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출처 : 뻐꾸기(bkblues95)님의 친구인 장원태님이 교정없이 초벌 번역한 글 임.
Beginner's Guide and History - How to Listen to the Blues
by Bruce Eder
The Post-Boom Years
1960년대 말, 블루스맨이나 블루스 레이블에게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블루스는 꽤 큰 사업이 되었다. 락 쪽에 있던 Rolling Stones, Cream, The Yardbirds, Led Zeppelin 같은 밴드들은 블루스 곡 심지어는 블루스의 뉘앙스까지도 차용했다. 이들은 수백만 장의 앨범과 티켓을 팔아치웠다. 반면 저명한 블루스 연주자들과 이들이 소속된 레코드 레이블들은 곤경에 처했고 흑인 청취자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Cream이나 Led Zeppelin의 앨범을 사려는 수백만의 백인들은 이들을 무시해 버렸다.

| 
| Cream | The Yardbirds |
Vanguard 같은 포크 기반의 레이블 말고는 -- Vanguard는 Buddy Guy 외에도 재발견된 20,30년대 블루스맨 Skip James와 Mississippi John Hurt 도 레코딩했다 -- 60년대 후반 블루스에 힘을 쏟은 레코드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는 스튜디오 이용과 레코딩에 드는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비용이 낮았을 때에는 부담이 적었지만 1960년대 말에는 Muddy Waters나 Howlin’ Wolf 같은 기성 스타가 아닌 경우에는 부담이 훨씬 커졌고, 대부분 프로듀서들에게 블루스는 그다지 전망있어 보이는 분야가 아니었다.
저명하고 신뢰할만한 블루스 스타였던 B.B. King과 Albert King은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은 입장이었는데 Fillmore East와 West 같은 곳에서 연주하고 그곳에서 앨범을 레코딩할 수 있었다. John Lee Hooker 역시 보다 많은 백인 청중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부분 그가 블루스의 창조자라는 환상 덕택이기도 했다 -- Hooker는 1917년 태어났고, 항상 좀 늙어 보였는데, Hooker는 Muddy Waters보다 더 목구멍을 쓰는 소리 Guttural를 이용하여 노래를 불렀고, 백인 젊은이들에겐 Hooker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시기의 델타 블루스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 그가 백인 블루스 밴드 Canned Heat와 함께 했다는 것 역시 손해나는 일은 아니었다. 몇몇 시골 블루스맨들은 여전히 레코딩 활동을 하기는 했다 -- Capitol Records는 1969년 Mississippi Fred McDowell의 일렉트릭 블루스 앨범을 레코딩하기로 했는데, Rolling Stones가 Mississippi Fred McDowell의 “You Gotta Move”를 레코딩한 것을 시의적절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블루스를 레코딩한 레이블 대부분은 Biograph같은 소규모 레이블들이었고, 레코딩한 것은 대부분 어쿠스틱 블루스였다.
2차대전 이후 활동한 메이저 블루스 레이블 중에서 오직 Chess Records만이 1960년대 말에도 활동했지만, Chess는 청취자를 늘릴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Leonard Chess는 락앤롤 시대 초반에 Chuck Berry와 Bo Diddley와 계약할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유행에 2년 뒤쳐졌다 -- 예컨대 Muddy Waters의 <FOLKSINGER>앨범은 1963년보다는 1961년에 더 어울리며 1961에 더 성공했을 것이다 ; 그리고 Leonard Chess는 Muddy Waters와 Howlin’ Wolf의 50년대 후반 앨범을 락앤롤 쪽으로 가게 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고, 60년대 중반 Rolling Stones 같은 밴드들이 이들의 노래를 부를 때, 이들을 백인 청중에게 내세울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대신 Leonard Chess는 허송세월하고는 자신의 아들이었던 Marshall Chess가 Muddy Waters와 Howlin’ Wolf의 곡을 사이키델릭하게 꾸미고 원래 레코드를 제대로 재현하지도 않는 “Super Blues” 잼 앨범 시리즈나 내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그의 잘못이 무엇이건간에, Leonard Chess는 Chess Record를 이끄는 힘이었고, 1969년 심장마비로 그가 죽자 이 회사를 지속해야할 이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Muddy Waters, Howlin’ Wolf, Chuck Berry를 포함해 당시 Chess에 남아 있던 뮤지션들의 앨범을 내놓는 매체 역할 외에는 말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Muddy Waters의 싱글은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사실 Chess Records는 1966년 Koko Taylor의 싱글 “Wang Dang Doodle”을 제외하곤 R&B 차트에 히트곡을 올려 놓지 못했다) Muddy Waters는 Chess에서 1975년 나온 <THE Waters Album Woodstock Muddy>을 포함해 훌륭한 앨범들을 계속 내놓았다. Howlin’ Wolf는 1971년 <BACK Wolf Door>가 나올 때까진 새로운 곡을 담은 진정한 첫번째 앨범을 내놓지 않았지만, 마침내 <BACK Wolf Door>가 나왔을 때, <BACK Wolf Door>는 진정한 걸작이었다.
