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여배우들> 속 대사를 빌자면, "독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논리와 미디어에 의해 합작된 여배우의 이미지는 이들을 스타로 밀어 올리는 대신, 어쩔 수 없이 가식의 허울 뒤로 숨게 만든다. 숱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동시에 스타로서의 꼿꼿한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 나이 들어가며 변화하는 외모와 주름살에 한숨 짓고, 성형 수술을 얼마나 더 받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 대중의 여신으로 추앙 받는 동시에 대중의 마녀로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 이런 정신 분열증적 상황을 견뎌낸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재용 감독의 혁신적인 야심이 묻어나는 영화 <여배우들>은 바로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여배우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로부터 이미지의 베일을 걷어내고, 그들의 인간적 단면을 슬쩍 엿본다. 설정은 패션잡지 VOGUE의 특집 커버 '보석 보다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촬영을 위해 이 시대의 잘 가는 여배우 여섯 명이 크리스마스 전날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알려져 있다시피 윤여정을 비롯,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각자의 실명으로, 그리고 각자의 상황 그대로 출연한다. 그러니까 이들 모두 어떤 배역도 아닌, 자기 스스로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정의 참신성에 생명력을 얹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솔직 담백한 이야기로 여배우들의 이면을 드러내는, 여섯 여배우들의 용감무쌍함이다. 정해진 시나리오에 의해 흘러가는 일부 설정을 빼면, 사실상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모두 애드립이라고 믿겨질 정도로, 여섯 명의 여배우들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대화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들 여섯 명의 배우가 모두 공동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기본 설정은 이렇다. 노배우 윤여정은 혹시라도 자신이 대타 섭외된 게 아닌가 불안해하고, 김미숙은 나이 들어가도 여자로 남고 싶은 마음을 토로한다. 고현정은 뒤늦게 나타난 한류 스타 최지우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다 화장실에서 한 판 붙는다. 약간 4차원 세계에 있는 듯한 김민희는 그 작은 얼굴로 언니 배우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고, 김옥빈은 여배우 위계 구조에서 막내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눈치껏 애를 쓰지만 쉽지가 않다.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세대의 여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벌어질 법한' 상황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여배우들 사이의 알력과 신경전을 드러내는 영화는, 후반으로 접어들며 슬쩍 이들 모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소통의 파티로 선회한다. 협찬 보석을 기다리며 촬영이 중단된 사이, 샴페인을 마시며 이들이 털어내는 진심 어린 이야기는, 그 자체로 관객들을 폭소의 도가니에 담갔다가 숙연한 상황으로 몰아 갔다 하는데, 이를테면 여배우의 이혼 경력,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허점 등 여배우들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종횡무진 오간다. 윤여정은 “(최)지우가 일본 시장, (송)혜교가 중국 시장을 맡으면 나는 재래 시장이나 맡을래” 하며 중견 배우 특유의 너스레를 떨고, 이미숙과 고현정은 "남들도 하는 이혼인데, 여배우가 이혼한 건 주홍 글씨냐"며 눈시울을 붉힌다.
어쩌면 여배우들만의 파티 자리를 슬쩍 엿본 것도 같은 이 영화는, 아무리 입심 좋은 토크쇼 엠씨라도 끌어낼 수 없는 싱싱한 대사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이미지의 베일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인간적 면모뿐 아니라 스타 산업의 이면을 가늠할 기회를 안겨 준다. 기획과 연출의 참신성과 배우들의 진정성이 모처럼 시너지를 이뤄낸 흔치 않은 작품이다. 12월 10일 개봉.
단언컨대, 영화 <더 문>은 걸작이다. 시종일관 SF 스릴러 특유의 팽팽한 장르적 쾌감을 이어가면서도, 생각 있는 SF의 미덕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온갖 휘황찬란한 CG 스펙터클의 과시 없이도, 이처럼 설득력있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더 문>은 제목처럼 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통신용 모니터에 나오는 인물들과 로봇을 뺀다면, 등장 인물은 사실상 오로지 한 명이다. 지구 에너지원을 채취하기 위해 달에 파견된 샘(샘 록웰)이다. 그는 3년 동안 홀로 생활하면서 거대한 기계가 채취한 달표면의 헬륨 3를 지구로 쏘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기지 내의 인공지능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가 유일한 말벗인 그에게 이제 지구 귀환까지 딱 2주일이 남아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리운 아내와 딸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잇따라 이상한 여자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상황은 급변한다. 그가 미처 몰랐던 거대한 비밀이 베일을 벗는다.
