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읽는 이를 절망케 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인간이, 인류가 어리석을 수 있을까 하는 회한에 젖게 만든다. 그 절망이 깊고 깊을수록 깨달음도 크다. 다시 말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20세기 이래 지구상에서 발발한 10개의 현대전을 다루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을 비롯, 2차 대전 중 독소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동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르완다 내전, 다르푸르 사태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던 참상을 다루고 있다. 그 같은 참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그처럼 파국을 향해 치달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결론부터 말하자. 한 국가의 지도자가 수십,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들의 가정을 짓밟으며, 국가 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지(無知)와 이로 인한 오판(誤判)이다. 두려움 때문이며, 히틀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과대망상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은 결코 ‘숙명적’이지 않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책은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 생에는 자유의지와 자기 결정이 있을 뿐”이라고. 결코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발발하는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은 최고지도자의 최종 결정에 따라 일어나며, 그 결정의 배후엔 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로부터 탈출하게 된 1954년 제네바회의 도중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제네바 소재 유엔 유럽본부의 한 회랑에서 덜레스(당시 미국 국무장관)와 우연히 마주쳤다. 저우언라이는 화해의 표시로 덜레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덜레스는 그의 손을 등 뒤로 돌리고 걸어나갔다. ‘선한 청교도는 악마와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만약 덜레스가 화답했다면? 베트남 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5만8000명의 미국인과 300만명의 베트남인이 사망한 전쟁의 결과를 숙고해보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오직 반성만이 있을 뿐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만약 당신이 심연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심연이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깊은 암흑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볼 때, 그래서 심연과 맞닥뜨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쟁의 얼굴은 메두사와 같아서 무자비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찔하고 무섭더라도 우리는 그 공포와 맞서야 한다. 그 길만이 또 하나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교훈 1 = 20세기에 전쟁을 시작한 어떠한 국가도 승리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은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고, 나치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히틀러는 자살했으며 유고슬라비아에서 ‘인종 청소’를 자행했던 밀로셰비치는 감옥에서 그의 생을 마쳤고 후세인은 동아줄에 목을 매달아야 했다….
◆교훈 2 = 지도자의 성격은 전쟁 발발의 중요한 원인이다. 정치·경제적, 이념적 요인도 전쟁을 일으키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독소불가침조약에서 파시스트들은 볼셰비키와 손잡았다.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이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지도자의 성격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빌헬름 황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느냐 아니냐가 전쟁 발생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교훈 3 = 전쟁 발발을 촉진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잘못된 지각(知覺)이다. 지도자가 바라보는 자기자신의 이미지, 적의 성격을 보는 지도자의 관점, 자신을 향한 적의 의도에 대한 지도자의 관점 그리고 지도자가 적의 능력과 힘을 보는 관점 등 네 가지 요소에서 올바른 생각을 갖지 않고 있을 경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저자는 “전쟁에 임하는 대부분의 국가 지도자의 자화상에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들은 단기 결전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만만하게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기를 기대했다”고 말한다. “결과에 대한 의혹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으며, 이는 강한 감정의 추진력으로 나타났고 그 자체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교훈 4 =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충분히 강력하고 길게 이어지면, 그 인식은 결국 사실이 된다. 저자는 “위기 상황에서 힘에 대한 인식은 특히 중요하다”며 “초기 단계에서 지도자들은 자국의 힘은 과장하고 적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이러한 인식은 점차 강한 두려움으로 바뀐다. 하지만 두려움은 전쟁 발발을 막지 못한다. 결국 최고조의 위기에서 지도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숙명적’이라고 여긴다.
책은 겉표지에 이런 경구를 새겼다. ‘불행하게도 전쟁에는 실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전쟁 그 자체이다.’ 원제 ‘Why Nations Go to War’.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