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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무공에게 기도했던 일 해군 장교

2009.08.31 07:21 | 생생 역사 | 고은네

http://kr.blog.yahoo.com/han1592/985163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울프 독-


충무공에게 기도했던 일 해군 장교.




일본 해군  연합함대
---------------------------------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국가 개혁을 하고 청일 전젱에서 거인국
중국을 패배시키고 세계의 강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동안
깊은 잠을 자다가 겨우 깨어난 조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난세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무렵,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대해서 썼던 책 중에 악의와 경멸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적잖게 있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간사하고 불결하며 미개하다는
비하의 글을 노골적으로 썼다.


구한말에 한국을 여행하거나 생활한 서구인들이 쓴 책들에서
개화하지 못한 한국의 대해서 부정적으로 쓴 책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일합방이 되고 조선도 일본의 일부가 되자 이런
공공연한 표현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본능화된 그 비하의 시각은 
일본 출판 매체에
아직도 가끔 나타난다.


많은 독자분들이 일본 게이오 대학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 諭吉]
라는 일본 메이지 시절 일본 계몽 사상가를
잘 아실 것이다.


일본 일만원권에 인쇄된 후쿠사와 유키치
---------------------------------------------


이 사람은 서구 사상과 인권주의룰 받아들이고 서구식 민주주의도
주창해서 제법 일본의 루소같은 명성을 얻었고 과거 한국에도
그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학생시절 이미 그가 비록 탈아론[脫亞論]이라는
헛소리 가득했던
책의 저자임을 알았지만 일본의 선각자로
인식하고 오랫동안
괜찮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제인가 그가 쓴 자서전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고
이 인간에 대한
환상을 거두어 버렸다.


자서전에서 어떤 인간의 작태를

“ 비열한 조선인처럼--”

이라고 말로 비방하는 구절이다.


일본 개화의 사상적 계몽가이고 인격자라는 자가 일개 개인도
아니고
이웃 나라 민족 전체를, 다른 책도 아니고 자기
자서전에서 이렇게 
싸잡아서 모욕할 정도니, 일반 일본인들의
자존 망대한 우월감과 
조선인 경멸감은 그 수준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것이다.


그런 시대 일본에서. 특히 일본 해군 장교들이 조선의 충무공
이순신 제독께 품은 존경심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대한 해협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멸했던
도오고 헤이하치로[東鄕 平八浪]원수가 해전의 대 승리후
어느 연회석에서 그를 찬양하는 앞 연사의 말에 답사로
했다는,

“칭찬의 말씀은 고맙지만, 사실 넬슨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닙니다. 정말로 군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제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순신 정도겠지요. 이순신에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만큼도
못한 존재입니다.“라고 한 말은 확대
재생산을 여러 번
되풀이 되어 인터넷에도 돌아 다니고 있다.


도오고 헤이하치로 원수
-----------------------------

일본 해군에서 그 무렵 충무공 이순신 제독에 대한 존경의
분위기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하는 한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郞]가 40대에 썼던
대작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30여전부터 여러 번역판이 나와서 지금은
어느 큰 도서관에도 볼 수가 있는 흔한 책이다.


아키야마[秋山] 성씨를 쓰는
두 형제가 육군 기병여단장과
해군 연합함대 작전 참모로
러일전쟁을 겪는 과정을
이야기 한 것인데
책의 크라이막스는
마지막 부분의 러 일 함대가  
쓰시마 해협에서 벌인
해전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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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아키야마 요시후루 소장
-기병 여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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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아키야마 사네유키 소좌
-연합함대 작전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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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이지만 이 함대가 진해만을 떠나갈 때 수뢰정의
한 정장이
이순신 제독의 영령에 빌었다고 기록한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느 자료에
있었는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수뢰정 제 41호 정장[艇長]이었던
미즈노 히로노리[水野 廣德]라는
사람이 글을 잘 써서 전후인
다이쇼 3년[大正 - 1914년]에 ‘ 어느 해군
중좌‘라는
익명으로 전영<戰影>이라는 책을 썼고 그보다 앞서
메이지 44년
(1911년)에 ‘이 일전[一戰]’
이라는 저자명을 명기한
책을 낸바 있다.
이 두 권의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아서 찾아 보았으나 없었다.“


내가 시바 료타로의 책에서 윗 글을 읽었던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번역된 '언덕위의 구름' 의 한국 출판명은 국운[國運]이었고
원모[元某]교수가 번역했던 책으로서
하드 커버의 고급 본이었다.

없는 돈에 이 책 한질을 사느라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야했던
일이 머리에 떠 오른다.


지금 보아도 그간 여러 사람이 번역해서
시중에 내놓은
염가본의 어느 책보다도 번역이 잘 된 책이었다.


나는 이 한국 최초의 ‘언덕위의 구름’에서 윗 대목을
읽고 굉장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일본의 미노베인지 와다나베인지
하는 일본 대학교
교수가 19세기 말에 썼던 ‘사무라이’라는
책을 읽고 그 황당무계한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아연해서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었다.


