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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8) 성 바오로 영성 ②하느님 본받아 쉼없는 영적활동 전개
전도여행의 어려움 속에도 노동을 통해 생계 해결 편지와 성실한 삶으로 무질서한 신자들 바로잡아
바오로 사도의 1차 전도여행은 대부분 오늘날의 터키지방인 소아시아에서 이뤄졌다. 2차 전도여행 때는 1차 전도여행지를 살짝 거친 뒤, 그리스지방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을 하다 보니, 1차 전도여행지에서 자꾸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공소회장을 뽑고, 지역장 및 구역장을 인선하고 떠나왔는데, 그 지역에서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같으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잘못을 바로잡으면 되겠지만 당시엔 전화가 없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선택한 것은 편지였다. 제일 먼저 쓴 편지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바오로 사도는 ‘내 편지를 읽고 이제는 신앙생활을 잘 하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복잡한 문제가 많이 생겼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래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를 쓴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크게 종말론과 노동문제 두 가지로 요약된다.
테살로니카 지역에 이단이 들어와 “멀지 않은 시기에 종말이 온다”고 말하고 다녔다. 신자들은 혼란해 했다. 바오로는 단호히 이러한 이단에 대처한다.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1테살 5,1-11) 사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 노동문제는 종말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빚어진 문제다. 종말이 2~3개월 안에 찾아온다면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바오로 사도는 교리를 열심히 실천하며 성실하게 일하고, 쉬는 시간까지 하느님께 봉헌하며 하느님 영광을 실현하라고 가르쳤는데 정작 신자들은 이단에 빠져 흥청망청 살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화가 날 법도 하다. 마음도 무척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2테살 3,6-10)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성실한 삶을 살았다. 전도여행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도는 자신의 생계만큼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해결했다.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는데도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불성실한 생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권고한다.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1-12)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쉬지 않고 끊임 없이 영적인 활동을 계속 하시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쉼 없이 열심히 영적인 활동을 하시는데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하다면 말이 되겠는가.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은 쉼 없이 영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계시는 분으로 다가온다.
-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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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7) 성 바오로 영성 ①주님 통해 회개하며 진리 깨달아야
주님의 빛 통해 깨달음 얻은 바오로 10년간 수련 오랜기간 수련 거쳐야 진정한 완덕에 이를 수 있어
바오로 사도도 우리처럼 육체와 정신을 지닌 인간이었다. 당연히 청소년기가 있었다. 우리들처럼 부모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오로의 아버지는 율법을 엄격히 지켰던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 지낸 그런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바오로에게 철학 역사 문학 언어 등 당시 최고의 그리스 학문을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고액과외를 시킨 셈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들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유학까지 보낸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신학과 히브리어를 배웠다. 바오로가 예루살렘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시점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할 시점이었다.
따라서 바오로는 예수님에 대해 당시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바오로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기는 대략 3년 후. 바오로는 이때서야 비로소 예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전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철저한 바리사이파 유대인으로, 최신 학문과 선진 문물을 접한 지식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의 제자들은 허황된 말로 민중을 기만하는 집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이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등 박해활동에 앞장섰다.이렇게 바오로는 약 3년간 박해 활동에 적극 나섰다.
바오로는 차츰 박해에 있어서 과격성을 띠게 된다. 직접 도망간 신앙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의 북동부 이집트까지 가려 했는데, 우선은 가까운 다마스쿠스를 1차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는 빛을 만나게 된다. 빛을 만났다는 것은 하느님을 만났다는 말이다. 이때 바오로는 변화하게 된다.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삶의 결정적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지금까지 바오로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누구 못지않게 많이 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엄격함을 이야기하라면 그 누구보다도 엄격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복음 선포에 앞장서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삶의 전환기를 맞을 때가 있다. 이런 전환들은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 좋은 친구, 훌륭한 스승, 아름다운 이웃은 모두 삶을 전환시키는 훌륭한 만남들이다. 바오로도 이제 하느님과 만나게 되면서 삶이 변화하게 된다.
깨달음은 ‘나’를 완전히 낮추게 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다. 바오로도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본격적인 수련생활에 돌입한다. 그 기간이 무려 10년이다.
