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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4/04
 



임종예습(臨終豫習)

흰 홑이불에 덮여
앰브런스에 실려 간다.

밤하늘이 거꾸로 발 밑에 드리우며
죽음의 아슬한 수렁을 짓는다.

이 채로 굳어 뻗어진 내 송장과
사그라져 앙상한 내 해골이 떠오른다.

돌이켜보아야 착오투성이 한평생
영원의 동산에다 꽃 피울 사랑커녕
땀과 눈물의 새싹도 못 지녔다.

이제 허둥댔자 부질없는 노릇이지……

'아버지 저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시늉만 했지 옳게 섬기지는 못한
그분의 최후 말씀을 부지중 외면서
나는 모든 상념에서 벗어난다.

또 숨이 차온다.

- 구상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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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하여

 


다음은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의 예문입니다. 사전의료지시서란 우리가 사고를 당했거나 불치의 병에 걸려 의식불명이 됐을 때를 대비해서 품위있는 존엄사를 맞이하기 위해 의료진에게 할 수 있는 치료와 그렇지 않는 치료를 미리 주문하는 것입니다.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더이상의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을 경우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본인이 원하는 사항과 원하지 않는 사항을 미리 적어놓은 것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번 소식지에 실어보았습니다.(출처는 김건열 박사님의 저서인 "존엄사"입니다)

 

(1) 사전의료지시서

‘사전의료지시서’ 예문(例文) 1

나 OOO(남 & 여, 주민번호 : OOOOOO-OOOOOOO)은 현재 다음 주소에 거주하고 있으며(현주소 : OO시 OOO구 OOOO동 OO번지), 여기에 나의 자의적 소망으로 맑은 정신 하에 어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나의 자의적인 의사표시가 불가능해질 경우를 대비해서, 나를 치료하는 담당의사와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전의료지시서’를 남기니, 본인의 소망대로 실행해 주기를 바람.

 

(1) 내가 의식이 없어진 상태가 되더라도, 기도 삽관이나 기관지 절개술 및 인공기계호흡치료법은 시행하지 말 것이며,

 

(2) 내가 암성질환에 대한 ‘항암 화학요법’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더라도 항암화학요법은 시행하지 말 것.(이는 항암화학요법의 효과의 불신에서가 아니라 나의 연령과 체력의 한계 때문임을 이해해 줄 것)

 

(3) 그 외 인공영양법, 혈액투석, 더 침습적인 치료술도 시행하지 말 것.

 

(4) 그러나 탈수와 혈압유지를 위한 수액요법과 통증관리 및 생리기능 유지를 위한 완화의료(緩和醫療)의 계속은 희망하며 임종시 혈압 상승제나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은 시행하지 말 것.

 

(5) 그 외 여기에 기술되지 않은 의료 내용은 ‘대한의학회’에서 공포하고 있는, 최근의 ‘임종환자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료지침’에 따라 결정하고 의료진과 가족 그리고 법의 집행인은 나의 이상의 소망과 환자로서의 나의 권리를 존중해 주기를 바람.

 

(6) 나는 이상의 나의 ‘사전의료지시서’ 내용이 누구에 의해서도 변형되지 않기를 원하며, 이 선언이 법적인 효력을 유지하고 담당의료진에 법적 면제와 보호 조건을 구비하는데 도움 되기를 소망하고 있음.

 

200 년 월 일

환 자 성 명 : O O O 서명(도장)

가족증인 성명 : O O O 관계 : O O

공증인 도장(서명)


[예문 끝]

 

이 서류가 공증을 받아놓아야 하는 것은, 이 서류가 본인의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법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며, 공증인이 공증해주면서 확인하는 것은 단지 이 서류가 본인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 출처: 김건열(2005), “존엄사”, 최신의학사. pp. 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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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친구인 두 노인이 마주 앉았다.
갑 노인이 을 노인에게 물었다.
"자네, 저승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미쳤군! 그게 뭐가 좋아?"

그러자 갑이 정색하고 맞받았다.
"이봐, 여태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저승에 갔지?"
을이 화난 듯이 대답했다.
"그야, 수도 없이 많지."
"알건 아는구만. 그런데도 그곳이 좋은 줄을 모르다니!"

