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쿠퍼(Al Kooper)는 60년대 록의 위대한 거인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상대적으로 밥 딜런(Bob Dylan)이나 폴 사이먼(Paul Simon)과 비교 할 때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명반들의 세션맨이었으며 두개의 음악성 탄탄했던 밴드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난 알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틀어준 베시 스미스(Bennie Smith)의 음악을 들으면서 블루스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가스펠, R&B, 소울 등의 음악에 심취하며 영역을 점차로 확장하였다.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훈련이나 연주 경험 없이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있다가 피아노를 쳐서 당시 유행하던 선율을 연출 했다고 한다. 스스로 독학한 그는 다음엔 기타를 손에 잡았다. 1950년대까지 그의 주된 관심사는 가스펠이었으나 록큰롤이 나타나자 새로운 경향의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가 첫 번째로 가입한 그룹은 로얄 틴즈(The Royal Teens)라는 그룹이었다.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력의 향상을 보이며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션맨으로 많은 참여를 하였을 뿐 아니라 엔지이어로서도 활약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큰 성공은 'This Diamond Ring'이 게리 루이스 앤 더 플레이보이스(Gary Lewis And The Playboys)에 의해 히트하면서 시작되었다. 밥 브라스(Bob Brass), 어윈 레빈(Irwin Levine)과 함께 작곡한 이곡이 성공하면서 그는 작곡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어느날 친구인 톰 위슨(Tom Wilson)은 밥 딜런의 스튜디오 녹음 현장에 알을 초대한다.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으로 알은 자신의 악기를 지참아여 그 곳으로 갔다. 'Like A Rolling Stone'에서 오르간 연주자가 필요했을 때 알은 즉흥 연주를 즉석에서 시도하였으며 밥 딜런은 그의 연주를 매우 맘에 들어했다. 그 뒤로 알은 밥의 앨범 [Blonde On Blonde](1966), [New Mornitn](1970), [Under The Red Sky](1990) 등에 참여하며 수십년 간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앨범 참여 후 그는 수많은 세선 참가 부탁을 받게 된다. 거절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던 그는 이들을 떼어내기 위해 적정가의 세 배를 지불하도록 청구했으나(그러면 이들이 포기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요수를 기꺼이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가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던 요구는 바로 블루스 프로젝트(The Blues Project)로의 가입이었다. 이 그룹은 60년대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뛰어난 블루스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들과 세 장의 앨범을 낸 후 그는 새로운 사운드의 추구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혼 섹션의 첨가였으며 이러한 결실로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et & Tears)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트럼본, 트럼펫, 알토 섹소폰을 포함한 스케일 큰 음악을 들려주었다. 1967년 콜럼비아 레코드사(Columbia Records)와 계약하고 나온 이들의 데뷔 앨범 [The Child Is Father To The Man]은 60년대 록음악을 이야기할 때 제외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앨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후 밴드 내부의 갈등과 상업적인 앨범을 제작하라는 소속사의 압력 때문에 알은 밴드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후 센션맨으로서 주로 활동하게 되는데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더 후(The Who),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수퍼 센션(Super Session)의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앨범 제작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인 [I Stand Alone]도 발매하게 된다. 상업적인 실패를 겪은 이 앨범 후 그는 블루스 기타의 신성 셔기 오티스(Shuggie Otis)를 동원하여 [Kooper Session]을 발매하나 역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자신의 레이블을 세워 리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수백만 장이 팔린 그들의 처음 세 장의 앨범을 제작하였다. 1970년대에는 비비 킹(B.B. King), 튜브스(The Tubes), 조 앨리(Joe Ely) 등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밥 딜런, 조월쉬(Joe Walsh), 톰 페티(Tom Petty) 등과의 협연, 다수의 사운드트랙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80년대 들어서 뜸해졌다. 1994년 그는 [ReKoopera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연주 앨범으로서 록음악보다는 재즈나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뮤직 마스타스(Music Masters)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1995년 발매된 [Soul Of A Man-Live]는 더블 라이브 앨범으로서, 솔로 시절 앨범에서 수퍼 센션, 아드리안 벨루(Adrian Beles)의 히트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록곡을 보여주었다. 현재 그는 버클리 음대에서 강사직을 맡고 있다. 이제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유로 버클리 음대를 선택하였다. 최근 버클리 음대는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장애를 극복하고 연주에 전념하려는 학생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