이 10년 동안 바오로는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 하느님의 빛에 의해 변화된 바오로의 내적 영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한번 마음먹는다고 바로 완덕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성인품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련이 필요하다.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해서 성인성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서 진정한 완덕에 이르는 것이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빛을 통해 깨달았다. 과거의 삶이 육신적, 정신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깨달음은 수련을 통해 변화로 이어진다. 그 기간이 10년이었다. 31세에서 41세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31세에 회개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주위를 보라. 나이 50, 60이 돼도 권력과 돈만 추구하고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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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6) 성 바오로 생애
②죽을 위험 감수하며 주님 알리려 선교 나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여러나라에 교회 설립 하느님과의 합치로 고난 이겨낸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가 복음 선포를 처음 시작한 곳은 다마스쿠스였다. 하지만 유대교인들이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으므로 그는 박해를 피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루살렘 그리고 다마스쿠스와 타르수스 등을 거쳐 광야로 가서 10여년간 피난 수련생활을 통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사도직을 준비했다. 그 동안의 의식주는 손수 천막을 만들어 해결했다.
이후 그는 한 나라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영혼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사도로서 일어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신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그만큼 도처에서 교회를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께 합치했고 용감했던 그는 아무리 큰 고난이 닥쳐와도 하느님을 위해 온몸으로 인내했다.
특히 그의 노력은 이방인에게 집중됐다. 이방인들의 사도였던 만큼 그는 늘 길 위에 있었다. 특히 3차에 걸친 전도여행에 대한 열정은 유명하다. 3년 동안 진행된 최초의 여행을 통해 그는 안티오키아(오늘날 터키) 곳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처음은 이스라엘에서 가까운 나라이면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 크리스챤들이 머물고 있는 터키 지역을 선교한 후 그곳을 발판으로 점차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전교하겠다는 단계적 전교법을 이용했다. 그래서 제2, 제3의 전도 여행이 이어진다.
제2차 전도여행도 역시 약 3년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번에는 전에 교회를 세웠던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잠시 방문한 후 즉시 그는 그리스 지역의 필리피 테살로니카 아테네 코린토 지방 등으로 발을 옮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다. 제3차 전도여행은 5년이 걸렸다. 그 중 3년은 에페소에 머물렀다.
바오로는 전부터 로마를 방문하고 거기서 전교를 하다가 다시 멀리 스페인과 포르투갈까지도 가려고 결심하고 있었으나 그 실현에 앞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유대교도들에게 체포되어 2년간을 카이사리아의 감옥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므로 황제에게 상고하고 그로 인해 로마로 호송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바오로는 후에 스페인에 갔다가 다시 동쪽 나라로 간 후 다시 로마로 향했다. 그리고 네로 황제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아 서기 67년에 참수 당했다 한다. 성 바오로는 생존 시에 직접 세운 교회나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14통이나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아 지금도 예수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귀중한 문헌으로 되었다.
기록상으로만 볼 때 바오로의 활동은 다른 사도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수많은 나라에 가서 전교하며 갖은 환난을 당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말한 바와 같이 종종 감옥에도 갇히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냉대와 학대를 받았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40대에서 한 대 모자라는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로마인들에게서도 태형을 세 번 당하고 세 번 파선을 당해 일주일 동안 바다위에서 표류한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음의 위험, 병고, 기갈, 단식, 추위, 노고, 영적고통 등 일체를 그리스도를 위해 인내했다. 예수야말로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갈라2,20)는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열렬히 원했다.
그 희망은 성취되어 그는 지금 성스러운 사도, 영광스러운 순교자로서 천국의 영복을 누리고 있다.
정영식 신부·수원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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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5) 성 바오로 생애
①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열의 전교에 쏟아 바리사이의 아들로 태어나 맹렬히 그리스도교 탄압 다마스쿠스에서 주님 체험하고 개종 후 선교활동
성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의 시리아 타르수스에서 출생했다.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열심한 유대인으로 살아가며 율법을 충실히 지키던 바리사이 아버지는 아들 사울에게도 종교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애썼다.
