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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19
 

*** 2004년3월17일에 쓴 글 ***


꼭 2주를 서울에서 있다가 내려왔다.
일주일을 예정하고 갔다가 딸네 집에 일이 생기며 더 있다가 오니 내 집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주인인 내 집이 마음 편하고 자유로움을 새삼 느낀다.
서울에 있으면서 시간 나는 오후에는 혼자서 사나흘을 서울 근교인 김포와 강화도를 구경 다니고, 지난 토요일 밤에는 광화문에서 있는 촛불집회에 구경갔다.

그 전날 헌정사상 처음 보는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분통터지는 사람은 모두 모이란다며 딸이 나간다기에 나도 따라 붙였다. TV에서 뉴스로만 보던 촛불집회에 직접
가서 구경도 하고 싶었고, 또 탄핵반대의 함성에 내 작은 한 목소리도 보태고 싶었다.

난 구경을 좋아하고, 더구나 생생한 역사의 한 현장에 동참하고 체험한다는 일이 신나서 마음 설레이며 광화문으로 갔다. 빈대를 잡기 위하여 초가 삼칸을 태운 꼴인, 사과 안 했다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많은 말은 접고 그냥 구경하고 느낀 것을 써보고 싶다.

우선 지하철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에 놀라서 딸애와 떨어질까 보아 손을 꼭 잡고 사람들 물결을 뒤따라 역 계단을 올랐다. 사람들은 물결이 되어 인도 쪽 길을 가득 채우며 따라가고, 곳곳에서 봉사자들은 초와 종이컵은 나누어주니 사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따라가다가 종이컵과 초를 받아서 불을 붙여 들고,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양면에 인쇄한 종이도 받아들었다. 한 신사가 초를 나누어주는 분한테 자기앞수표를 한 장 내밀었다.
" 초 사는데 보태세요"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받지 않으니 나중 모금함에 넣어주십시오"
말씨가 서로 깍듯하고 조용하다.
조금 가니 모금함을 들고 자원봉사자들이 서 있어서 그 신사 분은 수표를 넣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고 난 배추잎파리 한 장을 넣었다. 왠지 목이 메어 왔다.

얼만큼 가다가 광화문 그 넓은 차도에 끝도 없이 빽빽하게 앉은 대열에 비집고 들어가서 끼여 앉았다.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앞뒤로 끝도 보이지 않고, 본부도 어디인가 보이지는 않고 확성기를 통하여 말만 들린다. 차도에는 모두 앉고 양 옆 인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서서 구호를 적은 깃발과 피켓들을 흔들고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 뒤 양 사방으로 죽 둘러보니 서울 사람들은 바다바람을 안 쏘여서 그런가 모두가 허옇고 잘 생기고 단아한 얼굴들이다. 난 시위에는 보통 젊고 좀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들도 30대 40대 많고, 가족들이 연인들이 친구들이 동료들이 나란히 앉아서 본부의 지시에 따라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한다. 나 같은 노친네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이고 내 자리에서 뒤에뒤에는 수녀님도 앉아 계셨다.

반가워서 수녀님께 인사를 드렸다. "수녀님, 저도 교우인데 부산 태종대 성당에 나갑니다"
수녀님을 뵈면 무조건 반갑고 인사드리고 싶은 이것도 좀 문제일 거다. 수녀님도 오시는 장소니 내가 끼인 것이 별 나지는 않겠다 싶으며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결 친근해 지는 것 같다.

확성기에 들려오는 연설도 듣고, 구호에 따라 촛불을 흔들고, 노래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며 열심히 난 현장을 둘러보았다. 시위 현장인데 질서 정연하고 조용했다. 본부의 지시를 경청하며 따르고 구호를 외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노래를 부르는데도 참 조용하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크게 떠드는 사람이 없고, 옆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는 조용히 소곤소곤하고, 격앙된 시위 현장인데도 욕하거나 거친 말 쓰는 사람이 없다.

