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발간된 국내 명저의 시대적 의미를 짚고 그 저술에 얽힌 뒷이야기를 톺아봄으로써 화제를 낳았던 한국일보의 문화기획 '우리시대의 명저 50' 시리즈(2007년 1~12월 연재)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우리시대의 명저 50>(생각의나무 발행ㆍ사진)이 다루고 있는 50종의 저작은 역사, 철학, 사상,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한국 근대사의 내재적 발전가능성을 학문적으로 입증한 <조선후기 농업사연구>(김용섭), 한국과학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 통사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등은 역사 연구에 거대한 자장을 드리운 저작들이다.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해방전후사의 인식>(박현채 등 공저) 등은 1970~80년대 군부정권 하에서 진보적 지식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책들이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이윤기),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이주헌) 등은 지식대중화에 기여한 책으로 선정됐다.
각 명저의 출간 배경과 의미,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독자들의 반응, 장점과 한계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책에 얽힌 사연, 후학이 바라보는 저자 이야기 등 부가 정보도 풍부하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시대의 중추를 정확히 건드리며 한 획을 그은 소수의, 아니 극소수의 책들이 있었기에 책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고 이 책 출간의 의의를 말했다.
원래 이쁜놈은 웬만큼 실수를 해도 이뻐 보이고, 미운놈은 걸음걸이까지도 트집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긴 하지만 1만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불세출의 지도자 이명박이 벌이고 있는 이벤트 같기도 하고 애들 장난 같기도 한 최근 행보를 보노라면 트집이 아닌 한마디를 안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청와대는 엊그제 이명박이 7. 1일자로 공무원 50만여명에게 올 상반기 노고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1일 공무원들에게 음성메시지를 발송했고, 그에 앞서 마치 들을 준비 하고 있으라는 듯 친절하게도 안내 문자를 먼저 보냈다고 한다.
메시지는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며, “그런데 서민생활은 아직도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후반기에는 행정의 중심을 서민생활 향상에 두고 조금만 더 노력해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난 설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라는데, 그런 아이디어는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물론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이 공무원들에게 그런 메시지 보내는 것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공무원들 중에는 지난 설 때 이명박의 메시지를 받고나서 그 번호를 스팸으로 등록해 놓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좋아하기는커녕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메시지를 받은 공무원들이 좋아하고 안좋아하고를 떠나, 우리가 놀라는 것은 청와대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준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 '서민 챙기기'라면서 이명박이 골목시장을 방문해 어묵 사먹고 나서 상인들에게 '왜 인터넷 거래를 안하느냐, 내가 노점상 할 때는 찍소리도 못했는데 지금은 (대통령에게 장사가 안돼 힘들다는 말도 하고) 세상 참 좋아졌다'라고 어이없는 일장연설만 하고 끝낸 적이 있다. 대책 하나 세워주지도 않으면서 그따위 쑈는 왜 하느냐는 비난여론이 비등했음에도 또다시 찬사는커녕 역효과나 날만한 일을 생각없이 벌인 것이다.
아무리 공무원들이 국가의 공복(公僕)으로 불린다고는 하나, 업무상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대통령의 의견이나 생각까지 휴대폰 메시지로 받아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너나없이 존경하거나 인기있는 대통령이라면 혹 모를까, 정권 지지율 20% 안팎에 걸핏하면 사회적 갈등과 민심이반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보내는 메시지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용도 그렇다. 정말로 서민들 위하고 싶으면 실제 정책을 정부 부처에서 수립해 내려보내거나 구체적으로 지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행정부의 역할이고 대통령의 역할이다. 그런데 문자나 음성으로 공무원들에게 '행정의 중심을 서민생활 향상에 두고 노력해달라'고 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실효성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 그 정도 메시지 보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게 문제라고 본다.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려니와, 별 의미도 실효도 없는 짓을 이벤트 벌이듯이 하는 청와대의 발상 자체도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안그래도 이명박은 입으로는 퍽이나 서민 챙기고 위하는 것처럼 하지만, 집권 후 실제 정책은 정반대로 해옴으로써 지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이나 행동은 거의 없이 저런 쑈같은 행위나 하고 있으니 어찌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민과의 소통에 신경쓰겠다더니 일단 공무원들과 먼저 저렇게 소통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게 이 정권의, 그리고 이명박식 소통법이라면 참 별나고 희한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정작 수많은 국민들의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봇물같은 시국선언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들은척 만척 하고 있다. 떠들테면 떠들어라. 오불관언,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투다. 오만한 건지 미련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 문자나 음성 메시지 보내는 데도 예산이 쓰일 것이다. 많고 적고를 떠나 참으로 예산 낭비가 아닌가 한다. 작년에는 걸핏하면 뉴라이트 등 지지세력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만찬을 베푸는 바람에 세금 낸 것 아깝다는 생각 들게 하더니, 올들어서는 저런 짓을 두번째나 하고 있으니 실로 황당하다는 느낌이다.
