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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모태의 태아가 참 생명의 개화와 결실까지 성숙

2009.11.24 05:32 | 영성의 샘물 |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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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의 태아가 참 생명의 개화와 결실까지 성숙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초자연적 기능은
마치 모태母胎에 든 태아의 기능과 같아서,
결정적인 탄생을 보기 전에는 참다운 행사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지금은 이 기능을
감득感得(느낌을 얻음)하지 못하더라도
(태아 역시 출생하기 전에는 자기를 감득 못 함과 같이)

우리 안에 기능과 생명의 씨앗은 적어도 들어 있으니,
천주의 도우심을 빌어서, 소위 지상 생활이라는
이 태생기간胎生其間을 이용하여 이 기능을
지금부터 예민하게 그리고 힘 있게 배양함으로써,
장차 우리가 누릴 바
참 생명의 개화開花의 날을 마련할 수는 있다.

-가스통 꾸르다, 「죽음의 그리스도적 의미」

초자연적 씨앗이
마치 모태에 든 태아의 기능이 자신을 느낄 수 없으나
점차 감각 기능이 발달되어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와 감각과 지능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자아인식을 하고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의 은총으로
영혼의 기능이 예민하게 되어 장차 영원히 누릴
참 생명이 꽃피어 나고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게 되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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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신 분이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사람을 창조

2009.11.24 05:22 | 영성의 샘물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22348 주소복사

생명이신 분이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사람을 창조

결코 여기에 확실한 사실은 죽음이란 우리를 참다운 생명,
끊임없는 생명, 그리고 눈물도, 탄식도, 두려움도,
아무런 오해도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생명으로 끌고 가며,

이 생명을 위하여 우리는 조성되었고,
이 생명을 위하여 천주께서는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마련하였고,
이 생명을 위하여 우리는 천주께로
부터 영적인 존재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4)

-가스통 꾸르다, 「죽음의 그리스도적 의미」

하느님은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에페 1,4-5참조) 그런데 아버지가 자녀를
영원히 살리고 싶지 영원히 죽이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시편 118,17)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b)

하느님을 믿는다 함은 구원된다는 것이요.
구원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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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변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

2009.11.20 08:56 | 영성의 샘물 |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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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변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

“죽음이란
땅에서 하늘로 넘어가는 위대한 날이다.
다시 말하면 변하고 흔들리며,
안개 끼고 혼돈한 상태에서 우리가 기다리던
새로운 상태로 넘어간 때다.
그렇다. 죽음이란 생명으로 건너뛰는 방법,
초월한 방법이다.

죽음을 통하여 인간이 만일
반대 방향으로 비참하게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그는 천주께로 올라가
아래와 같은 놀라운 진리가 실현되는 날을
볼 것이니: 너를 떠나 천주의 무한으로 들어오라.”

- (그라트리 신부, <영혼의 인식>에서)-

“생명은 변할 뿐, 없어지지 않는다.
(Vita mutatur. non tollitur)"
이 구절은 사제가 연령을 위한 미사 때
서문경에서 노래하는 구절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납득하는가?
그리고 이 변함이란 우리에게 뭣을 가져올까?
소득이냐, 손실이냐? 발전이냐, 위축이냐?

- 가스통 꾸르다, 「죽음의 그리스도적 의미」-

♣<인생수업>이란 책에서
‘나’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인가?
삶의 학교인 인생수업에서는
‘나’의 존재의 궁극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의 뜻을 깨달아야
수업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실 ‘죽음에로의 존재’입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고 하지만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지각생입니다.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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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종합적 관점은 생명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

2009.11.18 01:29 | 영성의 샘물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22295 주소복사



죽음의 종합적 관점은 생명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

슈브리에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도 죽음을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우리도 하루는 죽는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워졌다.
만일 죽음을 믿는다 치더라도 죽음은 너무
도 멀고 막연한 장래의 것이기에 이를 등한시해 버린다.”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묵시 3,3)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히 한 번은 죽는다.

그리고 이것이 가까운 장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망상이 아니라 가장 엄격한 사실이다.
“네가 어디서든지 죽는 자를 볼 때에는
너도 같은 길을 거닐 것을 생각하라.”(준주성범)

-가스통 꾸르다, 「죽음의 그리스도적 의미」

♣성당 공동묘지에는 죽은 이가 산 이에게
“오늘은 내 차례요, 내일은 네 차례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차례도 반드시 올 것임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파악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뿐 아니라,
죽음이란 종합적 관념에서 볼 때,
생명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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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순간도 뭣을 당하는지 모르고 홀로 죽는다

2009.11.16 21:16 | 영성의 샘물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22288 주소복사



죽어가는 순간도 뭣을 당하는지 모르고 홀로 죽는다

그라트리 신부는
자기 명상록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대 우리의 불신자의 관습은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 앞에 망설이게 만든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무서운 것으로만 가르쳤고,

따라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죽음)를 피하도록,
그리고 애당초 죽음이라는 이 괴상한 신비에 대해서
입을 봉하도록 가르쳐 왔다.
우리가 죽어갈 때,
죽음의 뜻을 깨우쳐 주는 자 아무도 없고,

마지막 숨을 끊을 때까지
우리가 지금 뭣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속이고 있는 이 환경 안에서
홀로 죽어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쓰리고 괴로운 일이다.”

-가스통 꾸르다, 「죽음의 그리스도적 의미」

♣살아가는 것은 더불어 살지만
죽음은 홀로 죽어갑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대신 죽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홀로 된 자가 되어서
하느님 앞에 단독자單獨者로 서는 연습인

기도의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삶이란 일방통행이고,
다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귀하고,
죽음은 막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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