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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만족보다 정신적 평화를 원하는 분들이 지나다 들려 목 축일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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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hamikal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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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진리를 찾아내는 열린 마음

광활한 대자연 앞에 서서 웅장한 자연을 보고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하며
우리는 하루라는 삶을 통해서 순응하고 있지만
그것을 애써 바꾸려는 의지로 인해 우리는
자신 안에서 심한 마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 있던지 인간에게 찾아온
고통은 숙명처럼 따라다닙니다.
마냥 기쁘고 평화로움 안에서 복되게 살고 싶지만
기쁨은 잠시일 뿐 복됨을 느끼려는 순간 어디에선가
고통이란 것이 금세 미소를 잃게 만듭니다.

의지력이 약한 이들은 자신의 무능을 비관하여
이때 세상을 탓하기도 하고 세상이 뒤집어지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또 조금만 기쁨이 찾아오면
언제 그랬나하고 지난날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고통이 있은 후에
찾아오는 기쁨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현실에 주어지는 아픔과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이를 되돌아보며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초대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통과 기쁨은 인간이 만들지 않고
우리를 더 나음으로 이끌기 위해 단련시키는
하느님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은 방대하고 무한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그 어떤 곳에도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창조 역사 안에 존재하는 우리가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은
즉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며 찬미 찬양
할 수 있는 영광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 앞에 기도드리는
우리들이 막연히 하느님 앞에 앉아 기도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닫힌 마음이고 마음을 정리 정돈하고
하느님 앞에 마주 앉아 열린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열린 마음입니다.

닫힌 마음은 매일의 삶 안에서 원리를 잊어버리고
좋음과 나쁨만을 구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열린 마음은 수반된 삶 안에서 작은 진리를 찾아
그 진리가 또한 보화임을 깨닫게 하고 보석이
더욱 빛을 발하도록 연마하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에서 감사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영원에서 영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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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연습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 글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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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탄생

오늘의
모든
순간을
마치
오늘
저녁에
순교자로서
죽을
몸같이
살자.
-샤를르 드 후꼬-

♣신앙인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관문인
‘잘 죽기 위해 삽니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에
영원한 생명의 탄생이냐 아니면 영원한
형벌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기 위하여 났지만,
또한 살기 위하여 죽는 것이다.”
이 말은 초세기의 한 젊은 시인의 글입니다.

- 영성의 샘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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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2009.11.15 06:00 | 신앙인의 삶 |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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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종말’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어원론적으로 볼 때‘종말’이란 말 속에는 세상이 끝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완성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은 반드시 종말의 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마태 13,39). 다시 말해서 현재의 세상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요한 3,17) 새롭게 될 것이며(사도 3,21) 다가올 세상에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입니다(에페 1,21).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마르 13,33).

종말의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그야말로‘주님의 날’로서 세상이 완성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마태 10,22). 세상 종말의 날은 기존 질서와의 근본적인 단절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절이란 세상의 모든 가치들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죄스런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에서의 단절을 뜻합니다.

창조된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는 것은 모든 의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회동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 같은 사실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유다인 전승에 속한 상징적인 언어 표현들을 갖다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세상 종말을 예고하시면서 당신 제자들이 그 순간을 잘 맞이하도록 준비하면서 살아갈 것을 촉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측의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매 순간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현재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모든 것이 비극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공부하는 것이 끝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정년퇴직을 한다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끝냈다고 할 때, 그 경우 끝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뿐, 모든 것이 소멸되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희망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보면,‘ 끝’이란 말 속에는 비극적이기보다는 역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는 종말이란 표현을‘오늘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종말이란 호기심의 대상이나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종말이란 희망이 실현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서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절박한 인식 속에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안에서 찾아집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요 희망을 살아가는 날’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신앙인들 안에서는 종말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그런 점에서 믿는 이들은 오늘이라는 현재를 역동적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종말이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살아가는 기쁨의 순간임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과연 우리의 모습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요?

- 안병철 베드로 신부│서울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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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의 역할·사명 다하자

연중 마지막 주일(그리스도왕대축일) 바로 전 주일은 평신도주일이다. 이 날은 한국교회가, 하느님 백성인 교회 안에서 절대 다수를 이루는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신원과 사명을 되새기며 그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자 지난 1968년에 제정한 특별한 주일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핵심 구성원이자 사회 안에서 교회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주인공이다. 가정과 이웃, 그리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사회복음화의 첨병’으로서 더욱 그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교회의 내적, 질적 성장의 열쇠는 평신도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교회 내적으로는 복음화율이 제자리걸음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등으로 가정 붕괴와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 생명 문화 건설과 공동선 추구에 앞장서야 할 평신도들의 몫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듯 평신도가 교회 안팎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중요함에도 그에 맞갖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것도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이다. 교회를 둘러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보다 지나치게 교회 내부로만 향해 있는 눈길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도 미지근한 삶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아울러 아직 많은 이들이 공의회 문헌뿐 아니라 평신도와 관련된 다양한 교회의 가르침을 그저 문헌 이름으로만 기억할 뿐 평신도로 살아가는데 있어 자양분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부족한 듯하다.

이 때문에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도 평신도주일을 맞아 배포한 강론 자료를 통해 평신도 고유의 사도직 영역에서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평협은 올 자료에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역설하며 평신도들의 생활 방식이 얼마나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며 복음적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평신도주일을 맞아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어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며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구원 받는 길임을 되새기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을 선택하길 바란다.

                      - 가톨릭신문 사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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