저렇게 생각없는 짓을 하는 것 보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저것 말고도 어이없거나 쓸데없는 짓 하는 게 훨씬 더 많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메시지를 받은 50여만 공무원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은 사람도 얼마 되지 않겠지만, 설령 다 들었다 하더라도 생각있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쓰잘데기 없는 짓인가, 공무원 하다보니 대통령으로부터 스팸 메시지까지 다 받는구나" 라면서 말이다...
▲ 대선출마선언 당시의 노무현-권양숙 부부 노무현은 '정의가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옆은 이기명 후원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시 태어나면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지난 5월 29일 고 노무현 16대 대통령 영결식에서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이 눈물로 읊은 추도사의 한 대목이다.
누리꾼 반달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이런 댓글을 <오마이뉴스>에 남겼다.
"처음으로 후회했습니다. 대통령으로 뽑지 말 걸…."
노무현,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을까?
인간 노무현의 비극적 최후는,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인 노무현은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을까? 그것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고 나서 가장 높은 산을 한번 정복하고 싶다는 본능적 목표였나, 아니면 그만의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나?
나는 2007년 9월 2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 앉았을 때 이렇게 물었다.
- 정치인으로서 내가 대통령을 꼭 해봐야 되겠다, 이렇게 작심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국회의원이 더 편할 것 같은데.
"내가 (2001년 12월에)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시사저널>이나 <한겨레 21> 같은 곳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선호하는 대선주자 1위로 노무현이 나오곤 했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답이 뜻밖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이인제씨 때문이죠. 이인제씨가 2002년 대선 전에 우리 민주당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였죠. 내가 그때부터 '이거 큰일 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는 이회창씨 쪽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내 상대는 이인제씨였어요."
그러니까 이인제씨(현 18대 국회의원)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가 출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왜 그토록 이인제씨를 의식했던 것일까?
"그때 아마 내가 노여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이인제씨의 행태를 보면서) 이게 정치냐, 이대로 가도 되냐, 그렇게 노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노무현과 이인제 2002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두 사람이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정치인 노무현이 그때 가지고 있었던 분노는 '반칙'에 대한 것이었다.
"경선불복 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우리 당으로 와서 여기서 또 후보하겠다고 하는데… 그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닿지 않는 현상, 그리고 그 현상에 영합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과 세력을 보면서 이게 뭐냐, 이게 정치냐, 이대로 가도 되냐고 분노했지요."
"이인제 이기기 위해 하다 보니 대통령 됐다"
이인제씨는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나와서 당내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 졌다. 하지만 그는 경선불복을 선언하고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되어 3등을 했다. 이후 2002년 대선판이 무르익자 이번에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민주당으로 입당했다. 당시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정치인이었던 김민석씨 등 386정치인 일부는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상태였다. 정치인 노무현은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맞섰다'.
"내가 이인제와 끝까지 맞섰던 것은 그 사람의 정책이나 기능이나 역량이나 이런 것이 나보다 훨씬 더 처진다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칙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3당합당 때 YS를 따라간 것이나, 경선불복한 것, 그리고 다시 보따리 싸고 당을 나와서 이전해 온 것, 이런 것들이 정치윤리상으로는 하나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치인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기기 위하여 전력투구"했다. 노사모 바람이 미풍에서 열풍으로 바뀔 때 그는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도전하는 것 자체에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었으나 "이인제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갔다고 했다.
"노사모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회원들이 자기 식구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더라고요. 그러니 부담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요. '야 이게 진짜,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가 버릴 수도 없고,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누구하고 지고 이기고 문제가 아니고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부담이 팍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이인제씨 때문에 끝까지 갔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때를 돌아보면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웃기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이인제씨를 이기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대통령이 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 (웃음) 이인제씨가 역사적 기여를 많이 했네요?
