반도' 국가로 고착화한 신라의 통일 방식에 대한 문제 심판, 고려의 서경파와 개경파 대립에 대한 심판, 임진왜란 시 임금 선조(宣祖)의 이적(利敵) 행위 심판, 조선의 사색 당쟁(四色黨爭)과 노론벽파(老論僻派) 세력의 영?정조 근대화 정책 추진에 대한 훼방, 고루(固陋)하고 완고(頑强)한 유학자(儒學者)들의 망민적(網民的)인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 조선 왕조 쇠망?소멸기 왕실(王室)의 무능(無能)?친일(親日) 문제 등에 대한 진상(眞相) 구명(究明) 등등(等等)일 것이요, 이 가운데는 섣불리 단정(斷定), 단죄(斷罪)하거나 규정(規定)할 수 없는 면(面)도 많고 그 수(數)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기?다단(複雜多岐多端)한 문제(問題) 쟁점(爭點)들인데, 어떻게 학계(學界)를 떠나 국회(國會)라는 틀 안에서 몇몇[소수(小數)] '위원(委員)'들이 좌지우지(左之右之)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물론 '친일 역사' 진상(眞相) 규명(規明) 아닌 '구명(究明)'이란 암호(暗號)로써 현(現) 기득권층(旣得權層)――민족주의(=보수) '우파 세력'――의 기반(基盤)인 '부르주아지' 계층(階層)을 와해(瓦解)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 뿌리를 둔 '친북(=진보=사회주의) 좌파' 세력(勢力)의 입지(立地)를 넓혀 주려는 의도(意圖)――'친일' 문제에서 자연히 자유로운 쪽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뿌리를 둔 '친북(=사회주의 진보) 좌파' 세력(勢力)이므로, '친일 역사 청산'을 내세우고 제대로만 하면 현(現) 기득권층(旣得權層)을 공격(攻擊)하는 데 결정적 파괴력(破壞力)을 지닌 고성능(高性能) 무기(武器)가 될 수 있다는 계산(計算)이 깔려 있음도 사실일 것――요, 그런 뜻에서 이 양자 간(兩者間)의 정치 세력 다툼[政爭]으로 몰아 가려는 뜻도 없지 않은 것. 그러나 역사(과거사) 문제는 객관화하여 다양한 교훈을 모색하면서 오늘날의 좌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기 위한 자료(資料)이지, 특정(特定) 정치 세력이 가공(加工)하여 쓰레기[폐기물] 분리(分離) 수거(收去), 폐기(廢棄) 처분(處分)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단(壟斷, ?斷), '마녀 사냥?재판' 식(式)의 단죄(斷罪), 징벌용(懲罰用) '살생부(殺生簿)'를 만듦으로써 영구 고착화(永久固着化), 규정(規定)하려고 할 대상은 아닌 것. 시급(時急)한 당면(當面) 민생 문제(民生問題)의 해결책 모색과 노력보다는, 국민을 부질없고 비생산적?비능률적, 소모적(消耗的)인 대립(對立)?갈등(葛藤)으로 몰아 가려는 골치아픈 대통령의 담화(談話). '임기 5 년의 일회용'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원대한 꿈을 펼친 것은, 수용(受容)해야 할 측면도 있겠으나, 귀가 얇은 다혈질(多血質) 국민성(國民性)을 자극(刺戟)하여 '인기(人氣)몰이'를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疑懼心)마저 짙게 풍겼던 것도 사실]

【내레이터】일제(日帝) 통치 하에서 일제(日帝)의 지배에 협력한 사람들, 이른바 ‘친일파’의 추궁(追窮). 그 폭풍우(暴風雨)가 지금 한국에서 불면서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내 사랑아♪’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주(晋州)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가요제. 현지 출신의 가수 이름을 붙일 수 있어 그의 히트곡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인수(南仁樹)’, 일제 통치 하의 1936년 '조선반도'[譯·編輯者註 = 조선 땅[강토]]에서 데뷔해, 전후(戰後)에도 ‘국민적 가수’로서 활약. ‘가요 황제’라고까지 불린 인물입니다.
