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풀잎 끝에 달려있는 이슬, 그 시간 싱그럽지 않은 초록생명은 없다.
ⓒ 김민수 오마이 뉴스
초록세상이 가장 싱그러울 때는 언제일까?
어둠이 걷히고 아침햇살의 기운이 감돌뿐 아직 햇살이 비추기 직전 혹은 맑은 이슬방울에 햇살이 빛나는 짧은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시간에는 바람도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나 풀잎 끝 작은 이슬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바람도 밤 새워 만든 이슬을 배려하는 것이다.
자연이 자연을 배려하듯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자연을 배려하며 살아갈 때에 그 삶의 풍성해진다.
▲ 이끼와 이슬 작은 이끼와 작은 이슬방울
ⓒ 김민수 오마이 뉴스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경제제일주의에 빠져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경제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녹색'이라는 말을 붙인 것인데 녹색과 경제적인 의미의 성장은 함께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새만금에서 경제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이득을 얻는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죽어가는 갯벌의 생명과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하고 위협한다는 것, 그것처럼 미련한 짓은 없다.
▲ 이슬 풀잎 끝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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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사로 이뤄지는 4대강 살리기는 자연의 눈으로 보면 살리기가 아니라 죽이기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길에서 자연은 생명의 기운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강줄기로 흘러오는 수많은 실개천들, 그들이 흘러가며 살려내는 수많은 생명들의 젖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것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다.
국민의 혈세로 국민들이 누려야할 초록생명을 죽이는 일을 밀어부치는 정부는 과연 국민의 정부인가? 자연, 초록 생명을 배려하지 않는 녹색성장의 저변에는 권력과 경제적인 이익에만 눈먼 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으로 치장하는 것이며, 녹색 생명을 무참하게 죽이는 일도 '녹색 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이다.
▲ 이슬 속에 피어난 꽃 맑은 이슬방울을 바라보면 나의 마음도 맑아진다.
ⓒ 김민수 오마이 뉴스
구불구불 흐르던 강물, 그 곁에서 실컷 목을 축이고 내어놓으며 맑은 이슬을 만들던 초록생명들이 시멘트로 무장한 직선의 강에서도 이슬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아니,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목말라 말라죽을 것이다.
내어놓은 이슬은커녕 제 몸 축이기도 힘들만큼의 적은 물로 연명을 해야할 터이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도시에 사는 이들뿐 아니라 시골에 사는 이들 조차도 실명되어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경제성'이라는 말 한 마디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맘몬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경제 혹은 성장이라는 말이면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 그동안 치밀하게 인간의 삶에 적당한 편리성을 제공하면서 좀먹어 들어왔고, 인간을 길들여진 것이다.
▲ 이슬방울과 서양채송화 이슬방울 속에 새겨진 서양채송화
ⓒ 김민수 오마이 뉴스
과연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부해서 더 풍족하게 사는지, 앞으로도 우리의 소비지향적인 욕심을 계속 채워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최첨단 과학기계들이 우리의 삶에 족쇄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제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되어 그냥 자극적인 웃음에 멍하니 시선을 주는 것이 최선의 쉼인 것처럼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녹색성장의 시대에서는 행복의 가치도 얼마나 지출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상품화 시키지 않으면 매장되는 초경쟁사회를 살아갈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불행한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조금 더디가도 온 생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이런 이들이 좌경 불법폭력단체로 매도되는 시대다. 이 얼마나 끔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저 초록생명들은 이른 아침이면 맑은 이슬방울을 내어놓는다. 자꾸만 이슬방울에 눈이 머무는 까닭이다.
제주도 중산간도로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산수국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육지에서 만나는 산수국도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피어납니다.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든지 같은 꽃을 피운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섬과 육지, 서로 만난적이 없을 터인데도 산수국은 어디에 피어도 산수국으로 피어나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어디에 살아도 사람이듯이 어디에 피어도 꽃입니다.
척박한 땅에 피어난 꽃을 보면 더 대견스럽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럴진데 어찌된 일인지 힘겨운 삶을 대물림해서 살아야만 하는 아픈 현실입니다.
▲ 산수국 헛꽃의 다양한 색감들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 김민수
참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합니다.
올곧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왕따당하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들로 인해 희망을 얻는 사람들도 있구요. 누군가 자신들이 살지 못하는 삶을 살아줌으로 인해 여전히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수국은 참꽃과 헛꽃이 있는데 헛꽃이 참꽃보다 화사합니다.
헛꽃에 유인된 곤충들이 날아왔다가는 이내 참꽃으로 향하지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헛꽃을 보고 찾아왔다가 참꽃을 만나면 그리로 향하는 것이지요. 이로써 헛꽃은 제 역할을 해내고, 참꽃은 헛꽃이 있어 또 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서로 돕고 사는 관계입니다.