"역설적으로 많이 한 셈이죠."
지도자가 기회주의자가 되면 국민도 닮는다
그럼 정치인 노무현은 왜 그토록 이인제씨를 싫어했을까? 그것은 단순한 라이벌 게임이 아니었다. 그가 분노한 것은 이인제씨의 행로 자체가 아니라 반칙을 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었다. 또 지도자가 그렇게 만들어졌을 경우 그것이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이 대목에서 지도자론을 길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지도자를 얘기할 때 너무 기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도자 또는 지배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의 윤리의식, 가치형성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게 돼 있습니다. 그 윤리와 가치의 핵심이 신뢰입니다, 신뢰."
대통령 노무현은 지도자의 행위가 어떻게 그 사회의 신뢰수준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했다.
"이 신뢰가 굉장히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행동에 따라서 그 사회 신뢰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약속이 무력화되기 때문에 기능적인 기대도 다 배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정치에서 서로 대화가 잘 안 되고 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도 한몫하지만 신뢰의 문제가 굉장히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인의 기회주의가 그 신뢰 파괴의 주범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신뢰를 파괴하는 결정적 계기가 기회주의입니다. 정치는 대의를 말하는 직업인데, 입으로는 대의를 말하면서 그 행동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쫓아가고 있을 때, 그런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일 때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죠."
그 결과는? 기회주의적 지도자는 기회주의적 국민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신뢰를 잃은 지도자가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죠. 더욱이 그 사회 사람들의 가치의식과 윤리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다 이제 힘센 자에게 줄을 서고, 힘센 자 편에 가담하고 속이려고 하고, 연고를 가지려고 하고…전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대통령 노무현은 "그래서 보수적인 지도자냐, 진보적인 지도자냐를 따지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그것이 이인제씨의 정책이나 역량을 떠나 내가 그에게 끝까지 맞섰던 이유"라고 했다. 지도자가 원칙을 지켜서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신념이었다.
"내가 그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내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3당합당 때 YS와 결별하고 그동안 겪었던 인생이 하도 험악했기 때문에, 그 험악한 가운데서도 내 스스로 원칙을 유지해 왔던 그 개인사적인 경험 때문에 이런 신념에 집착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2007년 대선공간으로 이동해보자. 우리는 현직 대통령 노무현이 유독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상대는 손학규씨였다. 한나라당에서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에게 승산이 없자 민주당으로 옮겨 대선 예비후보에 출마한 손학규. 정치인 노무현의 눈에는 그가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그에게 2007년의 손학규는 2002년의 이인제였던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손학규의 선택과 함께 그를 따르는 "기회주의적 현상"을 비판했다.
"옛날에 YS의 3당합당을 그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지금 손학규 뒤에 가 줄 서 있는 거 보면 그거하고 이거하고 뭐가 다릅니까? 나는 그런 것을 쳐다보고 이제 속이 타는 거지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다시 보는 대선출마 연설, 비겁한 교훈의 시대는 가라
원칙을 중시하던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반칙을 싫어했다.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반칙하는 자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반칙한 이인제를 패배시키기 위해 2002년 대선에 출마를 결심한다.
노무현은 2001년 12월 1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2002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출마선언 연설의 핵심은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였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습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였습니다.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였습니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뤄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비겁한 교훈'을 당당한 교훈으로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 노무현은 스스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고졸 출신 변호사로 정계에 입문했던 비주류 정치인이, 어려움 속에서도 원칙을 지켰던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름으로써, 정계 최고의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노무현은 왜 죽은 링컨을 만난 것일까
정의가 성공하는 사회. 정치인 노무현이 그것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는 그가 미국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을 열애한 이유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대선출마선언 한 달 전인 2001년 11월 펴낸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의 서문 '왜, 다시, 링컨과 만나야 하는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링컨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정치에 입문한 뒤였다. 기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나의 답은 다른 이들도 흔히 꼽는 것처럼 김구(金九) 선생이었다. 김구 선생은 생을 마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지조를 지킨 지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벗어나기 힘든 운명처럼 다가온 분단에 끝까지 맞선 분이 김구 선생 아닌가. 누구나 존경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됐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 ―. "
정의가 패배하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김구 대신 다른 인물을 찾아 나섰다.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 성공한 김구를 찾아나섰다. 원칙을 지켰으나 거듭 패배자가 된 당시의 그로서는 절박한 것이었다.