영화 <더 문>은 달 기지에서 생활하는 인물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통해 고립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성과 기억의 함수 관계 등 흥미로운 해석의 곁가지를 풍성하게 펼쳐 놓는다. 장르의 프리즘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통찰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탁월하게 표현한 샘 록웰(리들리 스콧의 <매치스틱 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사기꾼 일당으로 나왔던 그 배우다.)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더욱 묵직한 빛을 발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으나, 나는 특히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미덕 가운데, 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직설적 메타포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감히, 달 기지에서 일하는 우주인을 3년짜리 계약직 노동자의 신세로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감독 던칸 존스의 상상력은 현실의 부조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상태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면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복제'의 모티프를 가져온 장르의 표피 위에 촘촘히 박아 놓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달 기지 이름은 LOVE도 아닌, 한국어 그대로 '사랑'이다. 영화 말미에도 한국어가 잠깐 등장하는데, 듣기론 감독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는 게 작용을 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달 기지가 한국 기업의 것이라는 설정이라면, 오히려 더 현실성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차 없는 해고의 칼날을 등 뒤에 숨긴, '사랑'이 넘치는 가족 경영, 왠지 낯익은 표현 아닌가. 과연 영화 속의 기업 관계자들은 샘을 향해 끊임 없이 "그대가 가장 소중하며, 진정한 영웅"이라는 입바른 수사를 잊지 않는다.
11월 26일 개봉했으나, <더 문> 역시 한국 극장가의 '좋은' 영화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상응하는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간판 내려오기 전에 얼른 챙겨 보시길 권한다. <뉴 문>을 기다리는 분들은 혼동하지 마시길.
꼭 그래야 겠어요? 뭘요? 아니 꼭 영화배우들을 출연시켜야겠냐고요. 그게 뭐? 뻔하잖아요. 개봉 얼마 안남은 영화 배우들 출연시키는 게 섭외하기도 편해서 그런다는거, 모를 줄 알아요? 잘 아시네요. 섭외하기 편합니다. 근데 그게 뭐 문제인가요? 문제라기보다...왜 나오나 싶어서 그런거죠. 유감 있나요? 나와서 영화 얘기 하나요? 당근 안하죠. 그럼 왜 나오나요? 몰라요. 그렇게라도 나와서 연상 효과를 일으키면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보죠. 실제로 도움이 되진 않잖아요. 안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와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겠죠. 뭐. 시청률엔 도움이 되나요? 다른 건 몰라도 섭외하긴 편해요. 알아서 나오겠다고도 하고. 홍보사를 통해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왜 그렇게들 나오고 싶어하나요? 말씀드렸잖아요. 지푸라기... 배우들은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배우들도 있고 시큰둥한 배우도 있어요. 시큰둥한 배우는 왜 나오나요? 계약서에 거기까지 하기로 돼 있다지요, 아마? 더 이상은 물라요. 우린 나오면 그걸로 장땡이니까. 좋아요. 그런데 영화배우들 나오면 그래도 출연 영화에 대해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예의 아닌가요? 안하나요? 하긴 하죠. 근데 너무 짧잖아요. 아시잖아요. 영화 얘기 길게 하면 시청률 떨어져요. 시청자들은 그냥 걔들이 나오는 걸로 감지덕지니까요. 당신들이 감지덕지 아니고? 핏. 영화 얘기를 해볼 생각은 안해봤나요? 명색이 영화 배우인데. 왜 안했겠어요. 해도 그냥 저냥 별 재미 있는 얘기가 안나와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배우들이 자기가 출연한 영화의 미덕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에이, 모르겠어요. 발언할 기회를 안주니까 그런거겠죠. 여보세요! 네? 버라이어티쇼에 나와서 영화 얘기 할 생각했으면 애초부터 나오질 말았어야죠. 애시당초 나온 게 번짓수가 틀렸다는 건가요? 두말 하면 잔소리죠. 그럼 명색이 영화배우들이 영화 얘기를 할 기회는 없는건가요? 영화 소개 프로그램 있잖아요. 거긴 이미 개그맨들이 다 장악했잖아요. 그건 편성팀에서 따지세요. 저 바쁘거든용? 편성팀은 어딨나요? 방송국 대표전화를 거시면 가르쳐 줄 거에요.