사울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당시 타르수스에서 번성하던 그리스주의의 교육을 받고 그리스 철학과 역사, 문학, 언어 등에 능통했다. 이러한 그의 풍부한 교양은 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울의 재능은 단순히 지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천막을 만들고, 주단을 짜는 등의 기술에도 매우 능통했다. 사울은 이 일만으로도 넉넉히 독립적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신학과 히브리어를 연구하게 했다. 하지만 이때 바오로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만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활동을 시작하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인 타르수스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그 신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때 바오로는 타고난 불과 같은 열정과 이스라엘 전통안에서 그가 열심히 배웠던 유대교 율법에 대한 존경심에서 맹렬히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일 때를 비롯해 그리스도교 박해 때마다 늘 참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바오로가 어떤 사람인가.
즉시 그들을 체포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놀라 말에서 떨어진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바오로는 공포와 경악으로 떨면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후 바오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의 인도를 받아가며 다마스쿠스로 들어가 3일 동안 어떤음식도 취하지 않고 오로지 통회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나타나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일어나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고 하셨다.하나니아스가 주님의 분부대로 사울을 방문해 안수를 하니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는 동시에 바오로는 시력을 회복하고 일어났다.
바오로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9,19-20)
신자가 된 바오로는 전에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당시 드러낸 열의를 이제는 전교에 쏟기 시작한다. 그 박학한 지식을 무기로 삼아 눈부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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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4) 글을 시작하며 ④성인 생애 묵상하며 기도중에 친밀히 지내야
하느님께 대한 존경은 흠숭, 성인에 대한 존경은 공경 성인 공경에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성덕을 본받는 것
교회에서는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아울러 주재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최상의 경신례, 절대적인 존경을 흠숭(欽崇)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인간에 대한 존경은 공경(恭敬)이라고 하여 명확히 구별한다.
예컨대 예수의 어머니로 선택된 동정 성모 마리아는 피조물 중 덕으로나 지위로나 가장 탁월한 분이기에 특별한 ‘공경’을 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경이지 흠숭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인에게 우리는 어떠한 공경을 바쳐야 할까.
세상 사람들은 조국을 위하여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한 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다. 또한 빛나는 발명이나 발견을 하여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킨 이에게도 모든 이들이 존경을 보낸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고, 세상에 큰 선익을 선사하고, 인류의 명예가 되는 성인들을 존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생전 모습을 성화와 성상으로 표현해 기념하고, 붓과 입으로 찬양드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성인에 대한 공경 중에서도 그 유해(遺骸)나 유골, 유물, 성상, 성화 등을 존경하는 것은 어딘가 특별한 가톨릭적 정서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공경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결코 미신이 아니다. 인정(人情)상으로 말하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를 잊지 않는 효자는 아침저녁 그 사진을 향하여 산 이에게 하는 것처럼 인사한다. 효자는 특히 부모의 유산이나 기념물 등 고인을 추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성인에 대한 공경도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와 관계되는 일체의 사물에 대한 존중에까지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성인들의 전구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들이 직접 하느님께 의뢰하는 것보다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구함을 받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는 점은 용이하게 납득할 수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상대편에 가까운 사람을 중개 삼으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성인들은 우리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우리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영복을 누리며 하느님을 찬미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는 것을 천국에 있어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인들의 전달을 기뻐하시며 반드시 그들의 원의를 들어 주실 것이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야고 5,16)
천국의 성인은 지상의 의인보다 주의 사랑 안에 더 깊이 있다.
따라서 성인의 기도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모든 성인의 전달이 일체 사물에 관하여 어느 것이든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심 생활이나 선한 임종을 하기 위해서는 성 요셉, 전교를 위해서는 성녀 소화 데레사, 유실물(遺失物) 발견을 위해서는 성 안토니오의 전구가 특별히 유력하다.
이와 같이 성인에 의하여 기도의 효과가 다른 것은 그네들의 생존 시에 특별히 공훈을 세운 방면에 하느님께서 그 보수로 탁월한 전구의 힘을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인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주요한 이유는 단순히 전구에만 있지 않다.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을 주기 위함이다. 결국 성인 공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성덕을 본받는 것이라 하겠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격언이 있다. 시간 있는 대로 성인전을 읽으며 가끔 그들의 생애를 묵상하며, 기도 중에 그들과 친밀히 지내야 한다. 그러면 어느덧 그들의 고결한 정신에 동화되어 마침내 거룩한 삶을 구현할 것이다. 열심히 분발해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이 외치자.
“그도 한때 사람이었고 나도 지금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행한 것을 나라고 행치 못하랴!”
-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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