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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n (hanwo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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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7
 

Blues Artist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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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Kooper
2004/10/21 오후 2:07 | Blues Artist Profile

 

Blues Artist Profile


한울N[hanwooln]의 BLUES STORY


Al

Kooper

 


알 쿠퍼(Al Kooper)는 60년대 록의 위대한 거인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상대적으로 밥 딜런(Bob Dylan)이나 폴 사이먼(Paul Simon)과 비교 할 때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명반들의 세션맨이었으며 두개의 음악성 탄탄했던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난 알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틀어준 베시 스미스(Bennie Smith)의 음악을 들으면서 블루스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가스펠, R&B, 소울 등의 음악에 심취하며 영역을 점차로 확장하였다.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훈련이나 연주 경험 없이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있다가 피아노를 쳐서 당시 유행하던 선율을 연출 했다고 한다. 스스로 독학한 그는 다음엔 기타를 손에 잡았다. 1950년대까지 그의 주된 관심사는 가스펠이었으나 록큰롤이 나타나자 새로운 경향의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가 첫 번째로 가입한 그룹은 로얄 틴즈(The Royal Teens)라는 그룹이었다.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력의 향상을 보이며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션맨으로 많은 참여를 하였을 뿐 아니라 엔지이어로서도 활약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큰 성공은 'This Diamond Ring'이 게리 루이스 앤 더 플레이보이스(Gary Lewis And The Playboys)에 의해 히트하면서 시작되었다. 밥 브라스(Bob Brass), 어윈 레빈(Irwin Levine)과 함께 작곡한 이곡이 성공하면서 그는 작곡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어느날 친구인 톰 위슨(Tom Wilson)은 밥 딜런의 스튜디오 녹음 현장에 알을 초대한다.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으로 알은 자신의 악기를 지참아여 그 곳으로 갔다. 'Like A Rolling Stone'에서 오르간 연주자가 필요했을 때 알은 즉흥 연주를 즉석에서 시도하였으며 밥 딜런은 그의 연주를 매우 맘에 들어했다. 그 뒤로 알은 밥의 앨범 [Blonde On Blonde](1966), [New Mornitn](1970), [Under The Red Sky](1990) 등에 참여하며 수십년 간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앨범 참여 후 그는 수많은 세선 참가 부탁을 받게 된다. 거절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던 그는 이들을 떼어내기 위해 적정가의 세 배를 지불하도록 청구했으나(그러면 이들이 포기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요수를 기꺼이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가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던 요구는 바로 블루스 프로젝트(The Blues Project)로의 가입이었다. 이 그룹은 60년대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뛰어난 블루스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들과 세 장의 앨범을 낸 후 그는 새로운 사운드의 추구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혼 섹션의 첨가였으며 이러한 결실로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et & Tears)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트럼본, 트럼펫, 알토 섹소폰을 포함한 스케일 큰 음악을 들려주었다. 1967년 콜럼비아 레코드사(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나온 이들의 데뷔 앨범 [The Child Is Father To The Man]은 60년대 록음악을 이야기할 때 제외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앨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후 밴드 내부의 갈등과 상업적인 앨범을 제작하라는 소속사의 압력 때문에 알은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후 센션맨으로서 주로 활동하게 되는데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더 후(The Who),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수퍼 센션(Super Session)의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앨범 제작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인 [I Stand Alone]도 발매하게 된다. 상업적인 실패를 겪은 이 앨범 후 그는 블루스 기타의 신성 셔기 오티스(Shuggie Otis)를 동원하여 [Kooper Session]을 발매하나 역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자신의 레이블을 세워 리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수백만 장이 팔린 그들의 처음 세 장의 앨범을 제작하였다. 1970년대에는 비비 킹(B.B. King), 튜브스(The Tubes), 조 앨리(Joe Ely) 등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밥 딜런, 조월쉬(Joe Walsh), 톰 페티(Tom Petty) 등과의 협연, 다수의 사운드트랙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80년대 들어서 뜸해졌다.

1994년 그는 [ReKoopera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연주 앨범으로서 록음악보다는 재즈나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뮤직 마스타스(Music Masters)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1995년 발매된 [Soul Of A Man-Live]는 더블 라이브 앨범으로서, 솔로 시절 앨범에서 수퍼 센션, 아드리안 벨루(Adrian Beles)의 히트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록곡을 보여주었다.

