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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19
 


우리 구역 구역장님이 지난주에 개성에 다녀왔다.
본당 신부님께서 소공동체를 이끌며 수고가 많았다고 구역장님들 모시고 보통은 성지 순례를 가는데 특별하게 개성을 갔다. 일부러 가기 힘든 개성을 택해서 가신 뜻은 신부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언가 꼭 보여주고 싶은 강열한 의지가 있었으리라 싶다.

구역장님은 연세가 높고 건강이 여행을 말리는데도 꼭 다녀오고 싶다며 우리에게도 기도를 부탁하고, 열심히 준비하여서 잘 다녀오셨다. 그리고 구역모임에 나와서 다녀온 소감을 말씀하였다. 개성에서 당신 눈으로 본 그 곳의 생활 모습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전해주며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다.

마음이 아프단 그 말씀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왔다.
꼭 3년 전, 나도 금강산을 다녀오고 며칠을 마음이 아파서 속앓이를 했었다. 내 고향 평북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북녘 땅 한 자락이고, 안내원이라든지 주민이든지 북녘 사람들 직접 만나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며 갔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어서 금강산은 목란(북한의 국화)도 피고 라일락도 피어서 향기까지 더하여 맞아주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경이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다. 금강산 가며 도로 연변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깃발을 들고 차려 부동자세로 지키고 있던 젊은 군인들의 얼굴이 절경 앞에서 더 어른거렸다.

젊다기보다 고교생쯤으로 앳돼 보이는 어린 군인들이 한 결 같이 깡마르고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진한 밤색 빛인데 무표정이고 멍한 얼굴들......
생기나 젊음의 발랄함이나 건강함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전혀 배어있지 않는 영양실조의 지친 얼굴들이었다.

꽃 피는 5월인데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녘 땅은 꽁꽁 얼어붙은 동토로 느껴져 왔다. 경계선 한 금만 넘으면 되는 가까운 지척에서 꽉꽉 막혀 그 오랜 세월 가 볼 수 없었다니 새삼 기막힌 현실이 어이없었다. 그나마 작은 길이라도 열려서 눈으로 보고 오며 마음은 아팠지만, 이 작은 길이 자꾸 더 넓게 길게 열려서 통일의 길까지 뻗히기를 바랐다.

이곳 남한에 내 피붙이는 언니 하나뿐이다.
어머니는 1985년도에 세상 뜨며 말씀을 남겼다.
“너 살아서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가면,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지라도 꼭 동생들을 찾아서 친 형제이니 오가며 외롭지 않게 잘 지내도록 하여라.”

어머니는 여러 점쟁이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북쪽 고향에서 아버지는 장가들어 자식도 낳고 가정을 이루고 잘 사신다는 말을 믿고 끝내 아버지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은 못보고 가지만 막내딸인 나는 통일을 보고 고향에도 가보리라 믿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두어해 전 윤달이 있을 때, 언니에게 부산에 있는 어머니의 산소를 화장하자고 말을 꺼냈다가 면박만 당했다. 훗날 통일이 되면 고향 선산으로 모시고 가야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언니는 팔십을 코앞에 둔 일흔 아홉의 나이인데 그 때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당시에는 햇볕정책이니 막 퍼주기니 하며 좀 시끄럽기는 했어도 남북교류가 활발하고 소통도 많이 하고, 여러 통로로 왕래가 많아서 멀지 않아 고향소식도 듣고 갈 수도 있으려니 기대를 가졌다.

내 친한 친구의 시어머님도 임종하며 친구에게 부탁을 하며 통장을 주고 가셨다. 급하게 피난 나오며 시집간 큰 딸은 함께 나오지 못하였는데, 생전에는 구구절절이 큰 딸이 보고 싶다는 말씀은 참고 잘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자식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 삼천 만원을 만들어서 그 돈을 며느리에게 맡겼다. 언제든지 훗날 고향에 두고 온 큰 딸을 만나면 엄마의 마음이라며 꼭 전해달라고 하였단다.

