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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19
 

용산참사와 부산 실내사격장 사고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

2009.11.23 11:34 | 사설 및 칼럼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301 주소복사









용산 :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다. 정부가 나설 수 없다.”

부산 : 총리가 유족들에게 무릎꿇고 “심심한 위로”.


용산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해서는 발뺌으로 일관하면서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장례조차 못치르고 있는 유족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지만,

부산 사고에는 총리와 경찰청장까지 내려와 ‘신속히’ 유족들을 달랬다.


외국인 피해자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천 냉동창고 폭발사고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보낸 적 없었던 걸 보면 외국인이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같은 인간의 죽음을 놓고도 국적과 빈부를 가리는 이 정부의 인간관.. 말 문이 막힌다.

언바보 블로그에서







헌재의 바른 판결을 기도하며 1만배를 벌였던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지난 2005년 삼성의 X파일 의혹과 ‘떡값 검사’ 명단 공개 이후의 수사 과정에서 동원됐던 논리가 있다.
‘독수독과론’. 독이 있는 나무가 맺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당시 검찰이 고문이나 불법도청 등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증거는 채택될 수 없다며 들이댄 논리였다.
오히려 검찰은 도청테이프 녹취록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에게 죄를 물었다.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 ‘거리에서 왜 고성방가하느냐’며 잡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논리였다.

그렇지만 절차가 위법이면 그 결과도 인정될 수 없다는, 법 정신을 결국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럼, 절차의 위법은 인정하되, 그 결과 처리된 법의 효력을 인정한 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삼권분립 원칙상 입법부에서 벌어진 위법한 행위를 시정하는 데 헌재가 나설 수 없으며, 국회법 등을 어기기는 했으나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만큼의 증거는 없다고 본 것 같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그 흔한 ‘일사부재의 원칙’과 앞서 예로 든 ‘독수독과론’의 정신을 헌법이 아니라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 즉 절차적 정당성이 민주주의의 핵심 아닌가?


헌재는 표면적으로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웠으나, 청와대와 행정부, 입법부의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사실상 굴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 어떤 활동도 이젠 법적으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고, 국민들 모두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호진의 언바보

'땜방사장' 이병순과 '돌아온 낙하산' 김인규

2009.11.17 06:26 | 사설 및 칼럼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290 주소복사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12일(목) 오후 07:00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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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갑수 기자]
왼쪽부터 강동순 전 KBS 감사,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이병순 현 KBS 사장.
ⓒ 오마이뉴스


"이제 KBS도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지난해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이전의 KBS를 죄악시하는 이 대통령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거듭나다'라는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쓰는 어휘로서, '원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어 새 사람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이 대통령의 말대로 KBS는 거듭났는가? 그의 말대로 KBS는 '원죄'(잃어버린 10년?)를 씻고 새 사람(방송)이 되었는가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는 데 경주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집요했다. 그들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방송사 사장 하나를 집어내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감사를 벌이고 사장을 무고하고 이사를 불법 축출하고 이사회를 변칙 개최하는 등 별의별 희한한 수단을 다 구사했다. 마침내 그것이 효력을 보아 녹록찮게 버티던 사장이 물러나게 된 마당에 대통령으로서 어찌 감회와 희망사항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대통령은 말했을 터이다. 이제 KBS도 거듭나야 한다고.


그로부터 1년, 과연 KBS는 거듭났는가


그때 그의 심중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미 청와대에서는 차기 사장으로 김인규씨를 내정해 놓은 상태였다. 김인규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특보로서 방송전략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구본홍 YTN 사장이 낙하산 인사 시비로 YTN 노조원들로부터 드센 저항을 받고 있던 때였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특보를 지낸 서동구 KBS 사장을 '낙하산 인사'라고 하여 부임 9일 만에 몰아낸 전력도 있었다. 그때 한나라당이 내놓은 논평은 오늘에 비추어 다소 희극적이다.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폭거다. 밀실에서 제청된 측근인사의 임명은 대통령의 언론관은 물론 공영방송의 공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우리 당은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모든 양심세력과 연대, 당력을 모아 강력 투쟁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 2003년 3월 25일)



"서 사장 선임 배경으로 현 정권 실세의 개입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을 정권의 홍위병으로 삼아 포퓰리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반민주적, 시대착오적 폭거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사 사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코드가 맞고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방송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 2003년 3월 26일)