누가 더 중요하냐 하는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존재하면서 서로를 위해 일하는 것이 자연입니다.
▲ 산수국 헛꽃에 비해 참꽃이 훨씬 많지만, 곤충은 헛꽃을 보고 날아옵니다.
ⓒ 김민수
작은 참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도 예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너무 작아서 혼자서는 곤충들을 불러들일 재주가 없어, 수없이 많은 참꽃을 피워보지만 결국에는 헛꽃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작아서 무성지게 피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면 헛꽃을 피워서라도 생존하는 산수국을 보면서 힘없는 이들이 함께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작은 자들의 목소리라고 무시해 버리는 현실을 보면 마치 헛꽃이 자기의 임무를 망각한채 자신이 아예 곤충들까지도 독점해 버리고자 욕심을 부리는듯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그러니 산수국에 비유하자면 권력은 헛꽃이요, 참꽃은 국민인 것입니다. 이 둘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조화가 깨지면 국민도 권력도 힘겨워지는 것입니다.
▲ 산수국 작은 참꽃들의 세상입니다.
ⓒ 김민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국민들이 맡겨준 권력의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결국에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부치는 것을 '독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극장가에 새로이 등장한 '대한뉘우스' 같은 것들이 그런 예의 전형이요, 4대강 살리기 같은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 역시도 그런 예의 전형이지요. 국민들의 혈세를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 그것은 엄연한 직무유기입니다.
헛꽃이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헛꽃만을 위해서 존재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 산수국 참꽃을 좀더 가까이서 바라봅니다.
ⓒ 김민수
참꽃은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꽃을 피우는 동안 변화무쌍한 날씨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어떤 꽃은 궂은 날에 피어나기도 하고, 어떤 꽃은 햇살 맑은 날 피어나기도합니다. 궂은 날 피어난 꽃이나 맑은 날 피어난 꽃이나 피어있는 동안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듯이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들 역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물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른 방향으로, 바른 길로 최선을 다해야 겠지요. 심지어는 남의 수고를 훔치는 사기꾼이나 도둑조차도 최선을 다하니까요.
열심히 한다고 다 지고의 선이 아닙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왜 그걸 이해하지 못하냐? 그 열정을 보지 못하느냐?"고 할뿐 아니라 강압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자신들의 잘못된 열정을 합리화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민화시키는 일인 것이지요.
▲ 수국 산수국에 비해 수국은 참꽃이 하나입니다.
ⓒ 김민수
자연에 있어 헛꽃이 피어있는 곳에는 언제나 참꽃이 피어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갑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헛꽃만 가득하고 참꽃이 없다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진정성이라고 말합니다.
서로가 있어 서로를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헛꽃과 참꽃의 세상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이익다툼으로 큰 것을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헛꽃만 키워가는 것이지요.
산수국, 헛꽃과 참꽃의 어우러진 마음이 예뻐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도 아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들도 그런의 마음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 개암나무 긴 것은 수꽃이고 붉은 입술 앙다문 작은 것은 암꽃이다. 거의 실물 크기 정도이다.
ⓒ 김민수
작년인가, 누군가 개암나무의 암꽃이라며 사진을 올렸다. 그냥 길쭉길쭉 한 것이 꽃인가 했다. 암꽃이 따로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어느 봄날 산책을 하다 그를 만나 자세히 보니 정말 붉은 입술 앙다문듯한 암꽃이 앙증맞게 피어있었다.
그렇게 그를 본 후, 다시 한 계절이 지나 개암나무 꽃이 필 무렵 그를 찾았지만 흔하디 흔하던 개암나무도 이젠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가 되었구나 싶었다. 사무실 근처의 야산을 점심시간마다 산책을 하며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번 오르내리다 아주 가까운 곳, 그러니까 내 사무실 책상에서 불과 5분 여만 걸어가면 되는 곳에 개암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꽃이 피어날 무렵이라 암꽃과 수꽃을 모두 볼 수 있었다.
▲ 개암나무의 수꽃 수꽃은 송화가루처럼 날리며 암꽃이 수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암나무는 암수 한 몸이다.
ⓒ 김민수
여름날 소낙비가 그치면 동네 친구들과 소쿠리를 들고 버섯을 따러 산을 돌아다녔다. 산길을 따라 풀섶을 기웃거리며 다니다 보면 노란 꾀꼬리버섯이며 커다란 청버섯이며 싸리버섯이 우리를 반겼다. 가끔씩 사람 발자국 소리에 스르르 도망치는 뱀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렇게 비 온 뒤의 숲은 숲속의 요정 버섯을 수없이 나눠주었다.
비가 오기만 하면 쑥쑥 올라오던 버섯들. 버섯을 따러 간 길에 개암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얼마나 고소하던지…. 어떤 때는 버섯보다는 개암나무 열매를 따는데 더 열중하기도 했다. 그 어린 시절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보릿고개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의 배고픔이 있는 시절이었으니 산야에서 친숙한 것은 주로 먹을 것과 관련이 되는 것이었다.
