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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19
 

여성을 군대로? 이미 우리는 전쟁 중이야!

2009.11.30 19:49 | 산문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309 주소복사




[프레시안] 2009년 11월 28일(토) 오전 02:18 가 가| 이메일| 프린트

[화제의 책] 신시아 코번의
<여성, 총 앞에 서다>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1·2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 그리고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등장한, 21세기 판 '테러와의 전쟁'까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총성이 멈춘 적이 있었을까. 전쟁의 명분도, 살상 도구도, 형태도 각각 달랐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었다는 점.

가까이에는 일본군 '성노예'로 살아야했던 생존자들이, 멀리에는 집단 강간의 피해자였던 베트남 여성들이 있다. 아니, 굳이 흘러간 역사의 자취를 끄집어 내 되새김질 할 필요도 없다. 미군이 주둔한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성매매 집결지, 이른바 '기지촌'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총성 없는 전쟁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탈레반이 점령하든, 미군의 지배를 받든 상관없이 전쟁 속에 묵인된 가혹한 학대에 시달린다. (☞관련 기사 : " 아프가니스탄, 변함없는 '여성의 지옥'" )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된다. 여성 인권에 무지한 저 잔혹한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미명 아래, '조국을 위해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을 여성이 나서 '위안(慰安)'해 줘야한다는 명분 아래. (실제 한국 정부는 1971년 미국이 미군 철수를 통보하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지촌 정화 운동'을 시행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기지촌 여성에게 성병 검진을 시켰고, '윤락금지법'을 만든 박정희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을 '민간 외교관'으로 추켜세우며 사실상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를 독려했다. 당시 기지촌에 있었던 한 성매매 여성은 "우리 정부는 미군을 위한 거대한 포주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한 바 있다.)

여성, '전쟁에 대한' 발언권을 빼앗긴 사람들


▲ <빼앗긴 순정>(故강경덕 作). ⓒ나눔의집


그렇듯, 여성을 매개하지 않은 군사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와 전쟁은 흔히 '남성'의 역역으로 여겨지지만, 젠더는 이들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기제다. 전쟁 때마다 되풀이 됐던, 적군의 '사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상대편 여성을 성폭행하는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집단 강간을 통해 피점령지의 남성은 '자국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수치심을, 점령지의 남성은 이들을 '정복했다'는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된다.

군사주의가 젠더를 기제로 작동하는 이유는 단지 전쟁의 피해자가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한 미군의 포로 성 학대 사건의 경우, 어떻게 전쟁에서 점령군이 성폭력을 통해 피점령지 남성을 '여성화' 하는지 보여준다. 이 교도소에서 미군이 남성 포로들에게 여성의 속옷을 입힌 사실은 남성의 '여성화'를 통해 수치심을 가중시킨, 전형적으로 성별화된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적군과 싸우는 남성들에게 마땅히 감사와 응원을 보내야하는 '후방에 선' 피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상흔을 온몸으로 감내해야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총 앞에 선'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에 반대하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해왔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착취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단지 그들이 '총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과 군대라는 영역에 대해 발언권을 빼앗긴 존재였다. '남성의 보호를 받는' 여성이 '감히' 군대와 전쟁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금기였다. (매년 한을 풀지 못하는 총각 귀신처럼 부활하는 '군 가산점제'의 망령을 보라. 군 가산점제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군 경력은 '희생'인 동시에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정상성과 자부심의 원천이다.)

'총 앞에 선' 여성들, 목소리를 내다

여기, 그 금기를 과감히 깨고 나선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자, 전쟁과 은밀히 내통하는 모든 차별적 구조와 권력 관계에 저항하는 시도다.


▲<여성, 총 앞에서 서다>(신시아 코번 지음, 김엘리 옮김, 삼인 펴냄) . ⓒ삼인
저명한 여성학자이자 영국 시티대학 교수인 신시아 코번의 <여성, 총 앞에서 서다>(김엘리 옮김, 삼인 펴냄)는 여전히 전쟁의 고통 속에 직·간접적으로 시달리는 세계 각지의 여성들의 반전·평화 운동을 다룬 의미있는 기록이다. 저자는 2년간 총 12개국 250여 명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인도, 시에라리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등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전쟁과 폭력이 얼마나 여성들의 삶을 피폐화시키는지 목도한다. 군인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 은 가족과 공동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여성 지도자들은 암살당하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활동은 '전쟁 시기'라는 이유로 엄격하게 통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만난 세계 각지의 여성 평화 운동은 눈여겨 볼만 하다. 이 책에서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고 비참하게 버려진 동료의 죽음에 항의하며 알몸으로 철조망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삼엄한 미사일 기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기도 한다.