<닌자 어쌔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영화다. 우선, 가장 편리하게는 적지 않은 국내 언론들의 방식,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연을 통해 정지훈(비 또는 Rain)이 월드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는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결과로는, 그런 평가가 괜한 호들갑으로 들리진 않는다. 적어도 정지훈이 동양계 배우로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연을 꿰찬 몇 안되는 배우에 합류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둘만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더구나 이런 유의 액션 영화에 기대되는 미덕을 그가 꽤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 다듬어진 몸매에 각종 무기들을 다루는 솜씨를 보아하니, "죽자 사자 찍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거야 정지훈의 영광이다. 과연 국내 관객들이 오로지 정지훈의 영광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닌자 어쌔신>을 보러 갈 것인가,를 자문한다면, 즉각 두 번째 접근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미 국내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수식어가, 다른 모든 결점을 상쇄할만큼의 강력한 흡입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테면 박중훈이 출연했지만 국내 흥행에선 냉대를 받은 <찰리의 진실>(2002)이라든가, 최근 이병헌이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같은 영화가 충분히 입증한 바 있다. 정지훈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 <스피드 레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닌자 어쌔신>이라는 영화가 과연 볼만한 작품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타당하겠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왜 그런고 하니, <닌자 어쌔신>은 관객들의 영화적 취향에 따라 그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릴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사실상 고어 영화에 가까울 정도의 피칠갑 액션을 선보인다. 머리가 싹둑 잘리고, 눈알이 튀어 나오고, 팔 다리가 잘린 자리에 피 분수가 튄다. (영화를 소개할 때 이런 정보는 반드시 줘야 한다. 혹 모르고 봤다가 극도의 위화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영화 자체를 쓰레기로 폄훼하는 사례가 실제로 빈번하기 때문이다.)
혹 이런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취향의 소유자라면, <닌자 어쌔신>의 도륙적 액션 시퀀스를 나름대로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면 혐오스러운 장면을 참아내느라 관람 시간 자체가 고문이 될 터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슬래셔나 하드고어도 하나의 장르적 장치라는 전제에서 바라본다 해도,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컴퓨터그래픽에 의해 만들어진 저 무참한 신체훼손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나의 개인적 취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물들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도륙되는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게임의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를테면 최양일 감독의 <수>나 박기형 감독의 <폭력 써클>같은 영화들이 폭력의 잔혹성을 그야말로 잔혹하고도 사실적인 느낌으로 전시하려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그러니까 폭력 그 자체를 유희화하고 있는 셈인데, 이것이 흔히 보는 난도질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고민해 보니, 그 정체는 컴퓨터 그래픽의 가상 현실적 이미지라는 결론에 다다랗다. 이것을 워쇼스키들이 제작한 영화이자 정지훈의 첫 할리우드 출연작인 저 찬란한 실패작 <스피드 레이서>에서도 극단적으로 추구됐던 바의 연장선에 놓인 비주얼적 전략이라고 부른다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나로선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비현실성에 적응된 순간, 슬래셔적 잔혹함이 하나의 시각적 오락의 차원으로 고양됐다. 제작진이 노렸던 바도 바로 이 지점일 터이나, 또 반대로 그 적응의 순간, 이야기의 상투성이 눈엣 가시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상 현실적 비주얼이 새로운 시대의 장르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밀어 붙이며,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이들로부터 비주얼 혁명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워쇼스키들의 야심은 알겠다. 알겠는데, 내가 보수적인 관객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새로운 비주얼에 대한 심미안이 덜 훈련된 건지 몰라도, 매우 단선적인 플롯을 강렬하고도 극단적이며 자극적인 CG로 감싸고 있는 이 영화는 내게 그냥 B급 액션 영화의 테크니컬 업그레이드 버전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B급이라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이를 테면, 똑같이 B급 감수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푸르프>를 볼 때와는 천양지차였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이들의 새로운 실험은 비주얼적 혁명에 지나치게 자아도취된 나머지, 스토리텔링의 쾌감과 대사의 감칠맛을 홀대하기 때문이다. 정지훈의 전작 <스피드 레이서>도 그런 점에서 지지하지 못했는데, 불행히도 <닌자 어쌔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26일 개봉.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 연예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국 가수들의 외국 진출이 빈번해지는 걸로 봐선 음악이야말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것 같다. 연기라면 어떨까? 일단 그 나라 말이 돼야 한다. <지아이조>의 이병헌이나 <닌자 어쌔신>의 정지훈을 보면, 영어 연기가 꽤 그럴 듯 하다. 이들을 보면 타국어 연기도 노력을 통해 취득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자연스레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듣는다.