  저녁이 되어서 분위기가 살아나는 스테이지[무대]. 그러나 회장의 입구에는 경찰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일파(親日派) 남인수(南仁樹)”
[譯·編輯者註 = '카메라'가 한참 동안 멈추면서 비추어 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지목한 친일파 남인수"는 진주 '시민단체'가 상식(常識) 이하(以下)로 왜곡(歪曲)한 것임. 그것은,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 국무위원(國務委員)을 지낸 김승학(金承學)이 '김 구(金九) 선생의 지시로 만든 원고(原稿)'라며 육필(肉筆)로 써 놓은 '친일파 263 인' 명단이 발견되었다는 보도['월간중앙'(2001년 8얼호)]에 의거(依據)한 것인데, 그러나 이 속에 들어 있는 '志願兵血書志願者'(총 34 명)에는 역시 강제 동원(强制動員)에 의해 '혈서 지원'을 취입(吹入)한 백년설, 남인수, 박향림의 이름을 그대로 넣은 것――23 명의 '창씨 개명'한 사람(4 글자 이름)과 나머지 3 글자로 된 이름들(11 명) 가운데 섞음――으로서, '혈서 지원'을 불렀다 해서 '지원병 혈서 지원자'로 쉽게 단정(斷定)하는 우(愚)를 범(犯)하고 말았음을 바로 알 수 있는 좋은 증참(證參)――여가수(女歌手) 박향림(朴響林)까지 '지원병(志願兵)'으로 둔갑(遁甲)시킨 것도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음――. 물론, 이는 또한 '해외파(海外派)'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인사(人士)가 역내(국내)의 절박(切迫)한 사정(事情)에 대해서는 의외(意外)로 어두웠고 성급(性急)했음을 단적(端的)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일제(日帝)가 정보(情報)를 철저(徹底)히 차단(遮斷)한 결과이기도 함. 진주(晋州)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후 관계의 모순과 문제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 구 선생의 이름까지 빙자(憑藉)하여 잘못된 사실을 기정 사실화(旣定事實化)하는 편향적(偏向的)?극단적(極端的)인 성향(性向)을 서슴없이 드러낸 것] 
    “시민의 혈세로 친일 가수의 기념 행사란 무슨 일이냐?”(플래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영상)[譯·編輯者註 = "친일 가수"라는 표현은, 물론 '장님 코끼리 만지기[군맹무상(群盲撫象)]' 식(式)의 억단(臆斷)]
  ‘남인수가요제’에 반대하는 일단입니다. 대표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인수가요제’에 반대하는 사람】"남인수 씨의 노래 중(가운데)에서도 ‘혈서 지원’ 등의 3 곡은 일제시대, 전쟁에 참가하도록 유도한 노래입니다. 국민은 친일의 흔적이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요제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譯·編輯者註 = ‘3 곡’은 '그대와 나'(남인수·장세정 합창, 1942), '혈서 지원'(백년설·남인수·박향림 노래, 1943), '2천 5백만 감격(남인수·이난영 노래, 1943)'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음. 사실은 몇 곡(曲) 더 있으나, 그런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은, 그보다 훨씬 이전(以前)부터 일제(日帝)에 의한 이른바 '戰時國民聰動員體制(전시국민총동원체제)' 선포(宣布)로 전(全) '2천 5백만' 조선인(朝鮮人)이 강제 동원(强制動員)된 '宮城遙拜(궁성요배)?皇國臣民の誓詞朗誦(황국신민의 서사 낭송)?神社參拜(신사참배)' 등이 행해지고 있었고, 뒤이어 40년대 들어서는 '創氏改名(창씨개명)?徵用(징용)?徵兵(징병)?學兵(학병)?挺身隊(정신대)?報國隊(보국대)?供出(공출)' 등의 이름으로 무수한 강제 동원과 수탈(收奪)이 한창 자행(恣行)되고 있었던 때라, 이와 같은 '戰時體制下(전시 체제 하)'에서는 사실상 '반일?항일'이니 '친일?부일'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태?상황이었음. 이 '(진주) 시민단체'관계자는 추측건대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으로서 홈 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캐 내었거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등에서 알아 내었거나, 아니면 자신의 섣부른 지식으로써 말한 듯함. 그러나, 모두 '친일'의 개념(槪念)을 곡해(曲解), 확대 적용(擴大適用)하고 있는 것임]
【내레이터】
 
‘♪반도의 혈맥 빛나거라, 피♪’
  이것이 문제로 여겨진 노래 ‘혈서 지원’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든지, 생명을 바치자. 나라의 군인 되는 것이 소망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조선반도'[譯·編輯者註 = 조선 땅[강토]]로부터도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장려하는 노래를 1943년에 남인수(南仁樹)가 노래했습니다[譯·編輯者註 = ‘남인수로 하여금 노래하도록 강제(强制)했습니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임].