노무현이 링컨에 반하게 된 것은 2000년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날 밤이었다. 당시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부르짖고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했다. 그가 개표의 밤에 패배를 예감하고 있을 때 우연히 접한 책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연설들>(월간조선, 2000년 4월호 별책단행본)을 통해 링컨을 만난다. 다시 서문을 보자.
"정치현실에서 나는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나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1992년 총선에서도,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19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당에서도 힘없는 비주류였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물었다.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이 자문의 틈을 자연스레 비집고 올라온 것이 링컨이었다."
▲ 링컨에게 배웠다 2001년12월10일 대선출마선언식 후 지지자와 기념촬영. 뒤의 구호는 링컨의 업적을 압축표현한 것으로 노무현의 링컨정신 계승을 말해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한국의 링컨을 고대하다
링컨은 노무현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원칙을 지키지만 거듭 패배하는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에게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걸었던 긴 패배의 길은 위안이 되었다. 그는 링컨 패배의 역사를 서문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링컨이 능력 있고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실패와 약점도 많았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스물두 살 때 처음 일리노이 주의원에 도전했으나 패배했고, 재수해서 주의원이 되었다. 서른다섯 살에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할 때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고, 그 2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846년에 비로소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임기를 마친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1860년까지 11년 동안의 정치 도전은 모두 실패로 점철된다. 1849년 테일러 대통령에게 국토관리청장직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고, 1855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낙선했다. 1856년 부통령 후보에 낙선했고, 대통령에 당선되기 2년 전에는 또다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런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고, 노예해방이라는 정의를 위해 싸워 이겼으며, 남북전쟁 후에는 갈라졌던 국가를 통합하기 위해 관용의 정신으로 패자를 감싸 안았다. 그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꼽히곤 한다. 역사적 평가에서도 승리한 것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패배를 딛고 정의의 개념을 내세워 승리한 링컨을 통해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은 누군가? 동서고금을 막론해 인류가 부정할 수 없는 정의의 개념을 내세워 승리하고, 바른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천 년이 지나도 부정하기 힘든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일군 사람. 그래서 인류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사람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두에서 성공한 사람이 링컨이었다. '정의는 항상 패배한다'는 것이 가당찮은 역설에 지나지 않도록 만들면서 진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깨끗이 씻어준 본보기는 김구 선생이 아니라 링컨이었다. 나는 훌륭한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링컨에게서 얻는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 정의가 성공하는 사회 만들자"
결론적으로 노무현은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한국의 링컨'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해방 이후의 한국사는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여러 가지 왜곡된 타협을 강요해왔다. 이상이 현실에 굴복하고 현실이 이상을 구박하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정치인 노무현은 스스로 그 대안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였다.
"나는 감히 말한다. '역경 속에서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링컨이 없었다면 미국의 정치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을 창출한 사람. 그가 곧 링컨이다. 그는 옳은 길을 갔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 길을 가 성공했기에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옳지 못한 길을 가야 하고, 정직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그릇된 관념이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의식, 이러한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한 차원 높은 사회발전도, 역사발전도 불가능하다. 이제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자존심이 활짝 피는 사회,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자 정치를 하는 이유이다."
그런 "간절한 소망"을 가진 정치인 노무현은 이 책의 서문을 쓴지 6년만에 결국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을 닮고자 했던 그는 공교롭게도 링컨처럼 16대 대통령이었다. 닮은 것은 더 있다. 두 사람은 모두 1)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2) 최상급학교(대학)를 다니지 못했고 3)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4) 몇 차례씩 선거에서 낙선했으며 5) 재임 중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최후까지 닮았다. 한국과 미국의 16대 대통령은 모두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링컨은 암살 당했으며,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링컨도 사후 100년에야 후한 평가 받아"
그렇다면 역사적 평가는? <노무현이 만난 링컨>의 에필로그 제목은 '성공한 대통령의 길'이다. 그 첫 대목에서 노무현은 이렇게 적었다.