이 책은 영문으로 쓰여져 구미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었었다.
이 책에는 한반도에 한국이라는 독립적인 나라나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없었다.

그저 일본의 눈치를 보며 기대 사는 식민지 비슷한
부족국가 수준의 미개국뿐이 없었다.


감히 반항 하려는 시도를 하면 일본이 군대를 보내 철추를
가하기도 한 비겁한 민족이 사는 천한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쓰시마 해전의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 함교.
앞의 키작은 사람이 도오고 사령관.
참모들의 시선이 좌측 전방을 향한것을 보면
유명한 U 회두 직전인 듯하다.
-------------------------------------------


그 뒤 내가 읽을 수 있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글들은

글머리에서 말 한대로 한국과 한국민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글들로
가득했었다.


내 생각에 콩고를 지배했던 벨기에나 보르네오를 지배했던
영국도 식민지 백성을 이토록 미개민족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기분에 있던 나에게 국가의 운명을 건 해전을 앞두고
출동하면서
일본의 증오스러운 적장이었을 충무공의 영에
기도했다는
일본 해군 장교가 있었다는 사실은 경이스럽게만
느껴졌다.
 

침몰하는 러시아 함대
-----------------------------------


그러나 역사에 대해서 일본 어느 사학자보다도 방대한
전문지식의 소유자라는 시바 료타로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어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 방면 자료 습득도 불가능했던 내 처지에 알아볼 수있는 가능성은 전무했다.

청년시절 이 책에서 받은 감동과 함께 뭉게 구름처럼
일어났던 호기심은
나의 장년시절인 2000년대까지도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2000년대 초, 그 나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이순신 제독
을 숭배하던 일본 해군 장교의 이름을 알 행운의 기회가 드디어
나에게 찾아왔다.


러시아 로제스트벤스키 중장- 해전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송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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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씨는 분게이 슌슈[文藝春秋]이던가, 하여튼 일본
유수의
월간지에 ‘가도(街道)를 가다’라는 역사를 위주로
인기 기행문을 장기간 연재하고 있었다.


한국 또는 한국인에 관한 연재물도 있었다.
왜란 때 일본 사쓰마로 끌려간 도예인 심 수관을 규우슈로
찾아가
취재 한 것이었다.

이외에 한국의 제주도에 방문해서 썼던 기행물도 있어서
두 책은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었다.

나는 두 권을 다 읽었지만 한반도에 관해서 쓴 시바 료타로씨의
저서가 
하나 더 있는 줄은 몰랐었다.


몇 년 전 국립도서관에 잠깐 들린 김에 우연히
시바 료타로씨가 썼던 또 다른
‘가도를 가다’ 시리즈 물로서
아주 연재 초기인 1978년 그가 한국에 와서
남한 일대를
여행하면서 쓴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한나라 기행-韓(から)の紀行-' ,
한나라 당이 생기기 훨씬 전으로서 제목과
한나라 당은 관계가 없다.


한나라는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를 지칭할 때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앞서 소개했던 신 유한의 해유록에서도 일본인들이 조선이라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 책에 시바 료타로가 부산의 이 순신 제독 동상을 방문한
대목이 있었다.

바로 여기서 그는 내가 긴 세월 동안 알고 싶어 하던
이 순신 제독 팬이었던 해군 장교의 이름을 발견했다.


"당시의 수뢰사령[水雷司令]인 가와다 쓰도무[川田 功]소좌가
남긴
글에 의하면 마침내 적함 발견이라는 신호에 따라 함대가
출동할 때
이순신 제독의 영(靈)에 빌었다고 쓰여 있다."


시바 료타로 씨가 소개하는 가와다 소좌가 충무공에 바치는
헌사는
문자 그대로 극찬 바로 그것이었다.


"마땅히 세계 제일의 해장인 조선의 이 순신을 연상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賞讚)의
대상이 아님이 없다.“


시바 료타로 씨는 여기에 더하여 이 순신 제독을 향한 존경의
일념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외로 첨언하였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 해군 사관이 3백년전의 적장 이 순신에
  대해서
얼마나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이로서
  알 수 있으리라.

  그 뒤로도 이 전통은 이어졌으며 내가 알기에도 해군 대장을
  지낸
마사키 이꾸도라[正木 生虎] 야마야 타닌[山屋 他人]등도
  그렇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잊어버리고 있던 이순신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더 강한 경애와 관심을 계속 가져왔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몇 주 전 손댔던 이 글을 이쯤에서 끝맺음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포스팅 직전 도서관에 갖다가 이 시바 료타로 씨의
“언덕위의 구름“을 문득 봐야 할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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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바 료타로의 책을 보면 만주의 육상전에서 1군 사령관
구로키 다메모토[黑木 爲楨]
대장이 적으로부터 이탈하는 작전을
수행중 배속된 독일 관전 무관
호프만 대위가 의견 구신 하는
이야기가 몇 줄 나온다.