기존의 평화운동 방식과는 다른, 색다른 형태의 운동 역시 눈에 띈다. 정부군과 무장 세력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콜롬비아에서는 '여성들의 평화로운 길'이라는 여성 평화 운동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1996년 '우리는 전쟁을 위해 아들과 딸을 낳지 않으리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대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극, <뤼시스트라테>에서 아테네 여성 뤼시스트라테가 전쟁을 지속하는 한, 남편들과 성관계를 갖지 말자고 제안해 전쟁이 종식된 이야기의 현대판 사례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미국 등 20개 국가의 여성이 참여하는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미국-푸에르토리코 여성네트워크'는 미국의 해외 군사 전략을 감시하고 미군 주둔지의 기지촌의 현실을 고발한다. 자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교묘한 '외교술' 끝에 '국적없이' 버려진 땅, 기지촌의 현실을 이 여성들이 앞장 서서 드러낸 것이다.

전쟁 가해국에 속한 여성들도 기꺼이 반전을 외치는데, 다국적 반전 네트워크인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은 팔레스타인 침략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이 시작했다. 이들은 특이한 복장을 하고 행진을 한다던가, 사회 운동 진영에서는 금기시 되는 정치권과의 로비 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군사 시설을 평화적으로 에워싸 봉쇄하기도 하고, 저항의 의미로 금지 구역에 일부러 들어가거나 전쟁 피난민을 지원하는 활동도 벌인다.

http://l.yimg.com/go/news/picture/2009/26/20091128/2009112802180779026_023006_2.jpg
▲ 전쟁 가해국에 속한 여성들도 기꺼이 반전을 외치는데, 다국적 반전 네트워크인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은 팔레스타인 침략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이 시작했다. 이들이 200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삼인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평화를 지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군사주의와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집단적인 운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남성들과 경찰, 우파와 기성 좌파, 미디어, 심지어 같은 여성들조차 비웃고 경멸하며 주먹을 휘두르지만,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반전·평화와 인권, 그리고 여성 해방을 외친다.

"여자가 감히?…그래, '감히' 군인들 앞에 섰다!"

"우리는 자신의 칼로 5000년 전 도시 국가와 제국을 만든 전사처럼, 현대 전쟁을 치를 군인으로 맞게 단련되고 길들여진 지배적인 남성 자아를 목격한다. 평화 활동가들은 특히 전쟁 폭력을 파괴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그 생산이 우리에게 달갑지 않지만, 이는 새로운 계급 엘리트를 창출하거나 현존하는 어떤 계급을 강하게 만든다.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면서 인종화된 정체성을 만든다. 또한 젠더를 생산한다. 그 생산은 남성과 남성성을 매우 효과적인 양식으로 지지한다. 여성을 전리품이나 소유물로, 수하물이나 노예로 만든다."

전쟁은 역사적으로 남성이 일으켰지만, 살아남아 그 피해를 온전히 떠안는 것은 여성이었다. 저자는 전쟁에 대한 발언권과 시민권을 빼앗긴 이들이 만들어가는 반전 운동에 주목한다.

저자가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지 전쟁의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군사주의의 저변에 '성'을 토대로 차별과 착취를 만들어내는 가부장제가 깔려 있음을 이들의 운동을 통해 폭로하고자 한다.

한편, 이들의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 뿐 아니라 여성 내부의 차이를 유연한게 소통한다는 점에서 사회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여성 운동이 단순히 '남성 시스템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경험만을 보편화하는 힘'을 상대화시키는 시도인 것처럼, 이들의 활동은 여성 내부의 인종, 계급 차이까지도 지혜롭게 횡단하고자 한다. 또한 주류 사회 운동의 남성중심적·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극복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사회 운동 진영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선명수 기자 ( praxis@pressian.com )

[책과 세상] 천하를 얻은 글재주

2009.10.27 10:46 | 산문 | 고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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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오찬 지음ㆍ박성희 옮김 북스넛 발행ㆍ338쪽ㆍ1만8,000원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한(漢)의 무제(BC 156~87)는 북으로 흉노, 동으로 고조선, 남으로 월을 쳐서 꿇리고 서로는 실크로드를 열었다.

소금과 철을 전매해 재정을 다졌고 동중서(BC 170~120) 같은 대유(大儒)를 등용해 제국의 틀을 잡았다.

무제에겐 사마천(BC 145~86)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BC 98년 황제를 기만한 죄로 궁형에 처해졌다. 사마천이 분노와 치욕 속에 <사기>라는 걸작을 남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000년이 흐르고 무제와 사마천은 함께 역사가 됐는데, <사기>의 존재를 통해 둘의 위상은 역전된 듯하다. 휘황했던 무제의 영광은 다만 몇 줄 앙상한 기술로만 남았고, 일그러진 인생을 딛고 붓을 쥔 사마천의 꿈은 <사기> 속에서 여전히 형형하다.

<천하를 얻은 글재주>는 사마천처럼, 글로써 "진정으로 천하를 얻은" 고대 문인들의 이야기다. 중국 삼소문화연구원에 재직 중인 학자인 저자 류사오찬은 문인들의 삶과 시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고전을 밑감 삼아 읽을거리로 엮은 다이제스트는 지겨울 만큼 많다. 외형만 놓고 따지면 이 책도 그 식상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차별점은 저자의 태도, 혹은 저술 의도에서 엿볼 수 있는데 둔중한 목소리 속에 날카롭게 벼린 날이 서 있다.