현재 그는 버클리 음대에서 강사직을 맡고 있다. 이제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유로 버클리 음대를 선택하였다. 최근 버클리 음대는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장애를 극복하고 연주에 전념하려는 학생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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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ollins
2004/10/21 오후 1:54 | Blues Artist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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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N[hanwooln]의 BLUES STORY


Albert

Collins

 


텍사스 블루스의 팬더 텔레캐스터 기타의 명인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알버트 콜린스는 1932년 10월 1일 텍사스주 Leona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가족들이 휴스턴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그는 거기에서 사촌이자 당시 유명 블루스 연주자였던 [라이트닝 홉킨스]로부터 기타레슨을 받았다. 이후 그는 [클러렌스 게이트마우스]와 함께 활동했고 잠시 [리틀 리차드]의 밴드에서도 연주를 했다.

알버트 콜린스는 58년경에 음반데뷔를 했고 60년대부터 유명 연주자로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가운데 [로버트 클레이]가 특히 유명하다. 그는 앨리게이터, 캐피톨, 포인트블랭크 등 여러 레이블을 옮겨 다니며 왕성한 음반활동을 했다.

알버트콜린스는 팬더 텔레캐스터 기타의 명인으로 힘있는 블루스 기타를 추구했다. 이러한 선이 굵고 남성적인 연주는 텍사스 블루스 기타의 전형적인 유형을 만드는 것으로 이후의 텍사스 블루스맨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용한 장비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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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Bone Walker
2004/10/13 오전 10:43 | Blues Artist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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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N[hanwooln]의 BLUES STORY


T. Bone

Walker

 


모던 블루스 기타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T. 본 워커]의 출현으로 블루스 기타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면서 블루스의 한계는 무한하게 된다.

본명이 [아론(Aaron Thibeaux Walker)]인 그는 1910년 5월 텍사스주의 [린덴]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체로키 인디언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음악가였다. 그가 두 살 때에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 [달라스]로 옮겨온 아론은 새 아버지와 함께 드라이브인 음료수 가게에서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던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리드보이(장님의 길 안내겸 심부름꾼 겸 보조...)로 일하면서 [제퍼슨]으로부터 블루스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13세 때에 처음으로 악기를 만지기 시작했으며 새아버지에게서 밴조를 이복 동생에게서 우쿨렐레, 만돌린, 바이얼린, 피아노 등을 배웠다. 아버지의 밴드는 달라스에서 꽤 인기가 있었던 밴드였는데 아론은 16세 되던 해에 정식 멤버로 가입해서 밴조 등을 연주하게 되었다.1933년 [찰리 크리스천]을 만날 때까지 많은 그룹과 함께 공연도 하고 레코딩도 하고 했으나 모두가 댄스뮤직이었다.(당시는 탭 댄스가 유행이었다.)

"찰리가 기타를 치면 내가 베이스를 치고, 내가 기타를 치면 찰리가 베이스를 치고 그러다가는 우리는 춤을 추면서 모자를내밀었고, 사람들은 돈을 넣어 주었다."라고 아론은 그 당시를 회상하곤 했다. 찰리와의 만남은 아론으로 하여금 음악적인 진로를 바꾸게 하였고 활동 무대를 캘리포니아로 옮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유행 음악은 재즈였고, 어디를 간 재즈맨들이 붐비고 있었다. 1935년, 그는 처음으로 전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생계를 위하여 닥치는 대로 음악을 하였다. 1946년, 아론은 그 당시 유행을 따라 10인조 편성의 대규모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그의 기타와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밴드의 사운드는 블루스라기 보다는 재즈에 더 가까웠으며, 지방에서 공연하던 재즈밴드가 텍사스의 강한 리듬과 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듯한 댄스뮤직을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서서히 블루스적인 취향으로 바뀌어가면서 울부짖듯이 거칠어진 아론의 연주는 특히 스테이지에서 인정받았으며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음악을 듣는 팬들이 줄어들었음을 느낀 그는 유행의 변화에 맞추어 연주 스타일을 바꾸곤 했다. 1973년 [디지 길레스피]나 [허비 맨]등의 재즈 플레이어들과의 세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아론은 75년 3월 그의 정열적인 생을 마감하게 된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들 뿐만 아니라 [바니 케슬]등의 정통파 재즈기타 플레이어 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주었던 아론은 블루스와 재즈의 스타일을 합쳐버린 위대한 선구자 였다. 그 때문에 깁슨 기타가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깁슨 기타의 애용자였지만 앰프만큼은 항상 펜더를 사용했다.

그의 노래 중[Call It Stormy Monday]는 블루스의 기념비적인 고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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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ie Ray Vaughan
2004/10/13 오전 10:39 | Blues Artist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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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N[hanwooln]의 BLUES STORY


Stevie

Ray

Vaughan

 


스티비 레이 본은 지미 헨드릭스의 팔로우적인 존재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역시 짐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의 전통을 록의 시대에 재현하는 것을 이어온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한 명이다.

