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종말’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어원론적으로 볼 때‘종말’이란 말 속에는 세상이 끝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완성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은 반드시 종말의 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마태 13,39). 다시 말해서 현재의 세상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요한 3,17) 새롭게 될 것이며(사도 3,21) 다가올 세상에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입니다(에페 1,21).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마르 13,33).
종말의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그야말로‘주님의 날’로서 세상이 완성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마태 10,22). 세상 종말의 날은 기존 질서와의 근본적인 단절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절이란 세상의 모든 가치들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죄스런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에서의 단절을 뜻합니다.
창조된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는 것은 모든 의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회동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 같은 사실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인 전승에 속한 상징적인 언어 표현들을 갖다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세상 종말을 예고하시면서 당신 제자들이 그 순간을 잘 맞이하도록 준비하면서 살아갈 것을 촉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측의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매 순간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현재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모든 것이 비극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공부하는 것이 끝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정년퇴직을 한다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끝냈다고 할 때, 그 경우 끝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뿐, 모든 것이 소멸되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희망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보면,‘ 끝’이란 말 속에는 비극적이기보다는 역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는 종말이란 표현을‘오늘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종말이란 호기심의 대상이나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종말이란 희망이 실현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서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절박한 인식 속에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안에서 찾아집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요 희망을 살아가는 날’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신앙인들 안에서는 종말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그런 점에서 믿는 이들은 오늘이라는 현재를 역동적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종말이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살아가는 기쁨의 순간임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과연 우리의 모습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요?
- 안병철 베드로 신부│서울대교구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