【‘남인수가요제’에 반대하는 사람】“남인수 씨[譯·編輯者註 = '씨(氏)'는 역사 속의 인물이나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서, 무지(無知)에서 나온 잘못[실수(失手)]]는, 대중 가수로서 그 가성(歌聲)으로 국민[譯·編輯者註 = '국민'이란 말은 ‘조선 민중’으로 표현해야 할 것. 정작 자신(自身)들은 친일적(親日的)인 용어 표현을 쓰면서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의 마음을 진동시켰습니다. 그 영향은 크고, 국민에게 준 상처도 크기 때문에, 그를 ‘친일파’로 분류해 그의 노래를 배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譯·編輯者註 = 강제 동원(强制動員)인지, 일제(日帝)의 왜곡된 주장처럼 ‘자진(자발) 참여(협조)’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그것이 오히려 친일적(親日的)인 시각(視角)인 줄을 모르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 ‘민족문제연구소’의 무지(無知)한 시각(視角)을 맹목적(盲目的)으로 추종(追從)하고 있는 결과(結果)요 증좌(證左)로 보임.  같은 시기(1943)에는 '민족 지도자(民族指導者)' 급(級)의 인사(人士)들도 일제의 강압(强壓)에 의한 '친일 논설(親日論說)'이 실리던 때였음. 예(例)로서,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의 “學徒よ 戰列へ[학도여, 성전의 대열에]”, "半島 二千五百萬 同胞に 塑ふ[(조선)반도 2천 5백만 동포에게 호소(呼訴)함]"(사상 전향서) 등이나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의 '학도(學徒)에 고(告)한다' 같은 이른바 '징병(徵兵)?학병(學兵) 출진(出陣)'을 권유(勸誘)하는 논설들이 당시 유일하게 남은 조선어(朝鮮語) 발간(發刊) 총독부(總督府) 기관지(機關紙)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실리기도 한 것 등임.  우선(于先) '민족문제연구소'부터 까맣게 모르고 있는 점은, 조선어(朝鮮語) 사용(使用)이 전면 금지(全面禁止)된 시대(전시)이므로 일제 당국(日帝當局)이 조선어로 노래하는 것을 절대(絶對)로 허용(許容)하지 않을 시점(時點)임에도 조선어로 노래하게 한 것은 '강제 동원(취입)' 같은 '戰時(전시)' 일제 군(軍) 당국의 간섭(干涉)?조종(操縱)이 개재(介在)되지 않았음을 '눈 가리고 아웅'[위장(僞裝)]하기 위한 일제(日帝)의 교묘(巧妙)하고 음흉(陰兇)한 술책(術策)이 숨어 있는 것이요, 당시 조선 가요계(朝鮮歌謠界)에서도 이를 이용(?)하여 연예 활동을 이어 감으로써 민중(民衆)으로부터 유리(遊離)되지 않을 수 있다는――'技藝證(기예증)', '도항증(渡航證)' 등의 확보, 그리고 때로는 고도(高度)의 은유 암시적(隱喩暗示的) 기법(技法)으로 민족 의식(民族意識)이 깃들인 노래, 즉 저항 가요(抵抗歌謠)들을 은연 중(隱然中) 취입(吹入)해 넣으면서, 동시(同時)에 앞서 취입(吹入)했던 '전시 체제 고무?선전?선동 가요(戰時體制鼓舞宣傳煽動歌謠)'가 일제의 강압(强壓)?강제(强制)에 의한 것이었음을 은연 중(隱然中)에 비쳐 줄 수 있다는――  점(點) 등이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맞아떨어지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임. 