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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국보 83호
명 칭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분 류 금동불
수 량 1구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 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 최대의 금동반가상이다. 기본형에 있어서 피차에 다른 점이 없으나, 조형감각과 세부기법에 있어서는 같지 않은 일면을 가지고 있다. 국보(國寶) 제78호 반가상이 직절적(直截的)이고 날카로우며 장식적이고 기교적이라면, 이것은 풍요 원만한 지체(肢體)와 간소 명랑한 표현형식이 오히려 감각적인 육체를 통하여 생동하는 미를 볼 수 있다.
머리에는 조그맣고 둥근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얼굴은 거의 원(圓)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한데, 눈은 가늘고 눈썹은 아름다운 고선(孤線)을 그리며,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길게 늘어진 귓불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상반신은 전라(全裸)의 모습이며, 몸에는 목에 2줄로 표현된 목걸이가 걸려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좌(蓮座)를 밟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어 놓았는데, 왼손으로 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아랫몸을 덮은 하상(下裳)은 매우 얇아서 아랫몸의 표현에 충실하고, 쌍판(雙瓣) 복련(複蓮)의 대좌(臺座)를 덮은 옷주름은 깊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연화대(蓮華臺)가 거의 다 드러나 있는데, 왼쪽으로 규옥(圭玉)을 맨 상의(裳衣)띠가 내려가고 있다. 뒷머리부분에 긴 촉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원래 광배(光背)가 있었던 것 같다. 온몸에는 도금(鍍金)한 위에 칠금(漆金)을 올렸던 듯 금빛이 은은하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에 의한 조사를 한 결과, 머리부분에서 몸통에 걸쳐 4각 막대기의 지주가 박혀 있고, 왼발부분에는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못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불상은 막연히 경주(慶州) 오릉(五陵) 근처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전하나 근거 없는 말이며, 아직 그것이 전해져 오는 유래를 알 수 없다. 다만 조각수법으로 보아 국보(國寶) 제78호 반가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三國) 말기에 가까운 시기의 제작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飛天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비천상 탁본
불국정토에 살며 부처님 찬탄하는 매혹적인 天人
비천은 범종에 많이 장식되지만, 법당 천장, 석등, 부도, 불단, 또는 단청의 별지화(別枝畵) 등에도 나타난다. 비천은 불국(佛國)을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꽃을 뿌려 부처님을 공양 찬탄하는 천인의 일종이다.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며 허공에 떠 있는 비천상은 도교 설화 속의 선녀를 연상케 하지만 비천의 조상은 원래 그렇게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비천은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건달바, 긴나라를 원형으로 한다.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오직 향만을 구하여 몸을 보호하며, 몸에서 향기를 발산하므로 향음신(香音神)으로도 불린다. 부처님이 왕사성 영산도량에서 설법할 때 사부대중과 더불어 네 건달바왕이 참석했는데, 악(樂)건달바, 악음(樂音)건달바, 미(美)건달바, 미음(美音)건달바가 그들이었다. 긴나라도 역시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천신이다. 팔부중의 하나로 불교에 포섭되어 천악신(天樂神), 가악신(歌樂神)으로 불렸으며, 건달바가 속악을 연주하는 것에 비해 법악(法樂)을 연주한다. 이들의 형상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새인지 일정하지 않고,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하거나, 말의 머리에 사람 몸을 하는 등 형태도 일정하지 않다.
2000여 년 전 불교가 인도로부터 동전(東傳)의 길을 따라 중국에 전래될 때 비천도 그 뒤를 따랐다. 불교의 중국 전래의 통로였던 돈황 막고굴 벽에 그려진 비천은 이미 인도신화의 건달바나 긴나라의 괴이한 형상이 아닌 도교의 여선(女仙)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상반신은 배꼽을 드러낸 나체이고, 하반신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속옷 차림이며, 표정은 요염하고, 손동작은 유연하고 섬세하다.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 등 서역의 귀족적 풍모가 가미돼 이런 모습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비천상의 도상적 특징은 양 팔뚝에 표대(飄帶), 또는 박대(博帶)라고 하는 넓고 긴 띠를 걸치고 있다는 점이다. 표대는 머리 위에서 원형을 그리기도 하고 이동하는 반대 방향에서 바람결을 따라 흐르기도 하는데, 이 띠가 허공 부상과 이동의 수단이 된다. 서역과 중국에서 이미 신선가(神仙家)의 매력적인 여선(女仙)의 모습으로 변신한 비천상이 4세기 말경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에 불교와 함께 수입됐다. 불교미술에 수용된 비천상은 약간의 양식적 변천을 거치며 한국적 비천상으로 정착됐다. 초기의 흔적을 고구려의 장천1호고분을 비롯한 몇 개의 무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벽화에 나타난 비천상을 보면, 두광(頭光)이 표현되어 있고, 부드럽게 굴곡진 반나체의 곡선은 우아하며, 원숙하고 세련된 회화기법으로 표현한 천의와 넓은 띠는 상쾌한 상승기운을 느끼게 한다. 비천의 모습은 그침도 걸림도 없어 보인다. 이 벽화는 불국의 정경을 무한히 자유로운 비천의 모습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에서 시작된 한국적 비천 예술의 전통은 상원사동종으로 연결된다. 상원사종은 서기 725년에 제작된 신라 종으로써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이다. 종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수많은 비천상이 종의 표면 곳곳에 새겨져 있어 가히 비천상의 보고(寶庫)라 할만하다. 종복(鐘腹)에 부조된 비천상은 각기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수공후와 생(笙)을 연주하고 있다. 천의 자락은 상승 기류를 타고 위쪽으로 휘날리고, 띠 끝 부분의 인동(忍冬) 장식은 비천의 매력을 더욱 고조시킨다.
