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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오늘의 말씀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복음 12장 13-21절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세 12,1-2)

아브라함 이야기는 12장부터 18장까지 이어진다.

어느 날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명령하는 땅으로 가라" 하셨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꿈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고향을 떠났다. 고향은 편안함이 있는 곳, 꿈에도 그리는 곳이다. 친구도 많고 그 누구를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곳이다. 이런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가는지 목적도 없이 그냥 하느님만 믿고 길을 나섰다.

타향살이를 해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안다. 지방색이 강한 곳에서는 그곳에 20년 30년을 살아도 타향사람이라고 '왕따'를 시킨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가 어떤 섬에 가서 살아 보겠다고 이사를 갔는데, 그 마을에는 아직 수세식 화장실이 없던 때였다. 그는 시골집을 사서 개조를 했는데, 집 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런데 옆집에서 화장실을 밖에 만들고 그것을 쓰라고 시비를 걸었다. 이유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이 동네를 더럽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괜한 트집이었다. 정화조가 있기 때문에 더러운 물이 흘러나가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말한 사람은 마당가에 돼지를 키우면서 더러운 오물을 마구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의 집 수세식 화장실을 옮기라고 우겨댔다. 동네 사람들도 한 통속이 되어 우겨대니 견뎌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교수는 이사를 하였다. 이것이 타향살이의 설움이다.

아브람은 타향살이가 어렵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아브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었다.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은 사람이었다. '팔자' 신자라고나 할까! 하느님의 용사였다.

찬세기 22장을 보면 그는 자기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자식이 중요하나 하느님보다는 귀중할 수가 없었다. 하느님께서 우리더러 네 집에 있는 땅문서를 갔다 하느님께 바치라든지, 네 자식을 하느님께 바치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하느님이 미쳤다고 할까? 아니면 무슨 말씀이라도 다 따르겠다고 할까?

아브람이 살던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어 부인과 함께 이집트로 갔을 때였다. 이집트인들이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를 보고 첫 눈에 반해버렸다. 그 소문이 파라오에게까지 전해졌다. 파라오가 그녀를 오게 하여 보니 과연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로 삼고 아브람에게는 많은 재산을 줬다. 아브람이 자신은 사라이의 오빠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아비멜렉 왕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라이의 누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비멜렉도 사라이를 데려갔던 것이다(창세 20장 참조).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둘 사이는 배다른 동생이기 했다.

그런데 사라이를 아내로 삼은 파라오에게 많은 재앙이 생겼다. 그래서 그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가 캐보다가 아브람과 사라이가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라오는 사라이를 내주며 어서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네겝으로 갔다.

사라이는 미인이긴 했으나 아기를 낳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기 종 하가르를 아브람과 동침케 하여 아기를 낳아 대를 잇게 했다. 사라이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다. 남편의 대를 이어 주기 위해서 다른 여인을 남편의 품에 안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그런데 막상 하가르가 아기를 갖자, 제 여주인을 업신여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하가르는 쫓겨나게 되었다. 개구리가 올챙이였을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과거에 비참하던 때를 돌아보면 오늘의 건강이나 부귀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이라야 이 세상이 필요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며 계약을 맺으셨다. 곧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대신 하느님께서는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주시겠다는 계약이었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남자들이 태어나면 할례를 받는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갔을 때, 주님께서는 이 두 고장이 너무 죄악으로 가득하여 멸망시킬 결심을 내보이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흥정을 하였다. "의인이 이 마을에 쉰 명 있어도 쓸어버리시겠습니까?" 로부터 시작하여 "열 명이 있더라도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고장에는 10명의 의인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남자들은 정상적인 성을 즐기기보다 변태적으로 변해 있었다. 사회의 풍조가 그러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이 아닌, 죄악 속에서 악취를 풍겨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대도 풍기문란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들 한다. 동성끼리의 사랑은 흔한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스와핑이라는 새로운 낱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디 인간으로서 낯을 들고 다닐 수 있는가? 개들이 비웃고 새들도 비웃을 것이다. "이 인간들아, 정신차려라!" 하고 속으로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최기산 인천교구장 <행복을 부르는 말씀>에서..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2008.03.18 01:45 | 하느님의 말씀(성경)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16244 주소복사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창세 6,9)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시어 죄 많은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살아남은 자들은 노아의 가족들이었다.(베드로 1서 3장 20절에는 살아남은 자들은 8명이었다 한다).

노아의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600살 되던 때였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전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거기에 각종 동물 한 쌍씩 넣고 가족이 들어갔다. 비가 40일간 쏟아졌다. 지상의 모든 것이 잠기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며칠 동안 장대비가 계속 쏟아지면 한강이 범람할 것이다. 40일간 퍼부었다면 상상할 만하다.

물이 점점 빠지고 방주도 땅바닥에 안착하였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맺으셨는데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무지개를 주셨다. 요즘에도 비가 오고 나면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다.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면 언젠가 올 종말에 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불로 심판하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셨을까? 죄악이 만연하여 있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고 하느님의 명대로 살지 않았다. 퇴폐한 생활로 삶이 엉망진창이었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펫이라는 아들들이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인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때 아들 함이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 두 형제에게 알렸다.

셈과 야펫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겉옷을 집어 둘이서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드렸다.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벌거벗고 잔 자기에게 세아들이 어떻게 했는지 확인하고는, 함에게 저주를 내렸다. 그가 가나안 조상이 된 것이다. 그가 조용히 아버지에게 겉옷을 입혀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떠벌리는 것을 좋아한다. 남에게 치명적인 오명을 남기게 하는데도 재미삼아, 혹은 모욕을 주기 위해서 떠벌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의 치부를 떠벌리는 것이 좋을 리는 없었을텐데!