다시 작년으로 논의를 되돌린다. 그때는 무엇보다도 광우병 촛불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인규의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은 8월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긴급히 비밀회동을 한다. 이 자리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에다 나경원 한나라당 정조위원장 그리고 난데없이 김회선 국정원 제2차장까지 참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KBS 사장 자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고위급 인사들을 긴급히 회동하게 만들 정도라면 그것이 누구의 뜻에 의한 것인지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공영방송의 후임 사장 자리를 놓고 음험한 밀실 논의를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중에도 없던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을 궁여지책으로 KBS 사장에 낙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김인규 사장을 앉히는 데에는 실패했다. 요컨대 그들의 KBS 장악 시나리오는 3악장 정도에서 미완으로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병순 사장'도 어차피 그들의 '선택'이었음은 분명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 이병순 사장이 벌인 일들


그들의 '선택'이었던 이병순 사장은 가을개편을 하면서 <미디어포커스>를 <미디어비평>으로, <시사투나잇>을 <시사360>으로 바꾸어 시사성과 비판성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장 취임을 반대한 '사원행동' 관련자들을 징계했다. 또한 KBS는 보신각 제야행사를 중계하면서 새로운 화면 조작 테크닉을 선보이기도 했다.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정관용, 박인규씨 등 역량 있는 시사 전문가들이 마이크를 놓았다. 시사·뉴스 프로그램들의 진행은 거의 아나운서들이 맡아 따분해졌다.


KBS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보도에서는 대다수 국민의 빈축을 샀다.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KBS 뉴스 중계차는 1km 이상 떨어진 들판에서 황소들이 풀을 뜯는 것을 배경으로 중계방송을 하기도 했다. 메인 뉴스인 <뉴스9>에서는 첨예한 현안이었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 관련 기사를 11번째 꼭지로 내보냈는데 그것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 가운데서 비교적 온건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한편 KBS 사장을 희망했던 김인규씨는 '이명박 정부를 위해 KBS 사장직을 포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디지털미디어산업협희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그는 KBS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도 KBS 사장 공모에 지원한 적이 있는 그가 이번 사장 공모에도 다시 지원서를 낸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23일 한국방송 기자협회 송년회에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 등과 함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6일 서울대 <동문회보>와 인터뷰에서 이례적인 발언으로 주변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KBS PD 300명을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방송 개혁 1번이 PD 개혁" "PD들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그는 방송 PD들에 대한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한 것이다. 아무튼 그가 유난히도 PD를 공격한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발언이 누구의 '코드'와 맞는 것인지?


또한 그는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으로서 비정상적인 업무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협회는 창립 때 20억 원, 올 들어 또 20억 원을 추가징수하고도 하반기 들어 수백억 규모의 기금 조성을 위해 통신사들에게 출연금 납부를 요청했으며 통신사들이 난색을 표하자 청와대까지 나서 통신사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전 의원은 김인규 회장이 '차기 KBS 사장 및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정권 실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차기 KBS 사장은 누구일까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8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이런 사람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KBS 사장 공모에 응모했을까? <조선일보>는 11일 'KBS 사장 누가?'에서 "현재 KBS 안팎에서는 이병순 현 KBS 사장과 강동순 전 KBS 감사, 권혁부 전 KBS 이사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고 전하면서도 "마지막 변수는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의 거취라고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KBS 사장은 형식상 이사회와 사추위가 인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10일 마감된 차기 사장 공모에는 이병순 현 한국방송 사장,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 등 1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추위는 13~14일 이틀 동안 공모자들에 대한 서류심사를 진행한다. 이사회는 사추위에서 압축한 5명의 후보를 받아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20일 대통령에게 사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제청한다.


다시 말하지만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KBS 사장 인선을 앞두고 이동관 홍보수석을 통해 이례적인 훈수를 두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첫째 'KBS 이사회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최적임자를 뽑아주기 바란다', 둘째 '신임사장 선임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나 부적절한 논란이 없도록 선임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셋째 '신임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KBS 위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을 갖추고,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미래 방송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첫째는 의례적인 발언일 뿐이다. 둘째는 작년 사장 선임 때 있었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니면 선임 이후 불거질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셋째 발언으로 보인다. 이 발언은 신임사장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의 위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미 1년 동안 재임한 이병순 현 사장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 다음 말,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미래 방송 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위원장은 금년 초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9년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 축사에서, "올해는 미디어 빅뱅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구시대의 유물인 매체간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창의적 아이디어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 미디어산업의 체질을 강화시켜 갈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김인규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도 참석했는데,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KBS 사장 훈수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차기 KBS 사장이 누구인지 추정이 가능해진다.