당시 ABC-Paramount에 있던 B.B.King은 수십만의 백인 팬을 더 끌어들인 동시에 흑인 팬 다수를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베테랑 전후 블루스맨이었다. 그의 앨범 판매는 수직 상승했고, 그의 음악은 보다 능수능란해졌다 -- 그러나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흐름을 추가하기 시작하면서 B.B.King의 음악이 갖고 있던 신선함과 자연스러움은 사라져 갔다. 70세가 되던 1996년, B.B.King은 자신의 이름을 블루스 클럽들(Memphis에서 아주 성업 중이던 클럽을 포함해서)을 운영하는 그룹에게 팔았는데, 이는 Muddy Waters와 Howlin’ Wolf로서는 그저 꿈이나 꿀 수 있었던 사업 전략이었다. 그 해에 B.B.King은 Kenney Center에 헌액되었고, Atlanta 올림픽에서 연주했고, Memphis에 10피트 높이의 B.B.King 조각(그가 아끼는 Lucille 기타와 함께)이 Elvis Presley 조각 바로 옆에 세워졌다. 그리고 U2 같은 밴드와 레코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레코딩 활동은 음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명예와 재산 모두 놓쳐 버린 뮤지션들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듀서이자 학자인 Norman Dayron은 Muddy Waters의 가장 성공적인 블루스-락 퓨젼 앨범 <FATHERS and Sons>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Robert Knighthawk가 Chicago Maxwell Street Market에서 라이브로 연주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를 -- 최소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적인 블루스 연주의 현장이다 -- 내놓았고 이는 Nighthawk 앨범 중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앨범이 되었다. 유사하게 오랜 기간 잊혀져 있던 Arthur "Big Boy" Crudup은 꽤 비싼 공연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의 인생 끝무렵에 새로운 레코딩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Newport Festival에서 Muddy Waters, Big Mama Thornton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당시 Newport Festival은 Lincoln Center에서 열렸고, Avery Fisher Hall에서 Arthur "Big Boy" Crudup의 "That's All Right"의 라이브 레코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가 사기당하고 빼앗겨 온 것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만들고 그가 어떻게 사기당하고 빼앗겨 왔는지를 기억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 Muddy Waters | Big Mama Thornton |
1970년대와 1980년대 블루스 레코드는 상당히 풍성했다. 그러나 이 앨범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시대에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에 담긴 음악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보물들은 그것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예컨대 Muddy Waters의 <RARE and Unissued>는 그의 죽은 그 다음해에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은 40년대 후반 그리고 50년대 초기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Last Time I Fool Around with You"라는 제목의 트랙이 수록되어있는데 이 트랙에는 기타 두 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인터플레이가 나온다. 세션 크레딧을 보면 이 노래가 이전 세대의 시카고 블루스 스타였던 Tampa Red와 Muddy Waters의 아마도 유일한 만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앨범에 수록된 트랙에는 Muddy Waters가 Little Walter Jacobs와 함께 한 초기 작품이 있고 60년대 시절 곡을 재출시한 것에는 Buddy Guy와 함께 한 것도 수록되어 있는데, Buddy Guy는 Muddy Waters의 후계자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CD로 이런 레코딩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일이란 한번에 수많은 앨범에 있는 한 곡에 집중하고 이 곡들 각각을, 각 곡이 나온 문맥에 따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곡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데 묶였는지가 아니라.
