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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만족보다 정신적 평화를 원하는 분들이 지나다 들려 목 축일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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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hamikal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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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인정 이야기

새로 이사 온 이웃집 애가 놀이터에서 주저앉아 울길래 달래서 제 집에 데려다 주었더니 그 애 엄마가 하도 고마워해서 나도 마음이 자못 흐뭇했다.

다음날부터 그 애와 걔 엄마는 나를 보면 반색을 하고 차츰 그집 다른 식구들도 인사를 건네 왔다. 이렇듯 한 오라기 인정으로도 남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맑은 기쁨을 마냥 맛보게 된다.

그러나 실상 그 인정이란 어느 누구만의 소유도 능력도 아니요, 사람이면 모두 다 지닌 마음의 샘이다. 그리고 그 샘은 컵에 든 물처럼 마시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푸고 퍼낼수록 샘솟는 신비의 샘이다. 오직 우리가 자신의 그 샘을 푸고 퍼내지 않아 막히고 마르고 버려져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그 인정을 누구에게라도 즐거이 쓰고 나눌 양이면, 상대방에게는 불신의 벽을 허물게 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며, 자신에게는 삶의 보람과 그 기쁨을 맛보게 한다. 비단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것에나 그 인정을 쓰거나 베풀면 이제까지는 자신과 아주 무관하던 것들이 슬며시 다가와 그 가슴에 안긴다.

오오, 인정! 신비한 마음의 샘,
예수가 가르친 사랑도, 석가의 자비도, 공자의 어짊도, 바로 이 인정의 발휘 이외에 별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분들이 어떤 사람만이 지니는 소유나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였겠는가? 그런데 항용 우리는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나는 힘이 없어서'라는 핑계로 이 인정의 발휘를 회피하며 산다.

- 구 상<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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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감사의 삶

호스피스에선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우들을 돌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친해져야 합니다. 저는 호스피스를 통하여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아주 놀라운 힘을 갖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가 자랑하던 돈, 명예, 권력 등은 모두 다 사라지고,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 즉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숨 쉬는 것, 그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를 허무에 떨어지게 할 수 있지만,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꽉 쥐고 있던 인간적 욕심과 자존심이 빠지면서 삶 전체가 선물로 주어졌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삶의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감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죽음 앞에서 모든 욕심이 빠진 호스피스 환우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깨끗하게 정화된 양심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면서 사랑의 삶을 살아왔는지 스스로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왜 인간은 죽음 앞에서 스스로 사랑을 물어볼까? 인간은 창조주의 모상에 따라 사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말기 폐암 환우를 가정방문 하였습니다. 집에선 아들과 아내가 돌보고 있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인데다 사업도 잘 안되어 힘든 삶을 살고 있었고 한때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으나 지금은 냉담 상태였습니다. 우리 호스피스 팀은 자주 그분을 방문하여 통증도 조절해 드리면서 성가도 불러주고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께 은혜를 청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 가정간호사, 신심 깊은 여동생과 함께 그 환우 안 에 계시는 버림받은 예수님을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사랑으로 돌봐 드렸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얼어붙었던 그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그분은 부인에게“여보, 감사해요, 용서해요, 사랑해요!”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정했던 부인의 얼굴도 부드러워지면서“, 여보, 사랑해요”하며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아들과 부인은 세례받기로 결정하면서 성가정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호스피스를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 모두를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 이경식 바오로│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 서울 성모병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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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해야 할 사랑은?

계명으로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 이지만,

행위에 있어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다.

안그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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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인정(人情)

일본 사람이면서도 한국의 예술을 그지없이 사랑한 야나기소에쯔(柳宗悅)는 그의 저서<조선과 예술>에서,

"한국인은 돈보다도 정치보다도 군대보다도 한 가닥의 인정에 더 많이 쏠린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접근시키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요, 정치가 아니라 종교요, 지(智)가 아니라 정(情)이라고 생각한다. 국제문제를 한낱 정치가에게 맡기는 것을 기이하고 유치한 짓이라고까지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예술적 감성에 뛰어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로서 특히 그 예술은 인정이 넘쳐 흐른다. 정애(情愛)에 의한 인간의 결합이 이 세상에서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저러한 한국인관은 우리가 전문학자들에게 있어서도 때마다 피력되는 바로서 가령 윤태림(尹泰林) 교수의 <한국인의 성격>이란 책에는,

"우리들(한국인)이 어떠한 부조리나 인간소외도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윽한 정 때문이었다. 인간적으로 인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플라톤, 칸트, 베르그송을 몰랐어도 또 생활은 가난했어도 인생에 대한 태도는 진실했었다."

고까지 주장되어 있고, 또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쓴 이규태(李圭泰)씨는,

"인간관계의 절충융합에서의 이탈은 한국인으로서 가장 괴로운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인정머리 없는 놈'이란 말이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아프게 들리는 것은 이러한 의존적 인간관계에서의 파문을 뜻하기 때문인 것이다." 라고 갈파한다.

위와 같은 전문 연구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인이 인정에 놀랍다는 것은 일시 한국을 여행한 외국인들마저 이구동성으로 쳐드는 바요, 또 우리 누구나도 외국에 나가 잠시만 있으면 가장 그리운 것이 바로 우리의 그 뜨거운 인정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을 쳐들라면 인정이 많다는 것을 첫째로 손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듯이 집단에 있어도 그 특성을 잘 쓰면 그것이 장점이 되고 또 그것을 잘못 쓰면 바로 그것이 단점이 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민첩한 성품을 지녔다 해도 그것을 잘못 발휘하면 경솔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둔중한 성품을 지녔다 해도 이것을 잘 발휘하면 침착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겨레의 특성도 잘 쓰면 미덕이 되고 잘못 쓰면 악덕으로 나타난다 하겠다.

이렇듯 우리 한국인의 장점인 인정도 잘 쓰면 더할 바 없는 인간의 상선(上善) 행위가 되지만, 이것이 잘못 쓰일 때는 비이성적이요, 감정에 치우치는 결함이 된다.

실상 오늘의 세상살이를 살펴볼 때 우리의 저러한 인정이 좋게만 발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즉, 우리의 헤플 정도의 인정이 사물이나 사리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능력을 상실케 하기도 하고,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파토스'적인 인정에 '로고스'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 구 상 수필집<우리 삶, 마음의 눈이 떠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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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

내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만스럽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내 기쁨을 빼앗아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남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나는 내 마음 밭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 하나를 떨어뜨려봅니다.

- 모셔온 글 -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남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나는 내 마음 밭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 하나를 떨어뜨려봅니다.

- 모셔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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