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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19
 

 

해마다 맞는 오월은 당신의 오심으로

언제나 새롭고 더욱 눈부신 빛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티 없이 맑고 포근한  성모님,

저희의 티와 미약함과  못난 투정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성모님.


살면서 힘이 들고 지칠 때면

저희는 당신의 그 침묵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슬픔도, 기쁨도, 온전히 봉헌하신 당신의 삶,

사랑의 삶을........


성모님, 저희의 부족함을

당신의 그 침묵의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애로우신 성모님,

앞으로도 주님 앞에 설 때 죄스럽지 않도록

언제나 당신의 그 온화한 미소로  저희의 빈 가슴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소서.


저희의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어

격정을 누르고 언제나 친절하고 넉넉하게

형제와 이웃을 대하게 하여주소서.


그리고 저희와 형제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저희가 속해 있는 구역 소공동체를 위하여,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북녘 땅 가엾은 형제들을 위하여,

여러 곳에서 재난과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모든 이를 위하여

묵주 알알이에 주절이주절이 올리는 저희의 기도를

응석으로 어여쁘게 받아주시어 기억해 주소서.


성모님!

오늘밤 성모님 앞에 모여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찬미 드리며

감사드리는 저희들의 사랑을 받아 주소서.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곤경에 처해 있어도 성모님의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는 자녀로 살도록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굽어보시어 더욱더 힘과 용기를 주시고 세상을 이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성모님,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5월 성모의 밤에






















입양의 날이 있는 줄 몰랐는데 TV에서 이야기해 알았다.

어제는 미사에서도 입양아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2006년에 제정되어 오늘 5월 11일이 4회째라고 한다.

아마도 입양을 권장하고 입양가족에게 격려를 보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나보다.

나도 입양을 한 사람으로 이야기 해볼까 싶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기 종교가 좋으면 주위에 자기가 누리고 있는 기쁨과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 종교를 열심히 권하듯이 이야기 할 계기가 주어지면 난 입양에 관해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자신이 잘 했다 싶은 일 중에 우선으로 꼽고 싶다.

1992년에 6살 사내아이를 보육원에서 아들로 집에 데리고 온 일은.......


세 딸을 키웠고 여기 구리에 살고 있는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난 뒤였다.

평소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욕심 그런 것도 별 없이 편하게 살았는데 큰 딸이 강력하게 권하였다. 큰 애는 평소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고 끈질기게 조르는 편도 아니었다.

교회에 다니며 그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가끔 봉사 나가고 하였다.

그러다 한 아이의 입양을 강력하게 끈질기게 졸랐다.


우리 집이 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아빠 엄마는 또 한 아이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인품이 되고, 저도 동생들이랑 같이 짐을 지어주겠다며 설득을 하였다.

내 의지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큰 딸이 나서서 시작하여 그 일을 여러 달의 망설임 뒤에 온 가족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이가 아들로 우리 집에 왔다.


어떤 사람이 자식은 7살까지 부모한테 기쁨 준 것만으로도 효도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공감하는 이야기다 싶다.

난 우리 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성장하며 가족에게 준 기쁨과 믿음이 벌써 자신이 할 효도와 몫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교, 재수 일 년, 대학 한 학기, 그리고 군대 2년 가까이를 아빠와 엄마,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선물해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때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미미하고 지나가면 잊혀지고 기억이 희미하다.

그냥 그 애가 주었던 기쁨과 웃음이 언제나 힘차게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또 늦둥이의 학부형 노릇 하느라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젊게 살았지 싶다.

나이 든 엄마가 좀 부끄럽지 않느냐고 하면 "엄마 나이 안 들어 보여요." 하며 학교고 어디고 엄마 오는 것을 좋아하였다.


어려웠던 시기에 사춘기였는데도 잘 보내주고, 아빠 엄마에게 희망을 주고 이겨낼 힘을 주었다.  그 때 뒷받침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은 아직 마음이 아프지만......

어린 아들이 있어서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올수 있었다.

지금 내가 구리에 와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들이 아빠하고 같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늙어서인지 현역인데도 상근제도라 하여 군복무를 집에서 출퇴근한다.