1970년대 즈음에 블루스는 대중 음악이라는 대지에 확고히 자리잡은 분야가 되었다 -- Led Zeppelin, Rolling Stones, Allman Brothers, Eric Clapton, Ten Years After, Marshall Tucker Band, Lynyrd Skynyrd와 많은 다른 유력한 밴드들, 그리고 이들의 카피 밴드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했으며, 심지어 Doors조차도 Howlin’ Wolf의 레파토리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Eric Clapton과 Rolling Stones 같은 몇 몇 밴드들은 Muddy Waters 같은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와 함께 공연 여행을 하여 이들에게 보답하려 했다. 그리고 Johny Winter는 Blue Sky레이블에서 70년대 후반까지 일련의 음반을 통해 엄청난 갈채를 받고 새로운 블루스 세대에 자신의 명성을 확립했는데, Blue Sky 레이블에서 내놓은 자신의 두번째 앨범 전체를 Muddy Waters에게 바치기까지 했다.
이와 동시에 Yazoo와 Arhoolie 같은 블루스 전문 레이블은 처음으로 이전 세대에 속하는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들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Yazoo는 Charlie Patton 같은 뮤지션들의 유명한 78회전 레코딩을 되살려내는데 뛰어나서, (사실 수십 년전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최초로 이런 뮤지션들의 음악을 LP에 담았다. 반면 Arhoolie는 당시 살아 있던 컨트리 블루스맨의 곡을 레코딩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 당시 잊혀졌던 Li'l Son Jackson, Mance Lipscomb 그리고 다른 농촌 연주자들이 이런 저런 레이블에서 몇 년만의 첫 앨범 또는 수십년 만의 첫 앨범, 심지어는 평생의 첫 앨범(이자 어떤 경우엔 그들의 최고의 앨범)을 내놓았다.
바다 건너 유럽에선 -- 미국에선 오직 클래식만이 존경을 받았지만 유럽에선 미국 블루스 음악 역시 (재즈나 락과 함께) 존경을 받았다 -- 더 많은 재발매가 이루어졌다. 대중의 관심이 확립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저작권법이 2차대전 이전의 미국 블루스가 보다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사실은 재발매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기반한 Document Records, Wolf Records, RST Records은 블루스 골수 팬들을 이용해서 아주 놀라운 재발매 사업을 벌여나갔는데, 이런 성과에는 Leadbelly의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 1927년부터 1953년에 이르는 Tampa Red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Document Records에서 13 cd로 나왔다), Scrapper Blackwell, Papa Charlie Jackson, Frank Stokes and Dan Sane, Furry Lewis, Curley Weaver 그리고 다른 많은 뮤지션들의 스튜디오 레코딩 전집이 포함되어 있다. 더나아가 RST와 Document Records의 접근 방식은 각 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서 각 곡을 동일한 뮤지션의 다른 레코딩과 맺는 관계에 따라 올바른 역사적 문맥 속에 자리잡게 해준다.

| 
| Blind Willie McTell | Leadbelly |
메이저 레이블이 자신들의 역사적인 블루스 앨범을 재발매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들어서였을 뿐이다. Sony Music은 Columbia, Okeh, ARC 레이블의 후계자로서 자신들의 legacy series의 일환으로 Blind Willie McTell, Leadbelly, Lonnie Johnson, Tampa Red의 초기 작품 등 놓쳐서는 안될 블루스 컬렉션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MCA는 Chess 레이블과 존경받을만한 훌륭한 작업을 벌여나갔다. 현재 Chess는 MCA가 소유하고 있는데, MCA는 Chess 레이블 역사상 중요한 거의 모든 앨범을 재발매하고 있다. 한편 RCA/BMG는 Arthur Crudup와 Leadbelly의 작품을 재발매하는 것을 시작한 뒤, 1990년대 초반 블루스 앨범 재발매를 거의 포기해 버리고 이를 유럽 레코드사들의 재발매 사업과 해적 레이블에게 넘겨 버려 이들이 블루스 재발매라는 광맥을 캐도록 했다.