방송 파국만 초래하는 방송장악 시나리오


많은 언론들은 이병순 사장의 유임을 점치기도 하지만 이 사장은 이미 '사원행동'과 노조 등 KBS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배척을 받고 있다. 정연주 사장에 대해서도 반대한 바 있는 KBS 노조는 "KBS 내부구성원 76.9%가 연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지난 1년간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해내지 못했으며, 무리한 연봉계약직 해고와 제작비 삭감, 비판 프로그램 축소 등을 통해 제작진의 방송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을 없애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동순 전 감사에 대해서는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언론을 어떻게 장악할지 논의한 이른바 '녹취록 파문'의 핵심 당사자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이며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을 조언해주는 '정치 브로커'에 가까운 발언들과 지역 차별 발언, 젊은 판사들에 대한 비하발언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들은 '김인규 안'에도  '낙하산 인사 불가'라는 명목으로 반대하고 있다.


결국 누가 KBS 사장이 되더라도 아주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KBS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태는 매우 비관적이다. 이것은 공영방송의 파행과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불행한 것은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KBS의 공영방송체제는 완벽하게 붕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불도저 권력을 앞세워 방송장악을 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심판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KBS 사장 공모자들에 대한 서류심사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2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무효 소송에서 법원이 정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모든 것은 방송장악에 병적으로 집착한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언제부터 친일행위가 애국이었나?

2009.11.12 11:03 | 사설 및 칼럼 | 고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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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09년 11월 12일(목) 오전 09:02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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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수논객 조갑제·류근일의 '친일옹호론'

 [프레시안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수구진영의 대응이 사납다. 특히 주목할 것은 수구진영의 이념적 교사라 할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와 류근일(조선일보 논설위원)의 반응이다. 조갑제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親日派와 親北派 비교"라는 글에서, 류근일은 뉴데일리에 기고한 "친일사전 만든 이유"라는 글에서 각각 <친일인명사전>발간을 비판하고 있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자신들의 글에서 친일행위를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일제에 의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마당에 식민지의 대중과 지식인들이 생계를 위해서건, 출세를 위해서건 체제에 순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를 탓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는 것이 조갑제와 류근일의 주장이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과 식민통치를 불행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가혹함으로 묘사하면서, 그런 가혹한 운명에 내던져진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그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넌지시 설파하고 있다.

조갑제는 이를 "日帝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抗日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의 兩者擇一이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류근일 역시 "경술국치(國恥) 이후 조선은 망하고 없었다.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 조선왕조의 황제라는 작자도, 그 잘난 조선선비라는 작자들도 없었다. 이 황무지에서 조선 엘리트와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 엘리트는 일본제국의 근대적인 교육 과정에 들어가 세계의 문물을 배우면서, 동시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반면에 대중은 일제의 근대적인 제도를 통해 수리조합원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며 신분상승을 꾀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체념론의 한 극단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소극적으로 변호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일제하에서 친일행위를 통해 습득한 근대적 지식과 기술이 건국의 기초가 됐다는 적극적 친일옹호론을 펼친다. "朴正熙, 申鉉碻 같은 분들이 日帝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북한군의 남침에 대항하여 조국을 지켜낸 한국군 지휘관들은 거의가 일본-만주군 장교로서 전술을 배웠던 이들이다)"라는 조갑제의 주장과 "일제 때 동경대학, 경성대학에서 공부한 지식 엘리트를 빼면, 일제 때 경성전기, 발전소, 사법부, 행정부, 방직공장, 수리조합, 은행, 경찰, 세무서, 세관, 학교,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몽땅 빼면 신생 대한민국을 대체 누가 어떻게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류근일의 주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조갑제와 류근일은 친일행위를 애국으로 둔갑시키는 논리적 비약을 서슴없이 시도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친일행위를 애국행위의 범주 안에 넣는다면 독립운동과 친일행위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조갑제와 류근일은 이처럼 인류가 누대로 쌓아온 보편적 상식과 양식을 무참히 파괴하는 가치의 전도를 감행하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 신현확 같은 자들이 일제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장차 건국될 조국을 위해) 실력을 길렀는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는지를 조갑제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조갑제나 류근일이 친일행위 자체(이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친일행위는 적극적인 친일에 한정되는 것이지만, 적극적인 친일행위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에 대해서 긍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이 그럴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갑제와 류근일은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로 인한 식민통치를 불행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전제한 후 친일행위를 한 자들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대한민국의 건국 및 경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친일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친일행위에 대한 조갑제와 류근일의 생각을 거칠게 요약하면 아무리 잘못되고 불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 체제와 질서가 성립된 이후에는 그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목적이나 과정이야 어쨌건 간에 결과만 좋으면 다 용서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자학(自虐)사관과 결과만능주의의 기묘한 결합인 셈이다.