인도신화의 천신서 유래
범종.부도 등에 주로 장식…
고구려 장천1호 고분과
상원사 동종.에밀레종의
비천상이 특히 유명
사람들은 보통 종복의 비천상만 보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은데, 종 표면 곳곳에 숨어 있는 비천상도 그냥 지나쳐 볼 것이 아니다. 상대(上帶) 안에 있는 반달 모양의 권역 속에는 피리와 쟁(箏)을 연주하고 있는 2구의 작은 비천상이 종의 둘레를 돌아가며 촘촘히 새겨져 있고, 하대(下帶)에도 많은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각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또한 유곽(乳廓)의 띠 아래 부분과 좌우에도 생(笙)과 요고(腰鼓)를 가진 비천상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 모든 비천상들이 동시에 깨어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한다면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상원사 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성덕대왕신종, 즉 에밀레종이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 에밀레종은 웅건한 기품의 조형미와 함께 ‘이 종소리야말로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들을 수 있는 신기(神器)’라고 쓴 명문,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중하고 맑은 소리로 유명하다.
에밀레종의 비천상은 상원사종과 달리 공양상 형식으로 표현돼 있다. 공양비천을 새긴 것은 성덕대왕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만든 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좌를 중심으로 마주 보고 앉은 비천상은 현대의 디자이너들도 반할만큼 조형미가 뛰어나다. 악기 대신 연꽃을 두 손에 받쳐 든 비천이 연화좌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데, 주위를 하늘에서 내려온 크고 작은 당초 줄기가 감싸고돈다. 대저 화려하면 숭고하지 못하고 숭고하면 화려하지 못한 법이다. 그러나 에밀레종의 비천상은 화려하면서도 숭고하다. 움직임 속에 적막감이 있고 정적 속에 움직임이 감지된다.
수원 용주사 대웅전에는 실제로 허공을 날고 있는 비천상이 있다. 극락조가 날아다니고 서기를 뿜어내는 여의주가 허공을 떠돌고 있는 가운데 두 비천이 부처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광경이 천장에 펼쳐져 있다. 다리 하나를 안으로 굽히고 다른 하나를 뒤로 쭉 뻗은 비천의 자세는 공간 이동을 암시하는 상징적 자태이고, 천의와 박대가 모두 위쪽을 향해 흐르는 모습은 부상(浮上)의 극적인 표현이다. 또한 천의와 박대에 장식된 화려한 꽃들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신앙심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환상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지 꿈의 미술이라 해야 옳을지 모를 용주사 대웅전의 비천상은 크기는 작아도 보는 이의 마음을 불국세계 끌어들이는 강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의 비천상도 뛰어난 아름다움과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납석으로 만든 팔각 화사석(火舍石) 각 면에 무지개 모양의 창을 낸 후, 나머지 공간에 비천상과 용문양을 정교하게 조각했다. 얼굴은 훼손당했으나 율동적인 몸매와 유연히 나부끼는 천의의 표현은 그대로 살아 있어 허공을 떠다니는 비천을 모습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얇고 부드러운 천에 휘감긴 육감적인 몸체는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비천상 외에도 목각으로 된 완주 송광사 대웅전 천장의 비천상, 부산 범어사 대웅전 불단의 비천상, 창녕 관룡사 대웅전 불단의 비천상이 있고, 그림으로는 영덕 장육사 대웅전의 비천상이 볼만하다. 또한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석조부도, 화순 쌍봉사철감선사탑, 여주 고달사지 부도, 양양 진전사지삼층석탑, 수원 용주사 범종 등에서도 비천상을 만나 볼 수 있다.
조형물로서 비천상 자체는 그냥 그렇게 존재할 뿐이며 생명도 활기도 없다. 눈에 보이는 모습 이외에 감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아름다운 음악이 퍼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천의가 휘날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앞에 서서 관조할 때에는 조형물 이상의 그 무엇을 볼 수가 있다. 신심이 돈독하고 비천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비천의 자유롭고 환희에 찬 행동과 허공에 울려 퍼지는 미묘한 음악 소리를 감지할 것이며, 비천이 비행하는 불국정토의 정경을 그려 낼 것이다. 옛 사람들은 관념을 상징화하거나 시각화하고, 조형화된 것으로부터 다시 관념을 이끌어 냈다. 범종의 비천상은 부처님과 불국 정토에 대한 공경심과 환희심의 상징형이자, 불자들로 하여금 공경심과 환희심으로 부처님을 맞이하게 만든다.
허 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096호/ 1월14일자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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