1954년 10월에 텍사스의 달라스에서 태어난 그는 형인 지미 레이 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기타와 블루스에 흥미를 느껴 그 형을 따라 10대 때 오스틴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티스 러쉬의 곡에서 이름을 붙인 더블 트러블이라는 그룹을 조직한 그는 열심히 라이브를 계속하던 중 데이빗 보위에 인정을 받아 그 만남을 계기로 일렉트로 팝 전성시대에 새로운 타입의 블루스맨으로서 데뷔하여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1990년 여름에 막을 내린 그의 짧은 생애 최후의 스테이지는 에릭 클랩튼의 게스트로서 였다고한다.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클랩튼은 그 스테이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전 지미 헨드릭스의 누이가 한국의 모음악지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인물로 바로 스티브 레이본을 지적한 바 있다.

백인으로서 흑인의 음악인 블루스를 자신의 기타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레이본은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지미 헨드릭스처럼 너무 빨리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요즘 스티비 레이 본의 후계자로는 케니 웨인 쉐퍼드 같은 인물이 지목되고 있다.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고 텍사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것? 메이저 리그의 박찬호 선수. 블루스 팬이 아니더라도 텍사스 블루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an(스티브 레이 본). 그를 텍사스 블루스를 대표하는 거장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90년 8월 26일 Eric Clapton, Buddy Guy등 쟁쟁한 블루스 기타 리스트들과 위스콘신에서 합동 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인해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시카고 블루스, 델타 블루스 와 더불어 블루스 음악계의 커다란 축으로 부각되는 텍사스 특유의 깔끔한 스타일의 블루스를 연주하는 기술과 천재성을 겸비한 대표적인 블루스 기타 리스트라 할 수 있다.

1954년 텍사스의 달라스 태생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역시 이름난 블루스 기타리스트 이다)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그의 형과 더불어 동네의 블루스 클럽에서 연주 기회를 가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나이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문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면서 70년대 중반 텍사스의 오스틴 등지에서 'Cobras' 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였고, 여러 음악인들과 함께 해체와 재결성을 거듭하여 클럽활동을 하던 중 1982년 Double Trouble 이란 이름으로 몬트레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그는 이미 오스틴 지역의 최고 기타 플레이어로 인정 받고 있던 유능한 음악인이 되어있었다.

이 공연에서 당시의 인기 가수이던 David Bowie의 눈에 띄게 되고 이러한 인연으로 David Bowie가 82년 발표한 [Let's Dance] 앨범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시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듬해인 1983년 Stevie는 그의 밴드인 Double Trouble과 함께 데뷰 앨범인 [Texas Flood]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큰 히트를 하게 되며 블루스 앨범으로는 드물게 그 해 앨범차트 38위에 오르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원래 David Bowie의 [Let's Dance] 앨범 프로모션을 위한 순회공연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 앨범의 예상치(?) 못했던 성공으로 자신의 밴드들 위한 단독 전국 순회공연을 나서게 된다.

이 후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마치고 1984년 5월 두 번째 앨범인 [Couldn't Stand the Weather]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차트의 3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그는 이제 메이져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된다. 1985년에 발표된 그의 세 번째 앨범인 [Soul to Soul] 역시 전과는 달리 정식으로 키보디스트를 영입하여 보다 안정적인 사운드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음색의 구성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게 된다.

끊임없는 공연과 열정적인 앨범작업의 결과로 1989년 발표된 네 번째 앨범 [In Setp] 은 그의 앨범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 받으며 그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블루스 앨범상' 을 획득하게 된다.

숨돌릴 틈 없이 10여년 가까이 왕성한 음악활동(계속되는 공연으로 1989년도 한해에는 기타의 플렛을 4번이나 새 걸로 바꾸었다는 애기도 전해진다)을 해온 이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를 하늘이 아까워 해서일까? 그의 음악 생활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연 중 하나로 평가 받은 거장들과의 합동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그의 연주 곡인 "Little Wing" 처럼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천재 기타리스트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이 생전에 동생이 해왔던 작업들을 모아서 콜렉션 앨범으로 1991년 10월에 발표한 "The Sky is Crying"은 그의 천재성과 뛰어난 음악성을 기억하려는 팬들에 의해서 3개월 만에 백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알리게 된다.

우리들에게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 Stevie Ray Vaughan - Jimi Hendrix와는 또 다른 해석을 통해 맑고 힘있는 여운을 주는 "Little Wing"을 들으며 더운 여름 저 하늘 어딘가에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Jimi 와 함께 우리를 보고 있을 그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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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Boy Williamson
2004/10/13 오전 10:34 | Blues Artist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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