갑이 딱한 듯이 을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곳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를 알 수 있지 않나."
을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ㅡ 중략 ㅡ
해 저문 뒤에 찾아오는 어둠인데도, 다음 해돋이도, 새벽도 없는 것, 죽음은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어김없이 어느 날 찾아올 게 불 보듯 뻔한데도, 끝내 내 몫이어야 할, 정체를 볼 수 없는 그 무엇, 죽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물어도 물어도 끝이 없다. 빠져들어도 빠져들어도 바닥이 없는, 심연 같은 물음, 죽음은 그런 물음 같은 것이던가?

"한번 가면 그만인 인생!"
"저승이 멀다더니 대문 앞이 저승일세."
"눈 감으면 끝인 것을!"
"그렇게 가버릴 것을 공연히...."
"마지막 길, 기척도 없이 가버리고!"

흔히들 말하고 듣는 말이다. 허무가 안개처럼 서려 있다. 삶의 무의미, 생의 덧없음,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 허탈하다. 맥이 있는 대로 다 삭는다. 하지만 다른 분위기의 말들도 없지 않다.

"죽자 살자..."
"죽기 살기로..."
"죽으면 죽었지..."
"사생결단하고..."

이 말은 또 뭔가? 허무의 독백들 앞에서 난데없이 웬 악지일까? 여기 언급되는 죽음에는 생기가 지글대고 있다. 삶의 악바리가 곧 죽음이라고 우길 기세다. 이 돌변은 변덕에 지나지 않는 걸까?

죽음을 두고는 우원법迂遠法(돌려서 말하기나 피해서 말하기)이 돋보인다.

떠나가다
돌아가다
세상과 하직下直하다
별세하다
서거하다
장서長逝하다
타계他界하다

모두 돌려서 말하기인 동시에 죽음을 '가는 것'에 빗댄 은유법이기도 하다.

숨지다
눈감다
밥숟가락을 놓다
영면永眠하다

이 말들은 죽음에 수반되는 여러 생리현상 가운데 어느 한 부분으로 죽음을 대변하고 있다. 제유법을 겸한 우원법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에 의지한, 이를 테면 '종교적인 우원법'도 있다.

입적入寂하다
적멸寂滅하다
성불成佛하다
왕생하다
극락 가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적인 우원법도 흔히 쓰인다.

천당 가다
주님의 부름을 받다
안식에 들다
선종善終하다

죽음 이외에 이렇게나 많은 우원법이 쓰이는 말은 없다. 죽음은 우원법의 천국이다. 한편 죽음이란 낱말과 더불어 인간이 꿈꾸어 온 사후 세계 역시 적잖은 우원법을 갖추고 있다.

저 세상
딴 세상
영계靈界
타계
극락
서방정토
천당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우원법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바로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이다.

첫째, 이 말들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나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이 담겨 잇을 것이다. 최대한 죽음 자체에서,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것이다.

둘째, 첫째와는 상반되게 죽음을 미화하고, 더 나아가 성화聖化하거나 승화昇華하려는 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구원, 해탈, 해방 등의 개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한마디, 한국인이 즐겨 쓰는 관용구 한마디에는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세 번째 시각이 들어 있다.

"이래서는 죽어서 눈이나 감겠나?"

한국인에게 '눈을 감는 죽음'과 '눈을 못 감는 죽음'은 서로 다른 죽음의 범주이다. 죽어서도 감지 못한 눈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눈을 못 감는 죽음'이란 말을 쓸 때 우리는 죽음을 미완의 삶을 완성시키는 계기, 삶이 못다 한 것을 마저 일구어내는 단서로 가꾸고 싶은 것이다.

노년에 들어서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죽음에 대한 이 세 번째 생각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다.

- 김열규 지음 <노년의 즐거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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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遺言)

살아서도 못 누린
호사스런 장례일랑
아예 마련치 말라.

까마귀 떼 우짖어
날아가는 어느 아침에

내 시체를 메어다
행길 마루에 버리고

오가는 길손들이
서낭당처럼

조약돌 한 개씩만
팔매케 하라.