이른 봄에는 칡을 캐러가고, 논두렁에서 메꽃뿌리를 캐고, 미꾸라지, 개구리, 우렁이, 가재, 메뚜기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었다. 고기가 그리울 때는 친구들과 밤에 사다리를 놓고 초가지붕의 참새집에 손을 넣어 참새를 잡아 구워먹기도 했다. 그렇게 아련한 추억 속의 한자락에 개암나무의 열매가 있다.
"와, 깨금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깨금' 개암나무 열매를 그렇게 불렀다. 깨금은 완전히 익었을 때는 고소하고, 조금 덜 익었을 때는 풋풋하다. 물론 둘 다 맛나다. 버섯을 따다가 개암나무 열매를 만나면 한 두개 따서 이빨로 깨물어 껍질을 벗겨본다. 그러면 잘 익지 않은 것은 속이 차다 말아서 먹을 것도 없다. 깨금을 따서 이빨로 물으면 잘 익은 놈은 '딱!'하고 벌어진다. 그 고소함이란!
▲ 개암나무 암꽃 붉은 입술 혹은 젤리를 보는 듯하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끈적끈적한 젤리같다.
ⓒ 김민수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깨금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젠 먹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졌기도 하고, 자연에서 군것질 거리를 얻던 시절과 멀어졌기 때문이리라.
'암꽃', 드디어 제대로 만났다. 그 작은 꽃을 마이크로 렌즈로 들여다보니 다른 세상이다. 쫄깃쫄깃 단맛 가득한 젤리같기도 하고, 말미잘의 촉수같기도 하고, 한 다발 피어난 폭죽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꽃들은 암술과 수술이 꽃 하나에 있고, 간혹은 암수가 다르기도 한데 같은 나뭇가지에 살면서도 암수 다른 꽃을 피우고, 모양도 전혀 다른 개암나무의 꽃을 보면서 나는 가족을 떠올렸다.
깨금처럼 고소한 가족.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이미 핵가족화 된 지는 오래지만 그래도 힘든 시절 가족이 있어 서로 의지하며 이겨냈는데, 이젠 가족들 간에도 심심치 않게 심각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최후의 보루가 가정이요, 가족인데 그 고소한 맛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여름이 깊으면 개암나무도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올해는 어린 시절 고소한 맛의 추억을 되새기며 고소한 깨금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출장길,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 있는 정안휴게소에서 뜻밖의 귀한 꽃을 만났다. 은은한 매향에 손에 들고 있는 잔에서 풍겨오는 커피향이 무색해 진다. 서울의 봄은 이제야 오는 것 같은데 경기도에 접어드니 연록의 빛깔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고, 남도를 향해 갈수록 완연한 봄이다.
향이 좋은 냉이꽃을 바라보니 신부의 부케를 닮았다. 이렇게 순백의 꽃, 질리지 않는 향기를 간직한 신부의 부케도 멋질 것 같다.
▲ 민들레 민들레의 꽃술, 축제의 불꽃을 보는듯하다
ⓒ 김민수
민들레도 피어나기 시작한다. 꽃술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불꽃놀이를 하는듯 하다. 저 작은 꽃술 하나하나가 씨가 되는 것이구나,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들 중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안다면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 하나도 없을 터이고, 함부로 대할 것 하나도 없을 터이다.
▲ 개나리 노란 개나리 활짝 피었습니다
ⓒ 김민수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와 근처 공원 산책을 했다. 지난 밤 단비가 내렸다. 그래서인지 이제 서울에도 이런저런 꽃들이 수없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산자고, 할미꽃, 꽃다지, 냉이, 개나리, 진달래, 매화, 제비꽃을 집 근처의 공원에서 만났다. 개나리와 매화를 제외하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야생의 상태로 피어난 것이다. 그래서 더 정이 간다.
▲ 제비꽃 앉은뱅이꽃, 오랑캐꽃, 반지꽃 피었습니다
ⓒ 김민수
▲ 갯버들 갯버들의 속내도 가만 보면 화사합니다
ⓒ 김민수
산책로에는 제비꽃과 갯버들의 꽃도 피었고 버드나무도 연록의 색이 퍼지고 있고, 수양버들도 갯버들처럼 화사하진 않지만 노란 꽃을 피웠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수양버들의 꽃은 기어코 담지를 못했다.
어떤 분이 "그거 하나 꺾어서 바람 안 부는 곳에 놓고 담으시죠?"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30분 이상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운가 보다.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이 피어난 과정을 생각하면 그러질 못하겠다. 어떻게 핀 꽃인데 사진 한 장 담자고 꺾을까 싶어서다. 물론, 사랑하는 이에게 아이에게 줄 꽃이라면 다르겠지만.