전체 재발매 사업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특히 한 뮤지션이 수십년 혹은 여러 세대에 걸쳐 레코딩한 경우엔 정말 그렇다. 예컨대 Big Joe Williams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레코딩했는데, 그가 상당히 긴 기간 활동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 났고 같은 노래를 여러 차례 재레코딩한 사실은 청취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Wolf Records 레이블은 Big Joe Williams의 1920년대와 1930년대 활동에 대한 아주 훌륭한 컬렉션을 내놓았다. Muddy Waters의 곡은 대부분 Chess 레이블에서 나왔고, MCA를 통해 재발매되었는데, 이밖에 그의 마지막 활동 시기의 레코딩은 Columbia 또는 Sony Legacy에서 나왔다 -- 그러나 Delmark 레이블에서 나온 것도 있는데(여기에는 “Rollin’ and Tumblin’”의 첫번째 레코딩이 포함된다) 이것은 1940년대 말의 레코딩으로 다른 레이블에선 별로 들어 볼 수 없는 곡조가 담겨 있다. Howlin’ Wolf는 1954년부터 1974년까지 Chess Records 소속이었는데 Chess 시절 이전에는 Sun과 Modern Records에서 활동했는데, Sun 시절의 레코딩은 Chess 시절에 가깝다.
최근 독일의 Bear Family 레이블은 Sun Records 시절의 레코딩을 수록한 아주 값진 두 장짜리 CD를 내놓았는데, MCA/Chess에선 이 중 몇 곡만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Flair/Virgin은 Modern Records시절의 앨범을 재출시했다. 이 앨범들은 다른 앨범들과 겹치지만 Wolf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소장가치가 있다. Leadbelly 역시 상당히 많은 CD가 겹치는 아티스트이다 -- 물론 RCA에서 내놓은 Golden Gate Quartet와 협연 레코딩 역시 뛰어난 부록이며 Document Rcords의 Complete Leadbelly의 Volume Four는 Leadbelly 최후의 레코딩을 수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Smithsonian/Folkways에서 출시한 것과 Columbia에서 나온 두 장짜리 CD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블루스를 탐구해 볼 수 있는 영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 Willie Dixon의 "Down in the Bottom"을 1964년 Rolling Stones가 Chess Studio에서 레코딩한 것을(꽤 흔한 부트렉에 수록되어 있다) 1961년 Howlin’ Wolf의 레코딩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Buddy Moss의 "Hey Lawdy Mama", Blind Boy Fuller의 "Boots and Shoes"을 포함한 Willie Dixon의 곡들의 원천을 193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아니면 Willie Dixon의 “Spoonful”을 Cream이 연주한 것을 들어보고 Wolf의 레코딩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 더 소급하여 1925년 Papa Charlie Jackson의 “All I Want Is a Spoonful”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라. 아니면 Beatles의 “Matchbox” 같은 곡으로 시작해서 원작곡자인 Carl Perkins의 1958년 레코딩을 들어보고 다음엔 Leadbelly의 "Packing Trunk Blues"와 "Match Box Blues" 레코딩을 들어보고(이 곡들이 Carl Perkins의 원천이었다) 다음엔 Blind Lemon Jefferson의 "Match Box Blues"로 거슬러 올라가보라.(Leadbelly는 이 곡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1996년의 청취자들은 Allman Brothers Band 버전의 “Statesboro Blues”는 알지만, Blind Willie McTell의 원곡은 모를 것이다. Allman Brothers Band, Led Zeppelin, Lynyrd Skynyrd, 내지는 다른 그룹들의 팬들이 자신이 즐겨 듣는 곡에 대해 얼마나 알며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들은 Jimmy Page의 멋진 기타 솔로를 듣지만, 그의 곡이나 리프가 Willie Dixon이 작곡한 곡이나 Muddy Waters의 레코드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원주 : 특히 Led Zeppelin은 Willie Dixon부터 故 Ritchie Valens의 출판권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표절 혐의로 고소당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70 나이에도 Fretboard 위에서 놀리는 손가락 놀림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압도하는 