묘비(墓碑)도
비명(碑銘)도 다 싫고

어느 실없는 입술을 빌리어
'시지프스*의 손주 한 녀석
이 땅에 귀향 살아
할애비의 고행(苦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헛되이 죽었느니라.'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간곡히 전하여

모름지기 뒷날을
경계케 하라.

- 구 상<오늘 속의 영원, 여원 속의 오늘>에서 -

*시지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이 사람에게는 지옥에 떨어져 바위를 메어
올라가다는 떨어지고 또 메어 올라가다는 떨어지는
고역(苦役)이 영원히 부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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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지금-죽음을 준비합시다]
               (7) 사전의료지시서

           '편안한 죽음' 미리 준비하기

         무의미한 연명 치료 거부 의사 미리 작성 서명
         연명 치료와 관련해 가족들 혼란 막을 수 있어
         환자 결정 존중하지만 자살, 안락사 위험 경계

내일을 멋지게 살기 위해 오늘 노력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일이 될 마지막 날을 위해 무언가 준비할 필요가 있다. 죽는 순간까지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 준비도 필요하다.

 물론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억지로 상상해야 한다면 살 만큼 살다가 어느 날 자다가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질 것이다. 딱딱한 침대에 누워 생명유지장치로 연명하는 자신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1990년 심장발작으로 뇌손상을 입은 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던 미국의 테리 시아보를 자신이라고 상상해 보자. 1998년 남편인 마이클 시아보는 테리가 평소 인위적인 방법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며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요청했다. 이를 완강히 반대한 테리의 부모와 오랜 법정투쟁을 벌였다. 결국 2005년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한 테리는 곧 세상을 떠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식물상태 환자인 김아무개(77) 할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자녀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환자 상태가 회복 가능하지 않으며, 환자가 평소에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고 말했던 '자기결정권'과 '사전의료지시'의 정황을 인정하고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김 할머니가 지난해 2월 의식을 잃기 전에 자신의 의사를 사전의료지시서로 작성해 두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때부터 대법원 판결을 거쳐 지난 6월 23일 실제로 인공호흡기를 떼기까지 1년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의지한 채 홀로 누워 있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테리 시아보 역시 환자 스스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가졌다고 추정할 만한 증거를 문서로 남겨 두었다면 문제를 그토록 오래 끌지도, 복잡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수액과 진정제를 투여 받으며 자신의 의사표시도 못한 채 극심한 고통 속에 연명하다가 눈을 감는 말기 환자들을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위적으로 생존 기간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과연 합리적ㆍ윤리적일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만약 환자가 인공호흡기 제거라든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말뿐 아니라 서면으로 남겨놓았더라면 주위에서 환자 뜻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 형식이 사전의료지시서다.

 사전의료지시서는 판단능력을 상실한 경우를 대비해 소생이 불가능할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지 말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해 줄 것 등 진료와 치료 내용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문서에 적고 서명을 해두는 것이다.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있을 경우 가족과 친지들에게 평소 구두로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 고려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모든 가족원들이 일관되게 이해하고 합의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연명치료를 중단시키려던 테리 시아보의 남편과 유지시키려던 부모 사이의 치열한 법정투쟁이 이런 가족 갈등의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환자가 아닌 가족의 입에서 나온 결정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정신적 부담을 지울 수 있다. 자녀들 스스로 불효를 의심하고 타인의 눈총을 의식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에서는 추수감사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자신이 어떤 의료적 처치를 받기 원하는지 사전의료지시서를 갖고 토론하고 서명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그래야 죽음을 자연스레 준비할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했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품위 있는 죽음의 선례로 꼽힐 만하다. 김 추기경은 사전의료지시서와 같은 문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의미 없는 생명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공인이었던 김 추기경에 비해 김 할머니 경우는 추정 의사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김 할머니 소송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자신이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권 행사이며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보장이다.

 삶의 다양한 방식만큼 다양한 죽음의 방식이 있기에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죽음준비의 한 항목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관련해 사전의료지시서와 같은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남기는 과정 자체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다보면 사전의료지시서가 자칫 또다른 위험을 안을 수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장 이동익 신부는 "말기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사전에 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환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사전의료지시서가 환자의 자기결정권만을 절대시 한다면 환자의 자살이나 안락사를 부추길 위험도 크다"고 지적했다.

- 평화신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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