실제로,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최후(最後)의 노래인 '일가 친척(一家親戚 =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1943.12.])'은 부모(父母) 사랑[은혜]에 보답(報答) 못 한 불효자(不孝子)로서의 참회(懺悔)와 함께 그 "아득한" 사랑[은혜]을 갚기 위해서라도 부모(父母)님 사후(死後) 시묘(侍墓)살이로써 "사내[자식(子息)]답게 한 목숨[생애(生涯)를] 바치겠다"는 비장(悲壯)한 각오(覺悟)를 다짐으로써 피붙이[민족(民族)]에 대한 애틋한 애착(愛着)?귀소 의식(歸巢意識), 곧 민족 의식(民族意識)으로 은근(隱懃)히 회귀(回歸)하는 경향(傾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전(以前)의 강제 취입(强制吹入) '전시 체제 고무?선전?선동 가요(戰時體制鼓舞宣傳煽動歌謠))'의 내용을 완전히 부정(否定), 번복(飜覆[뒤엎어 버리기])하는 내용이며, 그 뒷면에 실린 '지원병(志願兵)의 집[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 노래(1943.12.)]' 얼핏 보면 '전시 체제 고무?선전?선동 가요(戰時體制鼓舞宣傳煽動歌謠)' 같으나, 그와는 반대로서, 누이(동생)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찢어지도록 가난[빈곤(貧困)]한 딱한 가정 형편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일제(日帝)가 일으킨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에 '지원병(志願兵)'으로 입대하게 된 오빠의 "말못할 만큼 눈물겨운" 편지 사연(事緣)――자식(自息)을 사지(死地)로 떠나보내고 밤이나 낮이나 근심 걱정에 휩싸여 계실 홀어머니를 버려 두고 떠나온 말못할 깊은 사정(事情)을 객정(客情)과 함께 담아, "살아서 돌아갈 때만을 기다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가망성(可望性)이 불투명(不透明)한[일제(日帝)의 패전(敗戰) 국면(局面) 암시(暗示)도 될 수 있는 대목] '남쪽나라' 전선(戰線)에서, 오직 '어머니의 만수무강(萬壽無疆)만을 빌 뿐'이라는 극진(極盡)한 효심(孝心)이 배여 있는 글――이 누이동생의 입을 통해 표출(表出)[노래]됨으로써, 귀착점(歸着點)은 육친애(肉親愛)[피붙이에 대한 애착(愛着)]임과 동시에, 민족 의식(民族意識)으로 연장(延長)시키고자 하는 뜻과 불운(不運)한 시대(時代)의 한(恨)을 암시적(暗示的)으로 표출하는 내용 경향을 보이는 노래.]
【내레이터】진주(晋州)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한국[譯·編輯者註 = ‘조선’]
출병 격전지. 그 일도 강조하면서 반대파의 사람들[譯·編輯者註 = 진주의 이른바 ‘시민단체’ 관계자]은 광고지를 나눠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다 되돌려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잘못된 행동이라고) 추궁하는 사람도···(있었습니다).
【‘남인수가요제’에 반대하는 사람】‘가요제의 이름을 바꾸어 줘.'
라고 말합니다.