Mance Lipscomb같은 연주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그래도 학자들과 진지한 청취자들은 블루스 레코드가 바로 저기에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이다. Led Zeppelin 팬들 가운데 블루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Muddy Waters는 Johny Winter와 Eric Clapton, Rollin’ Stones의 도움을 얻어 1983년 그가 죽기 전까지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Willie Dixon은 블루스 왕국의 최고 배테랑 대사로서 1992년 그가 죽기 직전까지 (대통령, 판사들, 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했고, 사람들에게 블루스의 기원과 역사가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
오늘날 2차대전 이후 활동한 거의 모든 블루스 스타들이 남긴 유산은 그들의 레코딩에 남아 있다. 2001년 죽기 전, John Lee Hooker는 90년대 상당 기간동안 계속 활동했고, Keith Richards 같은 락 스타들과 정기적으로 레코딩했다. B.B.King과 Buddy Guy 같은 몇 몇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레코딩을 하고 있으며 레코딩과 공연을 통해 계속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Jimmy Rogers나 Hubert Sumlin’(Howlin’ Wolf의 가장 유명한 리드 기타리스트) 같은 전직 Chess 뮤지션들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 
| Jimmy Rogers | Hubert Sumlin |
블루스 음악은 저기 CD에 담겨 있다. 이전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블루스 음반을 살 수 있고 매일매일 더 많은 블루스 음반이 나오고 있다. 이제 여기에 있는 비밀이란 이런 것이다.(역주 : 블루스를 어떻게 들어야할까?) 블루스를 연주한 사람들이 청중에게 다가갔던 방식대로 들어보고 발견하는 것 : 여러 곡들을 모은 앨범이 아니라, 각 곡과 그리고 아마도 뒷면에 있을 동료 연주자를 따라, 그리고 그들이 연주했던 순간들을 따라 -- Muddy Waters와 Tampa Red 같은 기타의 전설이 주고받은 듀엣 연주의 순간, 또는 Blind Arthur Blake와 Papa Charlie Jackson같은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고 기록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2차대전 이전의 연주자들이 흠집이 나 있는 78회전 레코드에서 함께 연주하고 노래했던 순간들을 따라, Howlin’ Wolf가 Memphis에서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블루스 사운드를 창조했던 순간들을 따라 -- 이 모든 것들을 맛보시기를.......
|  |
|
|
|
|
|
답글 (0)
 |
|
|
|
|
|
|
http://kr.blog.yahoo.com/hanwooln/trackback/1721460/1467784
|
|
출처 : 뻐꾸기(bkblues95)님의 친구인 장원태님이 교정없이 초벌 번역한 글 임.
Beginner's Guide and History - How to Listen to the Blues by Bruce Eder
Postwar Blues: The Modern Era
메이저 레이블들은 블루스에서 손을 뗐지만, 어떤 사운드가 통할지 잡아낼 수만 있다면 여전히 블루스 시장은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 중 가장 주목해 볼만한 사람들은 시키고의 Phil Chess와 Leonard Chess, 멤피스의 Sam Phillips, L.A.의 Saul Bihari, Jules Bihari, Joe Bihari이다. 이 세 레이블은 재능 있는 뮤지션을 찾고 있었고, Chester "Howlin' Wolf" Burnett의 작품을 놓고 최소한 한 차례 삼자간의 줄다리기를 벌인 적이 있다.

| 
| Chuck Berry | Bo Diddley |
Chess Records는 가장 널리 알려진 레이블인데, 그들이 유명해진 것은 부분적으론 Chess에 소속된 블루스 스타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고, 훗날 Chuck Berry와 Bo Diddley의 음악을 가지고 Rock & Roll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으며, Ramsey Lewis의 작품을 통해 Jazz에도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hess는 2차 대전 이후에 생겨난 회사인데, 처음에는 Aristocrat라는 이름이었고 이 레이블에서 나온 레코드들은 40년대 중반 빅밴드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이 많아서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온 음악들과 별 차이가 없었고, 설립자인 Phil Chess와 Leonard Chess가 소유한 클럽의 출연진도 별 차이가 없었다.