"개혁개방 구호 아래 경제가 고속행진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억압으로 쪼그라든 욕망은 상품의 물결과 함께 팽창되고 또 팽창되었다. 쪼그라든 욕망도 문제였지만 부풀대로 부푼 욕망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가치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의 위협을 받은 지 이미 오래며, 욕망으로 우리의 영성은 피폐해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시적 감동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가 고른 글들은 그래서, 소란한 수사로 자연을 예찬하는 것보다 평담(平淡)한 말투로 질곡의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 많다. 저자가 첫째 문인으로 소개하는 굴원(BC 343~278)의 대표작 '이소(離騷)'다.

"바른 말이 해로움이 됨을 알았으나/ 차마 그냥 버려둘 수 없었네/ 하늘은 내 곧음을 인정하리/ 오직 임을 위해 그리한 까닭을… 비록 내 몸 찢어져도 변치 않으리니/ 어찌 내 마음에 경계함이 있으랴."
전투적인 문장으로 3,000년 중화문명의 흔적을 영원에 새긴 사마천, 자연을 닮은 영성주의자 도연명(365~427), 광기와 야성의 유랑 시인 이백(701~762), 관음보살처럼 세상의 고통을 듣는 시성 두보(712~770) 등 아홉 문인의 글과 삶이 두름으로 엮여 이어진다. 댑싸리비로 가을 마당을 정갈히 쓸어내는 듯한 글들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한국일보] 2009년 10월 23일(금) 오후 10:40

기본 eunha46 2009.11.03  17:40

댑싸리비로 가을 마당을 정갈히 쓸어내는 듯한 글들 읽어 보고 싶지만.......
우선은 창밖으로 보는 가을 풍경이나 즐기며 마음을 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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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고은네 2009.11.04  10:28

수천년이 지났지만 굴원, 사마천 도연명, 두보를 흠모하는 이들 많은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역사는 에돌아 간 길이 훨~많으니,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석자도 안되는 인간의 마음을.....에효,

기본 안나 2009.12.01  06:58

그러고 보니 댑싸리로 쓸어낸 가을 마당을 보고 싶네요.(이궁 바랄 걸 바래야지)
그런 느낌의 글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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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경리 토지 문학관/문학 캠프 후기 (2009,8, 27) (1)

2009.09.14 18:05 | 산문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177 주소복사

문학캠프 가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약속장소인 세종 문화 회관 뒷쪽으로 가니 버스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지정해 준 대로 3호차로 가니 인솔 담담자가 신원 확인을 한 후 차에 올랐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탔더니 앞쪽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연이어 참가자들이 올라 타는데 보니까 20대에서부터 잘 해야 4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는 모두 6대, 참가자들이 200여명은 될 듯 싶었다.
거기다가 인솔가이드와 yes.24에서 나온 스텝들까지 해서 250여명 가량 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불참 하는 이들이 있어 빈 좌석이 많았다.
내 옆자리엔 아무도 앉지 않아 배낭을 올려 놓고 혼자 앉아 가게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 원주까지 가는 동안 가지고 간 책(아내가 결혼했다)을 읽었다.
저자를 만나러 가는데 저자의 책은 읽고 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릴 때도 어울릴 사람도 없고 해서 책만 읽었다.

드디어 원주에 도착해서 박경리 토지 문학관으로 갔다.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니 어느 한 곳
대강 대강 훑어 볼 수 없어 꼼꼼히 둘러봤다. 문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대작가의
삶의 흔적들과 남겨진 유품들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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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문학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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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님께서 말년까지 거처하시던 집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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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님께서 쓰신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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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의 집필실.
저 곳에서 작품을 쓰셨다고 한다. 쓰시던 유품들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런데 박경리님의 유품 세가지를 놓고 통영, 하동, 원주 세 곳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고 하는데
쓰시던 재봉틀, 국어 사전, 자그마한 나무장이 그 세가지라고 한다.내 생각엔 말년을 보내신 이 곳
에 유품들을 두는 것이 옳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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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께서 말년까지 머무르셨던 이 곳을 원주시에서 박경리 문학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너무 잘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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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를 읽으니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사셨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스무살에 시집가서 스물 세살때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까지 의료사고로 잃으셨다고 한다.
게다가 외동딸과 결혼한 사위 김지하 시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 보안법 위반, 내란
선동죄로 사형언도까지 받았다가 감형을받은 후 사면 되었으니 그 마음 고초를 헤아려 보면 참으로 험한 인생을 견뎌 내신 거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인고의 삶을 사셨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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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저 구절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늙어서 남은게 버릴 것들 뿐이라면 얼마나 홀가분하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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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님의 작품 세계를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해설사님.
아주 박식하셔서 이해에 도움이 많았다.



