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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성당 회장님의 눈물
피정에서 첫 시간 나눈 주제는 [추억]이었다. '본당' 하면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더듬어 보라고 하였다. 그리움 비슷한 감정으로, 또는 사건이 있어서 아주 선명하게 연결되는 이야기든지 본당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는 예전 부산에서 만났던 성자 같으신 미국신부님에 관한 추억을 말 했는데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다. 작은 시골 성당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장님 큰 주먹으로 마구 눈물 닦던 모습이 떠올라서..........
지난 2월 말경 친구들과 속초로 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마침 친구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서 일요일 숙소 가까운 작은 성당을 찾아 미사를 보았다. 마당은 너르고 건물은 조립식 건축으로 아담하였다. 들어가며 주보를 받는데 4명에게 2장을 주었다. 갑자기 사람이 많이 와서 주보가 모자란다고 양해를 구하며 나누어 주는데 인쇄된 글이 아니고 프린트로 복사한 주보였다. 그 유인물을 보며 '아! 가난한 성당이구나.' 느낌이 왔다. 헌금 내역을 보면서 정말 가난한 성당이고 어떻게 성당 살림을 꾸려갈까 하는 주제넘은 걱정도 들었다. 난 평소 여기저기 잘 다녀 여행지 성당에서 미사를 본다. 그리고 주보에서 헌금내역을 보며 그 성당의 대충 규모를 짐작하고 하였다.
미사를 시작하며 신부님은 두 분 수녀님을 보내는 송별식을 미사 후에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송별식 이야기 앞에 "사람들 인연은 만나면 헤어지고 또 만나고 하는데, 1년 만에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수녀님을 보내서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말씀을 하였다. 복사도 없이 중년의 자매님이 전례진행을 하고 제단을 오르내리며 신부님 보좌도 하고 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두 분 수녀님 앞으로 나오고, 먼저 사목회장님의 송별사가 있었다. 회장님은 마이크 잡고 말씀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늘의 이 자리는 다 제가 못나고 능력이 없어서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못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두 분 수녀님, 어디 계시던지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기만 바랍니다." 간단한 인사말이었는데 울며 목이 메어 멈추고, 흐르는 눈물 주먹으로 훔치느라 멈추었다.
투박한 형제님이 연세도 드신 분이 꺽꺽 우시며 말씀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흐느끼고, 두 분 수녀님은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 성당 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친구들과 나도 울었다. 자세한 내용도 모르며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눈물이 흘렀다.
간단한 식이 끝나고 신부님은 외지에서 온 신자들을 위하여 인지 본당의 경제적 사정으로 수녀님들 보낸다는 해명을 한 말씀 하셨다. 그리고 당신 혼자 본당을 꾸려가야 하니 교우 분들의 협조를 바란다고 마무리 말씀이 있었다.
말없이 나오며 괜히 조금은 죄송하고 미안했다. 친구들도 붉어진 눈시울을 서로 피하며 아무 말 없었다. 나오며 마당에서 자매님들이 판매하고 있는 물건만 짐이 되는데도 이것저것 샀다. 다시마와 까만 콩과 멸치 등을........... 조금이라도 가난한 성당에 보탬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가끔 그 작은 성당의 회장님 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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