【('시민단체'의 행동을) 추궁하는 사람】“그런 일, 있을 수 없다! 남인수 씨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으로 들었다! 어쩐 일이야?”[譯·編輯者註 = 일제(日帝)가 '중일전쟁(1937.7)'에 이어, '태평양전쟁(1941)'을 도발(挑發)하면서 선포(宣布)한 이른바 '戰時國民聰動員體制(전시국민총동원체제)'로 전(全) '2천 5백만' 조선인(朝鮮人)이 강제 동원(强制動員)되어 '宮城遙拜(궁성요배)?皇國臣民の誓詞朗誦(황국신민의 서사 낭송)?神社參拜(신사참배)' 등이 행해지고 있었고, 뒤이어 40년대에 들어서는 '創氏改名(창씨개명)?學兵(학병)?徵用(징용)?徵兵(징병)?挺身隊(정신대)?報國隊(보국대)?供出(공출)' 등의 이름으로 무수한 강제 동원과 수탈(收奪)이 한창 자행(恣行)되고 있었던 때였으니, 솔직히 말해 '친일'을 했다면 모두 다 한 것이지만, 그 판국에서는, 했더라도 진심(眞心)에서 한 것이 아님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알고 있었던 때인데, '남인수' 혼자서 '친일'했다는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는 것――당시에는 남인수를 '친일파'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 때를 알지도 못하는 '것(축)'들이 이제 와서 무슨 수작이냐는 말――]
【내레이터】1941년에 만들어진 영화 ‘지원병’[譯·編輯者註 = 일제(日帝)가 조선 민중(朝鮮民衆)을 이른바 ‘內鮮一體(내선일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강제(强制)로 제작한 이른바 '國策映?(국책 영화)'. 안석영(安夕影) 감독. 최운봉(崔雲峰)?문예봉(文藝峰)?이금룡(李錦龍)?김일해(金一海) 등 출연(出演).]. '조선반도'[譯·編輯者註 = 조선 땅[강토]] 출신의 젊은이가 일본군[譯·編輯者註 =당시 표현으로는 ‘황군(皇軍)’] 입대를 완수한다고 하는 이야기. ‘혈서 지원’과 같은 테마입니다.
   (VTR)
   【영화 속의 여성】
  “시험이라고, 무슨 시험?”
   【영화 속의 남성】
  “나는 지원병이 됩니다.”
   【영화 속의 여성】
  “지원병?”
   【영화 속의 남성】
  “우리들도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제국의 군인이 됩니다.”

【내레이터】전시 중에는 이러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譯·編輯者註 = ‘군용열차(軍用列車))’(1938), '반도(半島)의 봄'(1941), '지원병(志願兵)'(1941), '그대와 나'(1942), '망루(望樓)의 결사대(決死隊)'(1943), '조선해협(朝鮮海峽)'(1943), '병정(兵丁)님'(1944) 등을 이름]. 이 ‘지원병’은 ‘환상의 필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현대사의 재검토가 진행되는 가운데 발굴되어 감독(監督)이나 배우(俳優)는 남인수(南仁樹)와 같이 ‘친일파’로 지명[譯·編輯者註 = ‘지목(指目)’]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인수가요제’에 와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인수가요제’에 온 사람(노년층) 1】‘할아버지’의 세대에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譯·編輯者註 = 당시(當時)를 체험(體驗)한 세대(世代)의 공통적인 관념을 대변해 주는 말[증언].]
【'남인수가요제'에 온 사람(장년층) 2】“남인수 씨[譯·編輯者註 = '씨(氏)'는 역사 속의 인물이나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서, 역시(亦是) 잘못[실수(失手)]]는 ‘친일’ 행위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 배경(상황)을 생각해도 자신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므로, 그를 추궁하는 일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내레이터】‘친일파’ 추궁은 원래 이 민간 단체가 추진해 온 것이었습니다[譯·編輯者註 = 안익태(安益泰, 1906~1965)를 ‘친일인(친일파)’ 명단에 넣어 놓고는, 그의 작곡(作曲)――작사자(作詞者) 미상(未詳)――으로 된 대한민국(大韓民國) 국가(國歌) '애국가(愛國歌)' 연주(演奏) 속에 '국민의례(國民儀禮)'를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의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광경]을 비추어 줌. 