"역사적 인물 링컨에 대해 미국인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링컨이 대통령직에 있던 당시, 언론은 종종 링컨을 '독재자, 폭군' 등으로 불렀다. 링컨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에서 발행되던 신문조차도 그를 '미국의 공직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가장 간계하고 가장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로 욕을 했다. 이러한 비난 섞인 평가는 물론 링컨의 반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아무튼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결코 호의적인 것이 못되었다. 링컨의 사후 100년이 지난 뒤에야 좀 더 나은 평가가 내려졌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은 사후 100년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인물연구 노무현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불과 8년 전에 그토록 "간절한 소망"으로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를 토해냈던 그가,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이 되어 임기를 다 채운 그가, 퇴임 직전까지 '시민사회 재조직'을 구상했고 퇴임 후에는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운영했던 그가, 2009년 봄에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정치 하지 마라"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2009년 5월 23일 새벽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 올랐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노래했던 그와 "정치 하지 마라"는 글을 쓰고야말았던 인간 노무현. 45미터 낭떠러지로 몸을 던질 때 그는 '정의가 성공하는 사회'는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까지 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지금 오지 않았지만 100년 후에라도 올 수 있으리라는 한 조각 희망을 지녔을까?
출처 : "이인제 이기려 뛰다 보니 대통령 됐다
링컨처럼 '정의는 성공한다' 보여주고파" - 오마이뉴스
▲ 노란 풍선 위에 쓴 편지 지난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 서울시청 근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노란 풍선에 편지를 쓴 여대생 신용선씨. 풍선에는 자신의 이름을 '20살 대한민국 희망'이라 썼다.
ⓒ 오연호
1. 노무현에게 노란 풍선 바친 스무 살 여대생에게
기억하시나요? 바보 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날, 우린 시청역 근처에서 만났지요. 신희망씨. 스무 살, 대학 1학년생이라고 했었죠?
내가 희망씨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기 전까지, 나는 당신의 모습을 몇 분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희망씨는 노란 풍선을 힘껏 불고 있었죠. '내 마음속의 대통령'이라는 글자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풍선이었죠. 나는 젊은 대학생이 그곳에 무엇을 불어넣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슬픔일까, 분노일까, 희망일까? 그런데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20살 대한민국 희망'
나는 카메라를 꺼내 노란 풍선과 함께 당신을 담았습니다.
2. 오늘 하루만 기자이지 말자 다짐했건만
희망씨, 나는 직업기자입니다. 바보 노무현을 보내는 날, 집을 나서면서 다짐했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기자가 되지 말자. 누군가에게 묻지도 말고 기록하지도 말자. 지난 20여 년간 8번에 걸쳐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했던 정치인 노무현이 영원히 떠나는 날, 오늘은 한 명의 추모객이 되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희망씨 때문에 그 다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마이뉴스> 기자임을 밝히고 당신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습니다. 노란 풍선에 적은 글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글 밑에 적은 이름 "20살 대한민국 희망"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희망씨. 이름을 신용선씨라고 밝혔지만, 나는 이 글에서 당신이 풍선에 적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만약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희망씨가 노란 풍선에 그런 글귀를 적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이러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희망씨, 나랑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 좀 해봅시다. 나는 요즘 각성하는 시민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각성하는 시민이 조직되면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각성하는 시민이 없다면 내겐 희망이 없다"
▲ 청와대 관저에서 인터뷰 중인 당시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희망씨, 내가 '각성하는 시민'을 그리워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한 날은 2007년 8월 31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임기를 6개월 남겨둔 때입니다. 그래도 현직은 현직인데 참 이상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 1인자가 '각성하는 시민이 왜 중요한가'를 거듭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닙니다, 최정점도 아닙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권력입니다. 각성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민권력입니다."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을 붙여준다면 <민주주의론> 정도 되겠습니다. 그는 그 공부를 바탕으로 "퇴임하고 나서 언젠가는 정치학 교과서를 하나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노무현의 민주주의론은 주로 권력과 시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그의 표현으로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한다.'
무슨 뜻일까요? 제대로 뽑고 제대로 감시하자는 겁니다. 권력을 위임하기 위해 선거를 할 때도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선출된 권력이 시민들과 민주적 소통을 하지 않고 '지배'를 시도할 때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도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배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직접 정치권력에 참여하거나, 정치권력 자체를 장악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단, 전제를 분명히 달았습니다. 혁명이 아닌 선거, 투표로 해야 한다고요.