탈출기 21장에는 아버지를 험담하면 죽어 마땅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함이 살아있게 된 것만도 하느님의 크신 자비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사람들은 홍수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다며 머리를 썼는데, 높은 탑을 쌓아 비가 오면 그곳에 올라가려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창세 11,6-7)라고 말씀하셨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이었다.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말씀드리고 산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하느님과 친한 사람이었다. 당시 노아와 한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멀리 담을 쌓고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한 사람들 같았다. 우리도 주님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사람들, 그들은 한목소리로 힘을 모아 하느님께 대항하려 하였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도 인간들이 힘을 모으면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미리 차단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하셨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하나의 언어로 통일되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으로 하는 통일이다. 이는 새로운 언어의 통합이 아닐까? 이로써 하느님께 대들면 안 된다. 전 세계가 인터넷 상에서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모독한다든지, 악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하느님은 필요 없다는 소리가 우렁차게 될 때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바벨탑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모두가 겸손히 노아의 믿음을 본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지혜인 듯 싶다. 만일 통일된 언어로 하느님을 배반할 일을 꾸민다면 대단히 나쁜 결과를 얻게 될 것이 뻔하다.

       - 최기산 주교 인천교구장 <행복을 부르는 말씀>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2008.03.16 06:47 | 하느님의 말씀(성경)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16229 주소복사

  善과 惡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아담에게 에덴의 동산을 주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명당을 주셨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을 붙이셨는데, 善과 惡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는 따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강조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는 사탄이 하와에게 다가와 그 열매를 따 먹어도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속삭인다. 즉 하느님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하느님이냐 사탄이냐?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결국 하와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실제로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직접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아담이 하와에게 "저 열매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하와는 사탄의 말에 솔깃해서 그 나무 열매를 따서 자기가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 주었다. 만일 그녀가 그 열매를 딸 때, 먹을 때, 아니면 적어도 그에게 줄 때, 아담이 화를 내면서 하와를 나무랐다면 어찌 됐을까? 그 과일을 먹지 않았으면 어찌 됐을까? 창조적인 평설을 마음대로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하느님의 사랑을 아담이 독차지하였을 것이고, 하와는 아담과 동등한 반려자가 아니라 종의 차원에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고 가정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무슨 억측을 그렇게 하느냐고 핀잔할 것이다. "창세기가 하나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당시의 문학형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더 깊은 뜻을 전달해 주고자 하는 것 뿐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창조적인 평설은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하느님께로부터 들은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는 말을 잊었을 리가 없다. 아내에게도 수없이 말했을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그 열매를 따 먹으면 죽는다"는 엘로우 카드를 받았을 텐데, 어찌하여 따 먹고 말았을까? 한 여인의 호기심이었을까? 하느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말, 즉 권세와 명예에 대한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어 하느님의 명령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을까?

하와는 그렇다 치고 아담은 어째서 하와가 따 준 과일을 아무 말 없이 먹었을까? 속으로 "나의 사랑하는 여인이 저 열매를 먹고 죽으면 나도 죽어야지, 나만 남아서 무엇 한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공처가가 된 것은 아닌가!

아담이 여자에게 눈이 멀었던 게 분명하다.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아내의 다정한 속삭임이 더 근사하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아내가 주는 열매를 받아 먹었을 것이다. 하느님보다 아내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고나 할까! 창세기 2장 23절에는 하와가 아담에게 오자  너무나 감격하여 시 한 수를 읊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아마도 하와가 나타나고 난 다음부터 온 마음이 그에게 쏠렸던다 보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그녀의 말이 더 달콤했던 것은 아닌가?

이 세상의 그 누구이든 그에게 온 마음이 쏠릴 때, 주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 이 세상에 그 무엇이든, 그것에 온 마음이 빼앗겼을 때, 주님과 나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시기하시는 하느님은 가족끼리라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요구할 자격이 있으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존재하게 하시며,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인간끼리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하느님보다 더사랑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곧 불행의 싹이기 때문이다. 우린 하느님을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앞서서 생각하고 앞서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 최기산 주교 인천교구장 <행복을 부르는 말씀>에서..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008.03.08 15:23 | 하느님의 말씀(성경) | 옹달샘

http://kr.blog.yahoo.com/hamikal0929/16125 주소복사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 1,1)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늘과 땅이 생겨났다.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다.
지금도 창문 밖을 바라보면 나무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인다. 가끔씩 새도 날아다닌다.
하늘을 보니 가을이라 그런지 높은 구름이 흘러간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이다.

내가 없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하늘과 땅도 없다가 생겨나게 된것이다.
영원으로부터 창조가 이루어지고, 시간이 시작되었다.
과학자들도 이 우주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떠 있는지
모른다.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이 우주의 신비가 아직 95%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고 들었다.

이 광대한 우주 전체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창세기는 선언한다.
구약성경의 첫째 줄이 강조하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시발이 하느님께 있으며
그분의 작품이기에 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찌 인간이 하늘과 땅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창세기 첫 장부터 인간이 하느님께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위 쨉이 안 되니 감히 하느님께 대들려고 하지 말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두뇌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원자탄도 만들고 우주선도 만든다.
그러나 전체 우주를 볼 때 인간이 놀고 있는 이 지구는
하나의 작은 티끌에 비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의 발전에 기뻐하면서도
너무나 교만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 최기산 주교 인천교구장 <행복을 부르는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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