안익태(安益泰, 1906~1965) 역시 1942년 이후, 즉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일제의 용어로는 '大東亞戰爭'――) '戰時體制(전시체제)'에 놓이게 되고, 일제(日帝)의 괴뢰(傀儡[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 건국 10 주년(滿洲國建國十周年)' 기념식(紀念式)의 일환(一環)으로 개최된 음악회(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이를 찬양(贊揚)하는 음악('만주환상곡'[에하라 고이치 작사, 안익태 작곡])을 작곡, 지휘했다는 이유 등등(等等)으로 이 '연구소'에 의해 '친일인(친일파)' 명단에 올랐음. 그러나, '戰時體制(전시 체제)'였음을 참작(參酌)하면 이도 일제(日帝)의 폭압(暴壓)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무엇보다 더욱 크거니와, 그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政治的) 시각(視角)을 벗어나 하나의 예술 작품(藝術作品)의 발표(發表)요 '창작(創作)의 자유(自由)'라는 관점(시각)에서 보면 그 내용이 '찬양(讚揚)?고무(鼓舞)'든 '저항(抵抗)?고발(告發)'이든 꼭 '친일'이라는 편향적(偏向的) 시각(視角)에서만 바라보고 낙인(烙印)찍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危險)한 적용(適用)일 수도 있는 것. 사실, 정치적(政治的)으로 보아도 이 시기(時期)에 일제(日帝)의 제반(諸般) 요구(要求)를 거부(拒否)했을 경우라면, 가족?친족?친지 등과 기타 동료(同僚)?지인(知人)들에게 미칠 앙화(殃禍)는 상상(想像)을 초월(超越)하려니와, 당사자(본인)는 '徵用(징용)?徵兵(징병)' 대상자가 되어 여지(餘地)없이 사지(死地)로 끌려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거나, 드물게는 '인간 생체 실험용', 곧 '마루타(まるた[])'로 직행(直行)했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것이 그의 예술적 삶을 위해서는 꼭 현명한 선택의 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임――예술 세계(藝術世界)라는 면(面)에서 볼 때도, 한 예술가(藝術家)의 예술혼(藝術魂)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참여(參與)'냐 '순수(純粹)'냐의 논란처럼 끝없는 논쟁거리는 될지언정, '친일'로 재단(裁斷)할 수는 없는 것――. '민족문제연구소'가 이 점(點)만 인정(認定)할 줄 알면 애국가 연주에 따른 '국민의례'란 것도 아무 문제 없이 정당화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그를 잘못된 편향적 개념만 가지고 '친일파'라는 정치적 시각으로 보고 단죄하려 든다면, 이와 같은 애국가 연주와 '국민의례'는 단순 무지(單純無知)를 스스로 드러낸 것임].
【‘민족문제연구소’(회견)】(VTR 2005년 8월) ‘오늘은 우선 명부를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겠습니다.’
【내레이터】민간 단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로 지명한 3,090 명의 이름을 발표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회견)】(VTR 2005년 8월) “일제에 깎아 내릴 수 있었던 민족인 채, 통일도 하지 못하고, 친일파의 청산도 하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서 60 년 간 살아 왔는가! 향후도 성원을 부탁합니다.”(박수가 솟아 일어난다)[譯·編輯者註 = 친일의 정확한 개념과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상투적(常套的), 교과서적(敎科書的), 윈칙적(原則的)인 총론(論)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水準).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단(一旦) ‘연구소(硏究所)’라기보다는 정치 집단(政治集團) 같은 인상(印象)을 일본 방송 취재진에게 심어 주기에 충분함]
【내레이터】추궁받는 ‘친일파’, 그 기준이란···? 서울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사무소. 역사학자를 시작으로 하는 대략 5,000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친일파’ 명부의 작성 등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지하에 있는 자료실에는 일본 통치 시대의 방대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연구실장’인 박한류 씨가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시의 슬로건――‘國民總武裝大和一致(국민총무장대화일치)’와 일치해 적을 격멸해·이길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우리들로 원호――, 전시중의 채권, 군국주의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잡지.