- 지금 대통령을 하고 계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조금은 느닷없이 보이긴 합니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방법은 시민참여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국가와 역사의 방향을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뽑힌 지도자가 결정합니다.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지도자가 결정되는 것이지, 지도자가 스스로 투표하진 않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투표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의 각성, 이것이 궁극적으로 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의 각성. 노 대통령은 그것이 있기 때문에 "어떤 정치가든 시민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시민들이 각성하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관계를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언론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서 올바른 언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노 대통령은 "믿습니다"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제겐 아무 길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굳게 믿고, 그래서 시민참여·시민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겁니다."
신희망씨, 정말 이상한 대통령이죠? 현직 대통령이 "각성하는 시민을 믿는다, 그 믿음이 없으면 내겐 아무 희망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이 권력을 제어하는, 권력의 불법이나 권력의 남용을 제어하는 데 집중돼 있었죠. 이제는 대안까지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야말로 주권자로서, 권력의 주체세력으로서 시민을 양성해 나가야 되는 것이죠."
그만큼 대통령 노무현은 달랐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모든 권력의 1인자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1인자일뿐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희망씨, 대한민국에는 정치권력 못지않은 경제권력이 있습니다, 언론권력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체험을 통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정치권력만 바꿔서는 안 된다, 경제권력·언론권력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진짜 실세, 시민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4. "시민운동의 막강한 후원자 되겠다"
희망씨, 그날 참으로 많은 사람이 모였지요? 오후 1시, 영결식을 마친 바보 노무현이 경복궁에서 노란 풍선 물결인 세종로를 통해 서울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수십만의 추모 인파 때문에 운구차는 더디고 더뎠습니다.
희망씨, 당신은 그날 그곳에 모인 이들의 눈빛에서 무엇을 읽었나요? '각성하는 시민'을 만나고 싶어 했던 정치인 노무현이 만약 수십만 추모 인파를 보고 즉석연설을 한다면 무엇을 말했을까요?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나는 이렇게 여쭤봤습니다.
- 그렇다면 대통령님은 퇴임 후에도 노사모를 함께 하든, 다른 조직을 만들든, 시민운동 비슷한 것을 계속하시겠네요, 퇴임 이후에도?
"예. 어떻든 후원은 할 생각입니다. 직접 나서는 게 흉하다고 사람들이 '하지 마라' 하면 못할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막강한 후원자가 될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새로운 시민사회를 조직"해보고자 했습니다.
"지금부터 이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재조직해 보자, 지난날 노사모라는 것이 역사의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그것을 다시 되살려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한번 조직해 보자."
그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정치권력을 얼마간 좀 가지고 있었으니까, 돈 있는 사람도 좀 친해 놓고, 또 그중에 나하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런 사람들 좀 모아 가지고 물적 토대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이제 이 작업들을 뜻있는 사람들이 좀 계속하게, 참여정부의 인적 자원들과 전문가들도 좀 포진시키고…."
노 대통령은 특히 신흥경제세력과 전략적 연대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장경제의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뒷거래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관치경제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성공한 새로운 시장의 주류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더불어서 새롭게, 어떤 새로운 세력을 한번 묶어보려는 모색도 하고요."
그는 종부세 내는 것을 기꺼이 찬성하는 양심적 경제인이 의외로 많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신사 계급이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경제인 중에는) 관용의 정신과 타협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내가 만났을 때 '종부세 냅니까?', 이러면 '아, 내죠. 낼 건 내야죠' 뭐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대통령 노무현은 그들과 의미 있는 연대를 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제 필요한 것이 우선 정치학이죠. 제대로 된 정치 전략을 만들기 위해 정치 메커니즘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민주주의와 지도자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이런 것들이 우리한테 필요한 지식들이죠."
그는 "정치권력은 기본적으로 정보·공권력·돈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시민사회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대항매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권력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시민들이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놓아도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어떤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도 그것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이 민주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민주주의 선거 제도·정당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그것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걸 제대로 하게 하는 일이 지금부터의 과제입니다."
대통령의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행동 속에 있어요, 궁극적으로 거기 있는 것이지, 다른 메커니즘으로서는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어요."
