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는 재난 종합 세트같은 영화다.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한 현상이 2012년에 나타나면서 지구에 지진, 쓰나미, 화산 폭발까지 온갖 재앙이 모두 겹친다.
개별 작품에서 다뤄도 벅찬 재난들을 한 작품에 몰아 놓았으니 볼거리가 요란하다.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치솟고, 해일이 덮치는 것도 모자라 히말라야가 물바다로 변한다.
얼마나 요란하던지 2시간 30분의 상영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만큼 볼거리는 풍부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감쪽같이 꾸민 재난은 실로 장관을 이룬다. 엄청난 규모의 재난 장면을 보면 돈의 싸움인 재난 영화만큼은 할리우드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해운대'가 드라마에 승부를 건 것도, 볼거리가 기대에 못미쳤던 것도 결국 돈의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2'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은 재난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지축을 흔들어 지구를 거꾸로 뒤집었으니 그 스케일은 상상 초월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볼거리는 차고 넘치지만 드라마는 빈약하다.
'타워링' '포세이돈 어드벤쳐' '분노의 역류' 등 잘 만든 재난 영화들이 보여준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드라마가 없다. 그렇다보니 재난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진한 감동을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감동은 없을지라도, 2시간 30분 동안 눈은 충분히 즐겁다.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한 작품이다.
영국 왕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앤 불린은 영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그는 우선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여왕 자리에 오르면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열었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도 그 때문에 도입됐다. 헨리 8세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추진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반대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헨리 8세는 천주교를 국교에서 폐하고 왕이 중심에 서는 성공회를 만든다.
영국의 국교를 바꾸고,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연 앤 불린은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가슴 속 가득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왕비를 내쫓고 새로운 왕비가 되지만 그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한 죄로 1,000일 만에 폐비가 돼서 처참하게 목이 잘렸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 2008년)이다. 줄거리는 필리파 그레고리의 역사소설을 토대로 삼았으나 같은 내용의 영화가 20편이 넘을 정도여서 새롭지는 않다.
그래서 이 작품은 철저한 고증으로 중세 시대 의상과 풍경을 잘 살린 볼거리와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슨, 에릭 바나 등 유명 배우들로 승부를 건다. 하지만 아름다운 주제곡과 리차드 버튼의 불꽃같은 연기, 쥬느비에브 뷰졸드가 명연을 펼친 '천일의 앤'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주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워낙 '천일의 앤'이 훌륭한 작품이어서 뛰어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DVD 치고는 샤프니스도 높은 편이며 착 가라앉은 색감이 고전 영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특별히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부록은 전무하다.
<파워DVD로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비운의 왕비 앤 불린을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
'천일의 앤'이 앤 불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본의 아니게 경쟁 관계에 놓이는 앤과 메리 두 자매에 초점을 맞췄다.
이 작품은 마치 유화처럼 조명을 잘 썼다. 은은한 반광과 간간히 보이는 미디엄 샷의 렘브란트 조명은 중세의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앤의 동생 메리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과 바람둥이 왕 헨리 8세 역의 에릭 바나.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보는 것처럼 낮게 깔린 앵글은 위압적이며 권위적인 중세 왕궁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앤은 그렇게 왕비를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자신도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앤은 남동생과 동침했다는 근친상간의 누명을 쓰고 런던탑에 유폐됐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낳은 딸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또다른 위대한 시대를 열었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이라면 주먹까지 잘 쓰는 잘 생긴 형사가 사악하고 못되게 생긴 범인을 잡아 혼내주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2009년)는 그렇지 않다.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는 잘생긴데다가 홍길동 뺨치게 잘 싸운다. 반면 그를 쫓는 형사 조필성(김윤석)은 싸움도 못하고 투박하게 생겨 먹었다.
아니, 형사도 잘 하는게 하나 있다. 돈 때문이기는 하지만 범인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다.
이미 일반 형사물과 달리 범인과 형사가 뒤바뀐 어긋난 설정에서부터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이 작품은 느긋한 충청도식 유머와 투박한 액션으로 즐거움을 준다. 절로 웃음이 터지거나 감탄이 나올 만큼 액션을 훌륭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삐걱거리는 서민의 투박한 삶을 닮은 이야기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계속 곱씹게 만든다.