조갑제와 류근일의 관점으로 보면 일제의 조선강점, 친일매국행위, 군사쿠데타, 불균형성장전략, 유신, 광주학살 등이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강자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는 언제나 정당하며 그와 같은 질서가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만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갑제와 류근일에게 세상은 우승열패의 원칙이 작동하는 정글이기에 강자의 논리가 항상 관철될 수밖에 없고,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목표는 물질적 풍요 밖에 없는 것이다. 정의(正義)나 공정함, 연대성, 박애, 평화 같은 가치들은 조갑제와 류근일에게는 이루지 못할 이상에 불과하거나 쓸모없는 가치에 불과하다.

조갑제와 류근일로 대표되는 한국의 수구진영이 왜 그토록 친일잔재 청산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가가 이제 분명해지는 느낌이다. '친일'이야말로 이들이 사수해야 할 가치들-우승열패, 결과만능, 물질제일 등-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ons car@pressian.com )

민주주의와 다수의 소수약탈/전용덕

2009.11.03 08:50 | 사설 및 칼럼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262 주소복사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이 국회에서 재의결됐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즉각 특검법 재의결을 '다수에 의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한 비난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주의는 다수결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다수결 원리는 그 자체가 몇 가지 내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잘 지적했듯이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또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이다.

대의민주주의의 다른 문제점은 주인·대리인 문제이다. 그것은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 회기를 비정상적으로 연장하는 경우이다.

특검법에서 소수는 대통령과 검찰과 특검을 반대하는 국민이고 다수는 특검을 찬성하는 국민이다. 비리와 불법을 조사하는 기관인 검찰의 권한이 특정 사건에서만 정지되고 특검을 반대하는 국민도 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 전체 관점에서 보면 소수가 잃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 또, 검찰 조사의 후유증을 고려한다면 검찰이 특검을 거부하고 검찰 조사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국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또, 절반이 넘는 국민은 국회가 특검을 재의결하면 된다고도 했다. 국민의 이러한 의견은 특검에서 주인·대리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의 특검법 재의결에 대한 비난은 국회의원,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근거 없이 훼손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관련법에서 사정은 달라진다. 쌀 시장 개방을 예로 들어보자. 농민은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단결력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다수이고 비농민 도시 근로자는 수적으로는 다수이지만 법안 통과 등에 있어서는 소수이다. 다수의 도시 출신 국회의원이 시장 보호를 찬성하는 경우는 농민의 단결력이나 심지어 폭력성이 가히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검과 달리, 쌀 시장을 해외 경쟁자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소수가 잃는 것은 엄청나다. 쌀의 국내 가격은 국제 가격보다 5∼6배나 비싸다. 쌀 시장 보호만으로는 불충분하여 가격 규제를 하고, 그 결과 쌀이 창고에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는 보호무역 정책이, 높은 가격으로 쌀을 겨우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을 약탈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국제가격으로 쌀을 구입할 수 있다면 남는 돈으로 다른 많은 것을 더 살 수 있다. 일부 쌀은 남북 화해라는 명목으로 북한 군인을 배불리는 데 악용된 것처럼 보인다. 쌀 시장 보호는 다른 농산물의 보호를 부르고 그 농산물을 생산하는 외국의 공산품 수입 저하를 초래한다. 즉,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에 있어서 주인·대리인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도시 근로자의 얼마가 쌀 시장 보호를 원하는지, 그리하여 도시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의 뜻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가 한 번도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유도해야 한다.

정치에서와 달리 경제 관련법은 거의 대부분이 다수가 소수를 약탈한다. 물론 법이나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되고 시행되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합법’이라는 매우 그럴 듯한 탈을 쓰고 있다.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여서는 안됨’과 같은 규정이나 정책만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을 막는다. 즉, 그러한 규정만이 명실 공히 국민의 재산을 보호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이자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하이에크는 '자유’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가 될 때만이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을 그만두고 자본주의를 보호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민주주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 관련법이나 정책에서야말로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 또는 폭력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그 길만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용덕, 2003-12-0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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