그는 분명 "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현직 대통령인데도 그 스스로 시민과 함께 "우리"가 되어 그 무엇에 대항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5. "정치권력(대통령)은 만능도, 최정점도 아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열린 2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희망씨, 바보 노무현은 그런 대통령이었습니다. 오후 2시경, 노제를 마치고 운구차가 서울광장에서 빠져나갈 때 시인 도종환씨의 선창으로 시민들은 합창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희망씨, 당신의 목소리도 그 합창에 섞여 있었겠지요?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사랑합니다", "기억할 것입니다"를 외치면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노란 비행기를 던질 때, 나는 다시 그날의 인터뷰를 생각했습니다.
- 지금 말씀하신 구상을 들어보니, 퇴임 후에도 굉장히 젊게 사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 할 수단이 없지 뭐. 이론상 이렇다는 거지."
- 아니, 이론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계시니, 잠잠히 계실 수 없으실 것 같은데요.
"정치인, 보통의 정치인들은 (정치) 권력을 정점으로 사고합니다. 그리고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죠, 보통의 정치인들은."
대통령 노무현은 "나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내가 다른 정치인과 다른 점은 권력을 최정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고,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권력은 시민들의 머릿속에 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 이제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임기 말에도 계속 도전하시는지.
"정치권력이 만능이 아닌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최정점으로 생각하고 정치권력 지상주의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거기(대통령) 끝나면 그만두어야지' 그러는데, 정치권력이 최종 종점이 아니라는 것이죠."
희망씨, 의외지요? 그러니까 정치인 노무현의 최종목표는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퇴임을 6개월 앞둔 그에게는, 대통령 자리보다 더 높은 마지막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 결국 권력을 떠나는 게 아니라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시는 거다, 시민사회 속으로?
"예."
대통령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 부분입니다".
2007년 8월 31일, 5시간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그것이었습니다.
6. 노무현은 왜 MB의 정치보복을 받았나
희망씨. 대통령 노무현은 정치권력 1인자에서 퇴임하면서 진정한 권력 속으로,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각성하는 시민 없이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언론권력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5년 동안 체험했기 때문에 시민사회 속에서 진정한 권력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씨, 그땐 난 몰랐습니다. 그 인터뷰를 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그 꿈이 결국 그의 비극적 최후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바보 노무현의 죽음은 직접적으로는 검찰수사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와 심층인터뷰를 했던 나에겐, 그가 더 큰 권력인 시민사회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겐, 검찰수사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충돌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자와 정치권력을 내려놓고 시민권력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의 한판 싸움이었습니다. 정치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현직 대통령 이명박과 시민권력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권력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싸움이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시민 속으로 들어가려는 전직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퇴임해서도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을 통해 시민과 진한 대화를 나누는 전직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과 격의 없는 만남을 즐거워했기에 결국은 봉하마을을 관광명소로 만들어버린 전직 대통령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 vs. 전직 대통령-시민' 싸움이었습니다. 왜 장례기간 내내 시민분향소와 서울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둘러쌌을까요? 죽은 노무현과 살아있는 시민을 분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연장전의 한 장면입니다.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인 경찰차벽, 그것 이전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긴 물밑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7. 노무현은 어디로? 희망나무가 답하다
▲ 종이학으로 만든 희망나무 지난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양소에 놓인 희망나무. 시민들이 종이학 수백 개를 접어 만들었다.
ⓒ 오연호
희망씨, 그것은 그렇게 큰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날 눈물 뿌렸던 사람들, 노란 풍선 불어 세종로에 매달았던 사람들, 그의 운구차에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사람들, "기억하겠습니다" 합창했던 사람들, 그들은 진정 노무현의 꿈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까요?
희망씨, 그날 나는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에서 특별한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시민들이 접은 수백 개의 종이학으로 만들어진 나무. 그 나무는 잎 하나하나가 모두 종이학이었습니다. 그 나무의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희망나무'였습니다.
희망나무 밑에는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8절지 크기의 종이에 적힌 그 편지의 수신자는 바보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은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당신은 우리 가슴속에
천 번 만 번을 접어도 모자랄
희망을 뿌려놓고 가셨습니다.
당신을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묻겠습니다.
희망씨,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곳, 그가 진정한 권력이라고 이름 지었던, 현직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 시민들의 가슴 속으로 떠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