전시된 시마다 어찌 그리 코끝이  찡해 지는지...절절한 외로움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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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문학관 앞에 만들어 놓은 토지 속의 등장인물들의 만화 개릭터들.
같은 버스 같은 3조였던 예쁜 아가씨, 여행 내내 내가 예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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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나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나는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의 무게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 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에 걸려든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 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전신에 엄습해 오는 통증과 급격한 시력의 감퇴와
밤낮으로 물고  늘어지는 치통과
내 작업은 붕괴되어 가는 체력과의
맹렬한 투쟁이었다.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자를 걸어 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 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로는, 그렇다.



(4)

승리없는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고 버리곤
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배수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분히 발을
내 밀 수가 있었다.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은 두렵다.
타협이라는 속삭임이, 꿈을 먹는 것 같은 
무중력이, 내가 나를 기만하는 교활한 술수가
가적을 바라는 가엾은 소망이.......
희망은 이같이 흉하게 약화되어 가는 나를,
비천하게 겁을 먹는 나를 문득문득 깨닫게 한다.
나는 표면상으로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소설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 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잿더미다, 잔해다.

- 박경리의 글 중에서 -

박경리는 그 지난한 고독의 삶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아마도 피와 눈물을 찍어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 대작가이기전에 평범한 한 여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을까 몰라.

토지 문학관을 나서며 다음에 조용할 때 혼자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다음은 이효석 문학관으로 이어집니다.

[아비투어 논술]장자 ‘자연과 과학기술’(下)

2009.08.02 07:28 | 산문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141 주소복사



[경향신문] 2007년 09월 04일(화) 오전 09:38 가 가| 이메일| 프린트

근대화 이후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발전과는 달리, 내적으로는 가치관이 흔들리고, 몰개성화되는 부정적 현상도 흔히 나타난다. 이는 가치나 타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근본적 이성이 목표를 달성하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효율성만을 따지는 도구적 합리성으로 전락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장자를 비롯한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 배경지식넓히기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로 맹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한때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10여만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정리, 편찬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 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특히 제물론 편은 ‘장자’ 33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난해한 사상을 담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물론은 만물(세상의 모든 사물)을 고르게 하는 논리(또는 이론)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장자 철학의 근본인 유일 절대의 도의 입장에서 현실세계의 갖가지 현상,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화복(禍福)·길흉(吉凶)·생사(生死) 등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상대적 가치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가를 뚜렷이 밝히려고 한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 오르는 대붕, 곧 절대자(또는 자유인)의 조건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에 있다고 장자는 주장한다.


<문제> 아래 제시문들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언제인가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와 나비에는 겉보기에 반드시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절대적인 변화는 아니다.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 만물의 변화)라고 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제이(第二) 중에서

(나)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서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새, 끼치는 소리를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 소동파, ‘적벽부’ 중에서

(다) 과학의 조작주의는 개념의 의미를 사물의 기능으로, 사실의 기술(記述)로 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계량할 수 있는 것만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합리성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도구적인 이성으로 축소된다. 기술적 합리성은 인간을 점점 노예로 만든다. 기술은 기계 장치의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인간과 자연을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과 자연의 착취를 더욱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든다. 과학적 방법은 자연을 수량화함으로써 좀더 효율적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자연의 지배를 통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위한 개념과 도구를 가져다주었다. 대상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계량하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일차원적 사고는 대상을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면까지 바라보는 다차원적 사고를 배제한다. 생산과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모든 사회적 관계도 일차원적 사고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조직된다. 현대사회는 기술을 통해서 지배를 계속하고 기술로써 지배를 확대해 간다.

- H.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중에서

<문제1> 제시문 (가)와 (나)에 드러난 공통된 관점은 무엇인지를 4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문제2> 제시문 (다)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하여 제시문 (가)와 (나)의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10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예시답안>

<문제1>

제시문 (가)는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분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기준은 결코 만물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겠다. 이렇듯 장자는 유일 절대의 도의 입장에서 현실세계의 모든 현상을 구분하려는 상대주의적 가치판단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진정한 자유의 조건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임을 주장한다. 제시문 (나)에서 소자는 인생무상을 말하는 손에게 물이 흘러가는 것과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강물이나 달이나 형태는 변하지만 본질은 그대로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만물이 무한한 본체의 형상이기에 만물은 동일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두 제시문에는 만물을 하나로 보는 공통된 관점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문제2>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은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지 현실성의 차원으로 국한되어 버렸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기술의 진보에 매몰되어 현실에 대한 비판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없게 되었고, 경제성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다른 사회적 모순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마비된 비판의식 속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 자신의 욕구를 바치게 되어 결국 과도한 생산, 낭비 등의 부정적인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장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점은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척도’에 의거하여 무차별적으로 인간 본연의 생명성을 왜곡하는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삶의 진정성의 추구를 포기한 채 기계놀이에 치중하여 도구 종속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난 현실인 것이다. 또한 지공무사(至公無私)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주객의 이분법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수단화한 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자와 소자 모두 ‘하나의 세계’를 강조한다. 하나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이므로 비교도 차별도 경쟁도 건설과 파괴도 성공과 실패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사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있다. 이유는 세계의 본래 모습과 달리 잘못된 인간의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것을 ‘자연’과 ‘인위’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가 자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내는 계획, 의도, 방법은 혼란만 일으킬 뿐 실제로 주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탐욕을 버리고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무소유’를 통한 ‘충만함’을 깨달으려 할 때 우리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 고전 펼치기

