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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영어)동네
개설일 : 2004/06/19
 

풀섭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몸을 낮춥니다.
그동안 꽃의 화려함에 길들여져서 겨울들판의 마른 풀들이
씨앗을 안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지 못했습니다.
기다림의 씨앗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씨앗이 떨어질 한 조각 땅을 가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연일 들려오는 소식은 불길하여 산중에 앉아있어도 戰火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어둠을 밝혔던 촛불은 심하게 흔들리고 설마 했던 일들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며 400 여년 전,
남편을 사별한 후 아내가 쓴 소중한 편지 한통을 올려봅니다.
민간에서 처음 씌여진 우리말 편지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이며 제게는 우리말을
사랑하게 된 연유가 되었고 거리에서 서름들을 견디게한 글이었기에 문득 옮겨 놓습니다.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세히 이르소서.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자네 항상 날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고 누구를 의지하여 어찌살라하고 다 버리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가졌던가
매양 자네더러 내 이르되 함께 누워 새겨본 것은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여겨 사랑할까
남들도 우리 같은가하여 자네더러 일렀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히고 아무래도 내 살수 없으니 수이 자네한데 가고자하니 날 데려가소서.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찾을 수 없으니 이 마음 설운 뜻이 가이없으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려하는가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이르소서
내 꿈에 이 보신말 자세히 듣고져 하여 이리 썼으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이르소서
자네 내 밴 자식 낳거든 보고 사륄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구를 아바 하라 하시는가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 하늘아래 또 있을까
자내는 한갓 그리 가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 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두번째 글 역시 같은 무덤에서 나온 글로 죽은이의 형이 동생을 보내며 쓴 만시로
애트한 형제애가 묻어나는 글입니다.

너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지가
이제 서른 한 해가 되었구나
이렇게 갑자기 네가 세상을 떠나다니
어찌 이리 급하게 간단 말인가
땅을 치니 그저 망망하기만 하고
하늘에 호소해도 대답이 없다
외롭게 나만 홀로 남겨두고
너는 저 세상으로 가서 누구와 벗할는지
네가 남기고 간 어린 자식은
내가 살아 있으니 보살필 수 있겠지
내 바라는 것은 어서 하늘로 오르는 것
전생 현생 후생의 삼생은 어찌 빠르지 않겠는가
또한 내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만수하시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네
형이 정신없이 곡하며 쓴다.





하여 2009.01.01  00:25

400년 전에 쓴 글이요? 무슨 바탕에다 무엇으로 썼나요?
어둠을 밝혔던 촛불은 심하게 흔들리고 설마 했던 일들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글 적은 산 중에 앉아계신분은 뉘신가요?

어쩌면 옛날에 사신 이런 순수한 분들이 계실까요.
부부도 형제도 어찌 저리 사랑이 흘렀을까요.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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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네 2009.01.01  00:45

지율 스님입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렸던......

하여님, 새해 큰 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kbs를 통해 저 젊고 아름다운 부부의 슬픈 이야기를 보며 울었습니다.
조선 초기는 여성들도 아들과 똑같이 유산도 받고, 부모 제사도 아들이 못지낼 형편이면 시집 간 딸이 지내고...남녀가 대등하였습니다.
율곡도 외가에서 출생하고 외가에서 성장했듯....처가 살이도 많이 했지요. 저 젊은 부부도 처가에서 살다가 남편이 갑작스런 병으로 사망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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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네 2009.01.01  00:58

400년이 지나 묘를 정리하다가 저 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백년이 지났지만 별 어려움 없이 부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송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것을 외제에 비해 비천하고 천박하게 여기지만 몇자 안되는 자음과 모음으로, 씨줄과 날줄로 엮듯이 저렇게 아름다운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글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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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네 2009.01.01  01:26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아내가 남편에게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 이채로웠던 이 서신은
한지(가로 58.5cm, 세로34cm)에 한글 고어체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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