1930년대 이래 시카고에서 블루스는 상당히 여러 인물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1920년대가 끝날 즈음부터 1930년대가 끝날 때까지, Tampa Red는 밴드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이자, 작곡자로서 시카고 블루스 무대의 거물이었다. 어떤 설명을 들어봐도, Tampa Red의 아파트는 낮이던 밤이던 모든 종류의 뮤지션들의 메카이자 만남의 장소이자 소굴이었고, Tampa Red의 아내는 언제나 즐겁게 그들을 대해주었다고 한다. 훗날, 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끝무렵까지 시카고 블루스의 거물은 Big Bill Broonzy였다.

| 
| Tampa Red | Big Bill Broonzy |
Tampa Red와 Big Bill Broonzy는 전성기 시절 거의 대부분 Victor의 Bluebird 레이블에서 레코딩했다 -- Tampa Red는 Chess 레코딩 일부에 세션으로 참가했고, 50년대 초반 자신의 사촌 Washboard Sam과 함께 Chess에서 몇 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후계자였던 거물급 밴드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이자, 작곡자였던 사람은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Chess Records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 그 사람이 바로 Muddy Waters이다.
델타에서 이주해 온 McKinley Morganfield (aka Muddy Waters)는 1947년부터 Chess에서 레코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에 Columbia에서 싱글을 레코딩했고, 그 이전에는 John Lomax와 Alan Lomax의 야외 레코딩에 참여한 적이 있다.(아마도 이런 식으로 소개되어 델타 블루스와 상업적 블루스 세계 양쪽을 가로지르고 상업적 블루스 세계의 정상에 오른 사람은 Muddy Waters 뿐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Sunnyland Slim의 도움을 받아 Sunnyland Slim의 레코딩에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Chess로 오게 된다. Chess로 온지 얼마되지 않아 Muddy Waters는 자신의 레코드를 내놓았다. Muddy Waters의 강력한 목청에서 Guttural 나오는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의 결합은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Robert Johnson이 2차대전 이전에 연주해 온 어쿠스틱 컨트리 블루스에서 파생된 것이다. 다만 Muddy Waters 쪽 사운드가 보다 크고 보다 강력하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게다가, 그의 음악은 잘 팔렸다. Chess Records는 생생한,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렉트릭 블루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위한 시장을 어느날 갑자기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블루스는 이전 10여년간 시카고를 지배했던 상업적인, 댄스 밴드 타입의 블루스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곧 Chess Records는 Little Walter Jacobs, Howlin' Wolf, 그리고 Sonny Boy Williamson II 같은 새로운 세대의 블루스 스타들의 음악을 레코딩했고, 뒤에는 Jimmy Rodgers, Buddy Guy, 그리고 Koko Taylor 같은 타고난 재능의 연주자 겸 싱어들의 음악을 레코딩했다. Chess의 역사 초기에 Chess는 Robert Nighthawk 같은 오래된 블루스 스타가 레코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이 때 나온 "Sweet Black Angel"에 Willie Dixon이 베이스로 음반에 데뷰하게 되었다.
Biari Brothers는 자신들 소유의 여러 레이블인 Modern, RPM, 그리고 Crown에서 Chess에 비견할만한 일관된 활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도 B.B. King, Elmore James, 그리고 (briefly) Howlin' Wolf 같은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레이블들의 활동은 Chess 소속 뮤지션만큼의 통일성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레코드를 파는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더 야심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 B.B.King이 1960년 Crown을 떠난 뒤, Bihari Brothers는 B.B.King의 가장 인기있는 곡들을 모아 훌륭한 앨범 둘을 내놓았고 B.B.King의 싱글 일부를 더빙하면서 관악기 연주를 추가해 스테레오 효과를 만들어 내도록 리마스터링했다.