그래서 군자가 어쩔 수 없이 천하에 군림하게 된다면 ‘만물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맡겨 두는’ 무위(無爲)가 제일이다. 무위여야만 그 후에도 ‘사람들은’ 본래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편히 머물게 된다. 그러니까 몸의 보전(保全)을 천하를 다스리는 일보다 귀하게 여기는 자라야 세상을 맡길 수 있고, 몸의 보전을 천하를 다스리는 일보다 좋아하는 자라야 세상을 부탁할 수 있다. 때문에 군자가 만약 그 ‘자연스러운’ 오장(五臟)을 흩뜨리지 않고 그 총명함을 겉에 드러내지 않는다면, 주검처럼 가만히 있어도 용(龍)같이 드러나고 깊은 못인 양 잠자코 있어도 뇌성(雷聲)처럼 울리며 정신이 활동하면 자연은 도리어 따르고 자연 그대로 무위(無爲)로 있어도 만물은 흩날리는 티끌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리라. 그런데 새삼 천하를 다스릴 틈이 내게 어디 있겠는가!

-‘장자(莊子)’ 외편(外篇) 재유제 십일(在宥 第 十一) 중에서

-해설-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고 인간의 독단적인 지혜 따위가 판을 치며 사람들의 자유를 속박하는 획일적인 사회를 장자는 혐오한다. 설혹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다스려야 할 경우에라도 그는 인간의 한정된 지식(人智)을 배격하고 무위(無爲)를 존중한다. 이렇듯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을 장자는 철저하게 싫어한다. 노자(老子)와 더불어 그가 무정부주의자로 오해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를 뒤로하고 장자의 말이 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이 가진 교만과 아집을 억제하고 무위를 지향하는 자세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관련기출문제-

2007 건국대 수시, 2006 고려대 수시2, 2006 부산대 정시, 2005 고려대 정시, 2001 경인교대 논술고사, 2001 성균관대 정시

〈조한균|연구원·자음과모음 논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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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의 사상은 어떻게 다른가?

2009.08.02 07:25 | 산문 | 고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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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가 생존했던 시대는 중국의 춘추 시대였다. 당시 주나라 중앙 정부의 세력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한 반면 지방 제후들의 세력은 강해지고 있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였으며 흉년에는 굶어 죽는 자가 무수히 많았다. 또한, 백성들은 정치적 횡포와 가혹한 세금으로 도탄에 빠져 허덕였다. 공자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도덕성의 회복을 자신의 시대적 사명으로 삼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다. 공자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랑하는 마음(仁)을 지니고 모든 사람을 예(禮)로써 대하라.'는 것이다. 인(仁)은 인간이 타고난 내면적인 도덕성이요, 예(禮)는 외면적인 행위 규범을 말한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과 효도가 인을 실천하는 데 그 출발점이 되므로, 공자는 효를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였다.

반면에 노자는 당시 사회가 혼란한 원인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그룻된 인식과 가치관,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제도 때문이라고 보았다. 공자가 가르침을 구하러 노자를 찾아갔을 때 노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공자의 주장을 반박하였다고 한다.

"모기가 물어 대면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다. 지금 인의(仁義)의 도덕을 말하는 것은 인심을 어지럽혀 오히려 혼란을 더하는 것과 같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 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본래부터 두터우며, 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고 별도 스스로 빛난다. 세상의 모든 산천 초목들도 다 그러하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인의(仁義)를 말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마치 북을 억지로 두드려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 하는 무모한 짓과도 같다. "


장자의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체계화시키고. 우화(寓話)와 비유를 써서 이를 더 구체적으로 나타내었다. 노자는 단지 도(道)가 우주에 충만해 있다고만 했는데, 장자는 이것을 더욱 상세히 설명하여, 도는 없는 곳이 없다고 하였다. 도는 개미 속에도 있고, 낟알 속에도 있으며, 기왓장에도 있고, 오줌똥 속에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장 좋은 정치는 다스리지 않는 것' 이라고 하면서, "천하를 그대로 보존하여 너그러이 놓아 둔다는 말은 들었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 장자는 인간이 타고난 본성을 따르면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장자는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였는데. 그것은 천지의 참된 정신을 타고 원기(元氣)의 변화를 부리며 무궁한 우주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는 지인(至人), 신인(神人)들은 세상일의 잡다한 구분을 초월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와 세계, 나와 남의 구분도 초월하였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는 도는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 버린 것이며, 천지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천지를 생겨나게 하며 이끌어 가는 것이다. 장자에 의하면, 현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분쟁은 모두 세상의 일면에만 집착하여 자기만이 옳고 남을 그르다고 하는 이기적인 편견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1. 내용 요약