▲ 돌단풍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돌단풍
ⓒ 김민수
▲ 춘란 보춘화, 이제 완연한 봄
ⓒ 김민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올해 나를 가장 기쁘게 해 준 꽃은 단연 춘란이다. 돌단풍만 피었나 싶었는데 몇 년째 춘란이겠지 생각하며 키웠던 난이 올해는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운 것이다.
사실 지난 겨울, 그를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무관심 속에서도 꽃을 피웠으니 더 고맙고, 더 대견스러워 보인다. 비 온 뒤 반짝 추위가 있을 것이란다. 이젠 꽃샘추위도 아니고 반짝추위란다. 이제 완연한 봄, 애써 오더니만 이리도 빨리 피어나는가?
집단분포 동강 평창 문희마을
공개 앞둔 백룡동굴 진입로 절벽 공사로 훼손
꽃대 꺾이거나 꽃망울 뭉개진 모습 눈에 띄어
동강의 비경을 간직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백룡동굴 부근은 요즘 공사중이다. 발견된 지 30년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백룡동굴의 진입로를 설치하는 공사다.
지난 18일 문희마을을 지나 강변을 따라 내려가자 ‘동강할미꽃 집단분포지,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원주지방환경청장의 안내판이 서 있는 공사현장이 나왔다.
가마소에서 백룡굴까지 가파른 벼랑 중간을 약 40m 높이로 횡단하는 다리를 놓는 난공사가 한창이었다. 석회암 절벽에 철제 기둥과 들보를 세우고, 그 위에 탐방객 용 손잡이가 달린 나무다리를 놓는 작업이 전체 진입로 365m 가운데 120m 가량 진행됐다.
절벽 틈 곳곳 보라 분홍 진분홍 빛으로 알록달록
굽이치는 동강을 사이에 두고 평창·영월·정선군이 만나는 이곳은 동강에서도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정부가 2000년 동강(영월) 댐 건설을 포기한 이유의 하나인 한국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이 많은 곳이다.
예년보다 포근한 날을 맞아 절벽 틈 곳곳에서 동강할미꽃이 보라, 분홍, 진분홍 빛으로 피어 있었다. 일찍 피는 야생화답게 추위에 대비해 촘촘히 난 긴 솜털이 햇빛에 반짝였다.
공사과정에서 동강할미꽃 꽃대가 떨어져 나가거나 꽃망울이 뭉개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동강에서 처음 발견돼 학명에 ‘동강’이 들어있는 동강할미꽃은 세계에서 강원도의 석회암지대에만 분포하는 희귀종이다.
상록 떨기나무인 회양목도 여기저기에 부러진 채 발견됐다. 회양목도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야생상태에서는 보기 힘든 석회암 지대 지표종이다.
김영덕 현장관리소장은 “동강할미꽃은 건설지점보다 절벽 아래에 살아 훼손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평창군은 백룡동굴을 자연친화적인 생태학습형 체험동굴로 개발해 예약한 소수의 탐방객을 대상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은 국내에서 가장 잘 보전된 석회암 동굴의 하나로 지금까지 일반인 접근을 금지해 왔다.
이정의 평창군 관광개발 담당은 “일반인이 동굴에 접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공사과정의 불가피한 훼손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을 주민들은 일자리·소득 위해 원하는데…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백룡동굴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평창군 관계자는 “검토과정에서 강변으로 진입로를 만들거나 다리를 놓는 방안은 환경파괴 우려로, 배를 운항하는 것은 안전상의 문제로 포기했다”며 ‘절벽 진입로’가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마을 주민들도 이 방안에 찬성한다. 김삼용 미탄면 마하리 이장은 “건설과정이라 흉해 보일 뿐 완공되면 진입로가 훌륭한 동강 전망대 구실을 할 것”이라며 “백룡동굴 탐방 가이드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증대하는 사업이 보전을 이유로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백룡동굴 지킴이’로 알려진 문희마을 주민 정무룡씨도 “(동강댐 건설로) 물에 잠길 곳을 건져냈으니 이제 주민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경관보전지역 안에서는 동물을 잡거나 식물을 꺾어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정도로 규제가 엄격하다. 그런데도 대규모 공사가 가능한 것은 문화재청이 2007년 천연기념물인 백룡굴의 현상변경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동굴 개방으로 석순 등의 훼손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3년 기한의 허가는 연장된다.
한동욱 박사(피지에이 습지생태연구소장)는 “가장 상위의 보호구역인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면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희귀식물 분포지에 손을 대선 안 된다”며 “폭풍이나 탐방객 영향으로 취약한 석회암이 붕괴하는 안전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과 팀장은 “다음주부터 식물전문가와 함께 백룡굴 일대 등 동강할미꽃 분포지에 대한 정밀조사를 거쳐 필요한 보호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