【‘민족문제연구소’ 박한룡 ‘연구실장’】“(잡지를 보이면서) ‘大東亞戰爭一周年(대동아전쟁 1 주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大東亞共營圈(대동아공영권)’이겠지, 여기로부터 여기까지가, 이 잡지가 왜 친일 잡지인가, 그림만이 친일이 아니라, 내용 자체도 국가의 방침에 따라서 있었기 때문입니다.”[譯·編輯者註 = '친일 행위자(친일파)' 선정(選定) 기준(基準)을 묻는 (일본 방송) 기자의 질문에 동문서답(東問西答)으로 일관(一貫)하는 박한룡 씨.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회피하는 것인지, 아무튼 외국 방송의 취재진에게까지 민망한 꼴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가 실망스럽기만 함. 그보다는 마치 무슨 정치 집단(政治集團)의 선전(宣傳)?홍보(弘報) 요원(要員)을 방불(彷彿, ??)케 하는 것이 더욱 '가관(可觀)'이거니와  이처럼 균형을 상실한 인사(人士)가 소위 '연구실장'으로 있는 곳이 '민족문제연구소'인지, '학자' 또는 '연구원'이라 하기에는 수준(水準) 이하(以下)의 처사(處事)로서 망신(亡身)거리임이 폭로되는 순간이라 할 일. 하기야, 1 회에만 '친일' 의혹(疑惑)이 있는 것은 친일이 아니고 '지속성(持續性)?반복성(反復性)'인 '친일'이라야 한다거나――횟수(回數)보다 그 개념(槪念)이 문제의 초점(焦點)임을 도외시(度外視)한 이상(異常)한 기준(基準)의 하나――, '전시체제' 동원(動員)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일본 방송 취재단의 끈질긴 추궁성(追窮性) 질문(質問)이 이어질 것을 예견(豫見)한 고단수(高段手)의 노회(老獪)한 회피(回避) 수법일 수도 있겠음. 아무튼 떳떳하지 못하고 망신(亡身)스럽기는 마찬가지임.]
【내레이터】당시의 잡지나 악보 등을 보여 주며 ‘친일이다’라고 지적하는 박한용 씨. 이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를 보여 주었습니다. 친일파의 인명이 써진 카드, ‘1만 매나 있다.’라고 합니다.[譯·編輯者註 = ‘친일파’의 선정 기준(選定基準)을 밝히지 못하고, 피상적(皮相的)·형식적(形式的)인 예비(豫備) 조사 자료(調査資料)의 양적(量的) 성과(成果)만 과시(誇示)하여 선전 효과(宣傳效果)만 높이기에 급급(汲汲)한 이 ‘연구소’의 민망(憫?)한 면면(面面)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운데, 일본 방송 취재진은 이제 핵심 사항 취재는 차분하게 포기(抛棄)한 채, ‘연구소’의 선전 효과(宣傳效果)만 높여 줄 뿐임]
      
                       【동영상 2】(앞의 마지막 일부분과 중복되기도 함)
 ‘일한합병조약’[譯·編輯者註 = '한일합방(병합)',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바로잡음]이 체결되었을 때의 수상 이완용(李完用). ‘일본의 조선 통치에 협력, 매국 행위를 했다’고 친일파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관료(官僚)나 사법(司法) 관계자, 군인(軍人), 경찰관(警察官). 그들의 이름은 친일적(親日的)인 활동을 한 기록과 함께 카드로 작성되고 있었습니다. 민간인(民間人)의 이름도 있습니다.[譯·編輯者註 = ‘친일적(親日的)’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친일인(친일파)’ 규정(規定)을 신중(愼重)하게 해야 한다는 (방송) 제작(製作)의 의도(意圖)를 간접적(間接的), 우회적(迂廻的)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
 
 김기창(金基昶), 한국의 ‘국민적인’ 화가입니다. 1만원 지폐에 있는 세종(世宗) 대왕(大王)의 그림을 그린 인물입니다만, 그 한편으로 ‘친일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하여 (‘친일파’로) 추궁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친일파’의 카드를 만든 것은 이 인물, 1929 년생의 문학자 임종국(林宗國)입니다.
≪계속≫

stmale 2009.11.03  12:20

일본식 한자('약자'), 기타 특수 문자 입력에 문제가 있어서 물음표로 나오는 점이 유감(遺憾)입니다. 일일이 교정해 입력하기에는 시간과 정력상의 낭비가 심대하므로, 자세히 보고 싶으신 분은 '네이버'나 '다음' 블로그로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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