마치 토끼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북이의 힘든 경주처럼 안스러운 사람들의 생활과 인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윤석, 정경호의 캐스팅이 좋았고 능청스런 조연들이 빛난 작품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윤곽선은 뭉툭하고 암부 디테일도 떨어지지만 한국 영화 타이틀 치고는 그런대로 볼 만 하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배경음악이 리어에서 울려나와 간헐적으로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부록으로 배우들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인터뷰, 시사회와 포스터 촬영 현장 등이 들어 있다.
<파워DVD로 DVD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토끼처럼 날렵한 범인과 거북이처럼 뒤뚱거리는 형사의 대결을 다룬 작품.
제목은 공모를 통해서 선택. 바지를 걷어올린 건달 역의 신정근 등 조연들의 연기가 좋았다.
거북이 같은 형사를 연기한 김윤석. 느물거리는 충청도 형사 역을 아주 맛깔스럽게 해냈다.
토끼같은 범인은 정경호가 연기. 코 밑 수염은 분장사가 교통 체증으로 늦게 오는 바람에 김윤석이 담뱃재를 문질러 즉석에서 그려 줬다고 한다.
막판 대결의 무대가 되는 소싸움 경기장. 소똥과 모래가 뒤범벅된 저곳에서 배우들이 몸을 굴려 연기했다.
TV드라마로 인기를 얻어 CF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우선이 범인의 애인으로 출연.
다방 마담으로 나온 강문희는 예전 MBC TV 어린이물 '호랑이 선생님'에 학생으로 나온 아역배우 출신.
'추격자'처럼 긴장감이 넘치거나 '살인의 추억'처럼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약간 모자르고 투박함이 매력인 작품.
케빈 맥도날드 감독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2009년)는 기자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다. '기자들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란 물음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2003년 영국 BBC TV에서 데이빗 예이츠 감독이 만들어 방영한 6부작 미니시리즈가 원작이다.
내용은 정보 전쟁에 뛰어들어 정치가의 음모를 밝히는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다. 언론과 정치의 공생 속에 벌어지는 정계의 음모와 스캔들, 살인 등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미스테리물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기대만큼 이야기가 긴박하거나 흥미진진 하지 않다. 주인공은 기자라기 보다는 추리 소설 속 탐정에 가깝고, 실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자까지 자문으로 기용해 묘사한 언론사 풍경 등은 현실과 동떨어져 거리감이 느껴진다.
결국 실제 같지 않고 너무 꾸민 이야기 티가 나서 흥미가 반감된 작품이다. 그러나 언론사 풍경을 배경으로 다룬 점은 이채롭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무난하다. 특별히 돋보이거나 떨어지지 않는 무난한 화질.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한다. 서라운드 효과 역시 평범한 편.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삭제장면이 들어 있으며 한글 자막이 수록됐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주인공인 기자 칼을 연기한 러셀 크로. 촬영 장소인 벤스 칠리볼은 실제 워싱턴의 명소다.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부인과 데이트를 한 장소로 널리 알려졌다.
음모의 한 복판에 선 하원의원 스티븐을 연기한 벤 애플렉.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이 작품을 독특하게 촬영했다. 정치가인 스티븐이 나오는 장면은 차갑고 인공적인 느낌이 들도록 디지털 카메라와 전경과 원경이 또렷이 보이는 딥 포커스를 사용.
반면 기자인 칼이 등장하는 장면은 필름 카메라와 애너모픽 렌즈, 인물을 살리고 배경을 희미하게 만드는 샐로우 포커스(Shallow focus)로 촬영.
케빈 맥도날드 감독은 이 작품 이전에 '라스트 킹'을 만들었다. 신문사 편집국은 세트.
영화속 모델이 된 신문사는 워싱턴 포스트.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자 R.B. 브레너가 언론사 풍경에 대한 자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촬영 허가를 얻기 힘든 워싱턴 DC에서 30% 가량을 찍었다. 이 장면에 나오는 건물은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심지인 워터게이트 빌딩이다.
원작인 TV 미니시리즈와 다른 점은 신문사 편집장이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점. 편집장 역할을 TV 미니시리즈에서는 빌 나이가, 영화에서는 헬렌 미렌이 맡았다.
윤전기로 신문을 인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 타이틀은 워싱턴 포스트의 버지니아 인쇄소에서 촬영. 윤전기가 있는 공장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절대 보안이 유지되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