고향에 형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냥 북한이 이북 땅이고, 북한 사람들이 한민족이고 동포라는 감정 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절심함을 갖고 있다.
바로 내형제들이고, 내 형제와 일가들이 줄줄이 살고 있고, 선산이 있는 고향땅이다. 금강산에 가며 보았던 깡마르고 왜소하고 무표정했던 군인들의 얼굴에서 어쩌면 바로 같은 표정으로 힘들게 살 형제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더 마음이 아팠을 거다.

6.15 공동선언, 10.4 이행선언을 하며 활발하게 남북관계가 발전하여서 기다리는 이산가족상봉도 언젠가 차례가 오겠지, 아니면 그 전에 고향소식을 들을 수도 있겠지 기대하였다. 개성에도 가고 백두산도 가면 나중에 통일은 더디 오더라도 먼저 북한 땅 어디든지 마음대로 찾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하며.......

좀 소통되어 그나마 희망을 주던 우리 실향민의 꿈도 경제부흥 앞서 외치는 새 정부 들어서고는 더 멀리 뒤로 밀려나는 것 같다. 나라가 바뀐 것도 아니고 대통령만 임기가 끝나 바뀌었는데 왜 대북정책을 깡그리 중단하고 다시 또 대치하며 맞서려는지 모르겠다.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국민총소득이 우리나라의 16분의1도 안 되는 1100달러인 북한에서 작년에 홍수까지 겹쳐 굶는 사람이 그리 많고 쌀이 그리 부족하다는데 왜 먹히지도 않을 선조건만 내세우며 구경만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먼 나라 외국사람들도 무조건 도와주면서 가까이에 있는 내형제들이 굶고 있는데 우선 도와주어야 될 것 같은데........

내 얕은 소견으로는 김 정일이 밉더라도 북한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방치하고 있다가 중국이 더 가까이 밀착해서 어떤 긴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북한 정권이나 북한 주민들이 남쪽의 얄미운 형제보다는 중국이 낫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동북공정이니 어쩌니 하며 고구려 발해도 자기네 역사라 하는데, 북한 땅에 중국이 개입하고 남한은 먼 나라로 제쳐두게 되면 우리의 통일은 아득히 멀어질 것 같다.

북쪽에 연고가 없는 구역장님도 개성을 보고 와서 마음이 그리 아프다 하는데,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은 오죽하리.
뉴스에서 보이는 굶주리고 퀭한 얼굴들이 때로는 내 형제로 보이니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의 9형제, 어머니의 8형제가 다 평북 초산에서 살았는데 그 후손인 4촌과 6촌은 지금 얼마나 많이 모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몇 명 있는지 알 수 없는 내 이복 친형제들 소식도 들어보고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친구도 시어머님한테서 부탁받은 그 무거운 숙제를 푸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서 북녘 땅 형제들에게 전해지며, 소식 듣고 얼굴 보는 꿈같은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정부의 대북교류도 다시 열려 왕래와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어느 햇빛 찬란한 날, 개성 박연폭포에서 황진이 자취 더듬으며 점심을 하고, 대동강 을밀대에서 석양 즐기고, 고 조금 위 고향 초산에서 형제들과 밤새우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오는 황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련다.













mama 2008.06.12  15:43

은하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다 맞는 말씀이고요...한 핏줄인데
우리가 끌어 안아야지요!!!...많이 힘드시죠! 은하님께도 예쁜 장미 한송이를
드립니다...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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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12  15:46

[귓속말 입니다.]

고은네 2008.06.13  06:15

5월의 햇볕아래 무표정 하게 서 있던 야윈 젊은 군인들,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고 뒤늦은 모심기에 바쁘던 맨 손의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코끝이 찡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통일 한국을 위해, 우리의 지도자들이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안목과, 가난한 부모형제를 도울 수있는 관대함과 후덕한 아량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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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모 2008.11.08  15:05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이제사 은하님의 글을 보러 왔어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가족사에 파묻혀 돌아 볼 기회도 없었네요.
가족사가 남북사고 남북사가 세계사일 수 있음을
생각하다 갑니다.

건강하시죠?
아무쪼록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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