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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다수의 소수약탈/전용덕

2009.11.03 08:50 | 사설 및 칼럼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262 주소복사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이 국회에서 재의결됐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즉각 특검법 재의결을 '다수에 의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한 비난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주의는 다수결 원리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다수결 원리는 그 자체가 몇 가지 내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잘 지적했듯이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또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이다.

대의민주주의의 다른 문제점은 주인·대리인 문제이다. 그것은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 회기를 비정상적으로 연장하는 경우이다.

특검법에서 소수는 대통령과 검찰과 특검을 반대하는 국민이고 다수는 특검을 찬성하는 국민이다. 비리와 불법을 조사하는 기관인 검찰의 권한이 특정 사건에서만 정지되고 특검을 반대하는 국민도 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 전체 관점에서 보면 소수가 잃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 또, 검찰 조사의 후유증을 고려한다면 검찰이 특검을 거부하고 검찰 조사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국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또, 절반이 넘는 국민은 국회가 특검을 재의결하면 된다고도 했다. 국민의 이러한 의견은 특검에서 주인·대리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의 특검법 재의결에 대한 비난은 국회의원,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근거 없이 훼손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관련법에서 사정은 달라진다. 쌀 시장 개방을 예로 들어보자. 농민은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단결력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다수이고 비농민 도시 근로자는 수적으로는 다수이지만 법안 통과 등에 있어서는 소수이다. 다수의 도시 출신 국회의원이 시장 보호를 찬성하는 경우는 농민의 단결력이나 심지어 폭력성이 가히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검과 달리, 쌀 시장을 해외 경쟁자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소수가 잃는 것은 엄청나다. 쌀의 국내 가격은 국제 가격보다 5∼6배나 비싸다. 쌀 시장 보호만으로는 불충분하여 가격 규제를 하고, 그 결과 쌀이 창고에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는 보호무역 정책이, 높은 가격으로 쌀을 겨우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을 약탈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국제가격으로 쌀을 구입할 수 있다면 남는 돈으로 다른 많은 것을 더 살 수 있다. 일부 쌀은 남북 화해라는 명목으로 북한 군인을 배불리는 데 악용된 것처럼 보인다. 쌀 시장 보호는 다른 농산물의 보호를 부르고 그 농산물을 생산하는 외국의 공산품 수입 저하를 초래한다. 즉,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에 있어서 주인·대리인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도시 근로자의 얼마가 쌀 시장 보호를 원하는지, 그리하여 도시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의 뜻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가 한 번도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유도해야 한다.

정치에서와 달리 경제 관련법은 거의 대부분이 다수가 소수를 약탈한다. 물론 법이나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되고 시행되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합법’이라는 매우 그럴 듯한 탈을 쓰고 있다.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여서는 안됨’과 같은 규정이나 정책만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을 막는다. 즉, 그러한 규정만이 명실 공히 국민의 재산을 보호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이자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하이에크는 '자유’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가 될 때만이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을 그만두고 자본주의를 보호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민주주의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 관련법이나 정책에서야말로 다수에 의한 소수의 약탈, 또는 폭력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그 길만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용덕, 2003-12-0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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