<壯子>는 총 33편으로 內篇 7, 外篇 15, 雜篇 11로 구성되어 있는데 壯子는 본래의 사상과 장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후대 사람들의 입장이 뒤섞여 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대체로 내편이 장주의 思想을 비교적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장자>는 체계적인 논설보다는 寓言, 그러니까 偶話로 가득하다. 때문에 <장자>는 思想書임과 동시에 그 문학적인 가치로도 이름이 높다고 한다.
이 가운데 장자가 직접 지었다는 내편이 그의 사상을 忠實하게 전하고 있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들이 내편의 뜻을 硏究. 발전시킨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내편중에서도 제 1편 ‘逍遙游’와 ‘齊物論‘은 이 도와 유가 장자의 기본 개념이자 내용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한다. 장자를 읽고 그 내용 중 ‘逍遙游’와 ‘齊物論’을 정리 요약하고 그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 해 보려 한다.

제 1편 소요유 (消遙遊)

우선 소요유(消遙遊)는 장자사상의 根底를 이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대붕의 飛上으로 시작되는데 소요유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한 세계를 걷는다는 의미에 걸맞게 끝없이 펼쳐진 환경 속에서 그 무엇에게도 拘束받지 않고 悠悠自適하게 자유를 즐기는 생활을 한다는 意味로도 여겨진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하여 곤 이라 하였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 이라 하였다. 붕의 등도 그 길이가 몇 천 리 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붕이 한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이 새는 바다에 태풍이 불면 남쪽 바다로 이동하게 된다. 남쪽 바다란 천지를 말한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에는 물을 쳐 올리되, 그 높이가 3천리나 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가 유월의 거센 바람을 안고 날아간다. 아지랑이나 먼지 같은 것은 생명체가 숨을 쉬면서 서로 불어내 보낸 것이다. 하늘이 파란 것은 그 본래의 색깔이 그러한 것일까? 그 멂이란 다함이 없는 것일까? 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역시 그러할 것이리라.

무릇 물이 깊지 않다면, 큰 배를 띄울 수 없을 것이다. 한 잔의 물을 작은 웅덩이에 부어 놓으면 땅에 닿아 버리는 것은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쌓이되 두텁지 않다면, 그 역시 큰 날개를 떠받칠 힘이 없게 된다. 따라서 9만 리 정도는 올라가야 바람이 날개 밑에 그만큼 쌓이게 되어, 그런 뒤에 지고 거리낄 것이 없는 뒤에야 붕은 남쪽으로 날아가게 된다.

매미와 작은 새는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팔짝 뛰어 날아서야 겨우 느릅나무 위에 올라 머물 수 있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데, 무엇 때문에 9 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가는 것일까?"

가까운 교외로 나가는 사람은 세 끼 밥을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히 부를 것이나, 백리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에 양식을 절구에 찧어 준비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동안 양식을 모아 준비해야 한다. 그 두 마리의 작은벌레가 그러한 사실을 어찌알겠는가!

작은 智慧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수명이 짧은 것은 수명이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는 새벽과 밤을 모르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이것들은 수명이 짧은 것들이다. 楚 나라의 남쪽에 명령이라는 거북이 살았는데, 오 백 년을 봄으로 하고 또 오 백 년을 겨울로 삼았다. 上古 時代에 대춘 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은 팔 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 이것들은 수명이 긴 것들이라. 그리고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것으로 특히 유명한데, 세상 사람들이 그와 견주려 한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는 하나의 관직을 맡아볼 만하고, 행동은 한 고을 정도에 합당하며, 덕은 한 임금을 모시기에 알맞고, 능력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 정도인 사람이 그 자신을 보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송영자 같은 인물은 그런 것에 빙그레 웃을 뿐이다. 그는 세상에 들고일어나 그를 칭찬해도 우쭐하지 않았고, 세상이 들고일어나 그를 非難해도 低語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안팎의 구분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었고, 영욕의 경계가 확연히 나뉘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세속의 일에 급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은 뿌리를 내려 제대로 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표표히 잘 돌아다니다 15일 정도가 되면 돌아오곤 했다. 그는 바람에 대해서 급급해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걸어다니는 일은 면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바람이라는 것에 의지해야 했다. 만약 천지의 도를 타고, 육기의 變化를 다스림으로써, 무궁 속에서 노닐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무엇에 의지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至人은 자기 자신의 형체가 없으며, 神人은 현상 세계에 매여 있는 인위적인 행적을 남기지 않고, 聖人은 세속에 연연하는 명성을 추구함이 없는 것이다.

慧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박씨를 주기에 그것을 심었더니 자라서 다섯 섬들이의 열매가 열리더군요. 물을 담자니 무거워서 혼자 들 수가 없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자니 펑퍼짐하고 얕아서 쓸모가 없었습니다. 횡뎅그레 크기만 컸지 아무데도 소용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그것을 부숴 버리고 말았습니다그려."