6월 초에는 제대하고 가을에는 복학을 할 거다.

늘 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앞으로는 대학생활을 즐겁고 알차게 하며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젊은이가 되어주기를 기도하려고 한다.


작년 12월에 시어머님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는 장손으로 상주 노릇을 잘 해주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주위에서 모두 아들이 어쩜 저리 으젓하고 듬직하냐고 인사해 주었다. 나만 보기 좋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 보시기에도 참 좋았지 싶다.


남편은 70줄에 난 60대 중반인 노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유행하는 말로 숫자에 불과하고 우리 내외는 앞으로 몇 년 동안 23살의 대학생 학부모다.

외로움이나 허무를 느끼며 지는 황혼을 슬프게 바라볼 새가 없다.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고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중년의 부모이고, 은퇴하기에는 아직도 한참을 더 바쁘게 뛰며 살아야하는 현역이다.

난 현역이 좋다.

그리고 늦둥이 아들로 인해 언제나 젊은 기분으로 충만함을 느끼며 열심히 살 수 있어서 좋다.


입양을 생각하며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경험자로 권하고 싶다.

힘든 것보다 정말로 삶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이 주어진다고.

아들과 같이 지난 17년 세월의 켜켜이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그동안 정말로 좋았고 행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참 잘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시골성당 회장님의 눈물


피정에서 첫 시간 나눈  주제는 [추억]이었다.

'본당' 하면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더듬어 보라고 하였다.

그리움 비슷한 감정으로, 또는 사건이 있어서 아주 선명하게 연결되는 이야기든지 본당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는 예전 부산에서 만났던 성자 같으신 미국신부님에 관한 추억을 말 했는데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다.

작은 시골 성당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장님 큰 주먹으로 마구 눈물 닦던 모습이 떠올라서..........


지난 2월 말경 친구들과 속초로 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마침 친구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서 일요일 숙소 가까운 작은 성당을 찾아 미사를 보았다.

마당은 너르고 건물은 조립식 건축으로 아담하였다.

들어가며 주보를 받는데 4명에게 2장을 주었다.

갑자기 사람이 많이 와서 주보가 모자란다고 양해를 구하며 나누어 주는데 인쇄된 글이 아니고 프린트로 복사한 주보였다.

그 유인물을 보며 '아! 가난한 성당이구나.' 느낌이 왔다.

헌금 내역을 보면서 정말 가난한 성당이고 어떻게 성당 살림을 꾸려갈까 하는 주제넘은 걱정도 들었다.

난 평소 여기저기 잘 다녀 여행지 성당에서 미사를 본다.

그리고 주보에서 헌금내역을 보며 그 성당의 대충 규모를 짐작하고 하였다.


미사를 시작하며 신부님은 두 분 수녀님을 보내는 송별식을 미사 후에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송별식 이야기 앞에 "사람들 인연은 만나면 헤어지고 또 만나고 하는데, 1년 만에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수녀님을 보내서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말씀을 하였다.

복사도 없이 중년의 자매님이 전례진행을 하고 제단을 오르내리며 신부님 보좌도 하고 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두 분 수녀님 앞으로 나오고, 먼저 사목회장님의 송별사가 있었다.

회장님은 마이크 잡고 말씀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늘의 이 자리는 다 제가 못나고 능력이 없어서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못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두 분 수녀님, 어디 계시던지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기만 바랍니다."

간단한 인사말이었는데 울며 목이 메어 멈추고, 흐르는 눈물 주먹으로 훔치느라 멈추었다.


투박한 형제님이 연세도 드신 분이 꺽꺽 우시며 말씀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흐느끼고, 두 분 수녀님은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

성당 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친구들과 나도 울었다.

자세한 내용도 모르며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눈물이 흘렀다.


간단한 식이 끝나고 신부님은 외지에서 온 신자들을 위하여 인지 본당의 경제적 사정으로 수녀님들 보낸다는 해명을 한 말씀 하셨다.

그리고 당신 혼자 본당을 꾸려가야 하니 교우 분들의 협조를 바란다고 마무리 말씀이 있었다.


