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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소개 | | 자유를 잃은 새는 슬픔에 잠겼다
프랑코 독재에 맞서 고향을 등지고 긴 망명의 길을 떠난 카잘스. 망명한 지식인들을 돕기 위해 생명과도 같은 첼로를 10년이나 접어야 했다.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고향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가 있었다. 자유를 잃은 새의 슬픈 노래이자, 평화와 인간존엄을 갈구하는 노래였다. 희귀한 오케스트라 버전이 수록되어 이 한곡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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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잃은 새는 슬픔에 잠겼다
프랑코 독재에 맞서 고향을 등지고 긴 망명의 길을 떠난 카잘스. 망명한 지식인들을 돕기 위해 생명과도 같은 첼로를 10년이나 접어야 했다.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고향 카탈루냐 민요 <새의 노래>가 있었다. 자유를 잃은 새의 슬픈 노래이자, 평화와 인간존엄을 갈구하는 노래였다. 희귀한 오케스트라 버전이 수록되어 이 한곡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일생을 세계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염원했던 첼로의 성인 카잘스가 연주하는 첼로 명곡집 <새의 노래>
Birds sing when they are in the sky, they sing: "Peace, Peace, Peace" 카탈루냐 새들은 “피스(Peace), 피스(Peace)” 하고 운다 - Pablo Carlos -
파우 카잘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자, 새로운 첼로 운지법을 고안해낸 전설적인 첼리스트이다. 첼로 거장으로서의 업적과 명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애칭 ‘파우(Pau)’는 카잘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 것이다. ‘파우’는 그의 모국인 카탈루냐의 언어로 ‘평화’라는 뜻. 예술가적 소명을 지니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평생의 열정을 불태운 그는 ‘파블로 카잘스’라는 본명보다도 ‘파우 카잘스’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음반의 제목이자 첫 번째 트랙인 ‘새의 노래’는 그의 고향 카탈루냐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캐롤처럼 불리는 민요를 첼로 연주로 편곡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박해와 억압에 시달려온 카탈루냐인들은 오랜 독립운동을 통해 끈끈한 민족애를 키웠고, 고향에 대한 그들의 각별한 향수는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그 중심에 카잘스의 ‘새의 노래’가 있다.
자신의 작업은 악보로 남기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던 그가 유일하게 후세에 남긴 곡이 ‘사르다나’와 ‘새의 노래’ 단 두 곡뿐이라는 점을 미루어 봐도 카잘스가 평생에 품고 있었던 고향 카탈루냐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프랑코 독재에 맞서 고향을 떠나면서 카잘스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첼로 연주를 10년이나 접어야 했다. 망명한 지식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의 가슴 깊이 파일 듯이 새겨진 고향의 노래가 있었다.
날개 꺾인 새의 슬픈 노래이자, 인간존엄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었다.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
몽셰라 카바예, 조셉(호세의 고향 이름) 카레라스을 비롯하여 카잘스처럼 카탈루냐를 고향으로 하는 음악가들 모두 이 곡을 부르거나 연주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아리랑과도 같은 셈이다.
96KHZ, 24BIT으로 리마스터링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새의 노래’는 1954년 프라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으로, 카잘스의 깊은 한숨소리로 잘 알려져 있는 백악관 피아노 반주의 연주보다 7년쯤 앞선 녹음이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선사하는 음악적 완결성과 더불어 오랜 시간 보존되어 온 원음의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음악적 감동을 전해준다.
이 밖에도 카잘스가 자주 연주한 소품 ‘까니구의 성 마틴 수도원’(Sant Martí del Canigó)를 비롯하여 바흐, 포레, 슈만, 파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소품들을 통해 카잘스의 체취와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보너스 트랙의 희귀 레코딩도 빼놓을 수 없다. 헨델의 라르고, 루빈스타인의 멜로디, 타르티니의 아다지오,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4곡 모두 1915년 카잘스의 생애 첫 레코딩으로 기념비적 음원들이다. 당시 카잘스의 나이 38세, 30대 후반의 첫 녹음이라니 의외지만 녹음 역사 초창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1902년 카루소와 샬리아핀의 역사적인 최초 녹음 이래 10여년이 지나도록 많은 연주자들은 여전히 녹음에 회의적이었고, 카잘스의 녹음이 늦어진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세계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염원했던 첼로의 성인 카잘스. 그의 휴머니즘이 가장 극명하게 표현된 음반 <새의 노래>가 전하는 감동은 음악이, 예술이 지향하는 바에 대한 물음에 가슴으로 답하게 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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