장자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쓰는 방법이 정말 서툴군요. 송나라에 손 안 트는 데 잘 듣는 약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솜을 물에 빠는 일을 家業으로 삼고 있었더랍니다. 한 나그네가 그 말을 듣고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제의하자, 그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상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우리가 대대로 솜을 빠는 일을 해 오고 있지만, 겨우 몇 푼이나 버는 데 불과했다. 이제 단번에 이 기술을 팔아 백금을 벌 수 있으니 그에게 팔도록 하자.- 나그네는 그 처방을 얻어 가지고 오왕을 설득했습니다. 마침 월나라에서 侵犯하여 왔으므로, 오왕은 그를 장수로 삼아, 겨울철에 월나라 軍事와 수전을 벌여 그들을 크게 패배시켰습니다. 오왕은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봉지를 내리었답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떤 이는 봉지를 받고, 어떤 이는 솜이나 빨게 된 이유는 그것을 쓰는 방법이 달랐던 데 起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대가 다섯 섬들이의 박을 갖고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큰 술통 모양의 배로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울 생각은 않고 그것이 펑퍼짐하여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다는 걱정만 하는 게요? 역시 선생은 앞뒤가 꽉 막히신 양반이구료!"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 있는 곳에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부르더군요. 그 큰 줄기는 혹투성이어서 먹줄을 칠 수도 없고, 가지는 비비 꼬여서 자를 댈 수조차 없기에,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지금 그대의 말도 크기만 했지 아무 소용되는 게 없어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거요."

장자가 말했다."선생은 삵이나 너구리를 보지 못했나요? 몸을 낮게 움츠리고 엎드려 있다가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을 노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다가 결국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리어 죽고 말지오. 그런데 이우라는 큰 소는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아 큰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쥐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대는 큰 나무가 있음에도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는 듯한데, 어째서 그것을 아무 것도 없는 곳, 드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하릴없이 그 곁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에서 노닐다가 드러누워 잠을 잔다거나 하지 않는 거요? 그 나무는 도끼에 찍혀 일찍 죽지도 않을 것이요, 어떤 사물도 그것을 해꼬지하지 않을 것이니,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 어째서 괴로움이 된다는 것인가요?

제 2 편 제물론(齊物論)

큰 智慧를 가진 사람은 너그럽고 여유 있지만, 작은 智慧를 가진 사람은 매사에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는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나, 하찮은 말은 수다스럽다. 잠이 들면 혼백이 꿈을 꾸고, 깨어나면 肉身이 活動을 시작한다. 外界의 사물과 접촉하여 교섭함으로써 마음은 날마다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마음이 바쁜 사람도 있고, 우울한 사람도 있고, 답답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작은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흠칫 놀라게 하나, 큰 두려움은 오히려 망연자실케 한다.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에는 마치 쇠뇌의 줄을 튕기듯 재빠르게 행동한다. 그들이 자기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할 때에는 마치 신에게 맹세하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들이 날로 약해질 때에는 가을과 겨울에 草木이 시들듯 쇠잔해진다. 그들이 늙고 퇴락하게 되는 것은 욕망에 억눌리어 앞뒤로 꽉 막히게 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와진 사람의 마음은 다시 소생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喜怒哀樂과 근심, 걱정, 변덕, 두려움 및 경박함, 방탕, 자만, 허세는 악기의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이 나오고 땅 기운이 응집해 버섯이 돋아나듯, 밤낮으로 번갈아 가며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그러한 감정의 變化가 싹트게 되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말이란 그저 소리를 내는 것만은 아니다. 말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거늘, 그 의미하는 바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면, 그 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存在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새 울음소리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거기에는 區別이 있는 것일까, 구별이 없는 것일까?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고 부정이 있으면 긍정이 있게 된다. 그래서 聖人은 그건 것에 의거하지 않고, 자연의 本性을 觀照할 뿐이다. 곧 자연의 道理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석한 지혜로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이 하나됨을 추구하려 애쓰되, 그것이 본래부터 하나임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일러 朝三暮四라 하거늘, 그렇다면 조삼모사란 무엇인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 먹이로 도토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면 어떻겠느냐?" 그 말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마."라고 말하니까,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 명분이나 실제 내용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기뻐하고 화를 내게 된 것 역시 그와 같은 主觀的인 심리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聖人은 시비의 논쟁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의 均衡 속에 여유 있게 머무는데, 그것을 일러 양행 이라고 한다.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자신이 장주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엄연히 장주였다.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일러 物化라고 한다.

2. 느낀점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무엇을 理想의 경지로 생각해야 하는가하는 소요유(逍遙遊)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 한 제물론(齊物論)이 장자를 읽은 내용 중
머릿속에오래 남는 것 같다.