말없이 나오며 괜히 조금은 죄송하고 미안했다.

친구들도 붉어진 눈시울을 서로 피하며 아무 말 없었다.

나오며 마당에서 자매님들이 판매하고 있는 물건만 짐이 되는데도 이것저것 샀다.

다시마와 까만 콩과 멸치 등을...........

조금이라도 가난한 성당에 보탬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가끔 그 작은 성당의 회장님 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리안나


[우리는 한 가족] 셋째 시간의 주제이다.

본당 교우가 진하게 한 가족으로 느껴지고 다가왔던 체험을 찾아보란다.


마리안나를 처음 만난 곳은 17, 8년 전쯤 우리 집 앞에서다.

떡을 해서 들고 가는 젊은 여성과 마주쳤는데 성당에서 보던 사람 같았다.

인사를 나누니 윗동네 영세민 아파트에 이사 온 전입교우였다.

반가워서 집으로 같이 들어와 차 한 잔 나누다 그녀의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직장 다니다가 느닷없이 쓰러지고 투석 받아야 사는 신부전증 환자가 됐다고 한다. 어떤 예감이나 전조증세도 없이 별안간 쓰러지며 하루 만에 중환자가 되어서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으며 14년째 버텨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 당시 부산에서는 제일 오랜 투석환자로서 생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긴 소매를 걷어 올리며 팔뚝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주사 맞은 자리가 굳은살이 되고 첩첩이 쌓여 울퉁불퉁 불그죽죽 온통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 했고, 주체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도 없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투석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고달픈 투병기를 들었다.

기운을 쓸 수 없어서 일도 할 수 없고, 발병하고 소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한 달에 투석비가 100만 원 이상 들어서 엄마가 집까지 팔며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골살림도 거덜 났단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절망으로 헤맬 무렵, 한 분이 같은 신부전증 투석환자인 남편과 결혼을 주선하여서  메리놀 병원에서 영세 받고 혼배미사도 올리고 새살림을 시작하였단다.

영세민 독립가정이 되어서 무겁던 병원비 부담도 덜어지고, 작은 아파트와 생활비도 나라에서 주고, 두 사람이 의지하고 사니 하루하루가 너무 고맙고 행복하단다. 비록 두 사람 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으며 지탱하지만........


새 인생을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남편과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새롭게 얻은 행복이 고마워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일은 힘에 닿은 대로 찾아서 한단다. 그래서 구역모임도 노인과 환자 가정이 많은 영세민 아파트에서 자주 자기 집에서 하며, 배급 나오는 쌀로 노인들 좋아하는 떡을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뒤에도 가끔  떡을 해가며 우리 집에 들러서 떡도 나누어 주고 커피도 마시고 가고 하였다. 언제나 큰 눈으로 활짝 웃으며 이야기도 재미나게 잘 하였다.


어느 날 구역모임에서 소식을 들었다.

마리안나에게 수술조건이 맞는 콩팥 기증자가 나섰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포기한다는......

본인과 기증자 수술이 합하여 약 2000 만원이 드는데 준비할 수가 없단다.

모두 안타까워 하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마리안나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맞는 기증자를 만나는 일만도 기적인데 돈이 없다고 그 기회를 놓치다니 아니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는 버겁고, 무슨 수를 찾아야 했다. 본당교우들이 힘을 합하여 이 기적을 잡고 마리안나를 살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당에서 외면하면 안 된다 싶었다.


하루를 생각하고 그 이튿날 마리안나를 찾아갔다.

며칠동안의 고민으로 풀이 푹 죽어 있었다.

수술비를 본당에서 반을 부담하면, 시집과 친정 두 집안에서 형제들이 나서서 나머지를 준비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집안에서 된다고 하면 내가 나서서 본당에 말하겠다고 하였다. 마리안나는 본당에서 그래만 준다면 나머지는 형제들이 해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다.


먼저 수녀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신부님께 사연을 말씀드리고 본당에서 수술비 마련 성금을 걷자고 하였다.

신부님 말씀으로 그 다음주에 바로 1000만원은 모아졌다.