인도 쪽에 개인적으로 구호를 써 가져와서 들고 서있는 사람도 구호는 원색적인데 표정은 부드럽고 떠들지는 않는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중앙 본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다.
내 뒤에 젊은 부인은 대여섯살 보이는 머슴아는 옆에 앉히고 유모차에는 아기를 재워서 놓고 열심히 촛불을 흔들었다. 유모차에서 자는 아기는 잘 자고 있다가 함성이 커졌을 때 두어번 울며 깨어났으나 금방 다시 잠들었다. 본부석에서 미친 국회를 향하여 각자 하고싶은 욕을 3초 하자고 하여서 시작하였을 때 모두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는데 그 때 아기가 처음 깼었다. 7만명이 한번에 각자 욕을 하니 그냥 큰 함성이 되고 내가 마음놓고 한 한 마디 욕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집회를 진행시키는 본부석에서는 여러 사람이 바뀌면서 짧은 연설도 구호외침도 노래선창도 하고 하였다. 몇 사람은 목이 쉬어서 애를 쓰고, 어떤 분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내
귀에 이름이 정확히 들리는 사람은 탤런트 권 해효씨와 공무원 노조 위원장이란 사람이다.
연단의 사람이나 크게 말하려 고함을 지르며 선창하고, 앉아서나 서서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은 지극히 온건하고 진지한 얼굴로 노래와 구호를 부른다. 많은 사람이 외치고 합창하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느껴서 나 자신 지금도 내가 잘못 기억하나 싶어진다.

어쨋던 그 분위기는 격앙되고 흥분한 사람들의 모임인데도 질서정연하고 평화스러웠다.
커다란 물결이었는데도 도도히 흐르는 물결이었다.
광란도 없고 욕지거리도 하나 없고 무질서도 없고 눈쌀찌푸리게 하는 어떤 행위도 없었다.
그냥 그 집회에 뜻을 같이 하려 나와서 하나된 뜻을 표출하면 된다는 것일까, 각자 떠들고 싶은 말들이 많을 텐데 그 말들은 마음에만 담아두고, 모두 흥분하지 않고 조용조용 할 수 있는지 서울 사람들의 시민의식에 놀랐다. 부모들 따라나온 많은 어린들 까지도 조용했다.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딸애와 먼저 그 자리를 나왔다.
짧은 시간의 체험이었지만 신선함과 감동을 진하게 느끼고 왔다.
그 느낌과 감동을 다 전할 수 없는 둔필이 안타깝고 정말 답답하다.

탄핵을 결의하던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이라는 고귀한 분들, 끽해야 2백50여명의 모임인데도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걸름이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들은, 모두 분통이 터져서 모였는데도 질서의식 있고 차분하고 평화적이었다.
행자부 장관의 문화행사로 볼 수 있다는 집회가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아름답고 품위 있는 집회였다.
들끓는 분노는 모두 마음속에서 삭이고, 같이 흔드는 촛불에 부르는 노래에 [탄핵반대]의 하나 뜻만 모아서 평화스럽게 큰 물결로 흘려보내는 집회였다.
이 집회의 체험을 아름다운 밤의 추억으로 마음속에 곱게 간직하려고 한다.




PS : 어제 뉴스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한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을 보며, 여러 해 전에 참석했던 촛불시위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그 밤, 참 싱그러웟던 밤이었는데 4년이 흘렀네요.

꼬모 2008.03.30  18:29

아름다운 경험을 하셨네요 은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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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2008.05.03  06:47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지금도 그때 그 사람들의 격려로
저리 잘 하며 사시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역사를 남기신 은하님 같은 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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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네 2008.05.03  07:01

하여님 요즘 시력은 좋아지셨는지요?
노무현 전대통령도 대통령 시절에 국민들에게 고통을 많이 안겨주었지요.
좀더 절제있고 좀더 자제력을 가졌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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