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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나
[우리는 한 가족] 셋째 시간의 주제이다. 본당 교우가 진하게 한 가족으로 느껴지고 다가왔던 체험을 찾아보란다.
마리안나를 처음 만난 곳은 17, 8년 전쯤 우리 집 앞에서다. 떡을 해서 들고 가는 젊은 여성과 마주쳤는데 성당에서 보던 사람 같았다. 인사를 나누니 윗동네 영세민 아파트에 이사 온 전입교우였다. 반가워서 집으로 같이 들어와 차 한 잔 나누다 그녀의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직장 다니다가 느닷없이 쓰러지고 투석 받아야 사는 신부전증 환자가 됐다고 한다. 어떤 예감이나 전조증세도 없이 별안간 쓰러지며 하루 만에 중환자가 되어서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으며 14년째 버텨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 당시 부산에서는 제일 오랜 투석환자로서 생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긴 소매를 걷어 올리며 팔뚝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주사 맞은 자리가 굳은살이 되고 첩첩이 쌓여 울퉁불퉁 불그죽죽 온통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 했고, 주체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도 없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투석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고달픈 투병기를 들었다. 기운을 쓸 수 없어서 일도 할 수 없고, 발병하고 소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한 달에 투석비가 100만 원 이상 들어서 엄마가 집까지 팔며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골살림도 거덜 났단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절망으로 헤맬 무렵, 한 분이 같은 신부전증 투석환자인 남편과 결혼을 주선하여서 메리놀 병원에서 영세 받고 혼배미사도 올리고 새살림을 시작하였단다. 영세민 독립가정이 되어서 무겁던 병원비 부담도 덜어지고, 작은 아파트와 생활비도 나라에서 주고, 두 사람이 의지하고 사니 하루하루가 너무 고맙고 행복하단다. 비록 두 사람 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으며 지탱하지만........
새 인생을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남편과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새롭게 얻은 행복이 고마워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일은 힘에 닿은 대로 찾아서 한단다. 그래서 구역모임도 노인과 환자 가정이 많은 영세민 아파트에서 자주 자기 집에서 하며, 배급 나오는 쌀로 노인들 좋아하는 떡을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뒤에도 가끔 떡을 해가며 우리 집에 들러서 떡도 나누어 주고 커피도 마시고 가고 하였다. 언제나 큰 눈으로 활짝 웃으며 이야기도 재미나게 잘 하였다.
어느 날 구역모임에서 소식을 들었다. 마리안나에게 수술조건이 맞는 콩팥 기증자가 나섰는데 수술비가 없어서 포기한다는...... 본인과 기증자 수술이 합하여 약 2000 만원이 드는데 준비할 수가 없단다. 모두 안타까워 하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마리안나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맞는 기증자를 만나는 일만도 기적인데 돈이 없다고 그 기회를 놓치다니 아니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는 버겁고, 무슨 수를 찾아야 했다. 본당교우들이 힘을 합하여 이 기적을 잡고 마리안나를 살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당에서 외면하면 안 된다 싶었다.
하루를 생각하고 그 이튿날 마리안나를 찾아갔다. 며칠동안의 고민으로 풀이 푹 죽어 있었다. 수술비를 본당에서 반을 부담하면, 시집과 친정 두 집안에서 형제들이 나서서 나머지를 준비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집안에서 된다고 하면 내가 나서서 본당에 말하겠다고 하였다. 마리안나는 본당에서 그래만 준다면 나머지는 형제들이 해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다.
먼저 수녀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신부님께 사연을 말씀드리고 본당에서 수술비 마련 성금을 걷자고 하였다. 신부님 말씀으로 그 다음주에 바로 1000만원은 모아졌다. 교우들 모두 마리안나에게 수술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한 가족의 마음이었을 거다. 그런데 돈이 다 마련되고 나니 기증자 쪽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가족이 동의를 거부해서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때는 잠시 또 절망이었지만 다시 2년 쯤 뒤에 새로운 기증자가 나왔다. 이때는 마련해 두었던 돈으로 수술비 걱정 없이 바로 수술을 하였다. 다른 사람의 콩팥이 마리안나에게 완전하게 자리 잡기까지는 생각보다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무균실과 중환자실, 입원실과 집에서 오랜 기간 힘들게 적응하는 마리안나를 교우들이 늘 찾아보며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다. 본당 교우들은 정말 한 가족이 되어주었다. 마리안나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소변보는 날 밤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꿈만 같아서 밤새 화장실에 들락거렸다고 하였다.
회복하여 다시 성당에 나오고 구역일도 하고 레지오도 하고 모든 교우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며 파트타임 일도 다니며 열심히 살고 있다.
마리안나의 남편 안드레아씨는 본인 몸이 수술할 수 없는 상태라서 계속 투석을 받으며 지내다 여러 해 전에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며 목이 메어 말씀을 중간 중간 끊어서 하던 신부님 모습이 떠오른다. 안드레아씨는 평소에 말없이 씩 웃기만 하며 본당의 궂은일은 도맡아 하였다. 힘든 병자 같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늘 인사를 해주어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다.
마리안나 가족에게 본당 교우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가족으로 서로 도우며 한 시기를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간추려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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