교우들 모두 마리안나에게 수술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한 가족의 마음이었을 거다.

그런데 돈이 다 마련되고 나니 기증자 쪽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가족이 동의를 거부해서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때는 잠시 또 절망이었지만 다시 2년 쯤 뒤에 새로운 기증자가 나왔다.

이때는 마련해 두었던 돈으로 수술비 걱정 없이 바로 수술을 하였다.

다른 사람의 콩팥이 마리안나에게 완전하게 자리 잡기까지는 생각보다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무균실과 중환자실, 입원실과 집에서 오랜 기간 힘들게 적응하는 마리안나를 교우들이 늘 찾아보며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다.

본당 교우들은 정말 한 가족이 되어주었다.

마리안나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소변보는 날 밤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꿈만 같아서 밤새 화장실에 들락거렸다고 하였다.


회복하여 다시 성당에 나오고 구역일도 하고 레지오도 하고 모든 교우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며 파트타임 일도 다니며 열심히 살고 있다.


마리안나의 남편 안드레아씨는 본인 몸이 수술할 수 없는 상태라서 계속 투석을 받으며 지내다 여러 해 전에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며 목이 메어 말씀을 중간 중간 끊어서 하던 신부님 모습이 떠오른다. 안드레아씨는 평소에 말없이 씩 웃기만 하며 본당의 궂은일은 도맡아 하였다. 힘든 병자 같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늘 인사를 해주어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다.


마리안나 가족에게 본당 교우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가족으로 서로 도우며 한 시기를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간추려 써본다.














   

블랙홀이 되어주리 ---- 이 은숙 -----

2009.04.16 13:56 | 언니의 방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4797 주소복사

 

블랙홀이 되어주리.


"우리 본당 교우 중에 어렵고 외로우신 분을 위해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침묵의 소리] 시간에 나눈 주제이다.


이즘 우리 집에 자주 오시어 하소연을 하시는 자매님 생각이 났다.

나보다 한참이나 위형님이신데 교우 분들과 갈등으로, 또 집안문제로 힘들어하고 계셨다.  답답하고 머리 아픈 생각들을 누구에겐가 이야기 하며 풀고 싶으셨는지 오셔서 이이야기 저이야기 두런두런 하셨다.


난 얼마나 힘드시면 나한테 오실까 싶어 열심히 들어드렸다.

말씀하고 싶어서 찾아오신 형님한테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대나무 숲이 되어 드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편하게 말씀하시도록 배려하며 들어드렸다.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겐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시원해진다.

이야기가 끝나면 스스로 마음도 풀리고 정리도 되고 한다.

형님도 그러신 것 같다.

 

부산에서 나도 힘들었을 때 옆에서 말없이 들어주던 친구가 고마웠다.

누군가 가만히 들어만 주어도 말하는 사람은  말하면서 마음속에 잔뜩 엉기어 있던 골 아픈 문제들이 스르르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대꾸가 없어도 이야기를 다 하고나면 해답도 찾아지고, 무거운 짐을 반쯤 덜은 양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냥 몇 번 형님 말씀을 들어드린 것 밖에 없는데 두고두고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목말라 할 때 한 잔의 물을 준 것 같고, 배고파 할 때 밥 한상 가득 차려준 것 같았다고 하신다.

앞으로 누가 힘들어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할 때,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대나무 숲이 되어 주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하고 울어서 임금의 비밀이 천지에 퍼졌다는 고사가 떠올랐다.

나를 믿으며 마음 놓고 한 이야기들이 행여 바람에라도 떠돌면 안 된다 싶다.

대나무 숲은 말고 얼마든지 들어주기만 하고 절대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상징적인 뭐가 있을까?


간단히 아는, 은하세계에서 거대한 홀로 빨아들이고 흡수하기만 한다는 블랙홀.

누구든지 나에게 털어놓는 하소연이나 고민들을 무한대로 들어주고 꿈에라도 내보내지 않는 블랙홀이 좋은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교우들이 어렵고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며 마음을 풀고 싶어 찾아올 때, 난 성심을 다하여 들어주련다. 뒤에 혹 그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하소연의 블랙홀이 되어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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