Sam Phillips의 Sun Records는 Elvis Presley를 발굴한 것으로 유명하며(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자면, Elvis Presley는 Sun Records에서 그의 최고의 음악을 내놓았다) Johnny Cash, Jerry Lee Lewis, Carl Perkins, 그리고 Roy Orbison 등이 초기에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Sam Phillips는 중요한 블루스 음반 역시 세상에 내놓았다. Sam Phillips는 Memphis 최초의 근대적인 스튜디오인 Memphis Recording Services를 설립했고 여기에서 멤피스 지역의 Blues뮤지션들과 R&B 뮤지션들의 곡을 내놓았다. Sam Phillips는 다른 지역에 있는 레이블에게도 Memphis Recording Services 이용 허가를 내주곤 했다 - 주 이용자는 시카고의 Chess, L.A.에 있던 Bihari Brothers 소유의 Modern이나 RPM 등이었다. 오늘날까지도 Sam Phillips는 Chester "Howlin' Wolf" Burnett을 자신이 발굴한 최고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고, 만일 Chester "Howlin' Wolf" Burnett가 그와 함께 있었더라면 Little Richard 같은 거물급 Rock & Roll 스타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Howlin' Wolf는 Sam Phillips와 함께 첫번째 음반을 내놓았고, 멤피스의 그 프로듀서(Sam Phillips)가 자신이 발굴한 새로운 스타인 Howlin' Wolf를 잃은 뒤 처음엔 Bihari 형제들에게 갔다가, 뮤지션 트레이드와 계약 분쟁이라는 아주 복잡한 과정의 일부로 이번엔 Chess로 옮겨갔다. Howlin' Wolf의 진정한 첫번째 레코드 "Moanin' at Midnight"는 블루스에서건 블루스 아닌 음악에서건 이전에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 crossing feedback and a basso moan from the six-foot-four Wolf ]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그 뒤 23년간 계속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Phillips가 레코딩한 다른 주요 뮤지션으론 싱어인 Jackie Brenston과 기타리스트 Ike Turner 등이 있고 -- Ike Turner는 같은 밴드의 일원으로서 “Rocket 88”을 레코딩했는데, 이 앨범은 최초의 "rock & roll" 레코드로 언급되곤 한다 -- 그리고 Sun 레이블로 설립된 1950년대 끝무렵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인 Frank Frost 등이 있었다.
전후 블루스 역사에 많은 공헌을 한 다른 레이블로는 L.A. 기반의 Imperial Records가 있다. Imperial Records는 텍사스 블루스맨 T-Bone Walker와 Li'l Son Jackson 등의 음악을 레코딩했다 -- T-Bone Walker가 Imperial Records의 레코드에서 보여준 연주는 Chuck Berry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Chuck Berry는 Chess의 스타가 된다 ; 미시시피 기반의 Trumpet Records는 Sonny Boy Williamson II와 (briefly) Elmore James가 자신의 음악 경력을 시작한 곳이다 ; 그리고 시카고의 Cobra Records는 1956년부터 1958년 몰락할때까지 Chess Records와 경쟁하려고 노력했다. Cobra Records는 Otis Rush -- Otis Rush는 그의 사운드가 Muddy Waters와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로 Chess로부터 거부당했다 -- 를 보유했을 뿐 아니라 Cobra Records는 Buddy Guy가 시카고에 왔을 때 Buddy Guy와 첫번째로 계약한 레이블이기도 했으며, 또한 기타리스트 Magic Sam과 Ike Turner의 Kings of Rhythm을 보유하기도 했다 : Cobra Records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시기는 1956년이었는데 이 시기는 Cobra Records가 Chess의 베테랑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이자, 작곡자이자 베이스 주자였던 Willie Dixon의 도움을 얻었을 때였다.