나중에 기회가 되어서 이 호프만
대위가 10년 뒤
독일군과
러시아 군 사이에 벌어진
탄넨부르그 대 회전에서
사령관
힌덴부르그 원수와 참모장
루덴도르프 중장을 보좌해서
러시아의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대군을 궤멸시킨 작전을 수립하고
시행했던 작전의 귀신 호프만 중령임을 알게 되었었다

-----------------------------------
구로키 다메모토 대장
 -전쟁의 달인 으로서 러시아
사령관 쿠로파트킨이 제일
                            두려워하던 일본 지휘관이었다.
                               --------------------------


문득 이 주제를 한번 조사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도서관에서 본 다른 작가 번역의 이 언덕위의
구름에
내가 초판본에서 보지 못했던 바로 위 가와다 쓰도무
이야기가
미즈노 중좌의 이야기와 함께 덧붙여 있는 것이 아닌가?!


덧붙인 글은

--또 한권, 위의 미즈노 히노노리와 매우 닮은 문체의 책으로----
라는 소개를 하고 위의 가와다의 글을 인용했다.


원래의 본문은 이 글을 쓴 사람은 딱 한명으로
지목하고 있고 해당 글이 미즈노의 책에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도
요 근래 나온 '언덕위의 구름'책에는
미즈노도 충무공의 영에 기도했고
가와다도 영에 기도했다는
식의 글이 더 해져서 앞 뒤가 맞지 않는 문맥부터가 읽기에
어색했다.


추측해본즉,
충무공의 영에 기도했다는 대목에서 누군지 찾을 수가 없다는
대목에 대한 답이 ‘한 나라 기행’에 있다는 것을 지적당하자
출판사에서 슬그머니 추가한듯하다.


그리고 수뢰 사령이라는 가와다의 계급을 소좌에서
이 당시에는
소위였다고 깎아 놓았다.


다른 일본 자료로는 그가 해전때 계급이 대위라고 했다.
수뢰 사령이라는 것이 어뢰 발사 담당 장교의 직책 같은데
소위 계급는
무리 인 듯하다.


가와다는 글 솜씨가 있어서 소좌로 퇴역하고 전문 작가가 되었다.
1926년에 발간한 그의 추리 소설이 있는 것을 보면 상당기간
작가로서
활약한듯하다.


가와다가 진해만을 빠져 나오며 출격하는 함상에서 이 순신
제독의
영에 기도했다는 이야기는 과잉 해석한 소설같은
이야기가 댓글등으로
인터넷에 난무한다.


자주 말하여지는 것이 도오고가 충무공을 존경하고 그의 전략을
공부해서
개발한 정자[丁字]전법을 대한 해협 해전에서 구사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중 도오고가 러일 함대를 영격하기 전 진혼제를 올렸다는
글을 쓴 무책임한 일본인도 있었고 이 말이 와전되어서 출동 전
도오고 제독이 한산도 충무공 사당에 가서 참배했다는
기막힌 이야기도 역시 한국 인터넷에 돌아 다닌다.


쓰시마 해협의 해전 상보를 보면 1905년 5월 27일 아침,  0505,
시나노 마루는 규우슈 서남방 해역에서 발틱 함대를
발견하고 적함 발견의 무전을 쳤다.

진해만의 연합함대는 출동 준비와 추가 정보를 기다리며
대기하다가 적 함대에 접근했던 제 3전대의 보고로 발틱함대의
항로와 규모가 정확히 파악된 0635시, 대본영에 적함 발견과
출격 보고의
무전을 보내고  장거리 출격에 대비해서 갑판에
쌓아둔 열량 좋은 영국
수입탄을 모두 바다에
버리면서 미리 배치된 순서대로 신속히
출항을 했을 따름이다.




쓰시마 해전도
--------------------------

이는 그 지난해에 황해에서 있었던 여순 함대를 교전 중에
다가온
야간 어두움으로 다 격침 시키지 못하고 여순항으로
도주하게 만든 쓴 경험을
살려서 적 함대를 빠른 시간에
접촉하여 해가 있는 주간 동안의
교전 시간을 가능한 한
길게 가지기 위하여서 였다.


이렇게 서둘렀지만 교전은 오후 두 시에 시작해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오전에 전투 현장을 울릉도 근해까지 연장한후 
끝이 났다.


적 함대 출현의 긴박한 상황에서 왕복에 한나절이나 걸리는
한산도 사당 참배는 물론이고
진혼제 같은 것을 가질
한가로운 여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충무공은 우리의 영웅이고 도오고는 일본인의 영웅일 뿐이다.


그들 해군 장교들이 우리의 영웅 충무공을 존경했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가 대일본인 우월의식을 즐기기 위해서
무리하게 이를 이용해서 일화를 자작 해내는 것도 일본인들의
조소를 받을지도 모르는 짓이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이고 냉정한 객관적 태도로 봐야 될
사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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