한데 코미디라면, 얘기가 다르다. 웃음의 코드야말로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낄낄 대며 웃으며 보는 영화를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썰렁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터, 드라마든 영화든, 리얼리티쇼든 죄다 수입해서 틀어도 코미디만큼은 어지간해도 수입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데 이렇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 성과를 보여준 이가 있으니, 바로 조혜련이다. 조혜련이 일본 쇼 프로그램에 나와 일본인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걸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한국인이 타국어로 그 나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혜련의 초인적, 국제적 유머 감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조혜련은 세 가지 핸디캡을 동시에 극복하며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핸디캡이란 그녀가 여성이고 외국인이며, 결정적으로 솔로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케와 츠코미(만담에서 유래된 일본의 독특한 코미디 공연 방식으로, 한 사람은 바보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구박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생산한다.)가 짝을 이루는 팀 코미디가 대세인 일본에서 조혜련은 '나홀로 코미디'로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간사이 출신의 아이돌 그룹 '칸자니 8'이 진행하는 쇼 프로그램에 조혜련이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한국의 전통 음식을 직접 요리해 칸자니 멤버들에게 먹이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진행자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개그 패턴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도무지 내숭과는 벽을 쌓은 듯 연타로 이어지는 그녀의 우악스러운 들이댐이 일본인들에겐 꽤 새롭게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적인 열정과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일본인들이 미처 개발하지 못한 틈새의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그들의 문화 안으로 동화되는 게 아니라 문화 밖의 이질성을 무기 삼아 시침 뚝 떼고 전진함으로써 참신한 재미를 창출하는 게, 그녀의 방식이자 성공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쉴새 없이 오가는 강행군을 소화하면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분야에서 가장 걸출한 활동을 펼치며 두 나라의 문화적 간극에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녀의 업적을, 한국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일본어로 일본인들을 웃기는 모습을 보는 게 아직도 불편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한국 연예계 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하고 있는 이 불굴의 개그우먼이 아이돌 그룹의 활동상에 밀려 왠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혜련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스타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부는 상이라도 줘야 한다.
덧붙임) 일산에 사는 그녀를,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옆에서 러닝 머신을 하고 있던 조혜련이 트레이너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선명하다. "나는 서너 시간을 뛰어도 지치질 않아요. 좀 지쳐 봤으면 좋겠어!"
조혜련이 하는 것가지고 일본에서 성공을 했다고? 웃기지마라.
처음 한국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라는 명함으로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안나온다.
유머코드가 안맞으니까. 언어의 장벽도 있어서, 말길도 잘못알아듣기한다. 더구나, 한국에서 하는 것과 하나도 변함없는 똑같은 짓을 한다. 일본에 여자코미디언으로 혼자가 없다고? 혼자서 성공하고 성공한 여자코미디언 수두룩하다.
지금 그녀가 출연하는 것이라고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의 방송에 국한되어있다.
그것은 그녀가 웃겨서? 코미디언이기때문이 아닌, 단지 한국연예인이기때문이다. 내주위 일본인들 그녀를 코미디언이라고 보지 않는다. 단지 '한국에서 잘나가는 코미디언'으로 인식할뿐이다. 이전 이봉원과 비슷한 정도. 일본에서 코미디언이란 직업을 가진것이 아닌, 한국에서의 명함을 가지고 일본에서 방송출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윗분말씀에 찬성 한표요~~
조혜련씨...처음에는 좀 영리하게 말하나 싶더니..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인들 특유의 외국인 공략에 서서히 무릅을 꿀어가는
형국이더군요.
최근에는 얼굴보기도 힘들다 했는데..^^ 한국에 돌아가셨군요^^
개인적으론 잘 판단하신거란 생각이드네요. 일본인들사이에서 점점 어글리코리언이 되어가는 자신을 자학하며 참고견기기 보단
한국에서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사는게 더 나을수도 있겠지요.
왜 주목해야하죠? 거기서는 인기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기분맞춰주며 내숭떠는 모습 솔직히 안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창가학회 ? 한국과 일본에 큰 거점을 둔 이상한 종교집단이라고 하던데 거기서 밀어준다면서요 ? 처음 방송국출입구에서 pd들한테 한국김돌리며 잘봐달라고 사정할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여튼 저는 일본에서 가끔 티비에서 조혜련이 나오면 보게 되는데요,,,우선은 연예활동 하면서 바빴을텐데 언제 저렇게 일본어를 배웠나...하는 마음에 자신이 작아집니다. 물론 누구든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 뭐든 하는 거겠지만요, , 특히 말씀하신대로 외국어로 코메디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대본도 있겠지만 에드립도 필요할테구요. 외국어 버라이어티쇼나 코메디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당수준의 레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한류스타들 많이 나와서 한국 이미지가 업되고 호감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인것 같구요, 열심히 자기분야를 개척해 나가려고 하는 조혜련씨 마음속으로 화이팅합니다. 행동보다 입으로만 더 열심히 사는 나와같은 사람보다는 확실히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