소요유(逍遙遊)는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 가는대로 거니는 것을 뜻하며 원래의 의미는 아무것에도 拘碍받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소요유(逍遙遊) 이야기는 북쪽 바다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로 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붕이라는 새가 한번 날기 위해서 얼마나 큰 바람이 필요한가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것은 바다기 있으므로 곤이 살 수 있고 하늘이 있으므로 붕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것을 생각게 한다. 큰 배가 뜨자면 큰 물이 있어야 하듯 붕이 날자면 큰 바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큰 것을 깨우치게 하려고 한다. 즉 작은 것과 큰 것을 타일러 큰 智慧를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逍遙游의 주체는 마음으로 무궁한 우조 속에서 마음이 노닐며 날아다닌다는 것으로 정신적
자유의 신비한 체험으로 구애받거나 장애가 없는 침착하고 여유 있는 정신적 자유의 지극한 행복 추구에 있는 것 같다. 노장사상을 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逍遙游는 무궁한 우주 속에서 마음의 여유와 정신적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無碍의 삶을 사는 것이 지향의 목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제 구실을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소요유의 境地인 것 같다. 서로의 존재를 자유롭게 놓아 둠으로서 依存的도 아니요 간섭도 아니하는 오로지 스스로 그렇게 있게 놔두는 그러므로서 자연 그대로의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향한 哲學이다. 자기를 내 세우지 않고 공적을 추구하지 않으며 명예를 따르지 아니하는 삶이야말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경지임을 말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자기를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욕심을 내려 놓으면 평온함이 발치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 經驗이 있을 것이다. 慧子의 너무 큰 바가지의 쓰임과 가죽나무 그늘 이야기에서 모든 物體는 나름의 쓰임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쓰임에 적당한 이용이야 말로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尊重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고 작은 지혜가 큰 지혜를 헤아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게 한다.
결국 逍遙游를 통해 진정한 존재의 자유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져본다.

齊物論은 만물을 하나같이 보는 이론으로 만물의 差別은 무의미하고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를 朝三暮四에 비유했다. 胡蝶之夢을 이야기 하므로서 꿈과 현실의 구별도, 생사도 모두 하나라는 無差別 平等의 상태가 하늘의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즉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절대 자유의 경지에 있을때 절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인식해 본다, 삶은 삶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步行도 아니요 目的이 될 수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어느 것과 비교해서 가치의 優劣을 따지는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말인 즉은 모든 만물이 평등하다는 근저에 깔린 사상이 바탕이 되어있는 것이다. 상대적인 분별을 벗어야만 진정한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이 이야기는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어떻게 고정 관념을 깨고 바라 볼 수가 있는가, 사물의 차별성이 사라져야 존재의 平等이 성립하는 경지에 이를 터인데 그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은 무위의 삶에 哲學的 根據를 지어 주는 모든 사물은 같다는 상대적이 저울질을 배제한 곳에 智慧로운 삶의 길이 있음을 말한다, 인간의 역사나 문화는 언제나 人爲의 産物이다. 齊物論을 읽으면서 모든 事物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價値가 같다면 절대 인간이 자연의 우위에 占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존재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면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함에 이른다. 사물을 다스린다는 생각은 절대 옳은 생각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유롭다는 의미는 새롭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장자가 말한 아무런 걸림이 없는 無碍에 뿌리를 둔 自由는 영원히 理想鄕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순간순간 자연과 함께 呼吸하면서 자연 속에 한 部分을 차지하고 사는 나를 느끼며 깨어 있음만이 스스로의 存在와 또 다른 존재가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순간이야 말로 참 자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인간이 自然人이 될 때 無心의 순간에 머무를 수 있고 그 순간 無爲의 槪念을 떠 올리게 될 것 같다. 인간도 스스로 있고 모든 사물도 스스로 있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이고 그 순리를 거슬리지 않는 삶이야말로 자연을 깨우치는 일이 될 것이다.

騷擾游와 齊物論을 통해 壯子가 말하고자 했던 無爲自然으로의 歸依는 꿈속에 있는 말은 아니다. 他人과는 無關한 나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일, 나로부터 自由로워지는 일은 간단한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나의 남은 삶은 평온하게 그리고 유유자적하는 마음으로 삶을 가꾸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밖의 날씨가 청명함도 감사하고, 베란다에 꽃 한 송이가 곱게 피어 있음도 감사하며, 아침 베란다 밖에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고 그 느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 그 작은 것에서부터 自由의 意味를 되새겨 본다.

장자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짐은 왜일까?
나는 글을 읽고 난 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慾心의 正體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욕심의 정체는 자연스러움을 거슬리는 일임을 깨닫기 때문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의 흐름까지 觀照 할 수 있는 餘裕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흠짓 놀란다, 크고 작은 變化 역시 이루어질 만 한 일이라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自體를 인정하고 바라본다. 나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음을 바라다 볼 용기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워질 것 같다, 그리되고 싶은 것이 所望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을 읽어가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自省의 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省察을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로 한발자국 더 가까이 내 딛을 수 있음은 幸福한 일이다.
내 나이 50이 지나서 自然과 人間이 共存해야 하는 중요함과 인간도 자연의 한 部分일 수밖에 없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自由로워 질 수 있는 길을 향해 지향을 끈을 놓치지 않도록 살펴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담는다.
자유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내 안에 새로운 정의를 내려보고 싶어진다,

“인간의 마지막 탈출구는 자연이다.‘라고 이야기 했던 기형도 시인의 이야기를 떠 올리며 독후감을 마무리 하려 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터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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