| 
| Tampa Red | Sonny Boy Williamson Ⅱ |
Imperial이 블루스 쪽에 관여 시기는 1950년대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작은 레이블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Trumpet는 1950년대 초반 파산했는데, 이 사건은 Sonny Boy (Rice Miller) Williamson이 그곳에서의 계약이 끝났을 때 Chess에겐 행운으로 드러났다. Cobra는 1958년 문을 닫았는데, 활동한지 겨우 2년 만의 일이었다. Trumpet과 Cobra에서 나온 음반들은 제대로 혹은 널리 배포되지 않았다 -- Cobra에서 나온 음반들은 이 회사가 문닫은지 33년 뒤인 1993년 Capricorn Records에서 Cobra에 헌정한 박스 셋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국적인 음반 배포를 실시한 적이 없다. Bihari 형제나 Sun 역시 1960년대 초반을 넘어선 뒤로는 거의 활동을 못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은 Chess와 함께 모던 블루스 레코딩이 세워진 토대가 되었다.
이 레이블들은 40년대 후반 그리고 50년대 초반과 중반기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들 생각으론 거의 모든 흑인 청취자들에게 블루스 싱글들을 팔았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청취자들 중, 특히 50년대 초, 중반이래의 청취자들 가운데엔 소수의 젊은 백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소수의 젊은 백인 청취자들은 흑인 라디오 방송을 들었고 때때로 흑인 음악 레코드를 샀으며 심지어는 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우린 백인들을 위해 연주하지 않습니다” B.B.King은 1957년 이렇게 말하고는 덧붙이기를, “물론, 하루짜리 공연에 들으러 온 백인들이 좀 있기는 했습니다.”
거의 대부분 레이블과 뮤지션들은 백인 청취자가 적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이미 상당한 수로 존재하는 흑인 블루스 청취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방법으로 백인 청취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블루스 레이블들은 모두 소규모였고 독립 레이블이었다 -- 개중 가장 성공을 거둔 레이블인 Chess 조차도 1960년대 말까지는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로 남아 있었다 --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1948년 LP 레코드가 도입되었을 때, 거의 모든 쟝르의 프로듀서들은 즉각 LP 레코드와 관련된 작업을 벌여나갔다. 클래식 음악은 분명 가장 큰 수혜자였다. 클래식 청취자라면 교향곡을 6장 내지는 그 이상의 shellac 78회전 레코드 모음에 담아 둘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재즈 레이블도 이에 따라왔다. 연주자들과 프로듀서들은 쉬지 않고 15분에서 20분 정도에 달하는 레코딩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팝 음악도 동참했다. 팝 음악은 각 노래를 위한 기본 포맷으로는 45회전 디스크를 사용하고 곡들을 모아 놓은 것을 위한 매체로 LP를 활용했다.
그러나 블루스는 달랐다. 블루스 청취자들은 팝이나 클래식 청취자들보다 훨씬 가난했다 -- 78회전 플레이어는 1950년대 후반까지는 여전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LP 레코드에 대한 뚜렷한 수요도 없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와 같은 의미에서의 블루스의 역사라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 블루스는 그냥 돈 벌기 위해 나온 것이었고 블루스의 과거는 클래식과 재즈의 과거가 각 청취자나 이를 취급하는 회사에게 중요했던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2차대전 이전에 레코딩된 수많은 블루스, 특히 1930년대부터 나온 컨트리 블루스는 무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컨트리 블루스의 거장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며 그들 상당수는 1930년대 중반 Paramount같은 레이블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 심지어는 ARC나 Vocalion처럼 메이저 회사에 흡수된 레이블의 창고에 남아 있던 거장들의 레코드도 사라진 것이 부지기수이다. 블루스 분야에서 활동한 회사들은 모두 2차대전 이후에 설립된 회사들로 2차대전 이전의 블루스에 접근할 길이 없었다.
1954-1956년 Rock & Roll의 탄생은 블루스에 맞추어져 있던 잠재적 백인 청취자들의 관심 상당 부분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같은 이유에서 R&B는 젊은 흑인 청취자들을 Muddy Waters와 Howlin' Wolf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했다. 이로써 1950년대 말에 블루스 음악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일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희망이 생겨났다. 좀 나이 먹은 -- 대부분 대학생 또래의 청취자들로 이들은 십대의 불안을 담은 노래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했거나 이런 노래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 백인 청취자 그룹은 점차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Chess나 Bihari 형제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비록 본인 말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Sun Records의 Sam Phillips는 이런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